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천사인 척하지 마
고요하다.
관객들의 함성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분명 관객들의 입가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귓가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어째서일까.
“아주 한가로운 주말에, 여수까지 온 자네들을 환영한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마이크 스탠드를 한 바퀴 돌리는 저 녀석은 분명, 이전의 데스맨이 아니다.
지금은 데스맨의 영혼이 나간 틈을 채우고 있는 악마. 마왕이라 칭하는 녀석이었다.
아니, 실제로 흑마법도 보여 주는 걸 보면 마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무서운 녀석일 거라 생각했다.
악마라 하는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거나, 영혼을 파먹는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 저 앞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는 단탈리온 데스맨은.
“자네들은 천사의 존재를 믿는가.”
생각 이상으로 음악에 진심을 보여 주고 있다.
작사 능력도 괜찮았다.
평소 책을 많이 본다고 그랬는데,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단탈리온이라는 마왕은 RRR 밴드의 보컬로 들어왔고, 녀석은 자신의 목적과 함께 데스맨의 영혼을 살리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리기에 함께 한다 생각했지만.
저 녀석의 음악을 향한 진심은 나도, 제인도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
가사 하나하나에 땀을 쏟고, 곡 하나를 위해 굳이 그 지역의 여행을 자처하고, 실제 현장의 목소리와 분위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녀석.
예술가의 마인드를 갖추고 있기에, 어쩌면 나는 저 녀석을 더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녀석은 중의적인 표현을 담은 노래의 작사를 맡았다.
내가 만들어 둔 멜로디에 입히는 것이었기에 연주에는 문제가 없었다.
걱정되는 측면이라면 단탈리온이 노래를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
가사는 어제 막 나왔으니까.
그러나 저 녀석은.
“RRR 밴드,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세 손가락을 올리며 관객들을 향해 힘을 주어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며,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번에도 흑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어제 분명.
-내일 공연은 우리들의 힘으로 한다.
-흑마법 안 쓰고?
-그렇다. 이제는 순수한 우리들의 실력으로 해나가야 할 때.
갑자기 무슨 자신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단탈리온 데스맨의 모습을 조금씩 믿게 되었다.
녀석 덕분에 RRR 밴드는 이름을 조금이나마 알리기 시작했고, 부족했던 드러머도 채워졌다.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다.
노래 가사의 전달력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 건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 없다.
단탈리온 데스맨이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부를 노래는 천계에 있는 천사들의 행태를 고발하고자 함이니라.”
그래, 걱정할 일은 없을…….
“썩어빠진 천사년놈들의 행태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하등한 인간들보다도 못한 저급한 존재임을 고발하여 그년놈들의 날갯죽지를 찢어 버리기 위한…….”
“야 인마!! 멈춰!!”
* * *
단탈리온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노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노래를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를 청자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바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말했다.
“……날갯죽지를 찢어 버리기 위한…….”
“야 인마!! 멈춰!!”
그때 앤디가 단탈리온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러느냐 12군단장 앤디여.”
“누가 12군단장이야! 아니, 그 노래, 그런 의도로 만든 거였어!?”
“몰랐느냐? 나를 모태 솔로라 모욕한 천사년놈들을 응징하기 위한 노래이니라.”
그러자 관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피어올랐다.
“어머 뭐야. 모솔이야?”
“어떡해…….”
“화장이 저래서 그렇지 잘생기지 않았어?”
“잘 생겼는데 왜……. 메탈 밴드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확 채갈까?”
그렇게 관객들 사이에서 이상한 오해가 생겨나고 있을 때쯤.
단탈리온 데스맨이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아무튼, 그런 노래니라. RRR 밴드, 우리의 노래를 듣는 자네들은 심장을 움켜쥐어야 할 것이다.”
단탈리온이 오른손을 심장 가까이 가져갔다.
“우리의 음악은 심장에 좋지 않으니까.”
“푸하하! 뭐야 저게!”
“나 저기 어딘지 알아. 퍽지창 밴드 아냐?”
관객들 사이에서 나온 질문에 앤디가 입을 딱딱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퍼, 퍼퍼, 퍽지창 밴드!?”
“훗. 이 몸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요약하다니. 저급한 천사보다 낫도다.”
단탈리온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켓을 펄럭, 움직였다.
“우리는 메탈 밴드. 천사의 존재를 믿고 있는 밴드다.”
웅성웅성.
관객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메탈 밴드라면 오히려 더 믿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의문은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설명에 의해 함성으로 바뀌었다.
“천사가 있다는 것을 믿기에, 천사년놈들의 날갯죽지를 씹어 먹겠다고 선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와아아아아!!!!
단탈리온의 연설에 관객들이 미친 함성을 질렀다.
흑마법을 쓰지는 않았다.
단탈리온은 71위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
평소의 카리스마로도 이 정도 분위기 제압은 가능했다.
“출진이다. ‘천사인 척하지 마’.”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번쩍 들고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시켰다. 간단한 퍼포먼스였지만, 관객들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키잉!
앤디가 일렉 기타의 크레몰로 암을 조작하며 노래의 시작을 알렸고.
두두두둥 타탁 탕!
오로바스의 드럼이 그 뒤를 이어 박자를 형성했다.
둔두두둔 둥둥 두둔
제인의 베이스가 그 아래를 지탱하며 묵직한 멜로디를 만들었다.
챵!
두둔둔두둔
쟈쟈쟈쟝 쟈쟝 쟈쟈쟝 키이잉
[그워어어어어!!!!]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스크리밍 창법.
짐승을 찢어발기기라도 하듯 거친 목소리의 단탈리온이 관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너는 나에게 연락 한번 없었지]
첫 소절부터 관객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핸드폰에 새겨 둔 이름도]
[지금은 나에게 없어]
[웬일일까 생각해 보면 나도 참 그래]
[내 연락은 줄기차게 씹었던 너인데!]
단탈리온의 목소리는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관객들은 단탈리온의 목소리와 멤버들의 연주 소리에 서서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천사처럼 내 곁을]
[지켜 준다 말했던 너지만]
[언제나 천사처럼 나에게]
[꽃도 매일 준다던 너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네가]
[오늘은 네가!!!]
[너무나 잔인한 결정을 했어!]
[No Angel! No Angel!]
[천사 주제에 불법침입!]
[No Angel! No Angel!]
[천사가 짓밟은 저 동백을 봐!]
[No Angel! 바닥에는 피 웅덩이!]
[네 입가에 맺힌 핏빛 웃음!!!!!]
[감히 네가 천사라니! 천사라니!]
[어디서 천사인 척이야이예이야아아아!!!!]
단탈리온의 가사가 멈추면서 그가 앤디를 향해 몸을 확 돌렸다.
“기타!!!”
쟈쟈쟈쟈쟈쟈쟝
쟈쟈쟈쟈쟈쟈쟝
키이이이잉! 쟈쟈쟝
“와 뭐야.”
“기타 솔로 미쳤다.”
관객들의 반응이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탈리온은 그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히익!”
다만, 입가에 새빨간 피를 묻힌 채였기에 관객들이 기겁하기도 했지만.
“메탈스럽기는 한데…….”
“은근히 대중적이야.”
관객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탈 밴드들의 노래는 무언가를 부순다거나 죽인다거나 하는 살벌한 가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RRR 밴드의 노래는 그런 가사들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단탈리온은 지금껏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을 알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와아아아아아아!!!!!!]
[예에에에에에!!!!!아아아아아!!!!!]
[노오오!!!! 에에에에엔!!!!제에에에엘!!!!!]
[천! 사! 인! 척! 하! 지! 마!!!!]
단탈리온이 2절의 시작을 알리면서 스크리밍과 함께 샤우팅을 내질렀다.
평소보다도 더 텐션이 올라가 있는 단탈리온의 목소리. 그걸 듣는 멤버들도 속으로 감탄했다.
‘저 녀석…… 언제 저렇게 연습했지?’
‘마왕님, 성실하네.’
‘단탈리온 님!!!!! 죽는 날까지 곁에서 모시겠습니다!!!’
쟈쟈쟈쟈쟈쟝
둔두두둔두두둔
두두두두타타탕탕둥둥타탁!
[예이야아아아아!!!!]
[웬일인지 오늘은 네가!]
[너무나 잔인한 결정을 했어!]
[쓸데없는 의심! 오해!]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 나를 모함하지!]
[아니야! 나는 안 했어!]
[멋대로 곡해하지 마! 나를 괴롭히지 마!]
[나의 심장은 이미 난도질 됐지]
[쓸쓸히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지하 깊숙이 침몰하고 있잖아아아아이야아아!!!!]
천계의 천사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만든 노래.
그러나 지금 관객들에게 이 노래는 이별의 아픔이나 이상한 연인에게 걸려 버린 이를 위로하는 노래로 들려왔다.
“여수까지 와서 이별 여행하고 있었는데 이런 노래를 듣네.”
“생각해 보니 전 여친 진짜 나쁜 년이었어!”
“그 망나니 같은 새끼,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해 봐!”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손을 불끈 쥐며 분노를 표했고.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닿게 한다며?”
“이젠 내가 영업하느라 늦게 오면 좀 믿어 줘! 혼자 오해하지 말고!”
“남편이 요리 잘한다고 거짓말한 것도 모르고 결혼했지.”
부부들도 서로에게 서운했다거나 서로 거짓말 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며 괜히 낄낄거렸다.
[천사는 그렇게 악독하지 않아!]
[악독한 건 그래! 악마! 마왕!]
[넌 천사가 아니야!]
[새빨간 거짓말만 일삼는 너는!]
[No Angel! No Angel!]
그리고 잠시 마이크를 붙잡은 채 관객들을 바라본 단탈리온은.
“준비들 되었는가.”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오른손을 위로 올렸다.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미 가사에 공감하고 있는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지는 가사는.”
두둥두둥타탕
둔둔두두둔둔두둔
“나쁜 천사년놈들이다. 복창하거라.”
“나쁜 천사년놈들!”
“목소리가 작도다. 포차에서 술판을 벌이고 오지 않았단 말인가!!! 다시!!!!”
“나쁜 천사년놈들!!!!”
단탈리온이 손을 휘릭 돌리며 입꼬리를 잔뜩 올렸다.
“좋다. 이제부터 우리를 모욕한 천사년놈들에게 욕을 내뱉는다. 준비되었는가.”
관객들이 오른손을 번쩍 들며 함성을 질렀다.
예에!!!!
“옳은 태도로다. 한 번 더!!!!”
예에에!!!!!
“예에예예예에에에에예!!!”
예에예예예에에에에예!!!
“예에예에예에에!!”
예에예에예에에!!
“올롸잇!!!! 원! 투!”
단탈리온의 신호에 맞춰 관객들이 부릉부릉 소리를 지를 준비를 했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본 단탈리온이 고개를 휙 젖히며 노래를 다시 시작했다.
[나쁜 천사년놈들!!!]
나쁜 천사년놈들!!
[날개를 찢어 버릴 테다!!!]
날개를 찢어 버릴 테다!!!
[네놈들의 발아래에도!!! 피웅덩이를 만들어 주마!!!]
관객들이 단탈리온의 호응 유도를 따라 주면서 분위기가 한층 더 달아올랐다.
이미 무대를 장악한 단탈리온이 마지막 가사를 시전하기 위해 다시금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천사는 그렇게 악독하지 않아!]
[그러니 너는 악마!]
[제멋대로 상상만 하는!]
[저급한 최최하급 악마!]
[어울리지도 않는 날개 따위 버려!]
[이제 우리는 같은 악마!]
마왕군을 컨셉으로 하고 있는 RRR밴드였기에 지금의 가사는 관객들에게 전달될 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다.
“가식 떨지 말고 우리처럼 살아라, 이런 건가?”
“겉과 속이 다른 놈들을 조심하라는 거잖아. 차라리 메탈 밴드처럼, 악마처럼 하고 다니던가, 이런 걸지도 몰라.”
“아까 모태 솔로라더니 예전에 고백했다가 심하게 차였나 봐…….”
물론, 그 반응 안에는 이상한 오해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 RRR밴드의 공연은 이전까지 진행했었던 어떤 라이브보다도 더 큰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이제부터 넌!!!!]
[날개를 찢은!!! 천사!!!!]
[Not Angel! Not Angel!!!]
[이제 너는!!!]
마지막에는 가사를 살짝 바꾼 단탈리온이 관객들을 향해 마이크를 넘기며 그 앞에서 소리쳤다.
[Fucking Angel!!!]
퍼킹! 엔젤!
[퍼킹!!! 엔젤!!!!!!]
퍼킹! 엔젤!
관객들이 단탈리온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 번 더!!”
퍼킹! 엔젤!
[천사인 척하지 마! 넌 그냥…….]
단탈리온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쓰레기니까아아아이야이야아아아!!!!!!!]
이어지는 절규와도 같은 샤우팅.
마치 연인에게 호되게 당해 한이 맺힌 사람처럼 내지르는 고음에, 관객들이 박수를 마구 치며 열렬히 환호했다.
우와아아아아!!!!
둥!!!!
키잉쟈쟈쟝
두둔두둔두둔
드럼,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의 소리가 합쳐지면서 노래의 마지막을 알렸고.
[여수에 모인 인간들이여]
쥐 파먹은 시뻘건 입술을 사악 올리며 단탈리온이 악마처럼 웃었다.
[천사를 믿지 말거라.]
타닥 챵!
오로바스가 심벌을 손으로 잡음과 동시에 노래가 끝났고.
“맞아아악!!!! 여수는 악마의 도시다!!!!!!”
스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주순진이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