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반응
대중들의 반응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는 RRR밴드의 너튜브와 인별그램.
-공연 잘 봤어요!
-여기 퍽지창 했던 거기 아님?
-강아지 분장 뭔뎈ㅋㅋㅋㅋ
-저번에는 드러머를 말머리 분장 시키고 소환했다더라
-소환? ㄹㅇ?
-진짜임;;
-?????님들 진짜 소환 말하는 거임?
-연출인데 진짜 개 리얼해서 직관한 사람들 다 기절했다 함 ㅇㅇ
-퍽지창 영상 봤음?
-중지 꺼내 들고 락앤롤이래 미친ㅋㅋㅋㅋㅋ
-그래 메탈 밴드면 반항아 이미지는 있어야짘ㅋㅋㅋㅋ
인터넷에서 RRR밴드를 찾은 사람들이 너튜브와 인별그램에 댓글을 남겼고, 그 댓글을 타면서 다른 사람들도 영상을 감상했다.
-이런 밴드가 있었나?
-실력 좋은데?
다행히 RRR밴드는 펜시 인텐시키온이 없어도 기본 실력이 뛰어난 밴드였다.
때문에 영상만으로도 사람들의 귀를 집중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RRR은 메탈 밴드.
귀도 중요하지만, 눈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미친 이때도 퍽지창 했음?
-공중파에서 저거 해도 되는 거냨ㅋㅋㅋㅋ
-와 허공에서 말대가리; 씹소름;
-분장 진짜 잘했다. 저거 고블린임?
-마왕군을 단탈리온이 이끄는 건가?
-노래 가사에서는 단탈리온이 마왕이라던데 ㅇㅇ
-그러니까 저 퍽지창이 마왕군의 무기라는 거죠?
-가운뎃손가락 놀리는 게 딱 메탈 밴드임ㅋㅋㅋㅋ
RRR을 강렬한 이미지의 밴드로 만들 수 있는 무기.
분장, 마왕군 컨셉, 퍽지창.
이 무기가 바로 RRR만의 색채였다.
“……망했다.”
앤디가 너튜브 댓글을 확인하더니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무슨 일이더냐.”
“사람들이…… 우리 밴드를…… 가운뎃손가락이나 놀리는 미친 밴드라고 여기기 시작했어!”
확실히, 그런 댓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한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무슨 소리냐. 연주가 좋다는 피드백도 많도다.”
“하지만 팬카페에도 퍽지창으로 되어 있잖아!!”
그 말대로, 박은환이 만들어둔 팬카페의 이름은 ‘쓰리알FF’였다.
단순히 봤을 때는 쓰리알 밴드의 팬 페스티벌, 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약자는.
‘쓰리알 Fucking Fork’
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어그로는 제대로 끌었잖아.”
“지금 어그로가 문제가 아니야……. 이러다 우리 이미지가 완전 반항아로 찍히면……!”
절규하는 앤디의 머리를 제인이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우리 사실 반항아잖아?”
“뻐킹 포크라. 괜찮은 어감이로다.”
“괜찮기는 얼어 죽을!”
퍽지창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직관적인 단어가 있을 수 있을까.
단탈리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추종자들에게는 우리의 색깔을 확실하게 알려 주어야 하느니.”
“그거야 그렇지만…….”
“마왕군을 컨셉으로 잡고 있지만, 아직 그대들은 진정한 마왕군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밴드를 상징할 수 있는 이미지 정도는 있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단탈리온의 말에 앤디도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래도 퍼킹 포크는 싫어.”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설문 조사는 어떻습니까.”
그때 오로바스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말했다.
“팬카페에 글을 올리는 겁니다. 팬카페 이름을 공모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걸 올리기에는 팬이 별로 없지 않아?”
제인의 말대로였다.
아직 RRR 밴드의 팬카페는 가입자가 200명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었다.
“흐음. 화제에 비해 팬카페 가입자는 얼마 되지 않는구나.”
“아무래도 그렇지. 노래만 듣고 넘어가거나, 너튜브 클립만 보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 지금 너튜브에는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 비공식 영상 일부가 올라와 있거나, 오로바스 소환술 장면만 잘라 놓거나 하는 등, 짧은 영상들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팬이 많아지지 않으면 음악적 성공은 힘들 터인데…….”
단탈리온은 고고한 자세 그대로 고민에 잠겼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일단, 운동부터 해야겠구나.”
헬스 PT를 열심히 받은 덕분에 비축하는 마력 최대치도 안정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잔여마력량: 49200
어느새 마력은 5만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모두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한 덕분이었다.
‘역시 시전자의 몸도 중요하구나.’
인간의 몸이기에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모르겠으나,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법.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기는 단탈리온과 함께 박은환도 따라 일어섰다.
“공식 팬 1호도 가는가?”
“네!”
“호오. 자네도 H&B 헬스장 회원이…….”
“아, 아뇨. 저는 데스맨 님 촬영하러!”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하노라.”
“아니아니, 잠깐만. 공식 팬 1호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매니저 아냐? 너무 열심히 하실 필요 없어요, 은환 씨.”
앤디의 말도 일리가 있다며 제인이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 월급 드려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지금 RRR밴드의 사정상 월급을 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걸 다들 알고 있는지 앤디와 제인이 박은환에게 미안한 얼굴을 했다.
반면, 단탈리온은 왜들 그런 어두운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 이 몸을 언제든 촬영하도록 허락하였거늘 어째서 월급이 필요하느냐.”
71위 마계에서는 마왕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도 전생을 통틀어 있을까 말까한 귀한 시간이 된다.
그런 귀한 얼굴을 인간인 박은환에게 마음껏 보여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 물론 진짜 얼굴은 아니고 데스맨의 얼굴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몸과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마왕의 위엄을 느낄 수 있을 터. 이게 포상이지 무엇이겠는가.”
“……그래 넌 그럴 거 같았어.”
앤디는 이제 포기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 * *
거대한 천칭이 바닥에서부터 우뚝 솟아 있는 광장.
그곳에서 백색 로브를 입은 남성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흠…….”
사내의 뒤로 하얀 후드티를 뒤집어쓴 여성이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왔는가.”
여성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남성은 얼굴을 돌리지도 않은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천계와 마계의 균형추가 기울었다.”
“!?”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기울었나요?”
“이전에는 20과 21 사이를 유지했지.”
“예. 그렇기에 천계와 마계의 격차는 약 20배까지 차이가 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내는 여성의 말이 맞다면서 맞장구를 치고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19.9998이다.”
“19.999…… 뭐라고요?”
이 정도면 거의 차이 없는 거 아닌가?
“천칭이 잠깐 오류를 낸 건 아닐까요?”
“무슨 소리지?”
“고작 0.0002의 차이는 바람 한 번 불면 왔다 갔다 하는 수준 아닌가 싶어서…….”
“아니, 중요한 건 0.0002가 아니야.”
사내가 천칭의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천칭은 19.9998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내는 무엇보다 심각한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 있다면서 팔짱을 꼈다.
“저 균형, 20으로 올라가지 않아.”
“네!?”
“벌써 사흘째 말이지.”
아주 작은 오류는 있을 수 있다.
그래서 0.0002 정도의 차이는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균형이, 원래 자리인 20과 21 사이로 올라오지 않는다?
한두 시간 같은 잠깐의 시간도 아니고, 사흘이나?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하지 않나.”
“네, 정말요.”
후드를 뒤집어쓴 채, 여성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인간계로 내려간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는 건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마계의 변화에 걱정이 앞서는 것인지.
어찌 되었든, 지금 여성은 미소 안에 하나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바로 호기심.
“내려가서 조사해 보거라.”
사내가 손바닥을 들어 올려 하나의 지도를 띄웠다. 그 지도에는 지구의 대한민국이 붉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근원지는 대한민국, 서울로 나온다.”
여성이 후드를 벗으며 무릎을 꿇었다.
“메타트론 님의 명을 받듭니다.”
“다녀오거라. 주기적인 보고, 기대하고 있으마.”
메타트론이 여성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올리고 축복을 내렸다.
“주천사 도미니온이여.”
메타트론의 축복을 받은 도미니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긍지 높은 천계에 영광 있으리.”
* * *
“자 회원님! 한 세트 남았습니다!”
“후욱, 후욱……!”
“자아 마지막 한 세트!”
“후욱……!”
“진짜 마지막!”
“에에잇!!”
서갑수 사장의 횡포에 짓눌려 있던 나는 들고 있던 케틀벨을 내던졌다.
“앗! 위험하게!”
“방금 전부터 계속 마지막, 마지막!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란 말이더냐!”
“아, 아하하…… 자극을 좀 드리고자 그런 건데…….”
서갑수는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나는 한쪽 구석으로 내던져진 케틀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확 부숴 버려?’
마력도 안정되어 있으니 저따위 철구 부수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마계코인이 회복되고 있으니 천계에서도 조만간 주목할 겁니다.
-아직은 매우 작은 변화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아마…… 큰 마법이라도 사용되는 순간을, 천계에서 놓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공격용 마법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시틀라가 미리 언질을 해 준 것처럼, 마법을 잘못 사용했다가는 천족들에게 내 위치를 노출시키게 된다.
아직은 잘 싸워도 하급 천사들과 싸울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이다.
재수 없게 라파엘이나 우리엘 같은 최상급 천사를 만나게 되면…….
‘형체도 남지 않고 정화되겠지.’
그런 일은 사양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크흠! 헬스장의 지배자여.”
“네, 회원님.”
“런닝머신이 좋겠구나.”
결국 그날 운동은 런닝머신을 하면서 마무리했다.
물론.
“자 회원님! 조금만 더! 조금만!”
“흐읍, 흐읍!”
“앞으로 1분만! 속도 11로 달립니다!”
“허억, 허억……!”
“앞으로 30초, 속도 10으로…….”
“그만!!!!”
이번에도 서갑수 사장의 흉계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 * *
욱신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합주실에 도착한 나는 앓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입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있었다.
‘이 몸은…… 고고한…… 마왕이니라……!’
인간의 몸처럼 비루한 몸이 아니었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터.
왜 데스맨은 이전부터 운동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 점을 한탄하고 있는데 앤디가 허겁지겁 합주실로 들어왔다.
“대박났어!!”
“무엇이 말이더냐?”
앤디는 신이 나서는 핸드폰을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우리 최근에 올린 헬스장 공연 영상! 전부 조회수 1만 넘겼어!!”
제인과 오로바스도 내 옆으로 달려와서는 앤디의 핸드폰에 주목했다.
“하나도 아니고 전부……!”
“조회수 1만……!”
우리의 노래들이 너튜브에서 사람들에게 들리고 있다. 그것도 많은 댓글과 함께.
‘이 얼마나 훌륭한 고양감인가.’
지금까지 펼쳤던 공연을 떠올렸다.
직접 내려와서 했던 공연부터는 전부 자작곡이었다.
단 하나의 커버곡도 없었다.
거기에 연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악마 숭배 음악 메탈의 컨셉에 맞춰서.
심지어 헬스장에서는 시루베로스까지 동원하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면 한 곡 한 곡 정말 힘들게 만들어왔다.
그렇기에 당시 어렵게 만들었던 노래들을 촬영한 영상을 너튜브에서 감상한 소감은.
“라이브보다 못 하구나.”
역시 밴드는 라이브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실제 라이브가 훨씬 좋기는 하지.”
“영상은 사운드가 섞이니까.”
앤디와 제인도 내 의견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를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라이브렷다.”
“아무래도 그렇지? 그런데 공연을 또 잡을 만한 게 있나?”
앤디는 여러 클럽들을 찾아보고 했지만, 우리의 예산에서 진행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럴 줄 알고 내 미리 준비를 해 두었다. 박진태여.”
“예! 데스맨 님!”
“준비한 그걸 꺼내거라.”
최근 마련해 준 오로바스의 핸드폰. 녀석은 그걸 꺼내더니 내가 보내 준 사진을 열었다.
“우리는 이걸 준비한다.”
“이거?”
“뭔데?”
앤디와 제인이 그게 무엇인지 물으며 다가왔다.
<공연을 해 주실 예술인을 찾습니다!>
<장소 대여료 무료, 최고급 스피커, 악기 대여>
<지역 특산품으로 만든 간식 제공!>
<참가자들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지급됩니다>
<모집 분야: 마술, 노래, 춤 등 모든 문화예술 분야>
“이게 뭐야?”
“공연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며 인터넷에 올라온 포스터다.”
그 게시글에는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홍보를 하냐면서 불쌍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이렇게까지 홍보하냐.”
“그 게시글의 댓글러가 앤디 자네였구나.”
“잉? 뭔 소리야?”
“되었다. 아무튼, RRR 밴드는 여기를 신청한다.”
포스터 사진이 들어 있는 오로바스의 핸드폰을 꼬옥 움켜쥐며, 허리와 어깨를 꼿곳하게 폈다.
고귀한 다과 세트라도 받아오는 듯한, 설렘을 안고서.
“이 몸의 밴드는 라이브가 음원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간들에게 알려 주도록.”
모두가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근데 이거 여수에서 하는데?”
나는 인간계에 현계한 이후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