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30화 (30/110)

30화. 헬스장 (7)

가사를 고민하고 있던 때, 한 가지 확실하게 생각해 두었던 부분이 있었다.

이번 공연에 오는 이들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대다수의 관객은 RRR 밴드를 알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우리를 알고 있는 팬이 이렇게나 없어서야, 음악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허나, 넘어야 할 산이로다.’

RRR밴드의 이름을 알리고, 이를 통해 이 몸, 단탈리온의 명성도 날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인간계에 내려온 이 몸의 사명일지니.

“이번 노래에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주어야 하네.”

그 의지는 바로 RRR밴드를 알리는 것.

단탈리온의 이름을 알리는 것.

그래서 나는 마왕군의 컨셉을 만드는 과정에서 ‘단탈리온’을 밴드에 넣고자 했다.

또한, 이름도 데스맨이 아니라 단탈리온을 붙이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 몸이 단탈리온 데스맨이니라.”

“무슨 영어 이름 같네.”

“영어 이름이다, 앤디.”

“아니 뭐……. 그런데 이름 너무 길지 않아?”

앤디의 질문에 제인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을 거 같아. 어차피 단탈리온이라는 이름을 알려야 하는 거 아냐?”

“그러하다.”

“그럼 난 찬성.”

그렇게 해야, 데스맨의 영혼을 더 빨리 되찾을 수 있을 터.

“단탈리온 데스맨. 평소에는 데스맨인데 마왕군이 되는 공연 때는 단탈리온이 되는 형태도 괜찮을 거 같고.”

“호오.”

그것도 꽤나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나는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말했다.

“이번 공연부터 이 몸의 소개는 단탈리온 데스맨으로 하겠다.”

그렇게 이름을 정한 뒤에는 가사에 나만의 사명을 담기로 했다.

데스맨이라는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 마왕의 이름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는 지금의 나.

“마계 부흥이라는 사명을 띠고 내려왔느니.”

그렇다면 헬스장에서는 어떤 이야기의 사명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마왕군도 운동은 필요한 법.”

그래서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내일은 헬스킹’이었다.

* * *

[금요일 밤, 토요일 밤!]

[모든 도시가 빛나고 있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술 자리를 가지겠지!]

마왕군을 지휘할 때 항상 확인할 수 있었던 사항들.

악마들에게도 휴일이 필요했고, 그때마다 다들 술과 고기로 1주일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자기 관리에 소홀해지기도 했다.’

지나친 음주 가무로 인해 전장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뜻.

이는 명백한 주객전도였다.

[오오오 하지만 생각해!!]

[Think of your body! Think of your body!]

[근육이 죽고 있지 않니]

[내 몸이 죽어 가고 있니]

[그럴 땐 몸을 흔들어]

[런닝에서 달려, 마왕군처럼]

[덤벨을 들어 봐, 마왕처럼!]

[우리는 긍지 높은 마왕군!]

[단탈리온 님과 함께 헬스를 하는 마왕군!]

[날이 저물 때까지 달려!]

[우리는 헬스킹! 하야! 하야! 하야야야! 하야야!]

노래가 이어질수록 관객들은 우리의 노래에 집중했다.

펜시 인텐시키온의 영향도 있겠지만, 우리의 음악이 관객들의 귀에 강렬하게 내리꽂혔다는 점이 더 크겠지.

실제로 앞에 앉아 있는 서갑수 사장은.

“으아아악! 쓰리알!!!”

이두를 울끈불끈 뽐내며 장난감 도끼를 흔들면서 환호하고 있었으니.

저게 진짜 도끼여야 더 리얼리티가 살겠지만, 하는 아쉬움은 잠시 뒤로 하고.

나는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 나갔다.

[런닝에서 달려, 덤벨 들고 달려!]

[악마처럼, 마왕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 봐!!]

그와 동시에 나는 입을 잔뜩 벌리고 크아아!! 소리를 냈다.

만티코어의 분장을 한 것과 어울리는, 사자가 적을 향해 포효하듯이.

그러자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헬스! 헬스!”

“달려! 헬스!”

“덤벨 들고 달려!”

“런닝에서 달려!”

어느새 노래에 동화된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던 단골 회원들도 공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오늘 밤 나는 헬스킹]

[내일부터 너도 헬스킹!!!]

[아침이 되어도 밤이 되어도!!]

[모든 근육을 불태워! Fire!!!!]

1절이 끝나고 나는 마이크를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예아아아……!]

그리고 이어지는 샤우팅.

[퐈이야!!!!!!!!!!!!!!!!!!!!!!!]

처음 노래를 할 때보다도 더 안정된 목소리.

그리고 훨씬 자연스러워진 호응 유도.

짝! 짝! 짝! 짝!

내 박수 소리에 맞춰 관객들도 박수를 쳤다.

[두 손 머리 위로!!]

짝! 짝! 짝! 짝!

관객들이 흥미롭게 박수를 쳤고, 앤디와 제인의 연주 구간이 시작되었다.

쟈쟈쟈쟝따당다다당

둔두두둔둔두두둔둔

앤디와 제인이 서로 합을 맞추며 등을 맞대고는 연주를 했다.

앤디의 화려한 속주, 제인의 침착한 슬랩.

거기에 두 사람의 헤드 벵잉이 들어갔다.

그야말로 락 밴드, 메탈 밴드로서의 진면목을 톡톡히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시루베로스!!!]

오늘은 우리의 히든 카드, 시루베로스도 있다.

케르베로스의 분장을 하기 위해 좌측, 우측에 토이 푸들 인형의 얼굴이 달린 옷을 입혔고, 강아지 선글라스를 씌웠다.

입에는 강아지 양치용 시럽인 붉은색 시럽을 덕지덕지 묻혀 두었다.

할짝할짝.

시루베로스가 앞으로 나와서 관객들을 향해 맹렬히 소리를 질렀다.

“왈! 왈! 꺙! 꺙꺙!”

최선을 다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시루베로스.

그리고 그 노력은 배신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꺄악! 얘 뭐야!”

“진짜 귀엽다! 강아지도 헬스하나?”

관객 중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루베로스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시루베로스는 지금의 관심이 나쁘지 않았는지, 의기양양한 척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는 한 번 더 포효했다.

“아우우우!”

그리고 한 바퀴 공중제비까지 도는 시루베로스.

생각지도 못한 강아지의 재롱에 관객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와아!!”

“훈련이라도 받았나?”

시루베로스의 장기자랑과 함께 시루베로스의 솔로 구간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보컬의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는 마왕군! 생각을 해!]

[마수들도 운동을 하지!]

[단탈리온 님과 함께 헬스를 하지!]

[너희도 날이 저물 때까지 달려!]

[정승처럼 앉아만 있지 마!!]

[개처럼 달려서 근육을 부숴 버려!!]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달하면서 관객들의 손에는 덤벨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어제도 술 마셨는데 오늘은 빡쎄게 해야지!”

“나도 헬스장 등록할까 봐!”

“강아지 산책이라도 시켜 줘야지.”

본격적인 운동 장려송.

바로 RRR밴드의 ‘내일은 헬스왕’.

[런닝에서 달려, 덤벨 들고 달려!]

[악마의 정신력으로 부숴 버려!!]

[개처럼 달려서 정승처럼 단백질 쉐킷쉐킷!]

[오늘 밤 나는 헬스킹]

[내일부터 너도 헬스킹!!!]

[아침이 되어도 밤이 되어도!!]

[울부짖는 근육을 불태워! Fire!!!!]

연주의 마지막에, 나는 마이크를 스탠드에 끼우고 하늘로 높이 솟구치도록 만들었다.

적당한 마력을 실어 마이크를 스탠드 채로 던지자.

휘리리릭 휘릭!

공중에서 몇 번이고 회전을 한 마이크가 내 손으로 쏙 들어왔다.

타악!!!!

스탠드를 정확히 잡은 내 손이 아래로 내려갔고.

[헬스로 근육을 다 조져 버려!!!!!]

키이이잉

두둔둔

앤디와 제인이 헤드벵잉을 멈추고 각각 기타와 베이스를 세로로 세웠다. 마치 마왕군의 깃발처럼, 기타와 베이스는 하늘 위에서 꼿꼿하게 서 있었다.

챠앙! 투타타타타타타타타!

키잉따다다따다키잉따당

[단탈리온 님이 이끄는!!!]

[우리는 헬스킹!!]

빠암!

둥두둥탕!

오로바스가 양손으로 심벌을 살짝 잡음과 동시에, 노래가 마무리 되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객들을 바라봤다.

관객 중 한 명이 박수를 치며 크게 환호했다.

“브라보!!!!!”

그 환호가 신호탄이 되었고.

“오늘부터 운동합시다!!!”

“연주 쩔었다!”

“저, 강아지랑 사진 찍어도 되나요?”

“밴드 이름이 뭐라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박은환이 부리나케 달려들었다. 판넬을 번쩍 든 그녀가 소리쳤다.

“RRR밴드의 너튜브와 인별그램 주소입니다! 팬카페 사이트도 있어요!”

헬스장 회원들은 물론이고 오늘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까지 핸드폰을 꺼내 판넬에 찍혀 있는 QR코드를 스캔해 갔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우리를 알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으니.

“이 몸, 단탈리온 데스맨도 바로 여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도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몸을 매일 같이 알현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헬스장에 등록하거라. 서비스는 섭섭지 않게 챙겨 준다고 하느니.”

그러자 관객들 사이에서 운동 등록을 하려고 했다면서 몇몇 사람들이 서갑수를 찾아갔다.

“사장님, 여기 한 달에 얼마예요?”

“PT는 몇 회 기본이죠?”

“원판은 다 내 거야! 사장님! 원판만 따로 등록이요!!”

“운동을 하고 싶어서 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빨리 카드 긁게 해 줘!!”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인지, 서갑수 사장은 꽤나 당황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그 얼굴도 잠시.

“네! 회원 등록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모두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제가 브리핑을 한 번…….”

서갑수 사장도 나름대로 수완이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

PC방 사장인 이연주와 비교한다면 누가 더 한 수 위일 것인가.

‘하긴, 할인 200%도 거침없이 승낙한 대인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공연이 마음에 들었다면, 우리들의 음악을 이 헬스장에서 지속적으로 플레이하고자 한다. 다들 동의하는가.”

“예에!!!!!”

관객들이 두 손을 높이 뻗으며 소리쳤다.

더러는 서갑수가 두고 간 장난감 도끼를 들고 호응을 하기도 했다.

“좋다. 지금 바로 서갑수 지배자에게 우리의 CD를 건네줄 것이다. 서갑수 지배자여.”

“서비스는 물통과…… 네?”

“마왕님에게 네? 라니. 뭐 하는 짓이더냐.”

그 말에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맞아! 마왕님 앞인데 고개를 조아려야지!”

“무릎도 꿇어요!”

나는 메탈 밴드로서 당연한 연출이라며 히죽 웃었다.

“머리를 조아려라.”

“어? 아…… 네, 뭐…….”

서갑수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CD를 플레이하거라. 그것만이 마왕의 도움을 받은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이로다.”

“아, 예, 알겠습니다.”

“아 저기, 너튜브로 틀어도 되죠? 헬스장에 CD플레이어가 없어서.”

“음? 상관없다. 우리의 음악을 알릴 수 있으면 되느니.”

그렇게 서갑수는 우리의 음악을 헬스장에서 지속적으로 틀어 주기로 약속했다.

“계약 성립이로다.”

비록 피의 서약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구두계약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그날의 헬스장 공연이 마무리되었고.

<헬스장에서 공연하는 미친 밴드>

라는 제목의 영상이 인터넷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 * *

헬스장에서 공연을 진행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서갑수에 따르면 RRR밴드의 공연 덕분에 신규 회원이 급속도로 증가했다고 한다.

“전부 마왕님 덕택입니다, 하하하!”

공연 당일까지도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짓던 서갑수는, 이제 정식 등록한 회원들이 확 늘어나자 내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이건 약소하지만 선물입니다.”

“음?”

“프로틴 분말입니다. 초보자시니 바나나맛으로…….”

“하얀 분말이라니, 더러운 천계의 색이로구나. 불경하니 앤디에게 주거라.”

또한, 회원들이 RRR밴드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운동 효과가 배는 된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밴드 음악이라 그런지, 다들 운동하면서 듣기 좋아하시더군요. 헬스 커뮤니티에서도 난리입니다!”

“옳은 현상이다.”

그렇게 헬스 매니아들에게 RRR 밴드의 이름과 노래가 알려지고 있었고.

[다, 다다, 단탈리온 님!!!!]

다급한 목소리의 시틀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더냐.”

[마, 마마, 마계, 마계 코인이……!]

시틀라는 감격에 겹다는 듯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회복되고…… 있사옵니다……!!]

아주 미미한 변화였다.

현재까지 받아둔 대출금 999조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 잔금: -999,697,190,420,795

오늘 잔금: -999,697,190,418,945

아주 미세한 수준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지금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변화였다.

“후우…….”

나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마치 시틀라가 보이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고생이 많았도다.”

[크흑…… 단탈리온 님…… 크흑!]

통신 너머로 에키드나를 비롯한 군단장들도 눈물을 훌쩍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

오늘 하루는.

“마음껏, 눈물을 흘리도록 하거라.”

마이너스만 찍고 있던 71위 마계의 마계 코인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작은 변화.

이 몸, 단탈리온의 노력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날이었다.

“오늘을 마왕 단탈리온의 기념일로 삼겠도다.”

71위 마계에 공식 기념일이 지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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