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헬스장 (3)
“뭐? 헬스장?”
합주실에 모인 RRR밴드의 멤버들이 단탈리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헬스장에서 우리 음악을 튼다고?”
앤디의 질문에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헬스장이라는 곳은 심장이 두근대는 장소. 때문에 우리의 메탈 음악이 딱인 곳이니라.”
“……하루 만에 헬창 된 거 아냐?”
제인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기 마왕님.”
“어허! 어디 마왕님이라고 함부로 부르는가!”
옆에서 드러머 오로바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깜짝이야. 그나저나 드러머 소개 안 해 줘?”
“하등한 필멸자 주제에 감히…….”
“오로바스.”
단탈리온이 오로바스를 향해 고개를 슬쩍 돌리며 서늘한 눈빛을 날렸다. 그 눈빛에 오로바스가 흠칫 놀라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되었다. 인사를 하거라.”
겨우 몸을 일으킨 오로바스가 커흠, 헛기침을 하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71위 마계의 11군단 3연대 행정병, 오로바스다. 이곳에는 단탈리온 님의 보좌를 위해 현계했다.”
“한 가지 더. 여기서 이 둘은 12군단장과 13군단장이니 말을 조심하거라.”
“!? 구, 군단장!?”
오로바스가 몸을 납작 숙였다.
“12군단장 앤디 님과 13군단장 제인 님을 뵙습니다!”
“아……. 응, 제인이라고 해.”
“어, 어……. 나는 앤디. 기타리스트야.”
통성명을 끝낸 멤버들을 보면서 단탈리온이 한 가지를 제안했다.
“헬스장에서 공연을 한번 열고자 한다.”
“마왕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제인이 손을 들고는 물었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을 허하노라.”
“아니, 이유 물어봤잖아 이유.”
“앤디에게 들었다. 우리의 음악이 CD로도 있다고 말이다.”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RRR밴드를 검색했다.
“그치. 우리도 정규 1집 정도는 냈으니까.”
앤디와 제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오로바스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오로바스, 질문을 허하노라.”
“감사합니다, 단탈리온 님! 그럼 이 CD를 헬스장에 제공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로바스의 말에 앤디와 제인이 서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우리 노래가 좀 안 알려지기는 했어.”
“헬스장에서 잘만 하면 이름도 알리고, 음원 수익도 생기고.”
“근데 헬스장 한 곳에서 종일 튼다고 알려지나……?”
“……그건 모르겠는데.”
어쨌든, 앤디와 제인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여겼다.
지금 RRR밴드의 당면 과제는 당장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와 버스킹을 통해 어느 정도 이름은 알리기 시작했으나, 그것 역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럴 때야말로 바로 제가 필요한 시점이죠!”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박은환이 눈을 빛내더니 카메라를 들었다.
“그럼 찍겠습니다!”
박은환이 카메라를 들고는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으, 으앗!”
“뭐야 앤디. 왜 부끄러워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직캠은 좀…….”
“방송도 탄 녀석이 참으로 모순적인 행동을 보이는구나.”
“야 그거랑 이거랑 같냐. 이건 진짜 단독 영상처럼 찍…… 잠깐만요!”
“앤디는 되었다. 공식 팬 1호여. 이 몸을 촬영하거라.”
단탈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와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며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벽에 살짝 기대어 주머니에서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우와! 데스맨 님. 시집 읽으세요!?”
“훗. 마왕에게 이 정도 교양은 당연하다.”
평소 즐겨 읽던 시집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중고 책방에서 한 권 구매한 보람이 있었다.
단탈리온은 한 손에는 시집을 들고, 한 손은 주머니에 꽂고는 말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촬영하거라.”
“……아니, 누가 봐도 의식하는 거거든?”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반면, 오로바스는 단탈리온의 앞으로 달려가 납작 엎드렸다.
“오오오오 역시 마왕님! 어찌 이리고 고상한 취미를 갖고 계시옵니까!”
“역시 오로바스로다. 잘 이해하는구나.”
시끌벅적한 RRR밴드의 멤버들을 보면서 박은환은 방금 전보다도 더 눈을 빛내면서 단탈리온에게 말했다.
“좋아요! 조금 더! 자연스럽게! 그렇죠! 크으, 이게 바로 마왕의 품격! 손 조금만 더 위로! 눈빛은 새침하게! 그대로 그대로!”
찰칵
찰칵
위잉-
박은환이 들고 있는 카메라와 핸드폰이 쉴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직캠이라는 건 제법 피곤하구나.”
나는 뻐근해진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원래 직캠이 스타들의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거든요.”
“그럼 이 몸이 문학가임을 보여 주는 것만큼 진정성 있는 장면은 없겠구나.”
마계에서는 재미난 문학작품을 읽느라 업무도 팽개치는 날이 허다했던 나였다.
그러니 시집을 읽는 정도는 습관과도 같았다.
“그런데, 제가 RRR밴드 옛날 영상들도 몇 개 찾아봤거든요?”
박은환은 무언가 이상했었다면서 앤디와 제인에게 물었다.
“이전에도 데스맨 님이 이런 분위기였나요?”
“헉.”
“아 그게…….”
그러고 보니 박은환에게는 이 몸이 마왕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군.
허나, 지금은 그걸 알려서는 안 되는 시기.
‘이 몸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 멤버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오로바스를 향해 손바닥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들리지 않는 통신을 보냈다.
[들리는가, 오로바스여.]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오로바스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다, 다다, 단탈리온 님!?]
[그렇다.]
[지, 지지지, 직접 통신을 걸어 주시다니! 가문의 영광으로……!]
[되었다. 그것보다, 팬 1호는 오로바스 자네에게 전담 마크를 맡기겠다.]
그 말에 오로바스의 두 눈에서 살짝 눈물이 흘러나왔다.
‘녀석도 마음이 많이 여리군.’
겨우 인간 한 명에게 악마가 달라붙어야 한다는 사실에 자존심도 상할 터.
허나, 지금은 모두 필요한 과정들이다.
[존명!!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오로바스의 대답을 들으면서 박은환을 불렀다.
“공식 팬 1호여.”
“네?”
“오로바스가 할 말이 있다는구나.”
오로바스가 헛기침을 하며 박은환에게 다가갔다. 오로바스는 오른손 소매로 눈물을 살짝 훔치고는 말했다.
“사실 데스맨 님은…….”
“데스맨 님은……?”
앤디와 제인이 잔뜩 긴장한 채 오로바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왕님입니다.”
“……야.”
앤디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옆구리를 쿡 찔렀다.
“괜찮은 거야?”
“훗. 믿고 기다리거라.”
앤디는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오로바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왕이요?”
“네. 우리 밴드는 마왕군을 컨셉으로 잡고 있어요.”
“아하, 그냥 악마, 마왕이 아니라 마왕군…….”
“그리고 메탈 밴드는 퍼포먼스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평소에도 연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박은환이 모두 이해했다며 활짝 웃었다.
“그런 거면 오히려 좋네요! 컨셉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이런 것도 팬들에게는 스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거든요!”
“그렇죠. 이해가 빠르시군요.”
“오로바스 님 덕분에요!”
박은환이 오로바스의 양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오로바스 님의 평소 일상을 찍어야겠어요!”
“제 일상이요?”
오로바스의 일상은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드럼 연습하고.
이 반복이 전부였다.
하지만, 오로바스 역시 인간계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정도로 이러한 문화에 익숙한 녀석이었다.
나는 오로바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찍고 싶다면…….”
“오 예! 감사합니다!”
“아, 아니. 그런데 역시 지금은 안 되겠어. 다음 기회에.”
아직은 부끄러운 모양이군.
나는 그 또한 당연한 반응이라며 눈을 감았다.
“에이 아쉽다. 그럼 제인 언니는요?”
“나? 나도 찍어야 해?”
“당연하죠! 밴드 내의 유일한 홍일점!”
확실히 제인은 밴드의 홍일점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나 또한 제인의 연주는 물론이고, 앤디를 잡아 주는 역할에서도 그녀를 인정하고 있었다.
“응 좋아. 그럼 베이스 연습하는 거부터 찍을까?”
“좋죠!”
두 여성이 합주실 한쪽으로 가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로바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 *
“오로바스, 이 멍청한 녀석!”
시틀라의 집무실 옆에 위치한 대회의실.
71위 마계의 주요 회의가 열리는 장소인 이곳에, 지금 11군단의 각 군단장 모두가 모여 있었다.
“어휴 저걸 그대로 밝히려 하면 어떡해!”
“아직 마력 악세사리도 추가 제작이 안 되었는데 멍청한 것!”
“방금도 그래. 단탈리온 님의 고귀한 품성을 인간들이 이해하도록 말을 꾸미는 것조차 못하고 있으니 원.”
에키드나와 시틀라가 한쪽 귀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화를 냈다. 오로바스가 박은환에게 단탈리온의 언행을 설명할 때, 시틀라가 뒤에서 알려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군단장들이 혀를 차며, 현 상황에 개탄했다.
“오로바스 녀석, 진짜 괜찮은 건가?”
“그러게. 지난번에는 인간계의 감찰관들에게 잡힐 뻔하지 않았나.”
“청소나 요리는 잘하는 거 같지만…….”
“인간을 마왕님 숙소로 들여서는 더더욱 안 돼.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러는 건지 원.”
군단장들이 각각 한 마디씩 던지며 오로바스의 행동을 평가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틀라가 경고했다.
“쉿. 너무 소리가 크면 단탈리온 님께 목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헙.”
“……조심하지.”
군단장들이 입을 일제히 다물었다.
시틀라는 모여 있는 군단장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오늘의 안건이네.”
군단장들이 숨을 죽이고 시틀라를 바라봤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 단탈리온 님은 인간계에 내려가 계셔. 옆에는 서번트로서 오로바스가 내려가 있지만, 하급 악마에 불과하지.”
즉, 단탈리온 님께 무언가 위협이 다가왔을 때, 오로바스가 해결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일례로, 며칠 전, 헬스장 근처의 양아치들이 주제도 모르고 단탈리온 님께 시비를 걸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만티코어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지금 당장이라도 보좌관을 보내야 하네!”
“그야 그렇지만, 아직은 마계와 천계의 격차가 너무 심해. 우리를 제외하면 악마 본체로 내려갈 수 있는 악마는 없지 않아?”
에키드나의 말에 시틀라가 침통한 얼굴을 했다.
“그 말대로야. 상급 악마를 보내더라도, 얼마 못 가 소멸하겠지.”
“……온전히 서번트, 오로바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단 말인가.”
군단장들이 모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마왕님께서 홀로 인간계에서 고생하고 계신데, 군단장이라고 하는 우리들은……!”
7군단장인 만티코어가 머리 위를 감싸고 있는 사자 갈기를 잔뜩 세우며 이빨을 으르렁거렸다.
크오오!
“진정하게, 만티코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는가……! 마력만 높으면 서번트를 하나 더 보낼 텐데……!”
그 말에 시틀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서번트?”
“왜 그러나 시틀라.”
“만티코어. 지금 7군단에서 기르고 있는 맹수들이 있지 않은가?”
71위 마계 7군단은 마수와 마계 짐승들을 사육해서 그러한 짐승들로 전쟁을 나가는 부대였다. 만티코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왜?”
“서번트가 악마가 아니라 마수나 마계 짐승이면, 좀 더 코스트가 줄지 않을까?”
시틀라의 말에 모두가 몸을 가까이 날렸다.
“시틀라! 진짜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
“정말로, 마수를 내려보낸다고!?”
그들의 반응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시틀라가 말했다.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
솔직히, 인간계로 보내는 서번트로, 악마가 아니라 마계 짐승을 보내 본 기록은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천계와 마계의 균형이 어느 정도 비슷할 때 했었던 정도였다.
때문에 시틀라로서도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단탈리온 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 봐야 하지 않겠냐.”
그의 결연한 눈동자를 보며 다른 군단장들 모두가 동의했다.
“좋아, 그럼 우리 군단의 마수 한 마리를 보내도록 하지!”
“악마가 아니라 마수라면…… 상급 짐승을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에키드나의 말에 만티코어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그럼 딱 적당한 녀석이 있지!”
“어떤 녀석?”
“십 년 전에 탄생한 새끼 케르베로스가 있어. 아직 어리지만, 단탈리온 님의 호위 역 정도는 가능할 거고, 어리기 때문에 마력 코스트도 줄어들 거야.”
만티코어는 자신의 예측이 확실하다며 시틀라에게 건의했다.
“어떤가 시틀라!”
“만티코어. 7군단의 노력을 잊지 않겠다.”
시틀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활짝 펼치며 좌중을 향해 앞으로 내밀었다.
“7군단의 케르베로스 유체를 단탈리온 님이 계신 인간계로 보낸다! 서번트의 형태로 소환할 것이며, 목표하는 시점은……!”
시틀라가 뒤에 적어 둔 칠판을 텅! 가리키며 소리쳤다.
“ASAP다!”
언젠가 단탈리온이 인간들의 문화에서 봤었다며 말했던 ASAP를 활용하는 시틀라였다.
군단장들도 당시 그 자리에 모두 있었기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군단장이 박수를 쳤다.
“좋아. 그럼 이 소식을 곧장 단탈리온 님께 알려야겠군.”
“아, 시틀라. 건의할 게 하나 있는데…….”
회의를 마무리하려는 시틀라에게 에키드나가 말했다.
“뭔데?”
“오늘 다 같이 모여서 단탈리온 님의 생활을 들으니까 되게 좋더라고. 아니, 다른 뜻은 아니고 오로바스가 잘 하고 있는지 우리 군단장들이 다 같이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고…….”
에키드나의 말에 만티코어도 동의했다.
“맞는 말이야. 오로바스가 말실수라도 하는 순간, 단탈리온 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그건 그래.”
“나도 동의. 오로바스는 당분간 우리의 감시하에 두어야 할 것 같아.”
군단장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그 말들에 힘을 얻은 에키드나는 확신을 갖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기적으로 오로바스를 감시하자. 어때?”
“좋은 생각이야. 매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이곳 대회의실에서 오로바스의 언행을 감시하고, 지도한다!”
71위 마계에 단탈리온과 오로바스의 삶이 생중계되기로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는 중계방송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