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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34화 (34/110)

34화. 동백꽃 (2)

서울에서 강서, 홍대 근처로 향한 도미니온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인상을 썼다.

“없잖아.”

홍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킁킁, 킁, 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마기의 냄새를 맡으려 했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담배 냄새가 너무 많이 나.”

그녀는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성들 셋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요~”

“응?”

“어? 헌팅인가?”

“불 빌려 달라는 거겠지. 등신아.”

남성이 라이터를 꺼내 보여 주었다.

“불 필요하세요?”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세 분 담배 냄새 때문에 미치겠거든요.”

도미니온이 싱긋 웃으며 남성들이 있는 방향으로 손바닥을 들었다.

“몸에도 안 좋은 담배니까 정화하겠습니다~”

휘익!

손바닥을 휘두르자 담배에 붙어 있던 불이 모조리 꺼지고, 담배가 두 동강 나서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뭔……!”

“야, 이 미친 X아!”

“돛대였는데. 썅!”

그러나 도미니온은 남성들의 욕지거리에도 겁 하나 집어먹지 않은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머나, 그 잘난 입들도 좀 다물어 주셔야겠네요. 흐으음, 한 번 정도는 안 들키겠죠?”

도미니온의 손바닥에서 하얀 광채가 흘러나왔고, 남성들의 머리 주변을 휘감았다.

“천사의 축복을, 천사의 정화를. 미천한 인간들에게 보내 주느니.”

광채가 사그라질 때쯤, 도미니온이 손을 거두었다.

“앞으로는 금연하세요~”

도미니온의 손길을 받은 남성들은 그저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더니.

털썩.

털썩.

털썩.

차례대로 쓰러질 뿐이었다.

세 남성을 지그시 바라보던 도미니온은 아차 싶었다며 빠르게 걸음을 이동했다.

“괜히 있다가 의심 사는 건 더 안 좋겠죠.”

그러면 천계의 마력, 천력을 더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상사한테 잔소리 듣기도 싫고.”

천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가는 천력 남용이라며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메타트론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게 도미니온의 판단이었다.

“저기, 거기 예쁜 학생~”

도미니온은 지나가던 대학생 한 명을 붙잡았다.

“네, 네?”

귀에서 이어폰을 뺀 대학생에게 도미니온이 맑은 샘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 맛집 어디가 유명해요?”

“……네?”

오래간만에 내려온 인간계.

도미니온도 나름 이번 출장을 즐길 계획이었다.

* * *

시청 공무원과 만나고, 미리 잡아 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목표했던 오동도가 아니라.

“으으으음!!!!”

“어때? 먹을 만해?”

앤디가 살짝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나는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붉은색 양념이 한껏 버무려져 있는 음식을 들고 연신 감탄 중이었다.

“아주 훌륭한 음식이로다.”

“마왕님은 간장보다 양념파인가 보네.”

제인이 검은빛을 뿜는 열 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의 조각을 입안에 가득 넣고 씹었다.

와드득-

“캬, 살 빠져나오는 거 봐.”

제인이 호로록 남은 살을 빨아들이며 히죽 웃었다.

“이 음식, 아주 훌륭하구나. 이름이 무엇이라고?”

“간장게장. 내가 들고 있는 건 양념게장.”

“마음 같아서는 들고 가고 싶구나.”

정말이지, 집에 가지고 가서 몇 날 며칠이고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계 갑각류 마수들과 달리 사이즈가 작다는 사실이다.”

“이건 돌게장이라 좀 작은 거야. 꽃게장은 이거보다 커.”

“꽃게장이라……. 그것도 궁금하구나.”

“아서라. 그건 우리 먹는 백반 정식의 3배 가격이야.”

“……아침부터 초치는 건 선수로구나, 앤디여.”

“넌, 씨, 눈치도 없냐?”

나와 제인이 동시에 앤디를 노려봤다. 앤디는 들고 있던 게장을 입에 넣으며 딴청을 피웠다.

* * *

“아, 잘 먹었다.”

첫 끼를 배부르게 먹은 일행은 식당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진태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 문 안쪽에서 오로바스가 나왔다.

“데스맨 님! 제가 게장을 얻어 왔습니다!”

“호오.”

그 말대로, 오로바스의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훌륭하도다.”

“감사합니다!”

“잠깐, 이거 판매하시는 거 아닐 텐데? 남은 거 가지고 온 거야?”

제인이 이상하다며 물었다. 그러자 오로바스는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냐며 말했다.

“사장을 협박해서 받…….”

“이 멍청아 돌려드리고 와!!!”

“네? 문제가 있나요?”

“아니 넌 세상의 상식……. 아니 너도 악마지. 그러니까, 그렇게 강제로 하면 안 된다고!”

“그렇군요! 그럼 다시 돌려주고 흑마법으로…….”

“오로바스여.”

나는 오로바스를 향해 서늘한 눈빛을 날리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고오오오-

“허억!!”

오로바스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납작 바닥에 엎드렸다.

“감히 이 몸 앞에서 하등한 인간을 협박하였단 말이냐.”

그 말대로.

오로바스의 행동은 마왕이라고 하는 이 몸의 품격을 한참이나 떨어뜨리는 행위였다.

아무리 원하는 게 있다고 한들.

지나가는 개미를 협박하여 얻어 내는 것은 마왕으로서의 품격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죄, 죄죄, 죄송합……!”

“당장 돌려주고 오거라.”

내가 고갯짓을 하자 오로바스가 바들바들 몸을 떨고는 낮게 소리쳤다.

“위대한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겨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주인에게 다시 게장을 돌려주는 오로바스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희가 이해하거라. 아직 녀석은 인간계에 적응하지 못했느니.”

“어……. 응.”

“음? 왜 그러느냐, 앤디여.”

앤디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아니 그냥, 웬일로 너 좀 멋있다 싶어서.”

“훗. 이제야 이 몸의 가치를 알아보는구나.”

“그보다 얼른 가자. 날 좋을 때 가야 한대.”

그렇다.

지금 우리가 향해야 하는 곳은 오동도.

여수에 위치한 섬으로서, 악마의 피를 뒤집어쓴 듯한 꽃들이 만개한 섬.

“기대되는구나.”

동백꽃이라는 그 새빨간 꽃을 보면, 우리 메탈 밴드의 색깔을 알리기 좋은 악상이 떠오를 터.

그에 대한 기대를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 *

여수에 위치한 섬.

동백꽃이 만연해 있어야 할 섬.

우리는 그 섬에 도착해서 산을 천천히 올라가며 흐르는 땀을 한 번 닦았다.

“……아무래도 잘못 온 거 같지 않냐.”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앤디였다.

“무엇이 말이더냐.”

“제대로 된 동백이 하나도 없는데?”

앤디의 말에 제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없을 수밖에 없지. 지금은 벌써 5월이잖아.”

“5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더냐.”

제인은 정말 몰랐냐면서 관광 안내서를 보여 주었다.

“동백꽃은 3월 말까지만 핀다고 되어 있어.”

“…….”

제인이 건넨 종이를 보니 정말 동백꽃이 피는 시기는 3월 말까지로 적혀 있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는가.”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뭐.”

제인은 히죽 웃으며 다시 언덕을 올라갔다.

“쟤는 지치지도 않나.”

“앤디여.”

“응?”

“오늘 우리는 동백꽃이라는 악마의 꽃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 몸에게 어울리는 색을 찾아낼 것이다.”

* * *

그리고 결국, 우리는 동백꽃을 찾지 못했다.

“한낱 희망 따위에 의존할 필요는 없을지니.”

“지금까지 의존했잖아.”

“다른 방법이 있을 터다. 여기는 어떠한가.”

나는 오동도 수색을 마친 직후, 동백꽃을 볼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행히, 대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미디어 아트라는 곳에서 동백꽃을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위치도 오동도를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있는 곳이었다.

“여기 가 볼까?”

“난 찬성. 온 김에 다 가 보면 좋잖아?”

“저도 데스맨 님을 따르겠습니다!”

일행들의 동의를 모두 얻은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걸음을 옮겼다.

그 품격과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비록 목표한 동백꽃을 찾지 못했지만 그러한 아쉬움은 품고 있지 않다는 듯 당당한 걸음으로.

“이동하도록 하지.”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으니 말이다.

* * *

“이상하네…….”

도미니온은 길을 걸으면서 고개를 연신 갸웃했다.

“킁킁킁, 킁킁.”

분명 어디선가 냄새는 난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마계의 냄새.

‘악마인지, 마수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마계에서 나야 하는 냄새가 인간계에서 나고 있다.

메타트론이 알려 준 것처럼 지금 서울 서쪽에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정화를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도미니온은 연신 코를 킁킁대며 거리를 걸었다.

“어?”

그러다 멈칫.

한 골목길로 시선을 돌렸다.

“킁킁킁킁, 킁킁킁.”

눈을 감고 냄새에 집중하던 도미니온의 입가가 양쪽 귀에 걸리듯 올라갔다.

“찾았습니다.”

아직은 희미한 냄새였지만, 이것은 분명 흑마법의 잔재.

그 잔향이 섞인 바람이 도미니온의 코로 들어왔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천사 도미니온이 처벌하도록 하죠.”

* * *

미디어 아트가 열리는 전시회장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노래 컨셉은 뭐로 할 거야?”

“아직 고민 중이니라. 어렴풋이 주제는 정해지기는 했다만…….”

여수의 분위기와 RRR 밴드의 헤비메탈스러운 분위기를 어떻게 함께 녹여 낼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것이었다.

“원래 목적은 동백꽃 하나를 들고 와서 흑마법의 재료로 삼을 예정이었다.”

“흐, 흑마법!?”

앤디의 물음에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의 재료로 사용되면 해당 존재의 모든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법. 그만큼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저기……. 그게 가사 쓰는 거랑 어떤 연관성이 있어?”

제인도 궁금하다며 물었다.

“생물의 구조를 이해한다는 건, 해당 생물을 이 몸에게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다는 뜻.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가사에 넣을 수는 없느니라.”

즉, 이런 것이었다.

동백꽃이라는 꽃을 외관만 보고 활용할 수는 있다. 시뻘건 핏빛 꽃잎. 그 꽃잎을 마시는 마왕 단탈리온.

그런 이미지는 가능하지만, 실제 동백꽃에 깃들어 있는 성분이 어떠한지는 고려하지 않은 그림이다.

만약 동백꽃이 천계의 힘이 깃들어 있는, 이를테면 세계수의 씨앗으로부터 시작된 꽃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부터는 마계를 배신한 마왕이 되느니.’

따라서 동백꽃의 성분을 모조리 분석한 후, 그 성분을 토대로 이 몸, 단탈리온에게 녹여 낼 수 있는지를 가늠할 셈이었다.

“물론, 이제는 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려울 터.”

미디어 아트라는 것 자체가 실제 생물의 구조를 이해하기보다는, 시각적인 유희를 중점으로 만들어진 곳이니.

“어쩔 수 없이 시각적 유희에 집중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러한 아쉬움을 안고서 우리는 미디어 아트가 진행 중인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 * *

“4명 입장권 총 68,000원입니다~”

“…….”

“…….”

“…….”

“…….”

가격을 들은 단탈리온, 앤디, 제인, 오로바스 네 명이 모두 침묵했다.

모두가 조용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바라봤다. 각자 은행 어플을 열어 잔금을 확인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이는 오로바스였다.

“혹시 할인은 안 됩니까?”

“여수나 순천 주민분이시면 할인이 있지만…….”

곤란하다는 얼굴의 매표소 직원을 바라보며 오로바스는 생각했다.

‘흑마법으로 조종해 버려?’

그러다 오로바스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 될 생각을!’

방금 전, 식당에서도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였거늘!

나는 어찌 이리도 한심하단 말인가!

스스로의 깨달음이 부족함을 개탄하는 오로바스를 뒤로 밀어낸 제인이 말했다.

“너무 비싸지?”

“…… 비싸다. 미디어 아트라는 거, 비싸구나.”

따지고 보면 홍대 작은 클럽 공연 입장료보다도 비싼 수준.

앤디와 제인도 이 전시가 이렇게 비쌀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바다나 보러 갈까.”

“돈이 없어서 처량하게 바다나 바라보며 소주를 병나발로 불고 있는 내용으로 노래 만들면 관객들이 참 좋아라 하겠다, 그치.”

제인이 힐난하자 앤디도 살짝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라고 그러고 싶겠냐. 아님 여기서 버스킹이라도 해? 악기가 우쿨렐레뿐인데?”

앤디의 말대로.

우쿨렐레라는 작은 악기 하나만으로는 밴드 전체가 버스킹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단탈리온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말했다.

“걱정 말거라.”

“오, 뭔가 방법이 있는 거야?”

앤디가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그러하다. 잠자코 보고 있거라.”

단탈리온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뚜벅, 뚜벅.

그리고 멈춰선 자리에는 티켓을 판매하는 직원이 서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티켓 구매…….”

“멘떼 크몽뗴.”

화아아악!

“아니, 잠깐잠깐!”

“마왕님!?”

“다, 단탈리온 님!?”

당황한 일행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오로바스는 데스맨이라는 단탈리온의 예명도 잊고 본명을 말해 버릴 정도였다.

“너, 너, 아까는 인간을 협박하면 안 된다고…….”

“협박이 아니다.”

흑마법이 시전된 손바닥을 거두며, 직원이 건네는 티켓을 받고는

“흑마법을 활용한 ‘설득’이다.”

유유히 전시장 안쪽으로 사라지는 단탈리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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