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38화 (38/110)

38화. 대책

“…… 찍었냐?”

“찍었지.”

“인별그램에 올리자. 오늘 공연 중에 일 등이다 이거.”

여수에서 펼쳐진 RRR 밴드의 버스킹.

이번 공연은 이전보다도 더 임팩트가 컸다.

관객들은 첫 번째 곡이 끝난 것만으로도 희열에 가득 찬 목소리로 박수를 쳤다.

“대박…….”

“와 나 메탈 좋아했네…….”

“잠깐, 이게 메탈이라고!?”

“그냥 락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반응도 잘못되지는 않았다.

그저, 이번 공연에서 우리가 컨셉을 제대로 잡았던 것.

-분장도 조금은 약하게 하고, 헤비메탈스럽기보다는 메탈과 평범한 락을 섞은 형태가 좋을 것 같아.

이 의견을 제시한 건 제인이었다.

지금까지 버스킹을 하면 길을 걷던 사람들이 다들 RRR 밴드를 피해 지나가기 바빴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흑마법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이전까지야 흑마법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였지만, 만약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어야 한다면.

“훗. 책략 성공이로다.”

나는 제인, 앤디, 오로바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셋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의 분위기를 즐겼다.

“하등한 인간들이여. 천사들을 향한 노래를 잘 들었는가.”

관객들을 향해 마이크를 잡은 나는 그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모두가 우리가 있는 이곳, 공연장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로다.’

마왕으로서 71위 마계에서 생활할 때는 언제나 모든 악마가 나를 우러러봤다.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가 어색하지는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인간들이 나를 마왕이 아니라 음악가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지점이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 노래는 가식덩어리인 천사년놈들을 응징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모두가 공감하는 바가 컸을 터.”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숙덕거렸다.

“어머, 뭐야, 말투 왜 저래.”

“방금 너튜브랑 인별그램 봤는데, 마왕군이 컨셉이래.”

“아, 컨셉이야? 메탈 밴드답네.”

“그래도 노래 좋지 않았어? 호응 유도도 잘하던데.”

감히 마왕의 안전에서 예의 없게……!

“말을 삼가거라. 아직 이 몸이 설명 중이지 않느냐.”

“푸하하하!”

그때 관객들 사이에서 소주병을 나발로 불고 있던 사내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야야, 되지도 않는 끅, 컨셉질은 때려, 딸꾹, 요즘 누가 끅, 메탈을 듣냐, 앙?”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모습이, 심히 거슬리는 인간이었다.

그걸 관계자도 눈치챘는지, 뒤에 서서 멍 때리고 있던 주순진이 달려왔다.

“아이고, 여기까지 들어오시면 안 돼요!”

“뭐어야. 여수 광장은 국민들 거 아닌, 딸꾹, 가? 왜 끅, 못 들어가는, 히끅, 데?”

방금 전까지는 신이 났던 공연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관객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앞에 있는 남성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말이다.

“참으로 쓰레기답구나.”

“……뭐라, 끅, 고?”

“마왕군에서는 전쟁터에서 눈치 없이 악행을 일삼는 양아치들을 쓰레기라 불렀느니.”

과거, 내 손에 사라진 악마들을 떠올리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마치 그대가 그와 같도다.”

“……미친 히끅, 새끼인가.”

호오.

“감히 이 몸, 단탈리온 데스맨에게 새끼라 하였는가.”

“야, 내가 딸꾹, 너보다 나이가 몇이나, 끅, 많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고 생각한 앤디와 제인이 각자 악기를 맨 채로 남성을 막으려 했다. 주순진도 남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들을 향해 손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물러나거라.”

“하지만 단탈…….”

“걱정할 것 없느니.”

이런 부류라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아무래도 자네는 그냥 쓰레기는 아닌 듯하구나.”

“히끅, 뭐?”

“자네는…….”

나는 검지를 척 들어서 사내의 이마에 턱, 올렸다.

“바로 핵폐기물 쓰레기니라.”

내 말에 사내는 물론이고 관객들과 RRR 밴드 멤버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핵폐기물 쓰레기이기에 자네는 아주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엥?”

갑작스런 칭찬에 놀랐는지 사내가 두 눈을 꿈뻑였다.

“허나 지금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그다지 멋진 악행은 아니로군.”

그렇다.

내가 저 사내의 악행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악행이란 모름지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의 요소.

게다가 이 몸은 마왕이지 않은가.

인간이나 악마들, 심지어 천사들까지도 악행을 벌인다면 두 팔 벌려 칭찬해 줄 용의가 있는 존재다.

허나, 지금 이 사내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나는 자네의 악행은 수준 이하라는 점.”

아무리 악행이라 할지라도, 악행마다 레벨이 있는 법이다.

지금 이 사내의 악행은 갓 태어난 소악마 임프도 하지 않을 치졸한 레벨이었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이번에 이 몸을 모태 솔로라 모욕한 천사년놈과 비슷한 수준의 치졸한 악행이었다.

“또 하나는 그 악행으로 인해 이 몸의 공연을 방해한 점.”

“이게 뭔 개소…….”

“따라서 자네에게는 악행을 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미친 새…….”

나는 사내의 입이 열리는 걸 무시하고 이마에 댄 검지에 대고 말했다.

“멘떼 보일리.”

검지손가락에서 검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마치 붉은 실처럼 변하더니 사내의 이마 안쪽으로 쑤욱 들어갔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실이 다시 내 손가락을 타고 지나왔다.

손가락 여기저기로 날아든 실들이 하나의 뭉치로 변했다. 그 실을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실뭉치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그와 동시에 남성이 고개를 푹 숙이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주순진이 당황한 얼굴로 남성을 살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남성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악행의 흔적들을 지워 냈노라.”

이제 그는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할 수 없을 터.

그러나 역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악행이…… 뭐라고?”

“흔적을 지웠다던데……?”

관객들이 저들끼리 방금 내 발언을 해석했다.

“이제 이 인간은 더는 악행을 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에 RRR밴드 멤버들과 관객들, 주순진 모두가 침묵했다.

“야, 저기, 단탈리온. 그렇게 하면 저 사람한테는 더 좋은 거 아냐?”

앤디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 무슨 소리냐. 악행을 하지 못하면 살아가는 이유 따위 없지 않겠는가.”

“어…… 그러니까, 착해진다는 거잖아? 지금 네가 한 게?”

“그러하다.”

“사람이 착해지면 더 살기 좋아지는 거 아냐?”

이번에는 앤디의 말이 관객들의 귀에도 들렸는지 관객들도 수군거렸다.

“맞아. 착해진다는 거 아닌가?”

“착해지면 남들한테 피해도 안 주고 그럴 거고.”

“착한 남자 되는 건가?”

그런 이야기들을 내뱉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으며 고고한 자태의 어깨를 활짝 폈다.

“역시. 자네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성의 턱을 잡았다.

“앞으로 이자는 한없이 착해질 수밖에 없을 터.”

모든 악행의 기운을 불태우는 흑마법.

마계에서는 악마들에게 행해지는 최악의 형벌이었다.

마계에서 악행을 하지 않고서 살아간다?

그건 그야말로 노예가 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차라리 목숨을 끊어 주기를 바랄 정도로.

악마들에게는 치욕적인 삶을 예고하는, 마계 최악의 형벌이 바로 마왕이 행하는 ‘멘떼 보일리’였다.

“착해빠진 삶은 그 무엇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느니.”

그 말을 직접 보여 주기 위해서인 듯, 남성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하고서 말이다.

“여, 여기는…….”

“정신이 들었는가.”

나는 남성의 턱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갔다.

“가식의 불순물이 모조리 불태워진 지금, 자네야말로 가식 없는 진정한 천사가 되었느니라.”

“천…… 사……?”

사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공연장에 비치되어 있는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었다.

“아유 무슨 쓰레기가 이렇게…… 이건 제가 버리겠습니다. 네 저에게 주세요. 앗, 저기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휴 수고는요 무슨.”

갑자기 확 달라진 남성의 모습에 사람들 모두가 벙찐 얼굴을 했다.

몇몇 관객들은 남성의 모습을 계속해서 핸드폰에 담았다.

“훗. 남성은 앞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천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남성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밀어 올리며 웃었다.

“평생 존경이나 받으며 살도록.”

* * *

“미친 연출……!”

영상을 찍던 박은환이 잠시 카메라를 멈추고서 단탈리온에게 다가갔다.

“와……. 마왕군 컨셉 제대로 살린 연출이었어요.”

“이 몸에게 이 정도 마법은 아무것도 아니니라.”

단탈리온이 으스대듯 어깨를 들썩였다.

박은환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악마라더니 진짜 악마잖아!”

“악행은 필요하지! 나도 어제 회사 탕비실 다 털어왔거든!”

“어떻게 사람이 착하게만 살아! 그렇게 살면 숨 막혀 죽을걸!”

“메탈 밴드 답다!! 악행을 찬양하자!”

모두가 각자의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악행의 마음을 솔직하게 끄집어냈다. 단탈리온은 관객들의 반응에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떠한가. 자네들도 미천한 천사년놈들이 아닌, 우리 RRR 밴드가 이끄는 마왕군과 함께해 보겠는가!”

단탈리온의 외침에 관객들이 소리쳤다.

“네!!!!”

“목소리가 작다!! 이 몸의 마왕군 밴드와 함께하겠는가!!!”

“예에에!!!!!”

관객들의 호응을 완벽하게 유도해 낸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휙 잡고는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다음 곡. 여수 리사이클. 출진이다.”

마포 리사이클의 패러디 곡.

“여수우우…….”

여수 리사이클이 RRR 밴드의 다음 곡으로 이어져 흘러나왔다.

“퐈이야아아아아아!!!!!!!!!!!!!!!!!”

* * *

RRR 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단탈리온을 비롯한 멤버들에게 밴드의 너튜브와 인별그램 문의가 쏟아졌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나요?”

“좋아요 눌렀어요!”

관객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켜보던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땅한 태도니라.”

“넌 좀 감사해할 줄도 알고 그래야 해.”

앤디가 단탈리온을 타박했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그럴 필요가 있겠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마왕인 이 몸을 알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거늘. 이 몸이 거기까지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이더냐.”

그 말에 앤디와 제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러머님 너무 멋져요! 팬카페 같은 거 없어요?”

“베이시스트 언니도 걸크러쉬 최고! 카페 가입할래요!”

오늘은 RRR밴드의 팬카페에 대한 문의도 많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박은환의 도움으로 팬카페, 인별그램, 너튜브 안내가 제대로 나가고 있엇다.

“팬카페 링크는 여기 타고 오시면 돼요! 지금 가입하시면 드러머 오빠의 사인 스틱, 베이시스트 언니의 사인 피크를 추첨 선물로 드려요!”

“응? 여분 피크는 숙소에 있는데?”

“언니 쉿!”

“저도 스틱은 하나뿐인데…….”

“이참에 하나 더 사요!”

박은환이 제인과 오로바스에게 팬카페 회원을 늘리기 위한 공략임을 강조하며 설명을 했다. 제인과 오로바스는 양손을 곱게 모으고 박은환의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팬카페 이름이 뭐예요?”

카페에 가입한 관객이 물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하다면서 관객의 물음에 이어서 말했다.

“그러게. 카페 이름이 그냥 RRR밴드 팬카페야.”

무언가 아쉽다는 듯한 소감이었다.

박은환이 카페 이름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여기 보시면 FF…….”

“뻐킹 포크니라.”

그러나 박은환은 열려 있던 입술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단탈리온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관객들을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뻐킹…….”

“……포크?”

단탈리온이 양손을 크게 펼치고는 관객들을 품 안으로 안아 주듯 움직였다.

“그러하다.”

그리고 안아 주듯 품 안쪽으로 이동한 손이 엑스자 형태로 교차되었다.

그와 동시에 단탈리온의 엄지, 중지, 소지가 번쩍! 치켜올려졌다.

“자네들의 이름은 퍽지창을 상징으로 삼는 마왕군의 밴드, RRR밴드를 떠받드는 추종자들이니라.”

단탈리온이 교차한 팔에 힘을 잔뜩 주며 외쳤다.

“ROCK AND ROLL!!”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앤디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고.

“끄흑, 끅…… 끄학…… 뻐킹…… 크크큭…… 푸흡!!”

제인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박은환의 어깨를 잡고 몸을 들썩였으며.

“역시…… 단탈리온 님…… 마왕다운 당당한 자태입니다!”

오로바스는 단탈리온을 칭송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들의 반응을 본 관객들은.

“여기 컨셉질 장인이네.”

“저 정도 연기는 해야 팬으로 인정인가?”

“재밌어 보이는데! 정신 나간 연기!”

관객들도 퍽지창을 따라 하면서 소리쳤다.

“뻐킹 포크!!!!”

“롹앤롤!!!”

RRR 밴드의 팬카페. 마왕군 컨셉의 밴드를 추종하는 팬들의 모임 명칭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마계에서는.

“……망했다.”

“왜?”

시틀라와 에키드나, 그리고 모든 군단장이 한데 모여 단탈리온의 공연에 감동하기도 잠시.

“흑마법을 써 버리셨어.”

“뭐!? 흑마법 없이 공연하셨잖아?”

시틀라가 고개를 저으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연 중에는 안 쓰셨지만, 공연 안 할 때 쓰셨어.”

큰일이다.

시틀라가 불안한 듯 검지 손톱을 까득 씹었다.

“군단장들 전부 집중. 대책 회의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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