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동백꽃 (4)
71위 마계.
인간계에 홀로 내려가 마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단탈리온의 마계.
그곳에 위치한 마왕성의 대회의실에 군단장들과 시틀라가 모여 있었다.
“이런 모욕을 견디고 있으란 말인가!”
만티코어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테이블 부서지겠다 만티코어. 변상해 줄 거냐고 네가.”
“……그런 건 아니다만, 아무튼! 단탈리온 님이 받으신 모욕, 우리가 갚아 드려야 하지 않겠냐, 이 말이다!”
만티코어의 말에 다른 군단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모태 솔로라는 모욕은 심했지.”
“하등한 인간이야 그럴 수 있다. 그들이야 악마가 얼마나 사는지를 모르니. 허나, 주천사가 그래서야 쓰나.”
“맞는 말이야. 설령 아줌마가 모태 솔로라 했어도 ‘이 집 거주자가 모태 솔로일 리 없습니다’라는 한마디만 했어도 충분했을 터.”
“마력, 마기를 느끼고 거기까지 간 주천사가 할 언행은 아니었지.”
혀를 차는 군단장들과 열을 올리는 군단장들이 한 데 섞여 마왕성 대회의실이 시끌벅적해졌다.
“조용, 조용!”
시틀라가 테이블을 탕탕 내리치며 말했다.
“오늘 우리 안건은 거기에 대해 분노만 하고 끝내자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시틀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11개 군단의 군단장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우리는 천계에서 단탈리온 님의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해.”
“맞아. 천계에서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어.”
에키드나가 기존의 통계치를 분석한 자료를 허공에 띄웠다.
“여기 보면, 지금까지 마계에서 규칙을 어기고 인간계로 내려간 악마들의 수가 몇몇 있기는 있어. 그런데 웃기는 걸 알려 줄까?”
“말해 봐, 에키드나.”
“반응해 줘서 고마워 시틀라. 여기 통계를 보면, 내려간 악마들은 죄다 하급 악마들이야. 그러니 내려가자마자 소멸했지. 그런데, 소멸하는 순간, 천계에서 어떻게 움직였냐면.”
에키드나가 손을 한 번 휘젓자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거기에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임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잘 봐.”
에키드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띄워져 있던 임프의 얼굴이 확대되었다.
“십 년 전, 11군단에서 인간계에 내려가 장난질이나 하고 오자며 몰래 인간계로 내려간 녀석들이 있었어. 임프 몇 마리 중 내기를 한 모양이야.”
“그런데?”
“하급 악마잖아. 당연히 내려가자마자 소멸하기 시작했지. 그때 내가 보고 받기로는 그저 마력 부족으로 인한 소멸이었어. 그런데 여기를 봐.”
에키드나가 가리킨 손가락은 임프의 목 주변에 일어난 작은 일렁임이었다.
“빛의 굴절이 아닌가? 해가 잔뜩 들어 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방금 도미니온의 행동과 말들. 그걸 듣고 나서 다시 자료를 뒤져 봤거든.”
확대되어 있던 임프의 사진이 왼쪽으로 살짝 꺾이더니 빛의 굴절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굴절로 인해 나타난 사진에는.
“희미하게 누군가의 손이 걸려 있는 거. 보여?”
“이건…….”
시틀라가 손으로 턱을 괴며 눈매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목을 졸리는 것 같군.”
“맞아. 아마 천계에서 소멸 직전의 악마를 붙잡아서 심문을 한 모양이야.”
“뭣……!?”
에키드나의 폭탄 발언에 시틀라는 물론이고 군단장들 모두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감히 천계에서 우리 마계의 악마를 심문하다니!”
“어차피 놔둬도 소멸할 하급 악마거늘! 굳이 고문까지 하면서 심문을 했단 말인가!”
군단장들의 분노가 마계의 하늘을 찔렀다. 에키드나 역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에도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하는 거야. 천계는, 생각보다도 더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을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냐 에키드나! 좀 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라!”
만티코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잘 들어. 지금 단탈리온 님이 여수에서 공연을 하실 거야. 그치?”
군단장들이 숨을 삼켰다. 에키드나는 주변이 조용해진 걸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공연하시면서 흑마법을 사용하시면 어떻게 되겠어?”
“설마……!?”
에키드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펜시 인텐시키온, 하급 흑마법 하나만으로도, 천계를 불러들이는 신호탄이 될지도 몰라.”
그 말인즉슨, 천계의 정예들이 단탈리온을 잡으러 언제 뛰쳐나올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직 마력이 완전하지 못한 단탈리온이다.
그런데 천계에서 갑작스레 달려든다면?
“아무리 마왕님이어도 지금의 상태로는……!”
만티코어가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히죽 웃었다.
“좋다. 그럼 이 만티코어가 직접 나서겠다!”
“멍청아. 네가 가면 도움이 될 게 뭐가 있겠냐. 근육 바보가.”
“뭐라!?”
“여긴 당연히 단탈리온 님의 심복인 이 몸, 에키드나가 가야 하지 않겠어?”
“둘 다 조용!”
시틀라가 손을 들어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에키드나와 만티코어가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다 자리에 앉았다.
“에키드나에게 묻겠다.”
“응 말해.”
“방금 허공에 사진 띄우는 데 마력이 얼마나 들었지?”
“어? 어, 음…….”
“내가 마력 허투루 사용하지 말라 하였는데 어찌 된 일이지?”
시틀라가 눈에 지옥의 화염을 담고는 에키드나를 노려봤다.
“단탈리온 님이 개고생을 하시면서 벌어들이시는 마력을, 이렇게 날려 먹을 셈이냐?”
“그, 그게 아니라 나는……!”
“됐다. 단탈리온 님께 보고할 거야. 에키드나가 자기 과시욕으로 마력을 남용하였…….”
“자, 자자자, 잠깐만 시틀라! 미안!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아라.”
시틀라가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자 에키드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네, 죄송합니다…….”
“다른 군단장들도 마찬가지야. 너희들, 함부로 마력 쓰면 진짜 뒤진다. 알아들어?”
군단장들 모두가 시틀라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것들 봐라. 너희들, 설마 1주일 사이에 뭔가 한 거 아냐?”
시틀라의 물음에 군단장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1주일치 마력 사용 내역서, 제출해.”
“아니, 그게 말이지 시틀라. 우리 저번에 마력 사용 내역서 1년 치, 전부 제출했잖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넘어가도…….”
“만.티.코.어.”
만티코어는 시틀라의 눈빛을 받고는 잔뜩 겁먹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렸다. 다른 군단장들도 만티코어와 다를 게 없었다.
시틀라는 그들의 반응을 바라보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앞으로는 1주일 단위로 매주 제출한다. 알겠냐?”
“그런! 지금도 행정 일이 터지고 있는데!”
“단탈리온 님께 보고해 줄까?”
“당장 하겠습니다. 네.”
단탈리온 님께 직접 고문을 당하느니 시틀라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낫다!
모든 군단장의 의견이 일치했다.
“좋아. 그리고 단탈리온 님께는 흑마법 건에 대해 내가 전달 드리마.”
시틀라가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흑마법, 이번 공연에서는 피하셔야 할지도 몰라.”
천계로부터 협공이라도 받는 순간, 단탈리온 님은 소멸하신다.
“우리 마왕님이 소멸하시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 * *
“음? 흑마법을?”
미디어 아트 전시장을 나온 나는 시틀라로부터 통신을 받았다.
[예, 천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작은 흑마법, 마기라도 금방 눈치채고는 달려들지도 모릅니다.]
“흠…….”
확실히, 시틀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인간계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지만, 벌써부터 주천사를 내보냈다.
‘하급 천사도 아니고 중급 천사를 보낼 줄은 몰랐지.’
천칭의 기울기가 다소 변화했다고 한들, 눈에 띌 정도의 변화는 아닐 터였다.
그런데 하급이 아니라 중급 천사를 보냈다는 건, 메타트론이 마계와 천계의 균형을 매우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틀라 자네 말대로, 조금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군.”
[예, 도미니온이 단탈리온 님의 처소에 들어왔다는 건, 쉽게 간과할 사안은 아닙니다.]
그 말대로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은 생각이다. 이번에는 조심하도록 하마.”
아직 이 몸의 힘은 부족하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 순간, 적들에게 당할 뿐이다.
“허나, 천사들을 향한 도발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흑마법을 사용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사이에 나도 피나는 노력을 했으니까.
‘본래 실력만으로도 자신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 괜찮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시틀라에게 또 다른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나저나 시틀라여. 장신구는 아직인가.”
[예, 그렇지 않아도 오늘 두 개가 더 완성되었습니다. 바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시틀라의 신호에 맞춰 허공 위로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코브라가 몸을 수차례 돌리고 있는 반지가 하나 떨어졌다.
곧이어 바포메트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반지도 하나 나타났다.
“호오, 좋은 외관이로다.”
[감사합니다! 만티코어에게 부탁해서 레비아탄 드래곤과 바포메트의 모습을 새겼습니다!]
“잘하였다.”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가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바닥에 올려진 반지를 오른손에 꼈다. 마력이 손가락을 통해 전신을 휘감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법이구나.”
잔여마력량: 93,600
이제 거의 10만에 가까워졌다.
“이젠 중급 흑마법도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주먹을 쥐었다 펴며, 흘러넘치는 마력을 갈무리했다.
물론, 아직 넘친다, 까지는 아니지만.
“마력이 충분하거늘, 하급 흑마법조차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다니.”
하루빨리 인간계에서 마계의 위상을 더 높여야 한다.
“그리고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영상 송출은 준비 중이더냐.”
그 말에 시틀라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 여여영, 영상, 소, 송출, 말씀이십니까?]
“? 그렇다. 왜 그리 당황하느냐.”
[아, 아닙니다! 그, 그렇죠 영상 송출, 예, 준비가 아직, 아니 준비가 된…….]
“시틀라여.”
[핫! 예 단탈리온 님!]
“앞으로는 영상 송출도 필요할 것이다.”
정말 천계에서 마계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언제 나에게 천사가 다가올지 모를 일.
그러나 공연을 하는 와중에는 천사들의 마력을 감지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호원이 필요할 터.
평소라면 시루베로스가 해 주었겠지만, 여수에는 같이 오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내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마계에 있는 시틀라와 군단장들이었다.
“지체하지 말거라.”
별일 없으면, 천천히 만들어도 되기는 하지만.
[……! 시종 시틀라, 반드시 해내겠나이다!!!]
시틀라가 연신 바닥에 얼굴을 찧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 * *
시틀라는 자리에 엎드린 채로 생각했다.
‘단탈리온 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어……!’
오로바스에게는 비밀이라 하고서 영상 송출은 준비해 두었지만.
단탈리온 님은 이미 다 파악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지금 정도라면 영상 송출을 해도 마력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점.
나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미 최소한의 영상 송출 마법진 정도는 형성해 두었을 것이라는 점.
지체할 필요 없이 곧장 영상 송출을 해내라는 점에 영상송출이 되어야 더욱 면밀히 지원사격이 가능하다는 점까지.
이 모든 것들을 단탈리온 님은 파악하고 계셨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단탈리온 님!!!!!!!”
절규하듯 소리친 시틀라가 바닥에 대고 연신 이마를 찧었다.
“이 미천한 시종이 단탈리온 님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멈춰, 시틀라!!!”
에키드나의 만류와 함께 대회의실의 군단장들이 모두 시틀라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나였다면 이미 팬티에 지렸어.’
‘죽이지 않고 살려 두시니 더 무서워.’
‘마왕님 곁에 있다고 해서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군단장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 * *
미디어 아트를 다녀온 직후, 단탈리온은 작사에 온 힘을 다했다.
멜로디는 이전에 앤디가 만들어 둔 곡에 맞추면 되었다.
“후후후…… 후후후후…….”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가사는 곧.
“여러분 안녕하세요!”
바로 ‘여수 낭만예술공연’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많은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수시청 문화도시창조팀의 주무관, 주순진은 마이크를 붙잡고 직접 사회를 봤다.
시청 관계자가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는 여지껏 없었기에 지역 주민들도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마술쇼, 국악 공연, 밴드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분들의 공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다들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주순진의 이야기처럼, 오늘 이곳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처음에는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 마술쇼가 진행되었고, 그 뒤에는 국악 공연, 그다음에는 오카리나 연주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낭만’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괜찮은데?”
“딱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듣기 좋아.”
관객들도 한 손에는 백주, 다른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여수 낭만예술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후암……. 그래도 너무 비슷한 무대만 나오니까 지루하네.”
“그러게. 국악만 벌써 세 팀이잖아.”
물론, 공연이 지루하다며 불평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공연장의 뒤편에서는
“준비되었는가.”
앤디, 제인, 오로바스가 모두 각자의 악기, 스틱을 움켜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격이다.”
당차게 앞으로 나서는 RRR밴드 멤버들, 네 명이 당당한 걸음으로 무대 위에 올라섰고.
“다음은 RRR 밴드,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주순진이 무대 뒤로 들어가면서 단탈리온이 도도한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여수에 모인 하등한 인간들아.”
마이크를 잡은 단탈리온이 좌중을 둘러보며 엄지, 중지, 약지를 펴고 퍽지창을 표현했다.
“이 몸을 받들거라!!!!”
하얀색 피부에 쥐 파먹은 핏빛 입술, 입가에 묻은 시뻘건 립스틱에 미디어 아트에서 구매해 온 동백의 레드 빛깔 귀걸이까지.
마치 지옥에서 내려와 동백꽃을 입가에 물고 온 저승사자의 형상과 같은 단탈리온의 모습에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롹앤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