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버스킹 (7)
[이곳은 피투성이 낙원.]
펜시 인텐시키온이 담긴 목소리가 스피커를 향해 울려 퍼졌다. 그러자 관객들의 얼굴이 하나둘 펴졌다.
“어……?”
“목소리 좋은데?”
“연주도 괜찮아.”
“저거 말 머리 드러머, 보다 보니 정감 가는데?”
감정전달력을 강화한 덕분에 감정 전달이 더 잘 되어 간 덕분이었다.
특히나 이번 가사는 단탈리온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을 원했는지는 이미 잊은 지 오래]
[우리의 세계를 위해 피를 부었지]
[I don’t know, I don’t know]
[길을 잃은 걸까, 나는 멍하니 연회장에 들어서네.]
가사는 에키드나의 아이디어에 따라 마왕군의 연회가 주제.
연회는 전쟁이 치러진 직후에 항상 열렸었다.
그리고 에키드나가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는 전쟁은 마로 마성전쟁.
갓 창립된 11군단의 대장으로서 에키드나는 부하들이 죽고 사라지는 슬픔을 계속해서 겪었었다.
[어둠이 드리운 세계. 나는 살아왔지]
[어둠이 가득한 세계. 나만 살아 돌아왔지]
[I'm here alone, I'm here alone.]
[함께 싸운 전우들의 영혼을 그리워하네.]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뜨거운 드럼 소리.
그 소리를 뒤에서 받쳐 주는 베이스.
그리고 밝혀지는 이야기.
[이건 지나간 이들을 위한 레퀴엠.]
마성전쟁에서 스러져간 마왕군들을 위해 바치는 노래.
[우리의 연회는 그들을 위한 축배.]
[축배를 위해 더는 울지 않으리.]
[Bite the meat. Bite the meat.]
[연회장에 가득한 삼겹살을 들어라.]
[이 고기는 우리의 친구를 위한 고기.]
[삼겹살을 씹으며 노래하자.]
[우리의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그릇되지 않았다.]
[끝까지 저항한 우리의 삶이야말로.]
[누구보다도 더 옳은 삶일지니.]
71위 마계의 11군단장인 에키드나는 전투가 끝나면 계속해서 울었다.
악마답지 않다고, 군단장답지 않다는 비판도 많이 받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단탈리온의 눈길을 끌었다.
-에키드나여, 자네라면 할 수 있다.
[구워라 삼겹살을.]
[들어라 삼겹살을.]
[그리고 부딪혀라.]
그때 에키드나는 단탈리온의 격려를 받고 지속적인 연회를 준비했다.
허나 그 연회는 단순히 사라진 악마들을 추모하는 게 아니었다.
[이 고기는 지나간 이들을 위한 연회.]
[Bite the pork. Bite the pork.]
[들어라 술잔을.]
[씹어라 삼겹살을.]
[물어라 삼겹살을.]
사라진 악마들에게는 저주를, 살아남은 악마들에게는 술과 고기를.
에키드나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고기를 제일 좋아하면서도, 가장 좋아하지 않는 식재료로 삼고 있다.
[삼켜라 삼겹살을.]
1절이 거의 끝나갈 때쯤, 단탈리온의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사운드는 단순해졌다가 다시 강렬해졌고, 멤버들은 혼신을 다해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사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위 메탈스럽다고 하는 강한 가사인가?
그렇지 않다.
악마스러운 가사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악마스럽다고 한다면 그들의 분장 정도.
분장은 마치 마왕군의 인간형 악마처럼 만들어 두었다.
단탈리온이 실제 자신의 상급 악마들을 기준으로 삼아 제인에게 요청을 했던 덕분이었다.
오로바스는 얼굴만큼은 이미 악마의 모습 그 자체였고.
그러나 지금 이 노래는 관객들에게 호소력 짙은 음악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오히려 대중적이라고하면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사.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망자들을 위한 추모의 의미.
그렇기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노래에 집중했다. 그리고 모든 관객들이 RRR밴드의 ‘삼겹살에 추모 한 잔’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이건 대체…….”
“전우…… 친구…….”
특히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눈물을 훔쳤다.
진짜 전쟁을 겪어 보진 못했어도 그들에게도 각자의 사연이 있는 법.
“그러고 보니 군대 동기가 취업도 못 하고 힘들어하던데…….”
“나도 그래. 다들 현실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나만 여기서 놀고 있는 것 같고…….”
감명을 받은 건 군필자뿐이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들은 각자의 삶에 맞춰서 가사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민지, 대학 갔을까?”
“그러게. 삼수한다고 해서 그 뒤로는 연락도 안 해 봤는데.”
“취준 힘들지만, 힘내 보자.”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학원이라도 다니는 게 낫지.”
“맞아.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어.”
근처 어학원, 자격증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며 훌쩍거렸다.
[Bite the pork! Bite the meat!!!!]
그때 단탈리온의 샤우팅이 들려왔다.
[meat!!!!!예에예에야아아아아!!!!]
이어서 그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앤디!”
호명을 받은 앤디가 기타를 휘릭 돌리며 앞으로 달려나왔다.
쟈쟈쟈쟝따다다다다라당당쟈쟈쟝!
앤디의 특기, 속주 연주가 시작되자 관객들이 앤디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앤디는 손가락을 연신 움직이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따라다다다라다다 쟈쟈쟝쟈라쟈쟝
마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사라진 전우를 그리워하며 억지로 밝게 소리를 지르는 듯한 느낌.
나 혼자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나 혼자 잘 살고 있어서 면목이 없다고.
사라진 망자들에게 그렇게 호소하고 있는 듯한 연주였다.
앤디의 연주를 들은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젠장! 뭐냐고!”
“크흑! 미안하다, 석주야!”
그래도 웃어 보이자며, 신나게 살아 보자며, RRR밴드의 구성원들이 호소하고 있었다.
힘든 삶을 살아왔고,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
그들을 위해 RRR밴드가 절규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로바스는 연신 드럼을 두드리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메탈 음악. 메탈 밴드이기에 할 수 있는 연주와 노래.
그걸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로부터의 환호성.
‘이런 것이었습니까, 단탈리온 님……!’
“우와아아아아!!!!”
처음, 오로바스가 나왔을 때는 공포에 질려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RRR밴드의 노래와 연주에 흠뻑 젖어들었다.
따다다다따당따다당쟈쟝 키이잉~!
앤디의 솔로 연주가 끝나자 이번에는 제인이 걸어 나왔다.
두둔둔두두둔둔두두둔둔둔두둔
묵직한 베이스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멋있다…….”
관객들이 제인을 보며 감탄했다.
제인의 외모를 칭찬하는 이들도 있었다.
“분장을 저렇게 해서 그렇지, 예쁜데?”
“저 정도면 연예인 해도 되겠어.”
“보컬 오빠! 잘생겼어요!”
중간에는 단탈리온을 칭찬하는 관객도 있었다.
단탈리온은 그 환호성에 화답하고자 손을 번쩍 들었다.
검지와 중지, 새끼손가락을 올리고 나머지 두 개 손가락을 접은 형태.
“퍼, 퍽지창!?”
그 모습을 알아본 누군가가 소리쳤다.
관객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어지는 제인의 연주에 집중했다.
두둔두두둔둔 둔둔두두둔
제인의 베이스가 무거운 노래 주제에 맞춰 관객들에게 더 큰 감정을 실어주었다.
펜시 인텐시키온의 영향도 있었지만, 제인의 연주 역량도 뛰어난 덕분이었다.
관객들의 반응을 살핀 단탈리온이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의 연회는 그들을 위한 축배.]
[축배를 위해 더는 울지 않으리.]
[Bite the meat. Bite the meat.]
[우리의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그릇되지 않았다.]
[어딘가 있을 전우를 위해 건배하자.]
[그대를 위해, 이 몸이 추모하노라.]
이제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갔다.
[I don’t know, I don’t know]
[I'm here alone, I'm here alone.]
[Bite the pork, Bite the meat.]
[나는 나만의 종말과 싸우겠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기를 씹으며!]
[삼겹살을 들어라!]
[전우를 떠올려라!]
[이건 지나간 이들을 위한 레퀴엠!]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잡은 손을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이예에에에아아아아!!!!!]
이어지는 종막의 샤우팅.
[바이트!!!! 더!!!! 미이이이이이이이트!!!!!!]
단탈리온의 샤우팅이 몇 초간 이어졌다.
거기에 앤디와 제인의 헤드뱅잉까지.
풍성한 라이언 머리를 휘날리는 앤디와 긴 머리를 좌우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제인.
그들의 퍼포먼스를 바라본 관객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하!!!!]
둥두두두두둥둥둥, 두두둥둥둥!
그리고 오로바스의 드럼이 음악의 마무리를 알렸다. 앤디와 제인도 연주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작게 소리를 냈다.
쟈쟝, 따다당
두둔둔 두둔둔
그리고 잦아드는 연주 소리.
어느새 고막을 터트릴 듯한 뜨거운 음악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귓속을 간지럽히는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따라당따당
앤디의 가벼운 기타 사운드가 들려왔고, 단탈리온이 다시금 마이크를 들었다.
[이건 전우를 위한 고기.]
단탈리온이 손으로 고기를 잡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그 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따라당
앤디의 기타 소리에 맞춰 단탈리온은 들었던 손을 다시 가슴께로 가져갔다.
마치, 사라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듯한 모습.
경건한 자세로 묵념을 하는 듯한 단탈리온의 모습에, 관객들 모두가 겸허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두둥 탁, 두둥 탁
[저항을 담아…….]
[추모를 걸친…… 삼겹살 한……점…….]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내리고 고개를 한 방향으로 기울였다.
쟈쟈쟈앙
두둔
타다 탁
그리고 각 악기들이 연주를 마무리 지었다.
잠시간의 침묵.
앤디와 제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오로바스는 말머리를 한 모습 그대로 드럽 스틱을 든 채로 정지해 있었다.
단탈리온은 마이크를 아래로 내리고 앞으로 처진 앞머리를 후, 불었다.
우와아아아아아!!!!!
이어서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멋지다!”
“처음에 마술? 그거도 쩔었는데?”
“야야, 찍었어? 찍었어?”
“연주 개쩐다!”
“노래 뭔데!”
“당장 고기 먹자.”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야!”
관객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단탈리온이 킬킬 웃었다.
“영광을 온몸으로 느꼈느냐.”
건방진 말투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그게 RRR밴드의 컨셉이라고 생각하고는 즐기기 시작했다.
“영광이옵니다, 마왕 각하!”
“훗. 알고 있다면 되었다. 앤디, 제인. 들고 오거라.”
앤디와 제인이 양손 가득 포스터를 들고 왔다.
“밴드 홍보 포스터인가?”
관객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인사동 인근! 종로의 최고 맛집! 천 씨네 고깃집!>
<포스터 들고 오시면 결제 금액에서 5,000원 할인!>
<삼겹살, 목살 전문점 02-000-0000>
앤디와 제인이 포스터를 나눠 주었다. 포스터를 받아든 관객들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라며 헛웃음을 켰다.
“오늘 저녁은 다들 고기가 어떠한가.”
단탈리온의 미소가 버스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고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지도라면 뒷면에 있노라.”
* * *
‘꽤나 성공적이구나.’
연신 모여들어 고깃집 포스터를 받아 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포스터를 나눠 주는 앤디와 제인. 그리고 오로바스.
나는 그들의 뒤에 서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기품 있게 서 있었다.
“저, 저기…….”
그때 한 여성이 앞으로 다가왔다.
감히 마왕의 앞에 허락도 없이?
“누가 이 몸의 앞으로 오는 것을 허락하였더냐.”
“그, 그게, 죄송합니다!”
“되었다. 포스터라면 앞에서 받거라.”
인간들이 마계의 예절을 알 리가 없다.
그걸 생각한 나는 지금 관객이 생각하고 있을 법한 지점을 알려 주었다.
무려 RRR밴드, 내가 부른 ‘삼겹살에 추모 한 잔’이다.
노래를 들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각자 추모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고기를 찾게 될 터.
게다가 가격 할인은 덤이다.
“참고로 천 씨네 고깃집은 삼겹살과 함께 후식 비빔냉면도 꽤나 맛있더구나. 비빔냉면도 먹도록 하거라.”
“아, 네, 감사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몸에게 볼일이 남아 있더냐?”
여성은 잠시 부끄러워하면서 스피커 옆에 세워둔 판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너튜브랑 인별그램…….”
오호라.
“훗. 신규 팬인가. 아주 옳은 판단이다.”
“아, 네. 그런데 저기…….”
여성이 난처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유효하지 않은 링크라고 떠서요.”
“…….”
너튜브와 인별그램은 앤디에게 맡겨 두었을 터.
이 판넬의 제작도 앤디가 담당했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즉시 담당자를 호출했다.
“12군단장 앤디여.”
“누가 군단장이야!”
“닥치거라. 판넬의 링크는 유효한가?”
“당연하지! 제대로 만들었…….”
그렇게 말하던 앤디는 서늘한 눈빛을 날리는 나를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슥, 슥.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로 판넬의 코드를 인식해 본 앤디.
몇 번을 더 반복하던 녀석은 결국 내 앞의 여성을 향해 민망하다는 얼굴로 걸어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저걸 잘못 만들었네요…….”
“저희가 아니라 자네다.”
“……제가 잘못 만들었네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너튜브에 RRR밴드라고 검색하시면…….”
“네, 검색했는데…….”
“그…… 쓰리알, 이 아니고 RRR로 검색을…… 네, 네 감사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내리시면…… 내 조금만 더…… 여기 이 영상이 저희 영상…….”
쩔쩔매는 앤디와 어떻게든 너튜브 구독을 하려고 노력하는 여성팬.
그들을 보면서 나는 한쪽 입꼬리를 슥 올렸다.
“이 또한 상정 내의 결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