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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24화 (24/110)

24화. 헬스장 (1)

고깃집에서 천 씨 아저씨와 계약도 하고, 박은환과는 팬클럽 계약을 맺었다.

-아니 팬이랑 계약하는 연예인이 어딨어!?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들이 추종자를 자처한 천계의 첩자라도 되면 어찌할 셈이더냐.

-영화냐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인간들의 속담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하지 않느냐. 앤디 넌 쓸데없이 사람이 좋도다.

앤디는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냐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어찌 보면 계약은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이기도 했다.

‘만약 우리의 영상을 팔아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건 마왕인 이 몸의 존재를 아무렇게나 사용한다는 기만의 증거.

마왕을 기만할 경우 그에 따른 엄격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어쨌든 오늘은 아주 바쁜 하루였군.”

나는 집 바닥에 앉아 손으로 육망성을 그리며 말했다.

“오로바스는 나오거라.”

내 부름에 오로바스가 허공의 육망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예! 단탈리온 님!”

평소에는 내가 만든 서번트 육망성 안에서 생활하는 오로바스였다. 오로바스는 육망성에서 몸을 꺼내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첫날부터 고생이 많았구나.”

혼자 연습시킨 드럼으로 리허설 한 번 없이 공연까지 하고, 이후에는 혼자 남아 연습까지 했다.

오늘 밤, 피로하지 않다면 그건 또 거짓말이겠지.

“……흑.”

“음?”

그런데 오로바스가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마왕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아, 아닙니다. 단탈리온 님! 저는 그저…….”

오로바스가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말했다.

“제가 제일 동경하는 마왕인 단탈리온 님께 격려의 말씀을 들어서 그렇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되었다. 내 격려를 원한다면 원 없이 저주를 내려주도록 하마.”

“감사하옵…….”

“허나 그 전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방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많도다.”

내 시선을 눈치챈 오로바스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엎드려 절을 했다.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청소, 빨래, 요리, 목욕 시중 등등! 모두 저, 오로바스가 보좌하겠습니다!!”

“그럼 저기 쌓여 있는 설거지부터 하거라.”

마왕인 이 몸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혀서는 안 되는 법.

“그것이 마왕을 보좌하는 자네의 주요 임무가 될 것이다.”

“……! 존명!!”

오로바스는 반인반수의 몸을 하고는 쏜살같이 싱크대 앞으로 달려갔다.

달려간다고 해도 겨우 두 걸음 앞의 거리였지만.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예! 말씀하십시오!”

오로바스가 고무장갑을 낀 채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 말대가리.”

“!?”

“정리를 좀 하거라.”

서번트로 소환한 악마는 악마의 몸을 유지하는 순간 마력 소모가 더 크게 일어난다.

잔여마력량: 31092

악세사리도 늘었고, 지속적인 마력 회복 도구까지 손에 넣었다.

그렇기에 오로바스의 얼굴을 악마의 형상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았다.

허나,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

게다가 노래를 할 때의 마력 소모는 더더욱 컸다.

‘공연 때 두 곡만 하더라도 3만의 마력은 금방 소진한다.’

지난번 공연 때 느끼지 않았던가.

서번트 소환으로 마력을 소진하지 않더라도, 순식간에 1만 이상의 마력이 소진된다.

그렇기에 오로바스도 인간의 모습을 하여 마력 소진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 단탈리온 님! 이 말대가리, 신속히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옳은 생각이다.”

오로바스는 집에 굴러다니는 잡지를 뒤적이더니 한 연예인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고는 고무장갑을 낀 양손을 얼굴 주위로 마구 움직였다.

“흠. 볼 만하구나.”

변화한 오로바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감사하옵니다!!”

오로바스의 얼굴은 각진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 오똑한 콧날, 두툼한 입술을 지닌, 전형적인 야성미 넘치는 남성의 얼굴이 되었다.

“이 몸의 밴드에 적합한 얼굴이로다.”

그래봤자 단탈리온인 이 몸의 외모보다는 못하지만 말이다.

…… 몸은 더 좋군.

‘슬슬 이 몸도 운동을 해야겠구나.’

흑마법을 시전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소양은 마력. 그리고 신체 조건.

마력은 악세사리로 어떻게든 채울 수 있지만, 신체 조건은 그렇지 않았다.

비루한 인간의 몸으로는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터.

“오로바스여.”

“예, 단탈리온 님!”

“자네의 인간계 이름은 박진태로 하겠노라.”

“……!?”

“싫으냐.”

내 물음에 오로바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다시금 납작 엎드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역시, 나의 작명 센스는 알아줘야 하느니라.

“이 몸은 운동을 하러 나갈 것이다.”

“운…… 동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운동을 다녀올 때까지.”

나는 집 안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오로바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할 일을 마무리해 두거라.”

“존명!!!!”

“그리고 사고 치지 말거라.”

단탈리온이 문을 나서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이 몸의 시종, 박진태로서 말이다.”

* * *

단탈리온이 명령을 내리고 집 밖을 나선 지금.

오로바스는 여전히 납작 엎드린 채로 생각했다.

-마무리해 두거라.

그 말이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지.

오로바스는 방금 전, 단탈리온의 말을 떠올리며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단탈리온 님이……!’

나를 의지하고 계신다!

그리고 또 하나. 단탈리온 님의 의지에 맞춰서 본래 몸인 말의 얼굴도 인간으로 변형한 직후, 단탈리온 님이 내려 주신 저주.

임의로 변형한 그 얼굴에 만족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격이었거늘.

-박진태로 하겠노라.

직접 작명까지 해 주셨다.

“박진태…….”

실로 마왕님의 고고한 자태가 뿜어지는 기품 섞인 이름이 아닌가!

“나는 오늘부터 박진태다!!!!”

오로바스는 두 팔을 번쩍 벌리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박진태다!!!”

“나는 박진태다!!”

“내 이름은 박진태……!”

쾅쾅쾅쾅!

“거 조용히 좀 해요!”

옆 방 주민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오로바스는 단탈리온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사고 치지 말거라.

“그래 알았다.”

하등한 인간에게 높임말을 쓰거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일 필요까지는 없을 터.

“에휴, 별 미친놈이…….”

오로바스의 말에 문 바깥의 남성이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사라졌다.

“후……. 어찌어찌 일은 안 터졌군.”

분명 단탈리온 님은 사고를 치지 말도록 주의를 주셨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거동을 더욱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다.

허나.

“신중한 행동 전략 수립은 나중이다.”

일단은 단탈리온 님이 하명하신 ‘할 일’부터 해야 한다.

첫 번째는 설거지.

오로바스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싱크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컵라면 용기를 손에 들었다.

“그간 얼마나 고충이 많으셨을지…….”

홀몸으로 인간계에 내려와 천계와 마계의 균형을 줄이고자 노력한 단탈리온 님.

마계의 그 누구도 직접 내려와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단탈리온 님은 혼자서 고군분투하실 수밖에 없었다.

“라면……. 이런 인스턴트만 드시고…….”

빈 컵라면 그릇 안으로 오로바스의 눈물이 똑, 떨어졌다.

“단탈리온 님!!!!! 이 오로바스, 분골쇄신의 충심으로 단탈리온 님을 지키겠나이다!!”

그를 위해 지금 오로바스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를 돌리면서 청소를 하고, 침대의 이불을 털면 되겠군. 옷은 다림질도 해 둬야겠어.”

* * *

골목을 걸어가면서 마력 잔여량을 확인해 보았다.

마력잔여량: 31100

처음에 비하면 꽤나 많아진 마력.

허나, 여전히 마계와 천계의 격차가 너무나 심했다.

‘소진되는 마력을 조금이라도 낮춰야 하느니.’

역시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을 담당하는 집단은 헬스장이라 들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고, 인간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

운동이라 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헬스장이라는 장소를 거쳐 가야만 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이었다.

“공원에서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저 멀리 공원에서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있는 대학생들을 바라봤다.

“굳이 시비를 걸어 줄 필요는 없겠지.”

고귀한 마왕은 저런 필멸자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 악마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정면에 보이는 헬스장 간판이 달린 건물 앞으로 걸어갔다.

도도하고 꼿꼿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고고함을 잊지 않은 채로 걷…….

툭.

“음?”

“아이고 아파라.”

놀이터에 앉아 있던 인물이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이 씨. 눈 똑바로 안 떠요?”

“뜨고 있었느니라.”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상대에게 물었다.

“그대야말로 눈을 똑바로 뜨는 게 어떠한가?”

“뭐라고?”

“자네의 눈은 이 장소에서 함께 놀고 있는 저 사내와 여성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지. 허나, 어느 순간 눈빛이 바뀌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치 목표를 찾는 악마처럼 이 몸의 어깨를 노려 걸어왔지.”

분명 저 녀석은 일부러 부딪힌 거다.

그런데 그게 왜인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그걸 물어볼 심산이었다.

대체 이 인간은 왜 이리도 불필요한 행위를 하였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야, 네가 와서 부딪혔잖아? 그래서 옷도 더러워졌고, 어깨도 빠진 거 같다고.”

“옷이 더러워진 것은 맞구나.”

“그치? 그래서 말인데, 세탁비가 좀 필요해.”

사내가 오른쪽 팔을 걷으며 히죽 웃었다. 사내의 팔에는 해골과 복잡한 그림이 글자처럼 적힌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흠…….”

나는 그 문신을 들여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허술하도다.”

“……뭐?”

“자네는 해골을 본 적이 없군.”

그 말에 사내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며 말했다.

“야, 해골을 본 적이 왜 없어 없기는?”

“아니, 이건 제대로 된 해골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그리는 그림이다. 해골이 이렇게 반듯할 수는 없는 법이지. 항상 둔기로 부서져 있거나, 날카로운 칼 혹은 뜨거운 화염 등으로 인해 형체가 보존되기 어려운 게 해골이다.”

참으로 허술하기 그지없는 문신을 지적하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인간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지식으로 저런 한심한 무늬를 새긴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이 몸이 직접 그려 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구나. 이만 잠들거라. 멘떼…….”

“이 새끼들! 남의 가게 앞에서 삥 뜯지 말라 그랬지!”

멘떼 크몽떼를 외치려던 내 앞으로 덩치가 크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성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치.”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남성이 혀를 차며 다른 사내와 여성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사라졌다.

“하……. 저승사자는 왜 저런 놈들 안 잡아가고.”

남성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놈들 요즘 계속 저러는데 참……. 경찰도 제대로 안 잡아가더군요. 요즘 그래서 있던 회원도 없어지는 판입니다.”

“흐음…….”

“아무튼, 이쪽 길은 질 나쁜 녀석들이 제법 많으니까 큰길로 돌아서 다니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구나. 알려 주어서 고맙도다.”

나는 텅 빈 작은 공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헬스장 건물은 여기가 맞느냐.”

“헬스장?”

그러자 사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뒤를 가리켰다.

“헬스장은 이쪽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거든요.”

“헬스장의 지배자였는가.”

사내가 자기 헬스장의 전단지라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운동에 관심 있으시면, 어떻습니까. 방금 전 그 양아치들 건에 대해 사과도 드릴 겸, 제가 회원님 제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명품 PT 10회권 40만 원 특가 할인!>

전단지를 보면서 여전히 나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숙여, 마치 하찮은 것을 보기라도 하는 듯 바라볼 뿐.

“저……기……?”

“지배자라 하였는가.”

“아, 네, 사장인지 물어보시는 거죠? 제가 사장입니다. PT도 하고 있지요.”

“이 몸이 매력적인 제안을 하려고 하는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헬스장 사장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양쪽 입꼬리를 사악 올리며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저 허접한 양아치들을 처리해 주면 할인을 해 주는 게 어떠한가.”

“네?”

내 말에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녀석들은 성격도 별로라서 잘못하면 다치실 수 있어요. 안 됩니다.”

“걱정 말거라. 해결만 해 오면 되지 않겠는가.”

“쩝……. 경찰로도 안 된다니까요. 정말로 쟤네들 해결해 오시면 할인도 해 드리고 서비스도 많이 드리겠습니다. 헬스장이나 헬스복이랑 홈트 물품들도 무료로 드리고요.”

헬스장 사장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옳도다. 그 약속을 저버려서는 아니 될 터.”

“네에……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그래도 정말 해결해 주시면 반값으로 해드릴게요.”

사장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는 기품 있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할인율은 200%다.”

“……네?”

나는 사장을 향해 두 손바닥을 쫙 펼쳐서 한번 보여 주고는 한 손을 내리고, 다른 손을 앞으로 한 번 더 내밀었다.

“200%다. 다녀오도록 하마.”

“아니, 저기……!?”

말을 마친 나는 연희동 놀이터를 지나 골목길로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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