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여수 출정식
다음 공연이 치러질 장소는 전라남도 여수.
기차라는 수단을 이용하면 약 3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서울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는 장소다.
“포탈을 사용하면 금방이거늘.”
나는 투덜대며 핸드폰에서 x레일 어플을 열어 티켓 예매에 힘썼다.
“인간들은 참으로 번거롭겠구나.”
그 번거로움을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 더더욱이 할 말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 어플도 그렇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라는 것을 이렇게나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더냐.”
실제로 마계에서는 악마들이 자신의 이름만 이야기하면, 명부를 작성해서 전달하고, 마력으로 전부 펼쳐 두고 평가한다.
즉, 인간들이 기계로 하는 일들을 악마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머리와 마법으로 해 왔던 일들이었다.
“이런 저급한 기계에 의존해야 하다니, 이래서 하등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나는 핸드폰 어플을 만지작 거리다가 손가락을 멈추었다.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무궁화호와 KTX, 두 기차의 차이점이 무엇이더냐.”
내 질문에 시틀라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예! 시간의 차이가 가장 큽니다!]
“시간?”
[무궁화호로 여수까지 가면, 약 5시간 정도 걸립니다.]
다섯 시간이라.
그렇다면 3시간은 KTX 기준이겠군.
허나 겨우 2시간 차이이지 않은가.
“시간 이외에는 장점이 없느냐.”
악마의 기준으로 치자면 2시간은 정말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아주 큰 장점이 있습니다. 무궁화호가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합리적이지요.]
“호오.”
시틀라의 말대로였다.
어플에서 가격을 확인해 보니, 무궁화호와 KTX의 가격 차이는 2만 원이 훌쩍 넘었다.
“KTX 특실과는 4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구나.”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무궁화호를 타고 여수로 내려간다.”
포탈이 없다면, 이동 수단을 이용해야지.
마력만 넘쳤다면 포탈로 이동하였을 것을.
허나, 지금 시점에서 그걸 한탄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나는 자랑스럽게 내 표를 결제했다.
최근 새로 만든 체크카드를 등록한 채로 말이다.
* * *
“진짜 무궁화호 타고 갈 거야?”
합주실에 모이자마자 나는 멤버들에게 표를 자랑했고.
예상과 달리 앤디가 의문을 품고는 물었다.
“그러하다.”
“무궁화 불편할 텐데…… 괜찮겠어?”
“무엇이 말이더냐?”
“아, 넌 기차 한 번도 안 타 봤지……. 음…….”
앤디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잘못 앉으면 냄새 엄청 심하고, 자리도 뒤로 안 젖혀지고, 시트도 딱딱하고 그러거든. 짐 놓을 자리도 애매하고…….”
“그러면 앤디여.”
나는 이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앤디에게 말했다.
“돈은 있는가.”
“……없지.”
“그럼 무궁화 타거라.”
내 말에 앤디는 반박할 수가 없다면서 한탄했다.
“내가 세션 알바를 하나만 더 했어도!”
“아니, 자네는 기타 군단을 하나만 더 늘리지 않았어도 가능했겠지.”
실제로 앤디는 최근에도 새로운 기타를 하나 구입했다. 기타 수집이 취미라나 뭐라나.
“없는 살림에 취미 활동을 하는 건, 패가망신의 지름길일지니.”
“……할 말이 없다.”
취미생활에만 집중하다가 마계를 파산시킬뻔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앤디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자책했다.
“뭐, 어쨌든 됐잖아. 나도 무궁화가 나아. 돈도 별로 없고.”
“역시 제인은 현명하도다.”
“하하 땡큐. 그런데 진태는 어떡하려고?”
옆에서 드럼 스틱을 휙휙 돌리고 있던 오로바스가 손을 멈추었다.
“저도 표를 사야 하는 겁니까?”
“서번트니까 어디 웜홀 같은 공간에 숨기고 갈 수 있는 거 아냐?”
“? 무슨 소리냐. 서번트를 숨길 웜홀이라니.”
앤디의 말에 나는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흑마법이 만능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아니야?”
사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서번트란 한 번씩 존재를 감추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면서 필요한 때에 소환하여 싸우게 하는 사역마.
따라서 어딘가에 숨어 있도록 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마력 문제가 아니었다.
‘마력의 흐름이 지나치게 길어지면 천계에서 눈치를 챌 수도 있다.’
아직은 제대로 된 전력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
잘못해서 천사를 마주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이제는 우리의 행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는 것이 관건.
“못할 건 없지만, 이 몸은 오로바스를 옆에 앉혀 가고 싶다.”
“!!”
오로바스의 몸이 흠칫 떨려왔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밴드 아니던가.”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로바스가 이마를 합주실 바닥에 세게 찧었다.
“단탈리온니이이이이임!!!!!”
오로바스가 연신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소리쳤다.
“이 몸을 바쳐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나이다!!!!”
“되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오로바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기대하고 있으마. 오로바스, 아니 박진태여.”
* * *
단탈리온 님이 내 뺨에 손을……!
오로바스는 감격에 겨운 채로 거울을 바라보며 섰다.
이미 그의 손은 단탈리온이 어루만진 뺨을 매만지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으마.
게다가 단탈리온 님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시다……!
군단장도 아닌, 하급 악마, 행정병 나부랭이 따위에게 거시는 기대가 말이다!
“평생 보필하겠나이다!”
합주실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는 오로바스였다.
[오로바스!]
‘이 목소리……!?’
쿠웅!
오로바스는 그 자리에서 곧장 무릎을 꿇었다.
“시틀라님의 부름에 오로바스, 인사 올립니다!”
[아냐 아냐. 너무 격식 차리지 않아도 돼.]
시틀라는 오로바스의 인사를 받고는 평소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단탈리온 님은 옆에 계시냐?]
“? 아뇨, 저는 지금 화장실에 있습니다.”
[서번트가 화장실에는 왜?]
서번트는 화장실이 필요 없는 존재.
[변, 뇨는 물론이고 씻을 필요도 없을 텐데.]
“아 그게…….”
오로바스는 지금 감격에 겨운 얼굴을 다른 멤버들에게 들키지 않고자 황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시틀라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영상이라도 틀 수 있다면, 자신의 지금 얼굴을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멤버들에게 제 가치관을 들키지 않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흠……. 좋아. 아무튼, 마침 잘 됐다. 전할 물건이 있다.]
오로바스는 모든 신경을 쫑긋 세우고는 시틀라의 말에 집중했다.
[준비가 되었다면 양손에 힘을 모아 보게.]
“이…… 이렇게 말씀이십니까?”
오로바스가 양손을 들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도록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며 힘껏 힘을 주었다.
“흐으으읍……!”
쾅쾅쾅쾅!
“야! 진태! 너 괜찮아?”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서인지 앤디가 바깥에서 걱정된다며 소리쳤다.
“괘,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거 같은데!? 혹시 안에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는 거…….”
“아, 아니요! 그냥 잘 안 나와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앤디도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긴, 악마도 변비일 수 있지. 알았어, 합주실 대여시간 얼마 안남았으니까 얼른 마무리하고 와.”
앤디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오로바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이느냐.]
시틀라의 음성을 들은 오로바스가 자신의 손바닥을 확인했다. 그러자 오른손에 동그란 렌즈 모양을 한 구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 시틀라님, 이건…….”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게 있으면 단탈리온 님과 너를 마계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용 방법은 렌즈를 오로바스, 자네 눈에 붙이면 된다.]
그렇다면 더더욱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연계가 가능할 터.
[다만, 아직 마계 사정상 긴 시간은 불가능하다. 1시간이 한계이니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도록 하거라.]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단탈리온 님께도 보고를…….”
[아니.]
그때 시틀라가 말했다.
[단탈리온 님께는 비밀이다.]
“……예? 허나…….”
[비장의 카드니라. 천계에서 단탈리온 님을 인지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도 비장의 수를 생각해 두어야 하느니.]
그 말에 오로바스가 조각 같은 미남형 얼굴을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오로바스.]
* * *
“이번에는 주제가 뭐야?”
“주최측에 연락을 해 보니 지역의 특징을 보여 주는 곡 하나 이외에는 마음껏 해도 된다고 하더구나.”
나는 어제 해당 행사의 관리자와 통화한 내용을 제인에게 알려 주었다. 제인은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그럼 내가 하나 괜찮은 제안이 있는데.”
“무엇이더냐.”
“이참에 우리 워크샵 할까?”
“워크샵이 무엇이냐?”
“왜 그런 거 있잖아. 같은 회사 직원들끼리 여행지로 놀러가서 단합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런 거.”
듣고보니.
마계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었다.
마계에서의 이름은 분명…….
“마계연합전선과 비슷하겠구나.”
“그런 전쟁 같은 명칭은 아니지만, 아무튼 같은 팀끼리 가서 어울리는 그런 거야.”
“흐음.”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없지 않은가.”
“최대한 아껴야지 뭐. 나 상금 받은 거 아직 남았으니까, 그거 쓸게.”
“허하노라.”
인간계에서의 첫 연합전선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을 터.
“워크샵이라는 그걸 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냐.”
“일단 여기저기 여행을 좀 다녀야겠지? 여수에는 맛집도 많고 여행지도 많으니까.”
그렇게 말한 제인은 베이스 현을 살짝 튕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작사 작곡! 그럼 여수에 어울리는 노래도 나오지 않겠어?”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인 제안이로군. 이 몸은 찬성이다.”
“오케이. 앤디, 넌 어때?”
“이상하네…….”
“앤디?”
“아? 응.”
“진태는?”
“화장실에 있어.”
“그래? 아무튼, 우리 여수에서 워크샵 할까 하는데, 어때?”
“엠티가 아니고 워크샵?”
앤디의 의문에 나는 당연하다며 말했다.
“우리는 놀러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워크샵이 맞느니.”
“음…… 뭐, 나도 괜찮아.”
“그럼 확정이로구나.”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는 순간.
앤디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데스맨, 나 질문.”
“허하노라.”
“악마는 변비 어떻게 고치냐?”
나는 노골적으로 경멸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앤디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참으로 품위 따위 말아먹은 질문이구나.”
* * *
여수에서 지낼 숙소도 정했고, 맛집 리스트도 만들어 둔 우리는 각자 짐을 꾸리고 용산역에서 모였다.
“기차 진짜 오래간만이야!”
어쩐지 마음이 많이 들떠 보이는 제인과
“기타 하나만 들어도 무겁다……. 거기 장비는 괜찮겠지?”
조금 긴장이 된다는 앤디와
“저는 이 스틱 하나만 있으면 데스맨 님과 천국 끝까지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건 좋은 거 아냐?”
“악마한테는 천국이 지옥인가 보지.”
스틱 두 개를 양손에서 연신 휘두르며 단탈리온을 향한 충성을 맹세하는 오로바스와 함께
[71위 마계의 전 군단장들과 시틀라가 응원하겠나이다!]
[즉살! 단탈리온 님의 승전보를 기원합니다!]
여수로 떠나는 여행을, 전쟁 출정식으로 생각한 71위 마계 악마들의 응원이 있었다.
“훗. 마왕답지 않은 조촐한 출정식이로다.”
물론, 단탈리온에게는 별다른 행사 없이 출진하는 이번 여행은 조촐하기 짝이 없는 행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인간계에서의 출정에 더 욕심을 낼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지금 단탈리온에게는 화려한 출정식이 중요하기보다는, 서울이 아닌 여수로 향하는 사실 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완료되는 대로 보고하거라.”
장신구가 추가로 완성되면 곧장 자신에게 전달하라는 단탈리온의 지시.
시틀라는 몸과 머리를 바닥에 바짝 붙여 엎드리며 소리쳤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네 사람, 아니 두 사람과 두 악마가 용산역에서 들어오는 무궁화호에 올라탔고.
“여수로 향하는 기차, 1532 무궁화호는 10분 뒤에 출발하겠습니다.”
역무원의 안내 음성을 들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단탈리온은 자리에 앉은 멤버들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이번 여수 라이브가 RRR 밴드의 발을 넓히는 첫 번째 시도가 될 터.”
앤디, 제인, 오로바스를 번갈아 바라본 단탈리온이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우리는 여수를 조져 버린다. 알겠는가.”
““예에!!!””
멤버들끼리의 기합이 기차 안에 울려퍼졌다.
* * *
단탈리온과 멤버들이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이 지난 시각.
“……여기가 아닌가?”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에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채 새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여성.
“와…….”
“천사 같다…….”
지나가는 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 하고 있는 여성이 남성들을 무시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메타트론 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요?”
[그럴 리가. 다시 확인해 보거라.]
도미니온이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렇게 마기를 탐지해 보고자 기운을 끌어올리고는 마력 냄새를 탐지하고자 코를 킁킁거리기도 했으나.
“여전히 느껴지는 게 없어요.”
[……어쩌면 마기를 잘 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장소를 자세히 특정할 수는 없을까요?”
[최근 측정된 위치는 서쪽이었다.]
“강서로군요. 알겠습니다.”
도미니온은 주머니에서 교통 카드를 꺼내 지하철에 탑승했다.
‘강서 부근에서의 마력 발현이라면 분명 홍대 근처렷다.’
과거, 홍대 근처의 프리마켓에서 마녀 지팡이와 호박램프 등, 할로윈 물품들을 많이 판매했었다는 걸 기억해 낸 도미니온은 곧장 홍대로 향했다.
정작 그녀가 잡으려는 단탈리온 일행은 벌써 평택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