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1호 팬
그렇게 기분 좋게 고기를 먹으려던 찰나.
천 씨 아저씨가 악마인 내가 보더라도 제법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가끔씩, 오늘처럼 공연 해 줘.”
“에이, 그 정도는 당연하죠!”
앤디가 호언장담을 하면서 말했다.
반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절한다.”
그 대답에 앤디와 제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야, 야 데스맨!?”
“너 왜 그래!?”
“이제 우리는 더 큰 무대를 준비할 터. 인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 고깃집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때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 말에 천 씨 아저씨가 피식 웃었다.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데? 좋아. 너희들이 인기가 많아지면 손님도 더 많이 오겠지. 그때 되면 내가 추가 지점을 내건 해서 받아야지!”
“그럼 그 지점 중 하나는 우리 밴드의 가게로 하겠다.”
그 말에 앤디가 내 양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미,미미미, 미쳤어!? 뭔 소리 하는 거야!?”
“무슨 소리냐 앤디여. 이것은 정당한 홍보 비용이니라.”
“홍보 비용은 무슨! 지금도 겨우 성과를 낸 건데!?”
“흥분 좀 그만하거라. 우리는 다 망해서 박쥐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토굴 같은 가게에 기회를 주었다.”
제인과 천 씨 아저씨의 말대로, 과거에는 인기가 많았을지언정, 지금은 인기가 많이 죽은 가게가 바로 이곳 ‘천 씨네 고깃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 매출의 10배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 공을 세운 건 바로 이 몸이 속해 있는 RRR밴드다.”
이 몸의 흑마법까지 더해진 공연이었으니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지.
“그러니 우리에게도 지분을 넘겨야 하느니라. 그게 아니라면, 수익의 몇%는 우리가 가져간다는 이야기가 되어야겠지.”
“야, 데스맨,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이 하는 말은 아주 옳은 주장이다. 고생은 우리가 다 하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였지 않는가.”
사실 제인이 밴드로 돌아올 수 있었고, 오늘 고기도 공짜로 얻어먹는다.
하지만, 이후에 공연을 하게 되면 그때는 제인이 밴드로 들어온다는 메리트는 없는 상황일 터. 거기에 매번 고기만 공짜로 얻어먹는 정도로 이 몸을 부려먹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옆에서 앤디가 우리가 아니라 너만 너만……! 하며 중얼거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수익을 가져가……?”
천 씨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히죽 웃으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데스맨, 병원 입원했다 오더니 사람이 확 변했구먼.”
“모든 존재는 변하는 법. 이 몸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지.”
적당한 핑계를 대자 천 씨 아저씨가 피식 웃었다.
“좋아. 너희가 정말로 추가 지점을 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면 월 수익의 5%를 주마.”
“30%다.”
“30은 너무 많아. 10%.”
“25%.”
“15%. 더는 못 줘.”
“15%에 고기 무료 시식권을 제공하면 어떠한가.”
돈을 주기가 어렵다면 쿠폰을 쏟아라.
내 말을 이해한 천 씨 아저씨가 헛웃음을 지었다.
“허어, 참나. 기억상실이라더니 알 만한 상식은 다 알고 있네?”
“훗.”
내가 작게 미소를 짓자 천 씨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좋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분점을 냈을 때 이야기야.”
“그거면 되었다. 어차피 본점이 미어터질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기 전에는 분점 생각도 없지 않았더냐.”
그 말에 천 씨 아저씨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 크하하하하! 그건 그렇지! 으하하하! 재밌네 데스맨, 아주 재밌어!”
“이 몸이 위트 있다는 소리는 자주 듣느니라.”
“아주 사극 말투도 은근 잘 어울리고 좋네! 좋아 그럼 이걸로!”
“계약 성립이다.”
천 씨 아저씨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의 투박한 오른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자, 자, 그러지 말고 사진부터 찍자! 예비 연예인들이 방문하고 홍보해 주는 가게인데, 사진 정도는 괜찮잖아?”
“허락하노라. 앤디는 동영상을 찍거라. 제인은 사진이다.”
앤디와 제인이 한숨을 쉬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찰칵-찰칵-
“필터 들어간 어플로 찍고 있는 거 맞지?”
“…… 그냥 일반 모드인데.”
“으이그 이놈아. 넌 요즘 셀카도 모르냐. 필터 팍팍 입히라고 팍팍!”
“산적처럼 생겨가지고 필터 넣어 봤자면서…….”
“뭐야?”
천 씨 아저씨가 눈을 부릅뜨고 제인을 노려봤다. 제인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네이네이, 필터 들어간 어플 열었습니다요. 그런데 포즈 좀 다른 거 해 봐. 너무 정적이잖아.”
“포즈? 뭐 괜찮은 포즈 없나?”
“이건 어떠한가.”
내가 시범을 보여 주자 천 씨 아저씨가 크게 웃으면서 내 포즈를 따라했다.
“훌륭하구만! 이건 무슨 포즈냐?”
“락의 상징인 삼지창…….”
“으아아아아아! 그만해 이 미친놈아!!”
우리는 락의 상징인 엄지, 중지, 소지를 양손으로 펼치고 몸 앞에 엑스자로 교차하면서 포즈를 취했다.
“롹앤롤!!!!!!!!”
“응? 이렇게 인가? 롹앤롤!!!!!”
제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배가 뒤집어질 듯이 웃었고, 앤디만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우리 이미지는 망했어……’라며 한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장의 사진, 몇 분의 동영상을 더 찍은 뒤에야 계약 성립 기념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락이라는 거 꽤 재밌구만 그래! 딸, 제대로 해야 한다?”
“어휴 알았어. 가게 보는 거보다는 훨씬 열심히 할 거야.”
“말이나 못 하면. 크흐흐.”
천 씨 아저씨는 제인에게서 사진을 받은 후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맛있게들 먹어라! 우리 딸한테 잘해 주고, 앤디!”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데스맨.”
“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기억이 없어도 넌 여전히 우리 딸이랑 절친인 녀석이야. 배고플 때는 언제든 와라.”
“그 말은, 분점 개시 후 지급하기로 했던 쿠폰을 지금부터 주겠다는 뜻인가?”
“크하하하하! 삼겹살 2인분 정도는 무료로 주마! 근처 오면 들르라고!”
생각보다 호탕하게 이야기를 하는 제인의 아버지, 천 씨 아저씨를 보면서 나 역시 미소가 지어졌다.
“크크큭, 기대하마.”
양쪽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웃어 보이자 천 씨 아저씨도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무슨 웃는 모습이 악마 같냐 이 녀석! 아무튼, 잘해라! 돈 못 벌어오면 다시 딸은 가게로 빽이야 빽!”
“알았으니까 그만 들어가 이제!”
그렇게 제인의 밴드 활동도 허락을 받았다.
“생각보다 쉽게 풀렸는데?”
“응. 아빠는 내가 메탈 밴드하는 걸 막은 이유가 돈이 가장 컸거든. 돈 많이 벌어오니까 좋아하는 거 같아.”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또 어찌 보면 그만큼 자기 확신이 강렬한 사람이 바로 천 씨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점을 낼 경우의 계약도 했다. 잘만 하면, 밴드의 유명세에 힘입어 인간계에서의 금전 문제도 금방 해결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분명 기분이 좋아야 할 터인데.
“왜 그래?”
앤디가 고기를 한 점 집다 말고 물었다. 나는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얼른 들자.”
고기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공포가 일어나지 않았다?’
잔여마력량: 700
천 씨 아저씨와 악수를 할 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기를 느껴 본 듯한 기분.
그래서 그 기를 알아내기 위해 마왕으로서의 마기를 살짝 끌어올려 보았다.
마력도 제대로 소진되었고, 발현도 제대로 되었다.
원래라면 이 몸의 존재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공포심이 몸을 짓눌러야 한다.
제인과 앤디는 공포 저항 팔찌가 있으니 영향이 없었을 터.
그러나 팔찌도 갖추고 있지 않은 천 씨 아저씨는 공포에 몸을 떨지 않았다.
‘저 인간은 대체……?’
생각을 이어 가던 나는 고기를 한 번에 다섯 점씩 집어 먹었다.
“야! 그렇게 먹는 게 어딨어!”
“아니 되는가?”
“안 되지!”
“자네도 다섯 점씩 먹으면 되지 않는가.”
“어? 그렇네?”
“될 리가 없잖아! 몇 인분을 더 먹을 셈이야!”
“마음껏 먹으라 하지 않았느냐.”
“그야 그렇지만, 정도라는 게 있잖아.”
“쳇.”
“방금 쳇, 이라고 했지 마왕님?”
그날, 우리는 정말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었다.
* * *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인사동의 헬로 인사동 거리.
길거리에 설치된 드럼 앞에 튼실한 근육질 몸매를 갖추고, 훤칠한 키를 보유한 남성이 마구잡이로 드럼을 두드렸다.
둥둥둥둥퉁퉁다다다탕탕챵챠앙!!!!!
두두두두두두타타타당탕탕챠챠챵!!!!
“으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남성의 드럼 연주 소리에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몰라. 미친 사람인가 봐.”
“이 오밤중에 왜 저런 탈을 쓰고…….”
인간의 몸에 말머리를 하고 있는 오로바스가 마구잡이로 드럼을 두드렸다.
-단탈리온 님……. 면목 없습니다.
-자네도 같이 가지.
-아닙니다! 저는 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로바스는 삼겹살 연회도 거절했다.
감히 마왕님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다는 건,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대로는 단탈리온 님께 도움도 드리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죽을 뿐이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발버둥이라도 쳐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로바스는 용기를 내어 단탈리온의 제안을 거절했다.
-저의 미숙함을 채우기 위해! 제 단독 행동을 허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좋다. 경의 뜻대로 하거라.“
-……! 존명!!!!!
그리고 지금, 공연을 했던 자리에서 그대로 드럼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탈리온니이이이이이이임!!!!!!!!!!!!!!!!!!!!!”
단탈리온, 마왕이 자신을 격려해 주고,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세상에 이런 마왕님이 또 어디 있을까!
“반드시 제가아아아아아아!!!!!!!”
두두두두탕탕챵챵챠라라둥둥!!
“받들어 모시겠나이다아아!!!!!”
오로바스의 연주는 시민A의 신고로 인해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인사동 거리에 울려 퍼졌다. 다행히 오로바스는 오로바스 족 특유의 다리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날 밤, 인터넷에는 ‘광기의 말대가리 드러머’라는 키워드가 핫 토픽으로 떠돌게 되었다.
* * *
“후아 맛있었다.”
오로바스가 시민A의 신고로 경찰에게서 도망친 직후, 단탈리온과 앤디, 제인은 고기 연회를 마치고 가게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음?”
단탈리온은 잠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눈을 찡그렸다.
“왜 그래?”
“…… 누군가 오고 있구나.”
“드러머 아냐?”
앤디와 제인이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천 씨네 고깃집 입구를 노려봤다.
그때 고깃집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아!”
문을 막 열고 들어온 여성이 단탈리온을 보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이거 맞죠? 이거!”
“헐……!?”
단탈리온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앤디는 당황한 얼굴로 여성을 바라봤다.
여성의 양손에서 검지, 중지, 소지만이 하늘 위로 곧게 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쨔쟌!!!! 롹앤롤!!!!”
여성의 포즈를 멍하니 바라본 앤디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주저앉았고, 제인은 푸핫,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단탈리온은,
“호오.”
여성의 포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올바른 자세로다.”
“그럼요! 이름은 퍽지창! 제가 붙였어요!”
“퍼, 퍼퍼퍼, 퍽……!?”
“앤디 발음 조심해. 잘못하면 진짜 욕만 들려.”
거의 정신을 놓을 듯한 앤디의 옆에서 제인이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탈리온은 여성의 자세를 유심히 살피고는 기품있게 얼굴을 살짝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각도로다.”
“히히, 그쵸? 저, 그거 엄청 돌려 봤거든요.”
“그거?”
“왜, 있잖아요.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 비공식 영상!”
여성이 히죽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범한 취준생, 박은환이라 합니다!”
“누구인가.”
“방금 버스킹 보고 팬이 된 사람이요! 혹시 팬클럽 있나요?”
“아뇨, 아직 없…….”
앤디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박은환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박! 그럼 저 팬클럽 만들어도 되죠?”
“팬클럽?”
“네!”
역시나 이번에도 앤디가 나서서 말했다.
“죄송한데 저희는 팬클럽을 만들기에는 아직…….”
“만들거라.”
단탈리온이 앤디의 말을 끊으며 박은환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뚜벅, 뚜벅.
“팬클럽이라 함은 추종자를 말하는 것일 터.”
“어, 그렇죠? 네.”
“수단은 있느냐.”
단탈리온의 질문에 박은환이 씨익 웃었다.
“오늘 공연 영상. 안 찍었죠?”
“……맞다 안 찍었다!”
앤디가 깜빡했다며 소리쳤다.
“와……. 나도 생각 못 했어. 영상 남기는 걸 왜 생각 안 했지?”
“내가 멍청했지 내가……! 그놈의 드러머 때문에 정신이 팔려가지고 QR코드도 날려 먹고! 나란 놈은 하등 쓸모가 없어!”
“앤디가 처음으로 자기객관화를 제대로 하였구나.”
“넌 제발 조용히 좀 해…….”
밴드 구성원들의 수다를 듣고 있던 박은환이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틀었다.
“저는 있는데.”
“…….”
“이걸로 팬클럽 모아 보려고요.”
“그것이 수단이더냐.”
“그럼요. 밴드인데 영상이 당연히 많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직캠도 필수고요.”
박은환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 단탈리온은 그런 박은환을 향해 몸을 꼿꼿하게 세우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악마의 영상을 갖고 있군.”
“헤헤. 그럼 저 팬클럽 1호 해도 되는 거죠?”
“아주 옳은 생각이로다.”
단탈리온이 가방에서 계약서를 한 장 꺼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A4 용지라는 것에도 적어 두었다.”
“네?”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박은환은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는 단탈리온이 건네는 종이와 펜을 들었다.
“악마의 영상으로 추종자를 모집하고 싶다면, 그 영상. 마왕을 위해 바치거라.”
“컨셉이 악마, 마왕이군요. 오오오 역시 메탈 밴드! 좋아요!”
박은환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이걸로 계약 성사로다.”
평범한 대한민국 취업준비생 박은환.
메탈 밴드 RRR의 공식 팬클럽 1호 멤버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