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19화 (19/110)

19화. 버스킹 (5)

“이 정도면 되었구나.”

시틀라에게 맡겨 둔 드러머의 훈련.

제법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참이었다.

어쨌든, 당일에 늦지 않게만 올 수 있다면 충분할 터.

“리허설까지는 올 수 있는 거지?”

앤디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다. 너무 걱정 말거라.”

“뭐……. 너무 바쁘면 당일에 급하게 리허설하는 경우도 가끔 있기는 하니까.”

생각해 보면 지난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도 리허설 때 맞춰 본 게 전부였다.

근데 그때는 전부 실력자였잖아?

앤디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하다며 중얼거리고는 물었다.

“그런데 그 악마님, 진짜 잘 치는 거 맞아?”

“그렇다고 한다.”

“너도 모르는 거야?”

“휘하의 악마들이 많기 때문에 상급 악마 이하의 악마들은 모두 알지 못하느니라. 인간으로 치면, 기업 회장이 말단 직원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그렇게 말하니까 또 그것도 그렇네.”

앤디는 그렇게 말하면서 혹시 모른다며 말했다.

“일단 드럼을 녹음이라도 해 두자.”

“왜 그러는가?”

“혹시나 드럼 실력이 우리 곡을 소화하기 어려우면 MTR이라도 써야지. 솔직히…… 이건 진짜 최후의, 정말 최후의 수단이야.”

아예 우리 셋만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기는 해.

거기까지 말한 앤디는 그 이상은 말하지 못했다.

앤디의 말대로 셋만으로 공연을 하려면 제인과 함께 작곡은 물론이고 노래 방향도 함께 수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 제인은 가게 일을 도와주기 위해 합주에 빠졌다.

“하루빨리 제인을 다시 데리고 와야겠구나.”

때문에 이 몸, 앤디, 제인으로 이루어진 3인 밴드로의 연주는 어려울 터.

드럼이 없는 상태로 연주를 하게 된다면, MTR이 아닌 기타와 베이스의 사운드를 더 강렬하게 키울 필요가 있다.

“지금은 3인으로 하기에도 시간이 없어.”

앤디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드러머도 빨리 와야 해. 안 그러면 진짜 MTR을 ‘적극적으로’ 써야 할지도 몰라.”

자신도 그러기는 싫다면서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밴드 사운드는 연주자의 칼박도 중요하지만, 라이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구 템포가 중요하다.

앤디의 밴드 철학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RRR밴드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앤디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밴드의 장점은 라이브 공연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리듬, 연주, 그리고 즉흥 애드립.

그런 것들이 한데 모여 밴드 사운드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나 메탈이라면 더더욱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법.

하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앤디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보험이라도 들어주자는 뜻이었다.

“앤디여, 귀 속임은 허락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앤디의 의견에 반대를 했다.

“귀속임? MTR? 야 그래도 귀속임까지는 아니…….”

“마왕군은 그래서는 아니 된다.”

앤디의 의견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드러머가 뻔히 있는데 MTR을 깔아 둔다?

그것은 소환된 서번트, 나의 부하 악마에게도 못 할 짓일뿐더러 마왕인 이 몸에게는 허락할 수 없는 편법이라 할 수 있다.

“앤디 자네도 어설픈 연주 흉내를 내고 싶은 건 아닐 터.”

“……그야 그렇지만.”

“그럼 이 몸을 믿거라.”

내 말에 앤디도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앤디의 눈이 조금은 밝아진 듯 보였다.

내 설득이 통한 모양이었다.

“버스킹 당일, 이 몸은 먼저 현장에 나가 있을 것이다.”

“오케이. 제인은 내가 데리고 올게.”

“또한, 앤디 자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게 있도다.”

이제 RRR밴드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야 할 때.

그러나 아직 RRR밴드는 제대로 된 음반은 겨우 한 번 발매했고, 공연도 별로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버스킹은 제인을 데리고 옴과 동시에 RRR 밴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계에 내려와 열심히 찾아보았던 인별그램과 너튜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들과의 소통 창구를 개설하거라.”

이제 RRR밴드도 SNS를 만들 때가 되었다.

“SNS라면 이미 있는데?”

“……뭐라?”

SNS가 있는데 어찌 지금까지도 활용하지 않았단 말이냐.

깊은 한숨을 쉬면서 앤디를 흘겨봤다.

“쓸모없는 것들.”

“뭐!?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아무것도 아니다.”

“쓸모없다고 했지!!??”

“다 들었으면서 왜 다시 묻느냐. 그러니 자네가 소인배라는 것이다.”

“이게 진짜!”

“어쨌든 그걸 홍보해야 하느니라. 준비하거라.”

어쨌든, RRR은 앞으로 더 이름을 알려야 하는 밴드.

이번 버스킹에서 SNS도 적극 홍보할 계획이었다.

* * *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앤디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단탈리온과 이번 노래 연습을 했다.

연습이 끝난 뒤, 단탈리온은 연출에 필요하다며 근처 천원 가게에 들어갔다.

앤디는 단탈리온의 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괜찮은 건가……?’

마왕이라고 하는 존재는 생각보다 고고한 자태를 뽐냈지만, 사실 알고 보면 허당인 경우도 많았다.

설거지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저 마왕이 준비하는 연출이 제대로 된 연출이라 여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연출 직전까지도 비밀로 할 것이다.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그저 단탈리온의 얼굴이 확신에 가득 차 있었기에, 그리고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위엄을 뽐냈기에 알아서 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데스맨…….’

단탈리온이 깃들어 있는 몸, 데스맨.

이제 너는 더 이상 없는 거냐.

괜히 감성적이 되었던 앤디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연주, 빡쎄게 준비하자.”

메탈 밴드에게 필요한 연출은 단탈리온이 담당한다. 제인은 분장을 해 주겠다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고 화려한 연주를 준비한다.

이번 노래에 담긴 기타 솔로 구간도 앤디의 최대 장점인 속주가 섞여 있다.

그리고 그 노래 가사도.

‘……MTR은 무슨.’

그런 노래인데, MTR을 생각해 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몸은 데스맨이지만, 단탈리온은 밴드계의 신입이라 할 수 있는 존재.

그런 그조차도 MTR은 귀 속임이라며 반대했다.

그것은, 연주자가 뻔히 있는데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며 말이다.

앤디는 핸드폰에 들어 있는 음악파일 하나를 열었다. 이번 노래의 멜로디에 어울리는 드럼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둥둥둥탁탁둥둥탁

그리고 앤디는.

그 파일을 지웠다.

“어디 정면승부해 보자고.”

메탈 밴드로서의 자존심에 불이 지펴지는 순간이었다.

* * *

“다 됐다……!”

시틀라는 완성된 반지를 보면서 감격에 겨운 듯 두 눈동자를 가볍게 떨었다.

<마력 회복 반지: 초당 5의 마력을 회복한다.>

단탈리온의 말대로 시틀라는 지난 통신이 끝나고 곧장 아몬에게 연락을 했다.

-나의 친우가 말인가! 당장이라도 찾아 주겠네!

7위 마계도 마력 회복 광물을 보유 중이지는 않았기에 아몬은 부하들을 시켜 광물 탐색을 했다.

허나 광물이 가득한 마계라는 별명답게, 아몬의 부하들은 하루 만에 마력 회복 광물을 발견했다.

“최상품이 아니라는 건 아쉽지만…….”

에키드나가 아쉬운 마음에 혀로 입술을 훔쳤다.

“이거라도 어디야. 아몬 님 정도 되니까 중급 레벨 광물을 찾아 주신 거라고.”

시틀라는 에키드나에게 말하며 웃었다.

확실히 이 악세사리라면.

단탈리온 님의 큰 힘이 되어 줄 터.

“그럼 반지 하나랑, 목걸이 하나. 맞아?”

이번에 악세사리 공방에서 제작한 아이템은 총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방금 소개한 ‘마력 회복 반지(중급).’

또 하나는 지금 시틀라의 왼손에 들려 있는 목걸이.

마력 보조 목걸이였다.

“좋아. 먼저 이걸 인간계로 보내자.”

시틀라의 말에 에키드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인간계에서 고생하고 있는 마왕 단탈리온 님의 마력을 최대한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전송식은 만들어 뒀어. 보내는 건 금방이야.”

“지금은 새벽이니까, 아침에 보내도록 하지.”

인간계의 시간으로는 현재 시각은 새벽 3시.

단탈리온 님이 단잠에 들어 계실 시간.

시틀라와 에키드나는 마왕의 휴식 시간을 건들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존재들은 아니었다.

“그럼 그사이에 오로바스를 부르자.”

시틀라는 주변에서 일하는 부하를 시켜 오로바스를 불렀다.

“오로바스, 대령했습니다!”

“오로바스, 준비는 잘 되어 가느냐.”

오로바스가 시틀라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예, 악보도 완벽하게 숙지해 둔 상태입니다.”

“좋다. 연주해 봐라.”

“예!”

시틀라의 명령에 오로바스가 드럼을 소환했다. 스틱을 쥐어잡은 오로바스가 천천히 스틱 두 개를 서로 마주 부딪혔다.

탁, 탁, 탁

챠앙~

오로바스의 연주를 들으면서 시틀라가 에키드나를 바라봤다. 에키드나도 드럼 소리가 매우 만족스러운지 시틀라를 보며 히죽 웃었다.

“이 정도면 실전에서 실수하지 않는 한 문제는 없겠군.”

시틀라도 그에 동의했다.

“그래. 확실히 이 녀석의 연주는 괜찮아. 이 정도라면…….”

음악의 혼을 지닌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음악의 혼.

‘단탈리온 님은 그것을 악마에게 영혼을 바친다, 라고 표현하셨지.’

그렇다면 오로바스는 자신이 악마이기 때문에 바로 혼을 담을 수 있는 것일까.

음악적 조예가 깊지 않은 시틀라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단탈리온에게 최대의 신임을 받는 지금, 그걸 핑계로 오로바스에게 적당한 칭찬을 해 줄 수는 없는 법.

“그만.”

“!!”

오로바스가 스틱을 공중에서 멈추었다.

“오로바스.”

“예, 시틀라 님!”

오로바스가 다시 한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연주에 혼이 담겨 있지 않다.”

사실 혼이 담긴 것 같았는데도, 시틀라는 위엄을 지키고자 억지 평가를 했다. 에키드나도 생각지 못한 평가라 여겼는지 시틀라에게 물었다.

“뭐? 방금 전에는 괜찮은 연주라고…….”

“괜찮은 연주와 혼이 담긴 연주는 차원이 달라. 이 녀석에게는 혼이 없어.”

시틀라는 잘 알고 있는 척 말하며 팔짱을 꼈다. 에키드나는 여전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로바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오로바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어, 어떻게…….”

“응?”

오로바스는 이제 무릎을 꿇다 못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시틀라 님! 제 연주에 혼을 담고자 하였지만, 연신 실패 중이옵니다!”

오로바스의 말을 들으면서 시틀라는 저도 모르게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할 뻔했다.

그러나 시틀라는 단탈리온의 가르침을 항시 기억하고 있는 시종이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시틀라 자네는 위대한 마왕군, 마왕의 직속 부관이다. 위엄있고 도도한 자태를 잊지 말거라.

‘단탈리온 님, 부관 시틀라. 단탈리온 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그래서 시틀라는 오로바스에게 말했다.

“큰일이로군.”

“제가…… 시일까지는 반드시……!”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시틀라가 바닥에 마법진을 가볍게 그리더니 발로 짓이겼다.

“자네의 소환 육망성이 산산조각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마력을 살짝 사용해서 허공에 육망성 예시를 그린 후 폭파시키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마력을 낭비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시틀라는 직접 바닥에 육망성을 그린 후 발로 짓이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그 모습 또한, 오로바스에게는 공포스러운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 * *

오로바스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며 몸을 으슬으슬 떨었다.

‘큰일날 뻔했군.’

연주에 혼이 담기지 않은 것을 눈치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새기는 허술한 육망성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니.

하급 악마에 불과한 자신을 뭉개 버리는 건 마력까지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님을 표현한 시틀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로바스는 몸을 떨면서도 한 손으로는 두 개의 스틱을 꽉 쥐었다.

“단탈리온 님께 도움이 되어야 해……!”

부관인 시틀라 님조차 저 정도의 위압감이다.

마왕 단탈리온 님은 과연 어떤 위압감이 뿜어져 나올까.

두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단탈리온을 추종하는 악마로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번트로서 현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으로 변신해야 한다.

시틀라는 그렇게 말했다.

악마의 모습 그대로 내려갈 수는 없는 법.

그렇게 소환되었다가는 인간들에게 어떤 공포심을 심어 줄지 감히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인간들이 공포를 갖게 되는 순간, 자네의 임무는 실패라고 봐야 한다.

공포심을 갖기보다는, 악마를 친숙하면서도 존경받게끔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단탈리온 님께서 계획하시는 모든 계획의 목적…!’

그러니 이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인간들에게 친화적으로 다가가라.

그걸 명심하며 오로바스가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곧 뵙겠습니다, 단탈리온 님!!”

오로바스의 손에 쥐어진 스틱이 부서질 듯이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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