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천 씨네 고깃집
인사동의 H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박은환.
그녀는 어릴 때부터 락, 메탈 음악에 미쳐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밴드 동아리에 가입해서 기타 연주도 해 볼까 했지만.
-음……. 이런 말 하기가 좀 미안하지만…….
기타 학원의 선생은 박은환이 기타에 재능이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재주 자체가 없는 것.
그래서 악기 연주를 취미로 삼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그녀는 락 밴드 음악을 분석하고, 이를 논하는 락 음악 평론가가 되고자 다짐했다.
그리고 그러한 평론을 위해서는 뛰어난 영어 실력은 필수였다.
대부분의 락 밴드는 영미권에 많이 있으니까. 유명한 락 밴드들은 모두 영미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인사동의 H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나오던 참이었다.
“하……. 맨날 이런 이야기만 듣는 것도 지겨워.”
옆에서 같이 걸어가던 박은환의 친구가 투덜거렸다.
확실히, 어학원에서는 영어 단어와 어휘 몇 개 알려주고는 곧장 회화로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건 박은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우리 오늘 금요일인데 술이나 한잔할까?”
“오 좋아 좋아. 어디 갈까?”
“북촌? 아니면 익선동?”
“그게 그거잖아, 인마.”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걸어가던 박은환은 그때 무언가 친숙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7년 차 밴드이고, 헤비메탈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버스킹을 하는 모양이었다.
헤비메탈이라.
락을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호기심이 생길 법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지겹도록 들을 거니까.’
지금은 공부하느라 주린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그때였다.
“다들 잘 왔도다. 이 몸은 위대한 RRR밴드의 수장, 마왕 데스맨이다.”
버스킹을 하는 현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박은환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 의미를 잠시 생각했다.
컨셉인가?
아니면 그냥 미친놈들인가?
“야, 안 가?”
“응? 아, 잠깐만.”
그녀는 버스킹을 하고 있는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인사동에서도 핫 플레이스로 유명한 장소.
버스킹은 ‘헬로 인사동’ 건물 앞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저거 보고 갈래?”
“응? 버스킹?”
헬로 인사동 간판 앞에서 악기를 들고 있는 밴드를 보면서 친구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맞다. 너 밴드 좋아하지.”
“응. 한 곡만 듣고 가자.”
“알았다 알았어.”
결국 두 사람은 RRR밴드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공연에 앞서 드러머의 소환 장면을 본 친구는
“히이이이익!!!!!”
끔찍한 얼굴을 하고 머리부터 튀어나오는 말머리 드러머를 보며 기절초풍을 했고.
“연출 개쩐다!!!!”
메탈 음악과 공연에 익숙한 박은환은 두 눈을 빛내며 RRR밴드의 공연을 감상했다.
* * *
그리고 지금.
“우와…….”
“와…….”
박은환과 그녀의 친구, 두 사람은 노래를 들은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밴드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쩔었지?”
“응. 쩔었다. 영상 찍었어?”
“노래만.”
아쉽게도 처음에 드러머를 소환하는 연출은 동영상으로 남기지 못했다.
“아쉽다, 그걸 남겼어야 했는데!”
“됐네요. 갑자기 말대가리 튀어나와서 얼마나 놀랐는데.”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응?”
기왕 이렇게 된 거 너튜브랑 인별그램도 찾아보자고 판넬의 QR코드를 찍었다.
그러나 링크가 제대로 뜨지 않았다.
“뭐야? 주소가 잘못됐나?”
노래가 너무 감명 깊어서 이참에 팬이 되려고 했는데.
아니, 그리고 인디밴드인 것 같은데 이런 거도 제대로 준비 안 해 뒀나?
다행인 점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주소가 이상하다고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당황해하더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너튜브 접속 방법을 알려 주었다.
“여기서 접속을…… 네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요! 저도 포스터 하나만요!”
박은환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기타리스트나 베이시스트가 아니라, 악마를 상징하는 뿔을 달고 붉은 색 분장으로 눈을 짙게 칠한 보컬이 종이를 내밀었다.
“맛있게 먹거라.”
“고맙습니다!”
박은환과 친구는 오늘 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걸치기로 약속했다.
* * *
“이럴 수가……!”
오로바스는 드럼 스틱을 꽉 쥔 채로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드럼을 열심히 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적어도 드럼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온 오로바스였다. 악마이기에 연습 기간도 몇십 년은 해 왔었다.
그렇기에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더 음악적 조예가 깊을 터.
아니, 깊을 거라 생각했다.
‘너무나 만만하게 봤구나……!’
하지만 화려한 기타 솔로를 보여 준 앤디, 긴 머리를 휘날리며 퍼포먼스를 겸하던 베이스의 제인.
이들의 실력은 어떠했는가.
실력 역시 뛰어났다.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실력.
그러나 이들의 연주에서는 그것이 느껴졌다.
‘메탈 음악, 메탈 연주의 혼……!’
오로바스는 고깃집 포스터를 나눠 주는 앤디와 제인을 바라봤다.
자신보다도 더 연주 경력이 낮은 이들이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에게 없는 ‘연주의 혼’을 담을 수 있어 보였다.
단탈리온님의 흑마법 버프는 모두에게 걸려 있었기에 그걸 핑계로 댈 수도 없었다.
‘패배했다…….’
인간계에 현현하여 단탈리온 님을 보좌하겠다고 다짐했거늘.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오히려 저들이 더…… 나보다 더……!
“걱정되는가.”
그때 단탈리온이 오로바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오로바스는 너무나 놀라 곧장 말머리를 숙이며 엎드렸다.
“위, 위대하신 마왕님을 뵙습니다!!!”
“되었다. 여기는 인간계.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느니라.”
단탈리온이 손을 살짝 저었다. 그러나 오로바스는 여전히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로바스여.”
“예, 예 단탈리온 님!”
“고생했노라.”
단탈리온의 오른손이 오로바스의 왼 어깨에 툭 올려졌다. 그 작은 몸짓에, 오로바스는 감격에 겨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가…… 감사합니다……. 단탈리온 님……!”
주군은 이리도 나를 믿어 주시거늘.
어째서 나는 그리도 불경한 생각을 하였는가.
그 점이 오로바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앞으로 더! 충성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하거라.”
“그리고…… 단탈리온 님 곁에서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옳은 생각이로다.”
그것이 바로, 서번트로서의 마음가짐이로다.
단탈리온의 마지막 말이 오로바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 * *
‘이해하노라.’
내 앞에 엎드린 오로바스가 바닥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다.
모두 마왕인 나이기에 받아 마땅한 대우.
허나, 그것은 하급 악마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건 지금 서번트, 그것도 하급 악마인 서번트에게 요구하기에는 어렵다.
서번트로서의 첫 현계.
그것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단탈리온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는 오로바스에게 추가적인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잔여 마력량: 867
시틀라가 건네준 마력 회복 반지에 마력 보조 악세사리들을 장착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여기서 더 마력이 하락하면 몸을 가누기 힘들어질 터.
‘노래 한 곡에 모든 걸 쏟아 낸다고 봐야 하겠구나.’
이전에는 펜시 인텐시키온을 나와 앤디에게만 걸어 주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인, 오로바스에게도 걸어 주었고, 거기에 서번트 소환을 한 직후였다.
서번트를 소환하면서 동시에 서번트에 대고 펜시 인텐시키온 버프를 걸고, 이 몸을 포함한 모두의 버프를 노래 한 곡 동안 유지했다.
“꽤나 심각하구나.”
이 정도 마법 발현으로 마력이 겨우 867밖에 남지 않다니.
고작 한 번의 공연.
노래 한 곡 부른 공연에 불과했다.
‘마력 보조 장신구가 계속해서 제작되어야 한다.’
마력이 회복되기까지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 마당에 한 곡 부른 걸로 이렇게나 소모가 커서야.
“보충이 필요하겠군.”
“……! 존명!!”
내 앞에 엎드려 있는 오로바스가 고개를 조아렸다.
* * *
우리는 버스킹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러 이동했다.
“여기로구나.”
천 씨네 고깃집.
제인의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종로의 고기 맛집 가게였다.
“4번 테이블에 삼겹살 2인분 추가!”
“된장찌개 나갔어? 빨리 옮겨!”
가게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가게의 모습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오합지졸이로다.”
“쉬잇! 조용!”
앤디가 나를 향해 검지 손가락을 올리며 쉬잇, 소리를 내었다.
“?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것이냐?”
“아니 그게 아니라……. 됐다, 말을 말자.”
앤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저씨 저희 왔습니다!”
정신없이 테이블로 고기를 나르던 중년 남성이 우리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왔냐!”
“네!”
“온 김에 서빙해라. 이거 5번 테이블!”
얼떨결에 쟁반을 받아 든 앤디가 5번 테이블로 서빙을 했다. 등에는 기타를 메고, 아직 분장도 덜 지워진 상태였다.
“고기 나왔습니다!”
“우와악!!!”
당연히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나는 시무룩해져서 돌아오는 앤디를 보며 말했다.
“오늘 악마 분장이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위로냐 그게?”
어쨌든, 사람들이 놀랐다는 건, 그만큼 현실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저 사람이더냐.”
나는 제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을 바라봤다. 앤디가 맞다면서 말했다.
“응. 저 아저씨가 제인의 아버지, 천 사장님이야.”
“아주 칼질을 잘 하게 생겼구나.”
내 감상을 들은 앤디가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그거 아저씨 앞에서는 말하지 마라.”
“?”
“……됐다. 일단 우리도 자리부터 잡자.”
“옳은 생각이다.”
오늘 천 씨네 고깃집에 온 이유는 버스킹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차원에서의 뒤풀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천 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온 제인은 베이스를 옆에 세워두며 털썩 앉았다.
“아빠가 룸으로 잡아 뒀으니까 거기로 들어가래.”
“룸? 거기는 처음이네.”
“오늘은 특별히 코스요리로 주신다고 조용한 곳으로 마련해 두셨대.”
그렇게 말하면서 제인이 히죽 웃었다.
“오늘 하루만, 매출이 다섯 배는 뛰었다고 하더라.”
“뭐, 뭐!?”
앤디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다섯 배!? 진짜!?”
“응! 게다가 다들 전단지 들고 왔대!”
오늘 천 씨네 고깃집은 유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모두 단탈리온의 노래, RRR밴드의 노래에 감명을 받은 이들이 찾아준 덕분이었다.
버스킹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은 기껏해야 40여 명. 많지는 않은 수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모두 고깃집으로 향했다면?
원래 고깃집을 찾던 사람들에 더해서 40명이 더 추가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 기분 진짜 업됐어.”
제인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마왕님.”
“훗. 별거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꼈다.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품. 그것이 바로 마왕의 자질이로다.
“사실 요즘 장사가 좀 들쭉날쭉해서 아빠가 걱정이 많았거든. 이러다 망하면 어쩌나 하고……. 그래서 더 나 보고 가게 일 도우라고 했던 거야.”
옛날과 달리 최근에는 경쟁 업체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천 씨네 고깃집도 다소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인에게 가게 홍보를 돕고, 더 키워 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을 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건가.’
하지만, 이제 문제는 해결되었다.
물론, 일시적인 매출 상승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홍보를 하고, 더 좋은 방문객 리뷰가 올라와 주어야 할 터.
“이후 일은 아빠가 고민하겠지 뭐. 짧아도, 성과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좋아할 거야.”
제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진짜 고마워. 나중에 꼭 뭐라도 대접할게.”
“되었다. 마왕이라면 부관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법.”
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아무튼, 오늘 이 고기는 아빠가 쏜대. 뭐 먹을래?”
“이 몸은 한우 스페셜 모듬 세트로 하겠다.”
“너 방금 되었다, 라고 하지 않았냐?”
“그럼 앤디는 먹지 말거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저기, 비싼 거 시켜도 돼……?”
“괜찮아 괜찮아! 아빠도 한우 사 주려고 하셨어!”
그렇게 RRR밴드는 밴드 결성 이후 처음으로 최고급 고기를 주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기 나왔다, 얘들아!”
“우와!”
천 씨 아저씨가 들어와서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렸다.
“오늘 너희들 덕분에 매출이 열 배는 올랐다!”
“네!? 다섯 배 아니었어요?”
“열 배야 열 배. 오늘 아주 다들 술판이 벌어졌어! 뭐라더라, 잊혀진 전우를 떠올린다거나 그러던데. 너희들 대체 무슨 노래를 한 거냐?”
“사그라진 이들을 위한 레퀴엠이었느니.”
“레퀴엠?”
천 씨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렴 어때! 너희들이 음악 해서 돈 벌 수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나도 약속을 해야지!”
천 씨 아저씨는 테이블 아래 바닥을 탕 내려치면서 말했다.
“우리 딸이랑 메탈 밴드 하는 거, 허락하겠다.”
“사장님, 진짜요!?”
“아빠!? 이렇게 갑자기!?”
깜짝 놀라는 앤디와 제인. 그리고.
“마땅한 결론이로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드러머는?”
“자, 자, 고기 더 시킬 거면 시켜! 오늘은 내가 크게 쏜다!”
앤디가 물었지만, 그 물음은 천 씨 아저씨의 호탕한 목소리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