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39화 (39/110)

39화. 제안

단탈리온이 여수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시각.

“왔느냐.”

도미니온은 메타트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네, 메타트론 님.”

“방금 전라남도 여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

메타트론은 심각한 일이라며 미간을 좁혔다.

“여수라면, 흑마법이 추가로 느껴졌다는 그 지역이지 않나요?”

도미니온의 말에 메타트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수에서 흑마법이 느껴졌기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수의 한 광장에서 아주 충격적인 노래가 흘러나오더구나.”

아주 미세하게 기울어진 천칭을 바라보며 메타트론이 말했다.

“어쩌면…… 그릇된 생각을 갖고 인간들이 활개를 칠지도 모른다.”

“그릇된 생각이요?”

도미니온은 설마 싶어 물었다.

“에이, 인간들이 얼마나 신앙심이 높은데요. 메타트론 님이 너무 새가슴이라 그러는 건 아니신지…….”

“……잔소리가 부족하구나?”

“그게 아니고요, 그냥 너무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쓰실 필요 있겠는가, 싶어서…….”

도미니온이 살짝 꼬리를 내리자 메타트론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금 말했다.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노래가 나왔길래 그러세요?”

“썩어빠진 천사들의 행태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하등한 인간들보다도 못한 저급한 존재임을 고발하여 천사들의 날갯죽지를 찢어 버리겠다는 노래였다.”

그 말에는 확실히, 낙천적이기만 한 도미니온도 입을 손으로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그런 잔인무도한 표현의 노래가 있을 수 있단 말이죠?”

“내 말이 그 말이다. 게다가 가사도 아주 끔찍하더구나.”

메타트론은 차마 입에도 담기 어려운 가사라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나쁜 천사…… 년놈들.”

“!?”

“날개를 찢어…… 버릴 테다!!”

메타트론은 이런 표현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불경하다는 듯 큭, 신음을 냈다.

“나중에 인간들이 영상도 올릴 것이다. 궁금하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거라.”

“……말씀만으로도 정말 기분이 나쁜 노래네요.”

“그래. 그렇기에 그 노래를 부른 밴드를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도미니온도 이 노래는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천사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이건 거의 증오에 가깝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은 자잘한 흑마법 마력 따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인간들이 우리를 그릇된 증오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을 교정해 주는 것도 천사의 역할입니다. 그렇지요?”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여수로 갈까요?”

“찾아보니 RRR 밴드라고 하는 음악인들이더군. 홍대 부근에서 활동 중이라고 한다.”

“알겠습니다.”

도미니온이 자세를 취하며 메타트론을 향해 경례를 했다.

“중급 천사, 주천사 도미니온, 메타트론 님의 명령에 따라 대한민국 서울 홍대로…… 오?”

갑자기 도미니온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왜 그러느냐?”

“홍대면 제가 방금까지 있던 거기잖아요!?”

도미니온이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이럴 거면 왜 부르셨어요! 그냥 거기 있을 때 명령하시지!”

“낸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느냐. 잔말 말고 내려가거라.”

“아니 다시 천계로 돌아오느라 소모한 마력이 얼만데! 교통비도 안 주시잖아요!”

“자동 충전되는 마력만 사용하면서 교통비는 무슨. 얼른 내려가라.”

“그럼 백마법 제한 풀어 주세요!”

“떽. 안 돼. 넌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아 왜요! 백마법이라도 쓸 수 있어야 수지타산이 맞지!”

“맞지? 맞지이? 이게 좀 받아 줬더니 이제 나한테 반말이네? 그러다 나한테 처맞지?”

결국 메타트론에게 꿀밤을 다섯 대 연타로 맞은 도미니온은 백마법 금지령을 한 달 연장당하고서야 인간계로 다시 내려가게 되었다.

‘쓰읍,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인 꼴이네.’

정말로 혹이 난 거 같다며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도미니온이었다.

* * *

인터넷에서 RRR밴드에 대해 찾아보던 앤디가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뭐야? 왜 그래?”

“앤디. 무슨 일입니까.”

제인과 오로바스가 악기를 세팅하다 말고 앤디를 바라봤다. 앤디는 떨리는 눈동자를 하면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놔두거라. 또 퍽지창이니 뻐킹포크니 하는 거 때문에 충격을 받았을 터.”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앤디가 핸드폰 화면을 단탈리온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이거 보여? 여수에 쓰레기 처리남이라는 사람이 생겼대!”

“응? 쓰레기 처리남?”

화면을 확인한 제인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거……. 그때 우리 방해한 빌런 아재 아냐?”

“맞아! 지금 이거 때문에 난리야 난리!”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구나. 호들갑 떨지 말거라.”

단탈리온은 여전히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마이크를 잡고 꼿꼿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아니 야. 이 사람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 참, 답답하구나. 할 말이 있다면 한 번에 쭉 늘어놓도록 하거라.”

단탈리온의 타박에 앤디가 쓰읍, 심호흡을 하고는 결심이 선 눈동자를 했다.

“좋아. 잘 들어. 지금 이 여수 쓰레기 처리남 영상이 뜨면서 사람들이 이 사람이 어디에서 나왔나 궁금해하고 있어. 그래서 찾은 게 여수 공연인데, 우리 공연 영상을 촬영한 사람이 너튜브에서 ‘이거 그때 연출인 줄 알았는데?’ 하면서 글을 올린 거야. 그때 단탈리온 네가 흑마법 썼잖아? 그때부터 달라진 아재를 사람들이 추적했고, 그 결과 우리 밴드 공연 영상도 화제가 되어서 조회수가 급상승…….”

“천천히 이야기하거라. 정신 사나워서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앤디의 말을 끊은 단탈리온이 손을 휘저었다.

“아니 언제는 쭉 늘어놓으라며!”

“되었다. 요지는 덕분에 우리들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뜻 아니던가.”

“그…… 렇지.”

“그거면 되었다.”

단탈리온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다는 듯 두 팔을 촤락 펼쳤다.

“모두 이 몸의 계획대로 되고 있느니라.”

* * *

“…… 됐다.”

시틀라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힘겹게 말했다.

“이거면 마력 소모를 최소화해서 영상을 켤 수 있어!”

아직 단탈리온의 바로 옆에서 서번트처럼 사역 악마가 붙어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직 마력 소모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거라면 괜찮았다.

“단탈리온 님께 요청 드려서 이 마도구를 천장에 붙이기만 하면…….”

“말 그대로 방범 눈동자 역할을 한다는 뜻이지!”

에키드나와 만티코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결과물에 만족해했다.

“언제 어디서 천계가 움직일지 모르는 시점이다. 이런 방범 눈동자는 필수야.”

모여 있는 군단장들이 책상을 쾅쾅 내리치며 말했다.

“옳소! 천계년놈들을 족치지 못하면, 감시라고 해야지!”

“우리 마왕님께 해를 끼치기라도 하면 동귀어진하리다!”

“무식한 천계년놈들! 다시는 마계를 무시하지 마라!”

71위 마계 군단장들 모두가 천계의 행태에 대한 분노를 담아 원형 테이블을 내리쳤다.

강철과 오리할콘의 합금물로 만들어진 테이블이었기에 시틀라도 별걱정을 하지 않고 군단장들과 함께 테이블을 내려치며 싸움의 의지를 불태우려는 순간.

쩌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군단장들의 행동이 정지했다.

“…….”

“…….”

“…….”

모두가 숨을 죽이고는 시틀라의 눈치를 봤다.

시틀라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슬퍼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에 내려친 새끼, 나와.”

두 눈에 분노를 가득 담아 군단장들에게 잔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 * *

“테이블을 하나 새로 사야 하는 것이더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대비는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나는 합주실 바닥에 둘러앉아 다음 활동 의견을 나누고 있는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앤디는 한쪽 다리는 세운 모습이었고, 제인은 다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있었다. 오로바스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너지면 무너진 대로.”

[……네?]

“좌식 만찬이라든가, 좌식 회의도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은 테이블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걸 구매하려면 또 시틀라가 나에게 ‘이 테이블이 좋겠습니까’, ‘저 테이블이 좋겠습니까’, 이건 가격이 어떻고 저건 품질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할 게 뻔하다.

나는 그런 골치 아픈 짓을 하기보다는 마계코인 공급을 위해 더 밴드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고맙게도.

여수 쓰레기 처리남을 통해 알…… 고리즘? 이라고 하던가?

그걸 통해 RRR밴드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심지어는 우리의 노래가 들려오는 헬스장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즉, RRR밴드로서의 활동이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시점에서 고작 테이블 하나 부서진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시틀라에게 태연한 척 말했다.

“그러니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되느니라.”

[존명! 단탈리온 님의 깊은 뜻을 받들겠나이다!]

통신은 거기서 끊어졌다.

역시 시틀라.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들은 모양이다.

이제 쓸데없는 일로 나의 결재를 요청하지는 않겠지.

“훗. 그나저나 좋은 아이디어로다.”

나는 방금 시틀라가 전송해 준 눈동자 4개를 이리저리 굴렸다.

방범 눈동자라니.

시틀라와 군단장 녀석들.

생각을 아주 잘했도다.

“일반 CCTV로는 천계년놈들이 잡히지 않으니 이 정도는 필요하겠지.”

계속 내 옆을 따라다니는 눈동자는 그만큼 마력 소모가 크지만, 한 곳에 자리해서 그 구역만을 감시하는 거라면 괜찮다.

나는 방범 눈동자 하나를 합주실 천장에 달았다.

“야야야, 저거 뭐야!”

“누, 눈동자!?”

앤디와 제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걱정 말거라. 곧 사라지느니.”

내 말대로, 천장에 붙은 눈동자는 주변을 한 번 스윽 둘러보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미친, 꿈에 나올 거 같아.”

“으으 징그러.”

“저 정도면 귀여운 편입니다. 진짜 징그러운 건 따로 있지요.”

오로바스가 시루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를 들면, 이 시루베로스가 거대한 켈베로스로 변해서 산채로 생명체의 오장육부를 씹어 먹는다거나 말입니다.”

“……상상하기도 싫은데요 그건.”

앤디가 고개를 저었다.

“한창 떠들썩한 와중에 죄송해요!”

그때 박은환이 노트북을 펼친 채로 합주실에 들어왔다. 멤버들은 살짝 인상을 찡그린 채로 박은환을 맞이했다.

“어서 와, 1호 팬클럽 회원님.”

“네 언니! 그런데…… 다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냥……. 좀 징그러운 이야기들을 해서.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야?”

평소라면 박은환이 합주 연습 시간에 놀러 오는 일은 적었다.

가끔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영상을 촬영하겠다며 오는 정도였다.

“진짜 대박 사건! 대박 사건 나왔어요!”

박은환이 흥분한 목소리로 열어둔 노트북 화면을 멤버들의 앞에 보여 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돌 루시드 드림의 매니저, 박진주라 합니다!

RRR밴드의 공연 영상을 보면서 저희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나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연락드립니다!

밴드 리더분의 SNS계정이나 매니저님의 연락처를 제가 찾지 못해서 부득이 팬카페 회장님께 연락드립니다!]

아이돌 루시드 드림.

최상위 아이돌은 아니지만, 매니아층을 꽤나 탄탄하게 보유하고 있는 아이돌이었다.

물론, 루시드 드림을 알고 있는 멤버는 한 명도 없었기에.

“그러니까 루시드 드림이라는 걸 그룹은 말이죠…….”

박은환이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어야 했지만 말이다.

* * *

“호오, 꽤나 재미있는 아이돌이로구나.”

박은환의 설명을 다 들은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설명을 빌리자면, 루시드 드림은 걸 그룹 아이돌로 나름 이름을 떨쳤다.

특히, 특이한 컨셉과 노래로 유명했다.

“그 컨셉이 바로 락, 메탈이다, 이것이더냐.”

“네. 멤버들이 연주를 하거나 하는 건 아닌데, 분장이라던가 기본 리듬들이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박은환은 설명과 동시에 루시드 드림의 대표곡을 틀었다.

두두두둥!

쟈앙! 쟈쟈쟝!

정말로,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만든 노래들뿐이었다.

“장르 구분에도 락/메탈 이라고 적혀 있네.”

제인도 정말 의외의 조합이라며 흥미를 보였다.

“나도 이런 그룹은 처음 알았어. 근데 인기는 매니아층 정도라고요?”

앤디가 물었다. 박은환이 맞다며 부연 설명을 했다.

“아무래도 락, 메탈 사운드로 하다 보니까 홍보가 어려운가 봐요. 아니면 대중들이 선호하는 음악이 아닐 수도 있고…….”

“흠…….”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며 앤디와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RRR 밴드도 메탈 밴드였기에 인기가 없었으니까.

“좋다. 그래서, 우리가 루시드 드림이라는 아이돌과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이더냐.”

“참참!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박은환이 열어 둔 한글 파일 페이지를 보여 주면서 말했다.

“루시드 드림이 이번에 신곡을 준비하는데, 뮤비에 출연해 줬으면 한다고 해요!”

“뮤비라면 뮤직비디오를 말하는 것이냐.”

“네! 뮤직비디오요!”

뮤직비디오라.

확실히, RRR밴드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면 그 홍보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아이돌이 비록 최상위 아이돌이 아니라 할지라도.

“매니아층에게는 먹힐 만하겠는데?”

“메탈 밴드로서의 이미지는 괜찮을까?”

락과 메탈을 좋아하는 이들이 루시드 드림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을 터.

“좋다. 이들의 제안을 수락하마.”

“잠깐! 이미지는!?”

“메탈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면, 우리가 알려 주면 그만일 뿐.”

단탈리온이 입꼬리를 올리며 크큭, 웃었다.

“우리들의 메탈로 아이돌까지 추종자로 만든다. 불만은 없겠지.”

단탈리온은 아이돌도 메탈 팬으로 만들어 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돌만 끌어들인다면, 더 넓은 판의 인기를 얻어 나갈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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