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헬스장 (5)
마계에는 크게 4가지 종족이 있다.
악마족, 괴물 마족, 마수 혹은 마계 짐승.
그중에서 악마족은 대부분의 마족을 지칭한다.
마계의 왕인 마왕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탈리온은 물론이고 1위부터 72위까지의 모든 마왕과 군단장들은 악마족에 속했다.
괴물 마족은 악마족보다는 조금 더 하위 단계로, 군단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연대장까지는 계급을 달 수 있는 종족도 섞여 있었다.
마수는 그 강함이 괴물 마족에도 버금갔지만, 지성은 조금 부족했다. 오히려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할까.
마계 짐승은 마수보다도 더 약하고, 지성이 없는 동물이었다. 일반적으로 판타지계에서 나오는 마계 토끼 같은 녀석들이 해당한다.
케르베로스는 이러한 4개의 종족 중에서도 마수에 속하는 종족이었다.
성장 단계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잘만 성장하면 군단장의 막사도 호위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금 케르베로스는 7군단장인 만티코어의 앞에서도 의젓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자식인 쁘띠 케르베로스가 인간계로 소환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찰 임무가 아니라 마왕 단탈리온 님을 보좌하는 임무로 말이다!
“케르베로스. 컨디션은 어떠하냐.”
“으르르르, 왈! 왈!”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주인의 말은 철석같이 알아듣는 케르베로스였다. 만티코어는 케르베로스의 가운데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오늘부터 네 자식인 쁘띠 케르베로스는 인간계로 소환된다. 단탈리온 님의 서번트로 소환되는 것이기에 마력 코스트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컹! 컹!”
“자식과의 이별이 곧이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올 때까지 안녕을 빌어 주거라.”
만티코어의 배려에 케르베로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언제나 자신의 주인은 마수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악마였다.
그렇기에 케르베로스는 만티코어의 손에 세 개의 머리를 비비면서 낑낑댔다.
“낑, 낑, 할짝 할짝.”
“하하하! 요 녀석, 그래, 나도 고맙구나.”
만티코어의 눈에 하트가 뿅뿅 흐르는 것을 보다 못한 에키드나가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단탈리온 님 기다리신다.”
“아, 그렇군. 케르베로스, 그럼 쁘띠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오거라.”
“컹! 컹!”
케르베로스가 크게 짖고는 하울링을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그러자 허공에서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 아래로 검붉은 안개가 형성되더니 케르베로스가 세 개의 머리를 모두 위로 치켜들고는 눈에서 붉은빛을 내뿜었다.
파아아앗!
그 엄청난 기세에 문을 지키고 있던 중급 마족이 몸을 덜덜 떨었다. 반면, 만티코어와 에키드나는 마법진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쁘띠 케르베로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왔군.”
“쟤가 쁘띠…….”
두 악마는 감격이라도 한 것처럼 쁘띠 케르베로스가 나타나는 걸 바라봤다.
만티코어는 자리에 앉아 있는 군단장들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이것이야말로 7군단의 미래 아니겠는가!’
단탈리온 님도 지금 쁘띠 케르베로스 소환 의식을 보고 계신다면, 더 많은 임무를 7군단에 맡겨 주셨을 텐데!
허나, 지금 이렇게 군단장들에게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71위 마계의 7군단의 위용을 여실히 어필할 수 있었다.
“나오거라! 쁘띠 케르베로스!”
“컹! 컹컹! 컹!!”
케르베로스의 목소리에 이어 쁘띠 케르베로스가 소리를 냈다.
“끼잉, 낑!”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
성체인 케르베로스보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인간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괜찮군.”
다른 군단장들이 쁘띠 케르베로스를 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키운 거지? 10년밖에 안 됐는데 이 정도 덩치라니.”
“맛난 거라도 먹였나?”
“주인의 말도 잘 듣는 것 같군. 키우던 개에게 물리는 일은 없겠어.”
그렇게 모두가 쁘띠 케르베로스의 모습을 보며 한 마디씩 던지고 있을 때.
“만!티!코!어어어어어어!!!!!!”
다급한 시틀라의 외침이 홀 안에 퍼졌다.
“왜? 자네도 쁘띠 케르베로스의 귀여움에…….”
“내가 마력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지!!”
케르베로스는 직접 끌고 올 수 있었음에도 쁘띠 케르베로스를 보여 주기 위해 굳이, 굳이! 마법진을 형성하여 홀 안으로 소환을 했다.
당연히 그걸 지시한 것도 7군단장인 만티코어였다.
“어, 왜, 왜?”
“지금 대출금 얼마 안 남았다고!!!!”
시틀라의 손에는 수많은 숫자가 적힌 마계통장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숫자를 본 만티코어가 거품을 물었다.
어제 잔금: -999,637,059,940,389
오늘 잔금: -999,697,185,990,279
대출금이 순식간에 999조 하고도 697억을 돌파하는 순간이었다.
* * *
나는 밤 10시가 넘은 시간, 원룸 옥상에 올라갔다. 바닥에는 지저분한 천을 하나 깔았고, 그 위로 양초 12개를 육망성과 원형 마법진에 맞춰 올려 두었다.
‘괜찮구나.’
주먹을 쥐었다 펴 보면서 잔여 마력량을 가늠했다.
잔여 마력량: 38190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몸에 깃든 마력 최대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된 운동을 시작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야말로 모든 대업을 이루기 위한 초석일 터.
“시틀라여.”
[내가 이래서 짐승 대가리랑은……. 예! 단탈리온 님!]
“진을 만들겠다. 따르거라.”
[예!]
시틀라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통신을 이었다.
[그나저나 단탈리온 님, 오로바스는 잘 적응하고 있습니까?]
“그러하다. 나를 보좌하는 일도 익숙해진 모양이더구나.”
[다행입니다.]
“시틀라여.”
나는 라이터를 활용해 양초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마력 장신구는 아직이더냐.”
[!!]
그 말에 시틀라가 고개를 조아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단탈리온 님! 조속히 물건을 제작해 바치겠나이다!]
“이번에도 반지로 부탁하지.”
아무래도 인간계에서는 반지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게다가 반지는 메탈 밴드의 상징과도 같은 악세사리이지 않은가.
“보다 많은 반지를 소유한 자가 메탈 밴드를 주름잡는 법.”
나는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손가락에 끼고 있는 해골 모양 반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바닥에서 마법진을 형성하고 있는 양초들을 응시했다.
‘천천히 불을 붙인다.’
아직 인간계에서의 마력 조절이 쉽지는 않다. 불을 다루는 흑마법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양초의 작은 심지만 불태울 정도의 상세한 조작은 어려울 터.
그래서 나는 라이터를 들고 양초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불을 붙여 나갔다.
이윽고 모든 양초에 불이 붙자.
“시작하거라.”
손을 뻗어 마법진에 올리자 손과 마법진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예!]
시틀라는 내 손의 떨림을 느끼면서 동시에 마계 짐승, 마수를 소환하기 위한 의식에 집중했다.
“피바다로 낙원을 만들 자.”
[뼈와 살을 재구성하여]
“이계에 존재를 드러내거라.”
앞으로 내민 손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고는 작게 스파크가 튀었다.
파직, 파직.
“그대 존재 미세하나.”
[그대 존재 굳셀지니.]
“그대 기운 미약하나.”
[그대 기운 단단하리.]
“하펠 서번트!”
마족이 아니라 마수를 소환하는 의식이다.
그렇기에 일부 주문 내용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음?”
스파크가 튀고 있는 허공 안에서 육망성과 육망성이 겹쳐지고, 뒤집혔다. 바깥으로는 계속해서 스파크가 터졌고, 주변에는 비구름과도 비슷한 먹구름이 감싸고 돌았다.
잔여 마력량: 35099
잔여 마력량: 33577
마력은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시틀라가 시전하고 있는 마계에서도 마력이 계속해서 잡아먹히고 있을 것이었다.
“흐으으읍……!”
마력이 2천을 깎고 그 아래로 내려가려는 순간.
“하앗!”
스파크가 뒤섞인 구름과 안개를 손으로 휘어잡고, 양손에 담아 폭발시켰다.
콰아아앙!!!!
폭죽이라도 터진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연기가 부스스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 안쪽에는.
“꺙!”
소환에 성공한 쁘띠 케르베로스가 자리해 있었다.
“수고했다 시틀라.”
어째, 생각한 것보다는 더 쁘띠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귀엽게 내 손등을 할짝이는 쁘띠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꺄아! 얘 너무 귀엽다!”
합주실로 쁘띠 케르베로스를 데리고 가자 제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단탈리온은 쁘띠 케르베로스를 바닥에 내려 두고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마수다. 물지도 모르니 조심하거라.”
“마수?”
“얘가?”
제인과 앤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다시 쁘띠 케르베로스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토이 푸들인데?”
“아무리 봐도 강아지인데?”
두 사람의 대답이 동시에 들려왔다. 단탈리온은 쁘띠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꺙! 끼잉 낑.”
“토이 푸들이 무엇인가.”
단탈리온은 정말로 몰랐다.
인간들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의 품종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토이 푸들은 이렇게 생겼어.”
제인이 보여 준 토이 푸들의 사진을 본 단탈리온은 눈을 꼬옥 감은 채로 시틀라를 불렀다.
“……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쁘띠 케르베로스. 소환하고 보니 많이 쁘띠한데, 이것이 맞느냐.”
그 물음에 시틀라는 솔직담백하게 말했다.
[예? 많이 쁘띠하다는 말씀이 어떤…….]
시틀라는 잠시 말을 중단하더니 부연 설명을 했다.
[인간계로 들어가는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 인간계의 강아지로 형상을 바꿔서 소환하기는 했습니다. 저희가 목표로 했던 품종은 그래도 덩치가 제법 있는 녀석인데…….]
“그 강아지의 품종은?”
[도베르만 성체를 본떠서 소환하려 했습니다.]
단탈리온은 조용히 제인에게 물었다.
“이 녀석은 도베르만인가?”
“응? 아니 토이 푸들이라니까? 말티푸도 아니고 무조건 토이 푸들이야 얘는.”
그 말에 단탈리온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시틀라여.”
[다, 다다, 단탈리온 님……?]
“잘 듣거라.”
[예, 예!]
“현계된 쁘띠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하나다.”
[그렇습니다. 그래야 인간들과 천계의 의심을 피할 수 있…….]
“허나 몸뚱어리도 매우 작구나.”
단탈리온은 자신의 팔뚝과 쁘띠 케르베로스를 비교해 보며 말했다.
“아무리 크게 쳐 봐야 내 팔뚝만 하다.”
[……예?]
인간계에 내려간 단탈리온은 데스맨의 몸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인간의 몸이라면, 팔이 아무리 길어도 1미터는 되지 않을 터.
허나, 도베르만은 1미터는 족히 되는 동물이었다.
[설마……!?]
시틀라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가정을 꺼내려 했다. 단탈리온도 그게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와 천계의 마력 격차. 그게 마수 소환에도 영향을 준 모양이군.”
단탈리온은 팔짱을 낀 채 쁘띠 케르베로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제인은 쁘띠 케르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뻐하고 있었고, 앤디는 강아지는 처음이라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귀엽기는 하다만…….’
마왕이 이끄는 밴드의 마스코트로는 임팩트가 다소 부족할지도 모른다. 덩치가 커야 위압감을 줄 수도 있고, 케르베로스라는 이미지에도 어울리는 법.
이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반면, 단탈리온의 고민을 전혀 모르고 있는 제인은 태연하게 오로바스에게 물었다.
“진태야! 너도 강아지 좋아해?”
“케르베로스는 우리 종족과도 아주 친화력 있게 다가가는 마수! 당연히 친밀합니다!”
오로바스도 자연스럽게 쁘띠 케르베로스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했다.
“반갑다 쁘띠 케르베로스. 오늘부터 우리는 같은 팀이다!”
“꺙! 꺙!”
그렇게 모든 멤버가 쁘띠 케르베로스를 들고 예뻐하고 있을 때였다.
“저 왔어요!”
SNS를 개설해서 동영상도 올렸다면서 공식 팬 1호, 박은환이 합주실을 찾아왔다.
“강아지가 있네요?”
“케르베로스다. 새끼기는 하지만.”
“케르베로스?”
박은환은 고개를 갸웃하며 단탈리온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했다.
“공연에서도 보여 줄 건가요?”
“공연?”
그 말에 단탈리온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확실히, 공연을 생각하고 쁘띠 케르베로스를 보여 줄 수만 있다면…….
“……분장이다.”
“분장이요?”
“쁘띠 케르베로스는 공연 때 케르베로스 분장을 시킬 예정이다.”
이 방법이라면 공연장에서도 제법 임팩트를 보여 줄 수 있을 터.
박은환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쁘띠 케르베로스를 안아 들었다.
“그러면 그냥 케르베로스라고 하면 재미없으니까, 이름을 붙여 주죠!”
“이름?”
“네! 콩시루떡처럼 털 색깔도 크림색이니까, 시루! 공연할 때는 마왕군을 지키는 파수꾼, 시루베로스!”
박은환의 의견에 앤디가 좋은 생각이라며 손뼉을 쳤다.
“괜찮은데? 난 좋아!”
“나도 앤디 의견에 찬성. 은환 씨, 센스 있는데요?”
“호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루(屍淚)인가. 시체의 눈물이라……. 그 또한 마계의 짐승다운 이름이로다.”
“엥? 아니 시체의 눈물이 아니라 콩시루떡…….”
“시체의 눈물, 시루베로스여.”
앤디의 질문을 가볍게 넘긴 단탈리온이 시루베로스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꺙!!”
“공연장의 퍼포먼스를 준비하도록 하자.”
“끼잉?”
곧장 시루베로스에게 마왕군의 파수꾼 역할을 연기시켜 보려는 단탈리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