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27화 (27/110)

27화. 헬스장 (4)

쏴아쏴아

뽀득뽀득

오로바스는 방금 먹은 소고기 버섯죽을 정리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오로바스는 평소보다도 더 몸을 뻣뻣하게 만든 채로 어색하게 손을 움직였다.

“오로바스여.”

그 말에 오로바스가 흠칫 놀랐다.

“예, 예! 단탈리온 님!”

“무슨 일 있느냐.”

서번트의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마력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뜻.

허나.

마력잔여량: 35177

마력은 충분했다.

‘아마 문제가 있다면 마력 전송에 문제가 있을 터.’

잘못하면 어렵게 소환한 서번트, 오로바스가 마력 공급 오류로 인해 마계로 복귀할 수도 있었다.

“말해 보거라. 무엇이 문제더냐.”

“그, 그것이…….”

오로바스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몸을 돌리더니 납작 엎드렸다.

“저, 정말 죄송하오나 미천한 악마, 오로바스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몸을 바닥에 붙인 것도 모자라 장판에 융화할 것만 같은 모습을 하는 오로바스를 보며 어찌 이 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하노라.”

“위대한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오로바스는 몸을 더 바닥에 붙이면서 실로 신중하게 말했다.

“애완동물을 한 마리 데리고 오면 어떨까 합니다!”

“애완동물?”

아마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려동물을 뜻하는 것이렷다.”

“예! 단탈리온 님의 밴드는 실력도 저를 제외하면 모두 뛰어나고, 아니 물론 단탈리온 님의 실력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위대한 실력이십니다!!”

오로바스의 극찬에 나는 조용히 팔짱을 꼈다.

“음. 옳은 평가로다.”

이 몸의 가창력은 굳이 흑마법 버프를 빌리지 않더라도 상당한 편.

따라서 나는 오로바스의 말에 굳이 겸손을 표하지 않았다.

“계속 고하거라.”

“예! 그래서 단탈리온 님의 밴드는 실력, 노래 모두 나무랄 곳이 없지만,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부족?”

감히 이 몸이 속한 밴드에 오점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순간 마기를 끌어 올리자 오로바스가 사지를 벌벌 떨며 다시 바닥에 팍 몸을 붙였다.

“주, 죽여 주시옵소서!”

“부족이 아니다.”

나는 오로바스를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날렸다.

“미충족이니라.”

부족이라니. 아 다르고 어 다른 것. 아직 충족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설명을 받듭니다!”

오로바스가 양손을 모으며 몸을 숙였다.

“그래, 그 미충족 조건이란 무엇이더냐.”

“그……. 마스코트라 생각합니다.”

“마스코트?”

갑자기 마스코트가 웬 말이란 말인가.

“예! 밴드의 인기가 높아진다는 건 연예인이 된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연예인들의 인기 비결을 따라가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오로바스의 고무장갑이 바닥을 살짝 긁으면서 삐비빅 소리가 났다.

“최근 한국 연예인들의 sns를 보면 자신이 키우는 동물과의 산책 사진을 많이 올립니다.”

“호오 반려동물과의 산책이라.”

확실히.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구나.”

“예, 그래서 저희 밴드에서도 동물을 키우고, 그걸 사진으로 남기며, 또한 마스코트로도 활용한다면…….”

“좀 더 밴드의 인기가 높아질 거란 뜻이로군.”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침묵했다.

과연 어떤 방법이 좋을 것인가.

확실히, 지금 RRR 밴드에는 컨셉이 마왕이지만, 이를 상징할 만한 일상의 퍼포먼스가 없다.

‘평소에 마기를 뿜어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

때문에 악마, 마왕군의 컨셉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동물을 데리고 온다면 그게 가능하냐고 한다면.

“동물을 마스코트로 한다 한들,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이더냐.”

솔직히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오로바스는 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손을 달달달 떨었다.

“시틀라여.”

[…….]

“시틀라여.”

[예, 예 단탈리온 님!]

“답이 늦구나.”

시틀라가 통신 너머로 쿵 소리를 냈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을 뵙습니다!]

그 뒤로 계속해서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를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만하면 되었다.”

[감사합니다, 단탈리온 님!]

“그래, 자네의 고견을 들려주게.”

시틀라는 잠시 물을 마셨는지 꿀꺽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동물을 한 마리 데리고 오셔서 지옥의 저승사자라 명명하시면 어떻습니까.]

“오호라.”

과연.

케르베로스인가.

“허나 인간계의 생물 중 케르베로스는 없지 않더냐. 설마 이 몸에게 세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라는 건 아니겠지.”

내가 농담 삼아 말을 던지자 시틀라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7군단장 만티코어로부터 케르베로스 유체를 받아서 서번트로 내려보내면…… 어떨까…… 싶어서…….]

시틀라가 말을 조금씩 삼키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충분히 좋은 계획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걱정되는 사안이 하나 있었다.

“마계 코인은?”

[…… 예?]

“현재 마계 코인으로도 괜찮겠느냐는 말이다.”

이미 서번트로 오로바스를 소환했다. 그렇다면 71위 마계의 마계 코인도 꽤 한계치까지 뽑아냈을 터.

“여유는 있느냐.”

[그 부분입니다, 단탈리온 님. 마계 짐승은 인간계로 보낼 때 코스트를 확 줄여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단 말인가?

[인간계에서 케르베로스와 가장 비슷한 짐승은 바로 강아지입니다. 그러니 강아지로 케르베로스의 모습을 변환시켜 소환하면 됩니다!]

악마와 달리 마계 짐승은 인간계의 금수로 둔갑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물건이나 동식물은 형태를 복사해 내기가 용이하다는 뜻이다.

인간으로 변하려면 기억력이라든가 직장, 학교 등 따져야 할 게 많지만, 금수는 그냥 소환하면 되는 일.

때문에 악마로 현계하는 것보다 코스트는 현저히 줄어든다.

이 점 덕분에 마성전쟁에서는 인간계로 수많은 마계 짐승을 소환해서 싸우기도 했었다.

“옳은 생각이로다. 준비하거라.”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와 오로바스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럼 이번에 케르베로스가 소환되면 공연에도 출연시킬 수 있을 터.

“인간들에게 마수의 매력을 보여 줄 수 있겠구나.”

나는 곧 나타날 마스코트의 등장을 기대하며 히죽 웃었다.

* * *

“허억, 헉, 허어억!”

단탈리온과의 통신을 마친 시틀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주변에서 숨을 죽인 채 시틀라와 단탈리온의 통신을 엿듣고 있던 71위 마계 군단장들도 겨우 숨을 토했다.

“괜찮은가 시틀라!”

“야! 괜찮아?”

7군단장 만티코어와 11군단장 에키드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시틀라를 부축했다.

“커헉 헉……. 괘, 괜찮아. 이제 괜찮아.”

시틀라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

“단탈리온 님을 위한 거라고는 하지만, 오로바스를 통해 우리 멋대로 계획을 준비하지 않았나. 이건 걸리는 순간 모두 즉시 사형이야 사형.”

만티코어가 고개를 저으며 사자 갈기를 어루만졌다. 그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했는지, 어루만지는 갈기에 땀이 묻어나왔다.

“난 단탈리온 님이 강아지를 세 마리 키우라는 거냐고 되물으실 때 오금을 저릴 뻔했네.”

“그걸 직접 통신으로 듣는 나는 어땠겠나…….”

시틀라는 방금 전의 그 공포가 떠나지 않는다며 몸을 떨었다.

“다행히 단탈리온 님이 넓은 아량을 베풀어 넘어갈 수 있었지.”

“마스코트가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도 정신이 혼미해졌어.”

“역시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 님…….”

군단장들이 한 마디씩 던지면서 어깨를 잡고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나저나 시틀라, 마계 코인, 진짜 괜찮은 거 맞냐”

만티코어의 물음에 시틀라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괜찮겠냐? 방금 단탈리온 님께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거짓말이야.”

케르베로스를 강아지로 변화시킬 만한 여유 마계코인이 있느냐는 문제. 그나마 유체이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솔직히 빠듯한 건 사실이기도 해.”

“큰일이군. 이거 어떻게 해야…….”

걱정하는 군단장들을 향해 시틀라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시틀라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 비상금 좀…… 받을 수 있을까?"

* * *

케르베로스라.

시틀라와 통신을 마치고 나는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웃었다.

“오로바스여.”

“예, 예 단탈리온 님!”

“마저 설거지하거라.”

내 명령에 오로바스가 몸을 바닥에 붙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명을 받듭니다!”

손을 한 번 저으며 오로바스를 싱크대로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밴드 멤버들에게 톡을 보냈다.

-데스맨: 금수를 데려오고자 한다.

-앤디: 금수?

-제인: 동물?

-데스맨: 그러하다. 강아지가 올 것 같은데, 키워본 경험들이 있는가.

-앤디: 나는 없어.

-제인: 우리 집 강아지 키워!

-앤디: 그나저나 어디서? 분양이라도 받게?

-데스맨: 마계에서 오는 강아지다.

-앤디: ……마계에도 강아지가 있어?

-데스맨: ㅇㅇ

-앤디: 그거 혹시 드래곤이라든가 이런 거 아냐?

-데스맨: 앤디 자네는 생각이 참으로 일차원적이구나.

-앤디: ㅡ_ㅡ

-제인: 에이 설마 드래곤이겠어. 지옥의 파수꾼, 그런 거 아냐?

제인의 톡을 받고 나는 놀란 손가락을 잠시 멈추었다.

그걸 간파했다고?

-데스맨: 어떻게 알았느냐.

-제인: 그냥 강아지라고 하니까 :) 언제 오는데?

-데스맨: 조만간이다.

-앤디: 잠깐 잠깐 잠깐!!!!! 그거 혹시 머리 셋 달린 그 괴수 아냐!?!?

-데스맨: ㅇㅇ

-앤디: 미쳤어!? 머리 셋 달린 강아지, 아니 괴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냐고!

-데스맨: ㅡ_ㅡ

-앤디: ……너 나 멕이는 거지?

-데스맨: ㅇㅇ?

-앤디: 됐다……. 공연에 데리고 오지는 마……. 합주실도 금지!

-데스맨: ㅠㅠ

-제인: 아직 머리 셋 달렸다고 확정은 아니잖아. 그치 마왕님?

그러고 보니 시틀라가 케르베로스 유체를 강아지로 변환한다고 하였는데.

변환했는데 강아지 머리가 세 개 달려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흠…….”

어쩌면 조금은 더 공정 작업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 * *

“겨우…….”

“모았다……!”

군단장들의 비상금과 함께 그 아래 사단장들의 비상금도 모아 겨우 케르베로스 소환에 필요한 마계 코인을 모은 시틀라 일행들이었다.

“케르베로스 유체는?”

“준비되어 있지!”

만티코어가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케르베로스 유체를 목줄로 제압하고 있는 악마들이 나타났다.

사실 약간의 흑마법만 사용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 한 번에 소진되는 마력도 아까운 참이었다. 만티코어의 그런 노력을 알고 있다는 듯 시틀라가 말했다.

“만티코어, 자네의 공적을 잊지 않을게.”

“알아주니 고맙구만 하하하!”

만티코어의 지시를 받은 악마들이 케르베로스 유체를 시틀라와 만티코어 앞으로 끌고 왔다.

“그럼 해 보자.”

* * *

며칠 뒤, 나는 합주실에서 멤버들과 함께 헬스장을 주제로 어떤 노래를 만들지 논의하고 있었다.

“그냥 운동 장려송, 이런 건 의미 없잖아.”

“그치. 메탈스럽게 만들려면 좀 더…….”

무언가 임팩트가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 압박이 지금 멤버들의 심장을 짓누르고 있었다.

“드러머, 오로바스…… 님?”

“아니 박진태라 불러 주십시오.”

오로바스는 얼마 전, 나에게 인간계의 이름을 수여받고는 박진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존대를 하라는 내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다.

“저에게는 존칭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하게 불러 주세요.”

“그럼…… 진태야.”

“하하하!”

오로바스가 앤디의 등을 퍽퍽 때렸다.

‘인간들에게 저런 말을 들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극복해야 하는 길이다.

여기서 오로바스가 흥분해서 멤버들에게 하극상이라도 하는 순간, 밴드의 위계가 박살 난다.

“으, 응. 진태는 의견 없어?”

“자고로 운동이라 함은 한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법인데…… 인간들은 그게 힘들겠지요?”

“……힘들지.”

아무래도 대화에 진전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시틀라에게서 통신이 들어왔다.

[단탈리온 님, 잠시 통신 가능하십니까.]

“허하노라.”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다른 게 아니라 케르베로스 유체 소환 술식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단기간에?

시틀라뿐 아니라 군단장들도 노력을 했겠군.

“다들 수고가 많았도다.”

[감사하옵니다!!]

감격에 겨운 시틀라에게 물었다.

“준비되었느냐.”

[예! 술식과 마력, 모두 충분합니다!]

그러하다면 더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 밤, 거사를 치르도록 하마.”

인간계에 마계 짐승이 구현될 시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