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18화 (18/110)

18화. 버스킹 (4)

“빨리! 빨리빨리 움직여라!”

“마력을 충전해라! 최상급 광물이 필요하다!”

단탈리온이 지배하는 71위 마계.

지금 이곳은 갑작스러운 마왕의 요청에 의해 잔업, 야간 근무까지 행해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단탈리온 님을 위해서라면……!”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위대한 71위 마계의 지도자,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그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인식이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악마에게 깃들어 있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그리고 그 인원은 점차 늘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틀라와 에키드나는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군.”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게 대단하지 않아? 역시 단탈리온 님.”

시틀라와 에키드나는 간단히 지금의 상황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서 말했다.

“어제는 심장이 꿰뚫리는 줄 알았어. 조심해라 시틀라.”

“그래. 내가 그때는 성급했지. 마계와 인간계의 차이를 간과하다니.”

시틀라는 어제 단탈리온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정말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하급 서번트 소환에만 집중했지, 소환한 서번트를 유지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어.”

“맞아. 소환 마력은 4천이지만, 그 서번트가 인간계에서 형태를 만들고, 계속해서 단탈리온 님을 보좌하려면…….”

“마력 생성 팔찌나 목걸이 정도는 필수야. 거기에 기본 마력을 확장시켜 줄 악세사리도. 단탈리온 님은 거기까지도 생각하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시틀라는 다시 머리를 바닥에 박기 시작했다.

“나는!”

쿠웅!

“단탈리온 님을!”

쿠웅!!

“보좌할 자격이!”

쿠웅!!!

“없어!!!!”

쿠웅!!!!

작게 흐느끼는 시틀라를 보면서 에키드나가 작게 위로했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어. 나 아까 칭찬받은 거 들었지?”

에키드나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쫙 폈다.

서번트 소환에 대해 단탈리온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죄를 어떻게든 해소하고자 했었던 아이디어 제안.

거기에서 단탈리온은 에키드나의 이야기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아주 좋은 이야기로다.

거기에 11군단의 공로를 잊지 않고 있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칭찬.

사실 잘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에키드나는 그렇게 느끼는 말들이었다.

“서번트 소환에 대한 실수는 용서해 주신 거야. 그러니까 이제는 더한 실수 없게 해야지. 시틀라는 힘들면 빠져 있어. 내가 다 할 테니까.”

에키드나가 잘난 체하는 모습을 본 시틀라가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일어섰다.

“흥. 단탈리온 님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건 나다.”

“그래 봤자 곧 오로바스에게 뺏기는 거 아냐?”

“네놈……!”

시틀라와 에키드나가 서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사실 두 악마는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지난 마성전쟁 때부터 절친한 사이가 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하급 악마들은 두 악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두 분이 또 회담을 즐기시는군.”

“정말이지, 인생의 단짝, 영혼의 프렌드. 그런 사이가 아니시겠나.”

촤악!!

“닥치거라!”

“히이이익! 죄송합니다!!”

에키드나의 채찍이 바닥에 내리꽂히자 하급 악마들이 다시 광물을 캐러 나섰다. 에키드나는 한숨을 쉬면서 조금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력 회복 광물. 가능할 거 같아?”

“마계 코인만 충분했다면 빠르게 탐색할 수 있었겠지만…….”

시틀라는 마계통장과 계산기를 두드려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대출금은 –999,60,070,000,927코인.”

“……조금 늘었네.”

“그래도 최소한으로 조정하고는 있어. 아무튼, 지금 대출금으로는 마계코인으로 마력을 생성하는 건 불가능해.”

그렇다.

지금 71위 마계는 금방이라도 파산할 지경.

그런 시점에서 마계코인을 사용해 마력을 생산하고, 이를 광물 탐색에 이용한다?

빨리 파산시켜 주십쇼, 하고 기도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저주라도 퍼부어 주면 좋겠군.”

시틀라의 혼잣말에 에키드나가 물었다.

“그럼 이 아날로그식 광물 탐색이 제대로 안 되면 어떡해?”

“…….”

시틀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

“……대책 없는 건 아니지?”

“…….”

“미친 시바 뭔데! 진짜 없어!?”

“……응.”

그 말에 에키드나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곧장 다른 군단장들에게 통신을 걸었다.

“언니 오빠들!! 큰일 났어요!!”

흥분한 에키드나가 철들기 전의 말투로 말했지만, 다른 군단장들은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에키드나가 이 정도로 흥분했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으니까.

[왜 그리 흥분했느냐.]

[차분히 말해.]

“마력 회복 광물, 1주일 안으로 무조건 캐야 해요!”

자초지종을 들은 모든 군단장이 곧장 하급 악마들 총동원령을 내렸다.

“저기 에키드나…….”

곡괭이를 들고 광산으로 내려가려는 에키드나를 시틀라가 붙잡았다.

“왜? 나도 가서 캐 봐야 해! 바빠!”

“그…… 게 아니라…….”

시틀라는 난처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거…… 광물은 3일 안에 캐야 해.”

“뭐!? 왜?”

“악세사리 제작 기간이 있잖아.”

“아.”

다른 악세사리보다 마력 회복 악세사리는 그 광물의 정교함이 차원이 다르기에 제작 기간도 더 오래 걸렸다.

“……만약 1주일 안에 캐지 못하면?”

“버스킹 전까지 소환하기 힘들어질지도 몰라.”

“!!”

에키드나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렇게 되면 이 광산을 다 날려버려서라도…!”

“멍청아! 광물 깨지면 어쩌려고! 당장 마력 집어 넣어!”

그렇게 71위 마계에 마력 회복 광물 캐기 특명이 내려졌다.

그리고 목표했던 3일 동안.

그들은 결국 마력 회복 광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 * *

“완성되었노라.”

나는 앤디와 제인에게 가사의 컨셉과 함께 버스킹에서 우리들의 의상과 분장 컨셉도 전했다.

“좋은데?”

내용을 읽은 앤디가 고개를 끄덕였고, 제인도 꽤나 흥미롭다며 눈을 빛냈다.

“재밌겠다. 이거 연출은 마왕님한테 부탁하면 되려나?”

“훗.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거라.”

이번 버스킹에서 중요한 부분은 악마 숭배 음악, 메탈의 위대함을 알리는 것.

이를 위해 적절한 연출을 준비하고 있는 참이었다.

잔여 마력량: 4839

마력량도 4천 이상은 항시 유지중이었다.

감전전달력 강화 마법인 펜시 인텐시키온을 앤디와 제인에게도 걸어주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곡 하나로만 할 거야?”

“그렇다.”

“하나로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삼겹살에 추모 한 잔이니라. 하나면 충분하도다.”

나는 손을 까딱 움직이며 마계에서 와인잔을 흔들듯이 손목을 흔들었다.

“고기에 와인 한 잔…… 인가. 이 몸의 마계 생활이 생각나는군.”

“……입만 다물면 참 멋진 녀석인데.”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마계의 연회장을 떠올리며 그리운 듯 말했다.

“앤디여, 악보는 나왔는가?”

“아 그치. 이거야.”

앤디가 악보 한 장을 내밀었다. 이번 노래인 <삼겹살에 추모 한 잔>의 악보였다.

“드럼 악보는 이거.”

앤디가 또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아는 드러머 형한테 부탁해서 만들었어. 이번에도 시간만 되면 도와주고 싶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정말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도와주는 법.”

나는 드럼 악보를 받아들었다. 꽤나 정교하게, 어렵지 않게 고려한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허나 이 정도라면 그래도 감사 인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겠군.”

“그치? 그 형 진짜 바쁜데 도와준 거라니까.”

“나중에 고기라도 한번 사 주도록 하거라.”

여기저기 친절한 설명이 적혀 있는 드럼 악보를 바닥에 깔고 손을 위로 올렸다. 가볍게 마력을 끌어올리자 손에서 검붉은 빛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리을투리을.”

작게 중얼거리자 검붉은 빛이 드럼 악보 위를 스윽 훑고 지나갔다.

리을투리을. 손바닥이 훑고 지나간 곳의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타인에게 공유할 수 있는 흑마법.

전쟁터에서는 전장의 분위기와 상황을 기록하고 이를 본대에 알리는데 자주 사용되는 흑마법이었다.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자료를 하나 보낼 터이니 이를 서번트에게 전달하거라.”

시틀라에게 드럼 악보를 전송했다. 시틀라는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통신을 마무리했다.

“시틀라 오빠가 뭐래?”

“알았다고 하더구나.”

제인에 이어 앤디도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그 시틀라라고 하는 분……? 악마님……?”

“악마니라.”

“시틀라 악마님도 나중에는 여기로 오시는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마력이 안정되고, 마계와 천계의 격차가 좁혀지면 시틀라도 내려오겠다고 고집을 피울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간 고뇌하고는 말했다.

“알 수 없구나.”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마계가 안정이 된다면 가끔 놀러올 수는 있는 법.

상급 악마이기에 하급 악마들이나 하는 짓거리인 무분별한 사고를 치지는 않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

“그냥, 나중에 그 악마님이랑 소주나 한 잔 할까 해서. 너를 데리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동병상련될 거 아냐.”

앤디의 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왕을 모시고 산다면 그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없을 터.

나는 고고하게 고개를 올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하게나. 우선은 연습부터 하는게 어떤가.”

서번트 소환도 소환이지만, 서번트가 왔을 때 우리가 제대로 된 연주를 해내지 못한다면 그만큼 망신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 * *

단탈리온이 한참 신곡 연습에 집중하고 있을 때.

71위 마계는 마력 회복 광물을 구하지 못해 난리가 났다.

“시틀라, 어쩔까……?”

“잠깐 조용히 해, 머리 굴리고 있으니까.”

에키드나의 독촉을 들으면서 시틀라가 머리를 쥐어 잡았다. 그러고는 바닥을 향해 냅다 내리꽂았다.

쿠웅!

“나는 쓸모없는 시종…….”

“멈춰 시틀라!”

이마에 구멍이 나기 전에 에키드나가 서둘러 시틀라를 말렸다. 시틀라는 에키드나에 붙들려서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놔! 난 쓸모없는 부관이야! 단탈리온 님께 사실대로 고하지도 않고 허세나 잔뜩 부리고!”

“멍청아! 단탈리온 님께 도움이 되려면 뭐라도 더 해야지! 아니 문관이 왜 이리 힘이 세?”

에키드나의 만류에 시틀라는 겨우 호흡을 진정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모든 걸 잃은 듯한 얼굴로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아…… 나는 어찌하면…….”

[시틀라, 들리는가.]

그때 단탈리온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다, 다다, 단탈리온 님!?”

[? 왜 그리 놀라는가.]

“아, 아닙니다. 어쩐 일로…….”

[악세사리. 준비되어 가는가.]

그 말에 시틀라의 얼굴이 창백해짐과 동시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 그것이…….”

[그래. 우리 마계에는 광물이 많지 않았으니 잔여분을 찾기가 힘들겠지.]

그 말에 시틀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단탈리온 님은 이 상황을 모두 예견하고 계셨단 말인가!?

그렇다면 일정을 1주일을 주신 건, 우리들의 판단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단탈리온 님의 테스트….

“죽여 주시옵소서!!!”

[죽기에는 이르구나, 시틀라여.]

단탈리온은 잠시 숨을 크게 삼킨 후, 어떤 이름을 말했다.

[아몬에게 연락하거라.]

“아, 아몬 님,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녀석들은 나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니 광물 지원을 요청해라.]

아몬이 다스리는 7위 마계는 광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니 상급 광물이나 마력 회복 광물도 보유하고 있을 터.

“허나 단탈리온 님, 지금 마계 코인이…….”

[상관없다. 아몬은 무상으로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에키드나.]

“예, 예! 단탈리온 님!”

[시틀라를 도와라. 광물을 다룰 수 있는 군단장으로서 말이다.]

시틀라와 에키드나는 머릿 속으로 섬광 하나가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악마는 단탈리온의 깊은 의도를 이해하고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을 위해!!”

[숭배하거라.]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을 위해!!”

단탈리온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구나. 그리고 서번트 소환은 앞으로 열흘 뒤로 하겠다.]

“그러면 공연이 너무 늦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단탈리온이 히죽 웃었다.

[거기에서 하나의 연출을 만들겠다.]

“그럼 드러머의 연습은…….”

[시틀라여.]

갑작스런 호명에 시틀라가 몸을 세운 후 고개를 숙였다.

“예, 단탈리온 님!”

[자네를 믿겠다. ]

통신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에키드나가 여전히 몸을 숙이고 있는 시틀라에게 말했다.

“시틀라.”

“에키드나……. 나, 단탈리온 님께 이 목숨, 수백, 수천 개라도 바치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에키드나도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방금 전의 통신.

그것은 부관을 신뢰하는 최고 권위자의 가장 모범적인 모습.

부하를 믿고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위한, 마왕 단탈리온의 각오.

그 각오를 들은 지금, 그 어느 부하가 허투루 행동할 수 있겠는가.

“아몬 님께 연락드린다.”

“광물 공방, 세팅 다 끝내 둘게.”

시틀라와 에키드나의 손과 발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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