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헬스장 (2)
‘좋은 기회로군.’
방금 전 헬스장 사장과 나누었던 계약.
정말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면 헬스장 등록비를 해결함과 동시에 현금까지 벌어들일 수 있다.
“어?”
아주 잠깐 걸어갔을 뿐이었지만, 방금 전 내 어깨를 치고 세탁비를 받으려 했던 녀석이 나를 알아봤다.
“역시 이 몸의 광채는 숨길 수가 없구나.”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은.”
시비를 걸었던 남성이 코웃음을 날리며 어깨를 한 번 더 보여 주었다.
“세탁비.”
“헬스장 지배자가 경고하지 않았던가.”
“하! 그 꼰대 말은 잊어 잊어. 이 동네 사는 거 아냐?”
사내가 내 옆을 빙글빙글 돌면서 이죽거렸다. 녀석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남성, 여성도 깔깔 웃으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야야, 살살 해. 쟤 삐쩍 말라서 힘이나 쓰겠냐.”
“허우대랑 얼굴은 멀쩡한데. 너 내 취향이다?”
“훗. 보는 눈은 있구나.”
아직 몸이 약해 보일 수는 있지만, 얼굴은 알아보다니.
“나쁘지 않은 눈이로다.”
“……진짜 미친 거 아냐 이거?”
어깨를 걷은 남성이 위협적인 척 몸을 크게 하고는 다가왔다.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거 같으니까 이거도 보여 줘야겠네. 이거 보여? 이거?”
남성이 갑자기 한쪽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흔들었다.
“너 때문에 어깨도 탈구됐거든?”
“탈구?”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물었다.
“탈구가 무엇이더냐.”
“탈구 몰라? 어깨 빠졌다고!”
“어깨가 빠져?”
“이 새끼가 진짜……. 어깨 부러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부러졌다고.”
“호오…….”
남성의 어깨를 바라보면서 나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어디 정말 부러졌는지 아닌지 확인을 좀 해 보도록 하마.”
“확인?”
“이래 보여도 마계에서 물리치료술 1인자라 불리던 몸이니라.”
“마계?”
“퀘르포 타쿤.”
흑마법 이름을 중얼거리자 내 주변으로 검붉은 빛이 살짝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는 나의 몸 전체에 깃들어 근육을 증강시켰다.
“뭐, 뭐야?”
“흐음.”
나는 남성이 의문을 품기도 전에 오른손을 들고는 그대로 남자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남자가 끌려왔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남자가 나에게 부딪히는 순간, 몸을 피했다. 남자는 내 뒤에 있는 공원 펜스 위로 넘어졌다. 그 위치에는 뾰족한 돌기둥이 있었다.
빠가각!!
“끄, 끄아아아아악!!!!”
“흐음. 뼈는 지금 부러진 것 같구나. 그렇지 않느냐.”
나는 남성의 팔이 축 늘어지는 걸 보며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뼈라 함은 자고로 부러지게 되면 이렇게나 힘이 들어가지 않는 법이니라.”
퀘르포 타쿤. 신체를 강화함과 동시에 가까운 물체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도 있는 기본적인 전투 버프 흑마법이었다.
정신계가 전문인 나로서는 다른 전투계 천족들과의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체 강화술을 자주 사용했었다.
이 흑마법은 그러한 강화술 중 가장 기초적인 마법이었다.
잔여마력량: 21900
‘한 번 정도는 충분하구나.’
한쪽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남성의 부러진 어깨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끄, 끄으으으윽……!”
“이 몸이 말하지 않았더냐. 자네들은 해골 그림도 그렇고, 지나치게 허술하다고.”
말을 끝냄과 동시에 손바닥으로 남성의 다른 어깨를 한 번 더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퍼걱!
“꾸으으으응……! 아파아아!”
“어허, 소리 지르면 아니 되느니라.”
입술에 검지를 스윽 올리고는 가로로 주욱 그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위로 쏘아 올렸다.
“프례 레체.”
시전자를 중심으로 일정 거리에 소리가 방출되지 않는 투명한 막을 설치하는 흑마법.
쉽게 말하면, 결계를 만드는 마법이다.
주변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다 보니 암살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흑마법이지만.
이 몸이 다루지 못하는 흑마법은 없을지니.
잔여마력량: 10400
다만, 다른 마법과는 달리 시전 범위가 크기 때문에 마력 소진량은 제법 높았다.
나는 마력 소진량을 확인한 후 눈을 들었다.
뚜벅, 뚜벅.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양쪽 어깨가 마구 흔들거리던 남성이 두려움에 계속해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아, 악마 같은 새끼가!”
“악마 ‘같다’……?”
감히 마왕인 이 몸 단탈리온에게 악마 ‘같다’고?
“필멸자 주제에 못 하는 말이 없구나.”
“히익, 히, 흡, 끄업, 꺽.”
내 손이 벌써 오줌을 지리고 있는 남성의 목덜미를 잡았다. 그러고는 바닥에 냅다 내리꽂았다.
콰앙!
“크, 크허억…….”
“경배하라.”
“흐업, 헙, 허억……!”
“마왕 단탈리온의 존재를.”
이제 남성은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듯 바닥을 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사, 사사, 살려, 살려 주세요……! 제발 살…….”
겁에 질린 남성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려는 찰나.
내가 펼친 손바닥 위로 검은 안개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멘떼 크몽떼.”
화아아악!
검은 안개가 남성의 머리를 휘감고는 그대로 그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남성이 몸이 갑자기 일시 정지라도 한 것처럼 그대로 굳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눈앞의 존재, 마왕 단탈리온, 마왕 데스맨에 대한 두려움을 들고 살아가거라. 알겠느냐.”
“……예.”
남성이 맥빠진 얼굴에 동공이 풀린 눈동자를 하고는 중얼거렸다.
“또한, 헬스장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거라. 이를 어길 시, 사지의 뼈를 모두 분쇄해 줄 터이니.”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자네의 뼈가 부러진 건, 혼자 걸어가다 넘어져서다. 헬스장 사장에게 사과하고 곧장 병원부터 가 보도록.”
상대의 마음을 조종하고, 세뇌를 시키는 능력.
다수가 아니라 겨우 세 명에게 하는 거라면 마력량도 충분하다.
나는 내 모습을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다른 두 사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히익!”
“으아아!”
도망치려고 움직이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 역시 보잘것없었다.
마계의 왕인 이 몸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한 모습.
“그것이 필멸자의 한계일지니.”
나는 다시 손바닥을 들었다.
“멘떼 크몽떼.”
* * *
H&B 헬스장의 사장 서갑수는 호리호리한 남성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해결해 준다면야 고맙기는 한데…….”
저런 기생오라비 같은 남자가 그 양아치들을?
경찰도 항상 대충 넘어가라고만 하던 녀석들인데 과연 어떨지.
서갑수가 그렇게 의문을 품고서 다시 헬스장으로 올라간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여기로구나.”
방금 전, 기생오라비 같은 남성이 헬스장으로 올라왔다.
“어라? 신고만 하고 오셨어요?”
“음? 아니다, 해결했도다.”
“해결……?”
서갑수가 의문을 품음과 동시에 단탈리온이 문 쪽을 향해 말했다.
“어서들 들어오지 않고 무엇들 하느냐.”
“예에…….”
“네…….”
“들어갑니다…….”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 게다가 남자 한 명은 양쪽 팔이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채 양팔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 이게 뭔……!?”
“사과들 하거라.”
“죄송합니다, 사장님.”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동네에서 행패 부리지 않겠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서갑수에게 사과를 했다. 서갑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두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되었다. 이제 병원부터 가 보거라.”
단탈리온의 말에 세 사람이 모두 고개를 조아리더니 스스스, 밖으로 사라졌다.
‘대체 뭐야!?’
지금 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서갑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인간이 양아치 세 명을 상대로 눌러 주고 왔다고?
게다가 한 명은 양팔이 부러졌고, 두 녀석은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한 모양으로 보였다.
반면, 남성의 몸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표정 역시 고귀한 귀족의 눈빛처럼 자신감이 충만했고, 상대를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고고함이 느껴졌다.
“자, 해결했느니.”
“아, 아아! 네, 정말, 그렇군요, 네.”
서갑수는 불과 한 시간 전에 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할인 200%라고 하였느니라.”
“그, 그러면…….”
헬스장 등록비를 할인해 줌과 동시에 현금을 줘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갑수가 조용히 가격표를 꺼냈다.
“저희 헬스장 6개월 등록비가 12만 원인데, 저 양아치들 처리해 주셨으니 이걸 드리면…….”
“? 무슨 소리냐.”
어라, 이게 아닌가?
“그, 200%라고 하셨으니까 100%만큼 수고비를 달라는 말씀 아니셨나요?”
“그건 맞다.”
“그럼 12만 원…….”
“아니, 헬스장 등록비가 아니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저으며 처음 서갑수에게 받았던 포스터를 꺼냈다.
“여기 보면 P.T 10회 비용이 40만원으로 되어 있지 않느냐.”
“네……!?”
“여기에 헬스장 무료 이용, 헬스복 제공은 서비스라고 하였다.”
분명, 서갑수는 그렇게 말했었다.
단탈리온과 대화를 하면서 건네준 포스터에는 PT 10회권 등록을 할 시, 헬스장 6개월 무료 이용을 제공한다고.
추가로 단탈리온이 사건을 해결해 오면 헬스복, 홈트 물품들까지 제공한다고 했었다.
“그, 그럼, 이게…….”
“그러하다. 자네가 나에게 주어야 하는 돈은 40만 원이다.”
단탈리온이 악마처럼 히죽 웃으며 말했다.
“통장 잔고는 충분한가.”
* * *
의외로 서갑수는 흔쾌히 단탈리온의 희망대로 4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해 주었다.
첫 번째 이유는 약속은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헬스장 사장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고객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서갑수의 경영철학 때문이기도 했지만, 평생 운동만 해 왔던 그의 고집이기도 했다.
‘약속은 약속이지.’
게다가 양아치들까지 정리했다면, 이제 헬스장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40만 원 정도는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게다가 헬스복이나 홈트 물품 같은 건, 잘 쓰지 않는 자신의 물건을 주면 되는 일.
오히려 돈을 들여서 해결사들을 고용할 생각까지 했던 참이니, 서갑수로서는 잘 된 일이기도 했다.
“40만 원, 맞구나.”
단탈리온이 돈을 모두 세어 보고는 주머니에 스윽 넣었다.
“그럼 바로 운동을 시작하도록 하지.”
“지금 바로요?”
단탈리온의 말에 서갑수가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그, 일단 인바디 검사랑 해야 할 게 좀 있습니다.”
“뭐든 좋으니 빨리 시작하겠다.”
“아, 네. 그럼 옷부터 갈아입으시고…… 아니지, 회원 명부부터 작성하셔야죠. 성함이?”
“단탈…… 아니, 김도권이다.”
“김도권 씨…….”
그 이후, 자신의 개인 정보를 모두 이야기한 단탈리온이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했다.
“설마 이 몸의 정보를 판매하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제가 그런 짓을 왜 합니까. 방금 돈 드리는 거 보셨잖아요?”
“그것과 이게 무슨 상관이 있더냐.”
“할인율 200% 같은 말을 실제로 실천해 주는 사람은 전국에서 제가 유일할 겁니다, 아마.”
“흐음.”
그 정도로 지키기 어려운 말이었단 것이냐.
단탈리온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튼, 옷 갈아입고 오세요.”
“그래.”
이후 옷을 갈아입고 온 단탈리온은 인바디 체크를 하고, 자신의, 정확히는 데스맨의 몸에 어울리는 운동 루틴을 상담받았다.
그리고 그 첫 번째로 런닝 머신.
“기초체력을 올리기 위한 운동입니다.”
“알고 있느니라.”
드라마에서 자주 봐 왔던 기계였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건 왜……?”
서갑수가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 몸도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달리면서 핸드폰을 받을 생각…….”
“아니 아니 아니, 그러다 다친다니까요!?”
“이게 위험하다는 말이더냐.”
“그게 아니라, 뛰면서 핸드폰 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넘어지는 순간…….”
“이 몸이 넘어질 리는 없을 터.”
“아니, 아무튼 안 됩니다! PT할 때는 트레이너 말을 들으세요!”
“……잔소리가 많구나.”
“네?”
“아무 것도 아니다.”
단탈리온은 입술을 살짝 내민 채 런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그럼 일단은 5단부터 하나씩 올려서…….”
그때였다.
두둥, 쿵쿵! 두둥, 쿵쿵!
헬스장의 천장에 걸린 스피커에서 드럼 소리가 들려오더니.
쟈아아앙!
일렉 기타 소리도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음악이더냐.”
“아, 이거요? 모르겠는데…… 그냥 음원 사이트에서 적당히 신나는 노래 틀어 둔 겁니다.”
“상당히 신나는 노래로구나. 심장이 뛰는 느낌이야.”
“실제로도 그래야 운동할 때 힘이 덜 빠지거든요. 일부러 이런 노래들을 틀어 둡니다.”
“그럼 락도 듣느냐?”
“락도 자주 틀지요.”
그 말에 단탈리온이 히죽 웃었다.
“그럼 헬스장의 지배자여.”
“사장입니다.”
“헬스장 사장이여. 이 몸이 제안 하나 하마.”
단탈리온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서갑수에게 말했다.
“RRR밴드라고 들어봤느냐.”
“RRR……?”
“그러하다. 그 밴드의 보컬이 바로 이 몸, 데스맨이니라.”
“아하……. 아?”
“H&B 헬스장. 이곳에 우리의 음악을 틀어 두는 게 어떠한가.”
분명 헬스장의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에 RRR밴드를 헬스장 회원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될 것이다.
“우리의 음악을 틀어 두면, 회원 유치에도 도움이 될 터.”
“……정말입니까?”
서갑수는 양아치들 때문에 줄어들었던 회원을 다시 유치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방법들은 다 해 볼 생각이었다.
RRR밴드의 음악을 틀어 두는 것도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굳이 저들이 도와준다고 한다면, 거절할 필요도 없었다.
“최근 고깃집의 매출도 10배를 올렸느니. 헬스장도 어려운 일이 아닐 터다.”
고깃집? 매출? 거기에 헬스장까지?
서갑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악으로 그런 게 되는 건가?’
단탈리온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서갑수의 눈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