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버스킹 (6)
버스킹 당일, 나는 공연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탐색한 나는 앤디에게 말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우리의 공간이로다.”
“맞아. 연출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연출을 위해 준비해 온 물건들을 꺼냈다.
“이걸 사용할 계획이다.”
“이건……?”
앤디는 물건들을 보더니 설마 하며 물었다.
“원룸에 그려 놨던 마법진? 그거에서 쓴 것들 아냐?”
“비슷하지만 다르다.”
“……이걸 그리려고?”
“그렇다. 그리고 우리의 오늘 분장은 마왕군.”
에키드나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노래.
마왕군의 전투를 보여 주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고기 연회를 강조한다.
“마왕군이기에 이런 연출은 필수이다.”
내 말에 앤디는 조금 애매한 표정을 했지만, 별일 있겠냐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나부터 분장하고 올게.”
“앤디, 이쪽으로 와!”
제인이 버스킹 장소 뒤편에서 손을 흔들었다.
“알겠다.”
나는 앤디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시틀라에게 받은 반지를 매만졌다.
‘설마 마력회복 반지를 만들어 줄 줄이야.’
역시, 나의 부관은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기본 광물은 아몬에게 지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것을 가공한 것은 시틀라 본인.
‘훌륭하도다.’
에키드나 역시도 드러머 악마의 연습에 도움을 주었다는 보고도 받았다.
이번 버스킹을 위해 시틀라와 에키드나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준 것이다.
‘11군단장에게도 이번 일을 꼭 치하해 주어야겠군.’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나는 봉지에서 붉은색 양초를 아낌없이 꺼낸 후 바닥에 쌓아 두었다.
그리고 고깃집에서 공짜로 받은 성냥을 꺼냈다.
“이게 그 위대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육망성의 길을 표현한 양초들에 하나하나 불을 붙여 나갔다.
* * *
“와……. 긴장된다.”
제인이 베이스를 손에 꼭 잡고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곧 버스킹이 시작될 시간.
긴장이 될 법도 했다.
“펜시 인텐시키온.”
나는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강화 마법을 걸었다. 시틀라가 건네준 반지와 목걸이 덕분에 지금 최대 마력은 1만이 넘었다.
잔여마력량: 10,009
거기에 회복 반지 덕분에 초당 5의 마력이 회복된다.
펜시 인텐시키온을 나는 물론이고 앤디, 제인에게 걸어 주어도 충분할 정도였다.
두 사람에게 손을 뻗어 정수리 위에서 한 바퀴 원을 그렸다. 작게 안개가 피어 나오더니 두 사람의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
“……어라?”
“이제 괜찮을 게다.”
앤디와 제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이게 흑마법이야?”
“최하급 흑마법이다.”
“이거……. 좋다.”
녀석들, 드디어 마왕의 위엄을 깨닫고 있는 모양이구나.
“앤디, 제인. 내가 준 팔찌를 잘 끼고 있는가?”
“응? 아 공포 저항 뭐시기?”
“당연히 끼고 있지. 이거 디자인도 마음에 들어.”
앤디와 제인에게는 마왕인 나와 함께 다녀야 하기에 공포 저항 팔찌를 건네주었었다.
해골 모양이 박혀 있는 팔찌였는데, 제인은 팔찌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혹시나 싶어 이야기하겠다. 오늘은 그 팔찌를 절대 풀지 말거라.”
“응? 왜?”
앤디의 질문이 들어왔지만, 나는 거기에 답할 새가 없었다.
관객들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야야, 저기 뭐야?”
“몰라. 버스킹인가?”
“인사동에서 버스킹 진짜 오래간만인데?”
사람들이 RRR밴드를 보면서 쑥덕거렸다.
아직 메탈의 위력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저런 반응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 또한 나의 예상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메탈 밴드 RRR(쓰리알)입니다. 올해로 7년 차 밴드이고, 헤비메탈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때 앤디가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그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자리를 떠나려 했다.
“에이 뭐야. 헤비메탈이야?”
“쩝. 난 그냥 락이 좋은데.”
“됐다. 가자.”
그 이야기를 들은 앤디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메탈 밴드는 인기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이크를 잡고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잘 왔도다. 이 몸은 위대한 RRR밴드의 수장, 마왕 데스맨이다.”
이번에는 반응이 달랐다.
사람들은 무언가 신기한 존재들을 보는 것처럼 호기심을 비쳤다.
“마왕? 수장?”
“뭐야 저 컨셉. 악마 분장인가?”
완전히 악마스러운 분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분장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반감을 줄 수도 있다는 제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였다.
하지만, 양쪽으로 솟은 뿔은 악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특징.
우리 셋은 모두 그 뿔을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마왕을 눈앞에서 목격하기는 쉽지 않을 터.”
나는 바닥에 그려서 불을 켜둔 양초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여기 이 육망성이 보이는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자네들의 욕망이 비치는, 바로 위대한 마왕의 마법진.”
허공에 대고 칼을 그었다. 미리 준비해둔 붉은 액체가 뚜둑, 뚜둑 떨어졌다.
“헐, 피!?”
“연출이겠지 에이.”
사람들이 조금씩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했다.
“어떠한가. 오늘 밤, 그대들을 멋진 연회장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양쪽 입꼬리를 사악 올렸다.
‘추가 흑마법은 필요 없겠군.’
그렇다면 서번트 소환에 집중할 수 있다.
“우선 소개하도록 하지. 마왕군의 12군단장 앤디. 기타를 담당하고 있다.”
사람들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앤디를 바라봤다. 앤디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야! 뭔 소리야!?’
‘조용. 이 몸을 믿거라.’
“옆에는 마왕군의 13군단장 제인.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다.”
“아, 안녕하신가!”
제인은 어설프게 반말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몸이 90도로 꺾이고 있었다.
저래서야 위엄이고 뭐고, 그저 노예의 모습이 아닌가.
허나 지금 그걸 지적할 수는 없다.
나는 이어서 연출을 위해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그러나 연회장을 열기 위해서는 우리 셋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자네들이 보기에도 한 명, 부족해 보이지 않는가?”
나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심벌, 스네어, 베이스 드럼 등 각종 드럼 악기들이 모여 있는 공간.
그곳에 악기는 있고, 연주자는 없다.
“어떠한가. 부족해 보이지 않는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자 관객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답변이 하나 튀어나왔다.
“드러머가 없어요!!”
“아주 옳은 대답이로다.”
나는 히죽 웃으며 왼손바닥을 땅바닥을 향해 활짝 펼쳤다. 손에는 꽉 쥐어둔 붉은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는 이곳에서 명한다.”
뚜벅, 뚜벅.
“황혼 아래 잠들 자여.”
뚝, 뚝.
“피바다로 낙원을 만들 자여.”
“뭐야, 뭐야.”
“흑마법이야?”
“연출 신경 많이 썼는데?”
육망성의 연결선들. 그 선 위에 올려진 양초들.
“지금 이 몸의 부름에 응해 선혈의 명령을 들을지어다.”
양초 위로 떨어지는 붉은 액체.
“몸은 뼈로, 살은 피로.”
액체가 양초의 불과 부딪히며 작게 화염을 일으킨다.
“금지된 이 반지에 깃들어 이 몸에게 충성을 바치거라.”
일어난 화염이 한데 모여 별 모양의 불꽃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불꽃에 주먹을 내지르며 외친다.
“하펠 서번트!!”
화아아악!!!
불꽃들이 내가 장착하고 있는 마력 회복 반지로 모여들었다. 그 불꽃들은 육망성의 그림을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허공 위로 날아올랐다.
“……훗.”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드러머의 자리로 불꽃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불꽃의 육망성에서 조금씩 머리가 튀어나왔다.
용맹하게 단련된 단단한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검은 머리카락이 마치 말의 갈기처럼 흩날렸다.
이마에는 하얀 줄이 새겨지고, 커다란 입과 코가 부각되었다. 마치, 지금 소환되고 있는 서번트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주기 위한 연출이라는 듯이.
이윽고, 육망성 형태의 불꽃을 뚫고 드러머가 등장한다.
“히히히힝!!”
머리는 말, 몸은 인간인, 반인반수의 드러머가 말이다.
“……훗, 상정 내의 결과로다.”
나는 여전히 도도한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히이이이익!!!!!”
오로바스의 존재를 목격한 인간들로부터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출 개 쩐다!!!!”
일부, 환호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말이다.
* * *
‘이, 이게 아닌데!?’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을 확인한 오로바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분명, 인간들에게 친화적으로 다가가고자 인간들에게 친숙한 동물, 말을 활용하고자 했다.
오로바스 족은 기본적으로 말과 닮아 있기에 이를 활용하면 친밀감을 얻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얼굴은 말로, 몸은 인간으로 만들고 말의 울음소리도 따라 하며 등장했다.
“히히히힝!!!”
다시 한번 말머리를 여기저기 회전시키며 소리를 질렀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일부 인간만이 박수를 치고 있을 뿐이었다.
허나 이런 순간에서도 단탈리온 님은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계시다.
‘역시, 71위 마계의 왕, 마왕 단탈리온 님이다!’
오로바스는 곧장 단탈리온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마왕 데스맨 님을 뵙습니다.”
-이 밴드에서 단탈리온 님은 데스맨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다. 실수하지 말거라.
시틀라의 조언에 따라 오로바스가 단탈리온에게 인사를 했다.
“왔는가 이 몸의 서번트여.”
단탈리온은 오로바스를 내려다보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보았는가. 부족한 드러머가 보충되었도다!”
양팔을 좌우로 펼친 단탈리온은 모여 있는 인간들을 향해 외쳤다.
“이제 그대들이 두려워하는 RRR밴드의 음악을 들어라. 도망치는 것은 마왕 데스맨의 이름으로 허락하지 않겠노라!”
쟈앙~
앤디의 일렉 기타가 사운드를 내뿜었다.
이어서 제인.
두둔둔, 두둔둔
‘오로바스여. 환영한다.’
‘다, 다, 단탈리온 님!?’
흑마법으로 통신을 연결한 단탈리온이 오로바스에게 말했다.
‘할 수 있겠느냐.’
‘……죽을 힘을 다해 치겠습니다!’
오로바스는 드럼 스틱을 쥐고 자리에 앉았다. 앤디와 제인이 조금씩 멜로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악보대로…… 혼을 담아서!”
오로바스가 왼 스틱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강하게 심벌을 내리쳤다.
챠아아앙!
그 소리에 비명을 지르던 관객들이 다시 밴드에게 집중했다.
“모든 걸 보여 주거라.”
단탈리온의 그 한 마디가 오로바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로바스의 혼이 담긴 스틱이 이리저리 드럼 위에서 춤추었다.
둥둥탕탕두두두탕탕탕!!
쟈쟈쟝 쟈쟈쟝
두둔둔 두둔둔
드럼, 기타, 베이스의 사운드가 한 데 모여들었다.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박자.
드러머로서의 기본기를 확실하게 갖춘 오로바스의 연주.
앤디와 제인은 오로바스의 실력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악마 맞아?’
‘어떻게 혼자 이렇게 연습했지?’
그렇게 생각하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오로바스는 지금 단탈리온의 응원 덕분에 평소의 몇 배나 더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탈리온은 멤버들의 연주를 들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이 몸의 노래를 듣는 걸 영광으로 알거라.”
그게 무슨 소리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단탈리온은 그런 부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마이페이스로 말했다.
“간다. 삼겹살에 추모 한 잔.”
제목이 알려지자 관객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나타났다.
“삼겹살 송이야?”
“보기와는 다르게 주제는 평범한 듯?”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단탈리온은 조용히 펜시 인텐시키온을 시전했다.
지금 막 들어온 오로바스에게도 흑마법 버프를 걸어 둔 것.
이제 오늘 버스킹 연주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호소력 짙은 결과를 내게 될 것이다.
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한다면, 보컬은 거기에 화답하며 노래할 뿐.
단탈리온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마치 고귀한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고한 그의 얼굴에, 관객들이 모두 환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이곳은 피투성이 낙원.]
그렇게 RRR밴드의 첫 번째 버스킹.
‘삼겹살에 추모 한 잔’ 공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