17화. 버스킹 (3)
“서번트라고?”
다음 날 아침, 시틀라의 모닝콜을 받으면서 물었다.
[예, 단탈리온 님. 단탈리온 님은 노래에 집중하시기에도 바쁘시니 시종을 하나…….]
“…….”
[다, 단탈리온 님?]
나는 시틀라의 질문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훗. 서번트라고?”
내가 요청한 서번트는 시종으로 부릴 수 있는 악마.
하지만, 마계에서 마왕의 시종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종족은 정해져 있었다.
“하급 서번트 중에서 시종 역할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있었더냐.”
나의 날카로운 질문에 시틀라가 입을 다물었다.
보통 마왕의 시종으로 고용하는 악마는 메이드를 자처하고 있는 데몬 메이드를 비롯해 라미아, 지옥 베이크 종족 정도였다.
그런데 이 종족들은 모두 아무리 낮아도 중급 악마부터이다.
만약 지금 내 마력에서 중급 악마를 소환한다?
그건 내 남은 마력을 쪽쪽 빨아먹고도 남는다는 뜻이고, 조만간 인간계에서 내가 증발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설령 중급 악마 소환이 가능해진다 해도 그건 마력 보조 장비가 더 구비되었을 때나 가능할 터.
“설마 시틀라 자네…….”
[예, 예!]
“악세사리를 추가로 완성한 것인가.”
그 말에 시틀라가 머리를 조아리며 이마를 바닥에 찧는 소리를 냈다.
쿠웅! 쿠웅!
“시틀라여. 머리만 박지 말고 대답을 하거라.”
[면목없습니다!!]
쿠웅! 쿠웅!
“……아직인 모양이구나.”
[죽을죄를……!]
“조용. 언제 완성되느냐.”
[쿠웅! 죄송, 합니다……. 아마 1주일만 지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급 악마를 서번트로 부리시면서 흑마법도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급 악마라고? 시틀라가 착각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마왕의 시종 종족 중 하급 악마가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1주일 뒤부터 소환이 가능하렸다?
“알겠네. 자네의 선택이 옳았기를 바라지.”
[……! 예! 예! 저를 믿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시틀라는 몇 번이고 대답을 반복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내가 귓가에 손을 가져갔다.
[감사드립…….]
그리고 통신이 끊어졌다.
“아.”
잠시 귀가 간지러워서 긁었는데 통신이 끊어졌다.
나도 모르게 통신을 종료하는 제스처를 취한 걸까.
아니면 시틀라가 끊은 것일까.
“……어느 쪽이든 중요한 일은 아니로다.”
나는 창백한 얼굴을 거울로 감상하며 머리를 한껏 매만졌다.
“전투 준비가 필요하겠구나.”
버스킹은 앞으로 2주 뒤.
그때까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드러머.’
드러머의 존재도 생각해야 한다.
정 어려우면 세션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할 생각이었다.
“리스트는 앤디가 만들어 두었을 터.”
이 몸은 적당한 인간을 선택하기만 하면 될지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싱크대에 놓여 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뭐라도 먹어야겠구나.”
앤디가 샌드위치라도 사 오도록 시켜야겠군.
슬슬 마왕을 보좌하도록 훈련시키기 않으면 안 되니 말이다.
* * *
양손 가득 샌드위치를 들고 온 앤디는 투덜거리며 봉지를 내려놓았다.
“돈 벌써 다 썼어?”
“아직 남았느니라.”
“그런데 왜 나한테 사달라 그래?”
“원래 남의 돈으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는 법이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
“그래서 그랬느니라.”
“……마왕이 이래도 되는 거야?”
“마왕도 먹고 살아야 뒷일을 도모하는 법. 내 행동에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느니라.”
나는 앤디가 구매해 온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먹었다.
“왜 참치햄 샌드위치가 아닌 것이냐.”
“투정할 거면 네가 사!”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앤디였다. 나는 앤디가 참으로 화가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앤디여, 화를 죽이거라. 쉽게 화를 내는 건 하급 악마들이나 하는 졸속한 행동이다.”
“아니 지금 이게……. 나 욕한 거지? 그치 제인?”
“아하하하! 그런 것 같은데? 깔깔!!”
제인은 너무 웃기다며 합주실이 떠나가라 웃고 있었다.
“항상 투덜거리는 앤디보다야 밝은 제인이 훨씬 낫구나.”
“다 들리거든?”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말을 말자.”
“그러면 아니 된다. 드러머 리스트는 뽑아 봤는가.”
내 말에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일단 뽑아 두기는 했는데, 시간 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앤디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열었다. 거기에는 앤디가 캡처해 둔 드러머들의 이력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있기는 하구나.”
“응. 문제는 장르가 다 달라.”
앤디의 말대로였다. 앤디가 추려둔 사람은 총 세 명. 그 중 두 명이 재즈 드러머였고, 한 명은 CCM 드러머였다.
“그런데 CCM이 무엇이냐?”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제인이 유창한 영어 발음으로 말했다. 설명을 들은 나는 인상을 팍 쓰면서 해당 인물의 이력서 사진을 삭제했다.
“아주 나와는 상극인 존재로다.”
“역시 그렇겠지?”
앤디와 제인도 내가 마왕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CCM 드러머를 제외하자는 의견에는 모두가 쉽게 동의를 했다.
“고민이네 이거. 어떡하나.”
아무래도 락, 그것도 메탈 밴드의 드러머로 재즈 드러머를 세션으로 데리고 오기에는 애매했다.
물론, 재즈 드러머 중에도 실력자는 있을 터. 하지만, 메탈의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미지수로다.”
그렇기에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하면 우리의 메탈을, 악마 숭배 음악을 알릴 수 있는 드러머를 데리고 올 것인가.
하다못해 이번 버스킹에서라도 활약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리온 님.]
“제인은 지인들 중 드러머 없는가?”
“있기야 하지만 다들 2주 뒤에는 일정들이 있어.”
“앤디의 지인들도 그렇겠구나.”
“응.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일정 취소하고 오게끔 돈을 드릴 수도 없는 형편이고.”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악마 한 명이 깊은 고뇌에 빠졌다.
[……리온 님.]
“아까부터 시끄럽구나 시틀라여.”
[죄, 죄송합니다!]
“되었다. 무슨 일이냐.”
[그게……. 준비한 서번트가 드럼을 칠 줄 안다 합니다.]
“으음?”
나는 시틀라에게 간략한 설명을 요구했다. 시틀라는 지금 서번트로 준비한 악마가 간단한 요리를 비롯한 가사는 물론이고 음악적 조예도 있다며 말했다.
[급한대로 이번 버스킹은 이 서번트를 활용하심이 어떠실지요?]
“호오……. 옳은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큰 부담이 줄어들 터.
게다가 내가 부리는 악마라면 알바비를 챙겨 주지 않아도 된다.
[돈도 굳고, 단탈리온 님의 명령에 충성을 맹세한 녀석이니 말도 잘 들을 겁니다.]
“옳도다. 1주일 뒤부터 가능한 것은 변동 없느냐.”
[예, 맞습니다.]
시틀라는 잠시 무언가를 계산해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악세사리 제작 시간과 서번트 소환진 구성 모두 약 일주일 뒤에는 완성이 됩니다.]
“일주일 동안, 서번트 대상 악마에게도 드럼 연습을 명령하거라. 소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공연이다.”
[예!]
“1주일 뒤, 기대하도록 하마.”
나는 곧바로 통신을 끊었다.
일주일 뒤에 인간계에 소환할 수 있다.
그사이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우선, 서번트에게 악보를 전달해야 한다.
“앤디, 제인이여.”
“응, 시틀라 오빠가 뭐래?”
“오빠?”
“오빠 아냐? 악마라며 그분도.”
제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제인의 말이 옳구나.”
“응, 그래서?”
“시틀라가 드러머를 구했다고 하는구나.”
“뭐!?”
“진짜!?”
제인과 앤디가 모두 깜짝 놀라며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악마들 중에 드러머가 있는 거야? 레알?”
“그렇다고 하는구나.”
“그럼 언제 오는데?”
“일주일쯤 뒤라고 하더구나.”
그 말에 앤디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약간 미묘하다. 연습은 노래 하나만 하면 되니까 죽도록 연습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는 한데…….”
“그 부분이라면 걱정 말거라. 음악이 완성되면 먼저 악보를 마계에 전송하면 된다.”
“그런 것도 가능해?”
지금의 마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돌아보며 말했다.
“가능하다. 앤디여, 작곡은 좀 되었는가?”
“아 그거, 이거 들어봐.”
앤디가 집에서 미리 작업을 해 봤다면서 핸드폰에 녹음된 파일을 들려주었다.
두두둥 두둥 탁탁 두둥두두둥 탁탁
지잉 쟈가각 지기깅 따당따당 따다당
적당한 무게감과 절도 있는 비트.
앤디가 만들어 온 멜로디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까딱까딱하게 만들었다.
“좋은데?”
제인의 말대로, 꽤나 괜찮았다.
“훗. 역시 이 몸의 부관이로다.”
“누가 부관이래. 아무튼, 가사는 나왔어?”
나는 들고 온 연습장을 펼쳤다. 그 안에는 내가 생각해 둔 가사들이 적혀 있었다.
“이런 컨셉으로 가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내가 생각한 컨셉은 고기와 함께 곁들이면 좋은 요리들이 겹쳐 있는 모양새였다.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목살에는 소주, 삼겹살에는 사이다, 이런 식이다.”
“음…….”
제인이 미묘하게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너무 평범하지 않을까?”
“뭔가…… 임팩트는 없는 것 같아.”
제인에 이어 앤디도 의견을 말했다.
나는 내가 작성해 온 가사를 다시 들여다봤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매기살, 여기에 소주, 맥주, 상추, 깻잎, 미역국 등등. 그러한 음식들의 나열.
“확실히 고기 찬가라고 하기에는 아쉽도다.”
“그치? 하나씩 나열한다고 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멜로디에 맞는 가사로도 생각해야 해. 어느 정도 라임도 맞춰 주면 좋고.”
하긴, 지난번 전국 노래 발표 장기회에서는 라임도 어느 정도 맞춰서 만들었었다.
그렇다면 이번 노래도 그걸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옳은 의견이다. 그럼 좋은 아이디어 없는가.”
내 물음에 앤디와 제인이 아직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일까지 고민해 오자. 멜로디 파일은 공유해 줄게.”
그날 합주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작사라는 공통된 과제를 모두가 지닌 채로.
* * *
“고민이구나.”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좀 더 매력적인 고기 찬가라…….”
그때 시틀라가 통신 요청을 걸었다. 내가 고갯짓을 한 번 하자 시틀라의 음성이 들려왔다.
[단탈리온 님.]
“무슨 일이더냐.”
[작사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에키드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에키드나를?
11군단장인 에키드나라면 나를 향한 충성심이 가득한 믿을 수 있는 부하였다.
“에키드나여, 좋은 아이디어가 있느냐.”
[마, 마왕 단탈리온 님을 뵙습니다!!]
“되었다. 음성으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네의 행동은 보이지 않느니라.”
[!! 그렇다면 더더욱 최선을 다해서……!]
콰아앙!
바닥이 뚫릴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아아……. 바닥 수리비가…….]
[시, 시틀라!? 미안해!]
“그래서, 에키드나. 자네의 아이디어가 무엇인가.”
에키드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탈리온 님! 저희가 고기 연회를 열 때는 항상 전쟁이 끝난 직후였습니다!]
“호오.”
[승리했을 때는 고기와 함께 승리의 순간을 되새겼고, 패배했을 때는 고기와 함께 패배의 아픔을 위로했습니다. 모두 71위 마계, 위대한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님을 숭배하면서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니 단탈리온 님도…….]
여기까지 말한 에키드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저희 11군단과의 전투를 떠올리시며 고기를 드셔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내 머릿속에서 섬광과 같은 영감이 지나갔다.
‘그렇구나 이것이라면…….’
고기 찬가에 어울리는 가사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었다.
“에키드나여.”
[예, 단탈리온 님!!]
“자네들의 공로는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그러하시면……!!]
나는 양쪽 입꼬리를 사악 올리며 킥킥 웃었다.
“아주 좋은 이야기로다.”
마성전쟁. 천계에서는 성마전쟁이라 부르는 그 거대한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와 패배를 반복했다.
에키드나는 그 마성전쟁에서 전투가 끝났을 때 열었던 고기 연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막 창설된 11군단, 그리고 햇병아리였던 군단장 에키드나.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마왕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정해졌구나.”
이날, 버스킹에서 사용할 노래의 제목이 정해졌다.
<삼겹살에 추모 한 잔>
앤디, 제인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새로운 노래 제목을 올리면서 나는 고고하게 몸을 세우며 남은 돈까스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