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33화 (33/110)

33화. 동백꽃 (1)

“음?”

고개를 세운 채 잠시 시집을 읽고 있던 나는 책장을 탁! 덮었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하나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기다려 보거라.”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앤디는 고개를 갸웃했다. 멀쩡히 시집을 보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러지? 싶었겠지.

그러나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서 경비라도 하듯이 주변을 살피던 오로바스에게 말했다.

“오로바스여.”

“예! 단탈리온 데스맨 님!”

“나올 때 이상한 낌새는 없었느냐.”

그렇다.

항상 집을 나올 때마다 걱정하는 그것.

거주지를 보유한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의문을 떠올렸다.

‘만약 하나라도 놓쳤다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법.

오로바스 역시 이 몸의 의문이 무엇인지 이해했는지 고개를 120도로 숙였다.

“예! 전기, 가스, 수도 모두 확인했나이다!”

“그럼 되었다.”

다행히, 오로바스는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바로 대답했다.

“훌륭하구나. 맥반석 계란을 상으로 주마.”

“감사합니다!”

나는 열차를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구매한 구운 계란을 꺼냈다. 그리고 오로바스에게 건네주면서 주먹을 살짝 쥐었다.

빠직.

“먹거라.”

“……!!!”

오로바스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고는 두 손을 받들어 내가 건넨 계란을 받쳤다.

“미, 미천한 오로바스! 단탈리온 님께서 하사하신 계란을…….”

“푸하하하! 야 무슨 계란 하나 받는데 그런 오바를…….”

“아, 좀 조용히 좀 해. 너희들!”

옆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던 제인이 오로바스의 허벅지를 탁 때렸다.

“지금 우리만 있는 거 아니잖아!”

“그럼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하지! 대중교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제인이 자신의 뒤로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나이가 제법 든 인간들이 우리를 보며 수근대고 있었다.

“……그런가. 불편을 준 모양이로군.”

하긴, 지금은 마계가 아니라 인간계.

인간들의 속담으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라’ 였던가.

허나 마왕인 이 몸에게까지 그걸 적용할 필요는 없을 터.

이것은 그저 나약한 인간들을 처연히 생각하여 내린 결정일지니.

“인정하마.”

마왕으로서 품위가 없었다는 것.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노인들에게 말했다.

“이 몸이 경솔했음을.”

노인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야 할 말은 모두 해야 하는 법.

“주의하도록 하지.”

“마왕니임?”

제인이 고개를 한껏 꺾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마치 야차처럼 변하여, 하나의 상급 악마를 형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사과드려!!”

“뭐라!? 방금 분명 이 몸이…….”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라고 해야지!”

결국, 나는 제인의 강요에 의해 한 번 더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계에서는 인간계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지만, 참으로 가혹하구나.’

마력만 충분해지면 싹 다 멘떼 크몽떼로 조종해 버리겠다는 마음을 품으며 말이다.

* * *

“아.”

단탈리온이 준 계란을 먹으면서 오로바스의 몸이 얼어붙었다.

“넌 또 왜 그래?”

앤디가 이번에는 무슨 일이냐며 오로바스를 바라봤다. 오로바스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앤디에게 물었다.

“앤디님, 보일러를 온수로 해 두고 나오면, 가스비가 얼마나 나올까요?”

“응? 아까 가스 껐다며?”

“그건 가스레인지였고……. 보일러를 온수로 두고 안 끈 거 같습니다.”

“그건 얼마 안 나가니까 걱정 마…….”

처음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여수 워크샵.

그들의 여행은 초반부터 삐걱대는 듯해 보였다.

* * *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향긋한 바다 내음이 흐르는 낭만의 도시.

대한민국의 명장이 최고의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 장소이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자리하고 있는 여행지.

전라남도 여수에 위치한 여수시청.

그곳의 문화도시창조팀의 주무관, 주순진.

그는 오늘도 텅텅 빈 이순신 광장을 바라보며 한숨만 푹 쉬고 있었다.

“무슨 동네가 이렇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수는 유명 밴드의 노래 가사에 오르내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 덕분에 SNS에도 여수의 맛집, 관광지 등이 소개되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드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주순진도 시청 차원에서 여러 노력을 해 왔다.

여수가 단순히 맛집과 관광지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진정 낭만이 가득한 바다 도시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도 해 보았고, 위인을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광장을 만들기도 했다. 위인의 명칭이나 여수의 특산품을 활용해 특별한 디저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들을 지원하기도 하고, 관광 상품 개발 공모까지 추진했었다.

그러나, 지금 주순진의 눈앞에는.

“술판으로만 한가득…….”

새벽까지 길거리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먹다 마신 소주병, 과자 부스러기와 봉지, 특산품 박스, 디저트 조각들, 코 푼 휴지에 담배꽁초까지.

‘내가 생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름대로 여수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다시 여수로 내려온 주순진이었다.

여수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보다도 높은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지금의 행태에는 아쉬움과 함께 자괴감도 컸다.

‘내가 너무 먹거리 동네로만 만들었나?’

새로운 여수를 만들고, 이를 알리는 과정에서의 착오.

그리고 실수.

그런 것으로만 치부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주순진의 선배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를 위로했었으니까.

-야, 유명해지면 당연히 음주가무부터 유행하지 않겠냐.

-낭만 따지면 바다보면서 술 마시는 거부터 생각나니까 어쩔 수 없어.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여수가 유명해진 게 다행 아냐?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모든 도시는 유명해지는 순간, 먹거리부터 알려지는 게 순서였으니까.

바다가 보이는 도시에서는 해안가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게 낭만으로 여겨지는 시대였으니까.

그러나, 주순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그런 시대라고 하더라도, 여수는 달라질 거야!’

그걸 시청 직원인 자신이 해내겠다는 의지.

그 의지가, 이순신 광장에서의 종합 문화 공연을 기획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주순진의 기획 의도는 ‘다양한 문화 요소를 통해 여수의 바다를 즐긴다’는 컨셉.

즉, 술과 음식이 아니어도 여수의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요소는 많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그저 공연에 푹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강조했던 하나의 요구 사항.

“다들 잘 지켜 주어야 할 텐데.”

공연이 끝날 때마다 자리를 잘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여수를 더럽히지 않도록 만드는 것.

지금 주순진은 그런 여러 가지 파급 효과까지도 생각하고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옆에는.

“파도의 너울이 마치 마계의 피바다를 보는 듯하구나.”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키가 상당히 크고,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하얀 얼굴을 한 남성이었다. 연예계 기획사 담당자가 봤다면, 당장이라도 명함을 건넸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얼굴.

그에 어울리는 도도한 걸음.

사내는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이 여수더냐.”

주순진은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또 어떤 미친 너튜버 컨셉충이……!’

그렇게 생각한 주순진이 사내에게 다가가려고 결심한 때였다.

“응. 우리 공연 장소도 여기일걸?”

사내의 옆에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는 또 다른 남성이 광장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연 장소?’

“여기인가. 인간들에게 우리의 음악을 들려주기에는 다소 협소하구나.”

“그렇기는 한데, 여기 사람들이 엄청 왔다갔다 하거든. 지나가면서 많이 들으실걸?”

“호오.”

버스킹 신청자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주순진을 향해 드럼 스틱을 들고 있는 남성이 천천히 다가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아, 예.”

“여수시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굉장히 예의 바르게 말을 하는 사내는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얼굴이 길어서 말상을 하고 있었다.

주순진은 저도 모르게 답했다.

“여수시청은 여기서 좀 거리가 있는데…….”

“그렇습니까.”

“그리고 지금 가셔도 문 닫았을 겁니다. 곧 퇴근 시간이거든요.”

주순신 자신도 현장 답사 후, 시청 사무실로 들어가서 며칠 뒤에 있을 공연을 위한 준비 사항들을 정리하고 곧장 퇴근할 생각이었다.

“혹시 공연하시나요?”

“!?”

주순진은 정말 순진한 의도로 물었다. 그러나 남성은 화들짝 놀라더니 여전히 품위를 지키고 있는 사내에게 달려갔다.

“데스맨 님.”

“고하거라.”

“저 사내가 데스맨 님의 목적을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건 또 무슨 방구석 오타쿠스러운 대화인가.

정말 저들이 공연을 신청하고, 공연을 하려는 이들인가?

‘이거 반려해야 하는 거 아냐?’

주순진이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여성이 몸을 돌리고 주순진에게 다가왔다.

“너희는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사내들에게 그렇게 말한 여성은 주순진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이번 문화 행사에 지원하고 라이브 공연 확정받은 팀인데, 혹시 시청 관계자신가요?”

“네? 아니 그건 어떻게…….”

주순진의 의문은 쉽게 풀렸다. 여성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자신의 공무원증이 달려 있었으니까.

“여기, 적혀 있는 거 같아서요. 헤헤.”

여성의 순진한 웃음에, 주순진의 얼굴이 녹아내려 갔다.

* * *

“뭐야, 직원이었어?”

앤디가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하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앤디의 말대로였다.

“관계자라는 걸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으면 오해를 할 뻔했구나.”

그 말대로, 나는 시청 직원에게 흑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는 필시 천계의 첩자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시작부터 흑마법을 시전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잔여마력량을 가늠했다.

잔여마력량: 51,300

드디어 마력이 5만을 넘어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증가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운동의 효과 덕분인지 마력은 꾸준히 올라갔다.

‘이 정도면 라이브에서 노래 4곡 정도는 버프를 걸어 둔 상태에서도 가능하겠군.’

이번 여수 공연에서는 총 3곡을 부르게 된다.

이 정도 마력이면 충분하겠으나.

“시틀라여.”

[네, 단탈리온 님!]

“장신구는 아직이더냐.”

[공연 전까지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시틀라의 말대로, 장신구 하나만 더 추가되면 3곡 모두 버프를 걸어 둔 상태에서 마침과 동시에 앵콜 공연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그냥 라이브를 하더라도 관객들은 이 몸의 노래에 푹 빠질 것이었지만.

‘가급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좋겠지.’

한 번 라이브를 할 때보다 많이 감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기대하고 있으마.”

[……! 존명!!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제인에게 다가갔다.

“관계자의 이야기를 고하거라.”

“들어보니까 공연 당일 전까지는 여기서 따로 연습하거나 할 수는 없데. 세팅은 당일에 해 준다나 봐. 그리고 우리 앞에 다른 팀들도 있는데…….”

제인은 관계자 사내에게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긴 이야기였지만, 요약하자면.

“결국 우리가 제일 마지막인 거잖아. 그치?”

“응. 밴드는 악기랑 앰프 세팅 때문에 제일 마지막으로 했대.”

아무래도 댄스팀이나 국악팀과는 달리 세팅할 악기도 많고 하니 당연한 수순일 터.

“나름대로 관계자의 고충이 그려지는구나.”

“뭐, 그런 점 때문에 밴드가 공연 현장에서는 인기가 없기도 하지.”

제인이 씁쓸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하나 강조한 거 있던데.”

“무엇이더냐.”

“공연 마지막에 쓰레기는 각자 알아서 치우고 가라고 관객들에게 알려 달래.”

“쓰레기를……?”

참으로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인간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마계에서 지내 온 세월만 수천 년인 이 몸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쉬운 일.

“쓰레기 처리라면 제가 전문입니다. 단탈리온 님은 더더욱 전문이시지만.”

“옳은 생각이로다. 이 몸에게 맡기거라.”

“그…… 쓰레기가 진짜 그냥 쓰레기다? 비유 표현이 아니야. 알지?”

제인의 부연 설명에 나는 기분이 퍽 상했다는 듯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알고 있도다.”

“……진짜지?”

“걱정 말거라.”

제인의 우려를 뒤로하고, 나는 내일 일정에 대해 말했다.

“내일 우리는 여수에서 유명한 장소들을 하나씩 탐방할 것이다.”

그 이유는 여수에 어울리는 자작곡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였다.

“작곡은 이미 앤디가 결을 만들어 두었으니, 남은 것은 작사.”

어느 정도 운율도 맞춰 두었으니, 여수에 맞게끔 가사를 바꾸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일정에 차질은 없을 터.”

나는 당차게 내일 첫 일정을 외쳤다.

“우리는 아침 일찍, 오동도로 향한다.”

악마를 연상시키는 핏빛으로 가득 물들어 있는 붉은 꽃.

동백꽃이라는 악마의 꽃이 가득 피어 있는 섬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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