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루시드 드림 (1)
“둘~ 셋!”
중앙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이 신호를 보내자 주변에 자리한 인원들 모두가 윙크를 하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꿈에서 만나! 안녕하세요! 루시드 드림입니다!!”
루시드 드림의 시그니처 인사말을 마친 멤버들을 보면서 사회자가 싱긋 웃었다.
“네, 오늘 게스트는 락, 메탈 사운드 기반의 걸그룹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룹이죠! 루시드 드림과 함께합니다!”
오늘 방송은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은 아니었다.
영상 스튜디오에서 너튜브 토크쇼를 하나 제작하고 있는데, 그곳의 게스트로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루시드 드림은 이게 얼마만의 방송이냐며 가볍게 수락을 했다.
“루시드 드림은 정말……. 와……. 다들 미인이세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루시드 드림의 리더, 최예진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다른 멤버들도 수줍게 웃으면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했다.
“저희 멤버들 특징은…….”
“좋아하는 음식이요? 매운 걸 좋아해요!”
그렇게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사회자가 돌발 퀴즈 게임이라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우리 구독자님들이 궁금해하실 법한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하는데요!”
사회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더인 예진 님은 가장 최근에 키스를 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네!?”
최예진이 난처하고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사회자는 그런 최예진의 반응이 재미있다며 흐흐, 웃었다.
“예진 님! 답변은요!”
“아……. 어……. 패스할게요!”
결국 답변 패스권을 하나 사용해 버린 최예진이었다.
너튜브 댓글에는 걸그룹 루시드 드림에 대한 평가들이 잔뜩 올라왔고, 최예진의 반응도 귀엽다, 예쁘다, 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음흉하고 질 낮은 질문을 받은 루시드 드림 멤버들은, 1부 촬영이 끝나자마자 대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후아!”
잠시 목을 축이던 멤버 한 명이 생수병을 테이블에 쾅 내려놓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언니, 진짜 무례하지 않아요?”
루시드 드림의 메인 보컬, 윤아현이었다.
“아니 아이돌한테 그런 거 물어보는 놈들이 어딨어요? 우리가 아무리 인기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아현아 그만.”
최예진이 손을 들어 윤아현의 입을 막았다.
“읍! 읍!”
윤아현이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최예진이 손을 내렸다. 윤아현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대기실 문을 노려봤다.
“그래도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너튜브에서 그 정도 수위면 그나마 다행이지. 안 그래?”
최예진도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기 없는 아이돌에게 이런 너튜브 토크쇼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런 기회를 살려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잖아.”
“언니, 그래도…….”
“거기까지. 질문은 내가 받았는데 왜 네가 화내니?”
최예진이 윤아현을 다그쳤다. 그러자 윤아현도 화를 억지로 삭인다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매니저 언니, 우리 이거 몇 시까지 있어요?”
“앞으로 두 시간은 더 찍어야 할 거 같아.”
옆에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던 박진주가 말했다.
“두 시간이나!?”
“아현아. 그래도 너무 불평하지 마. 오늘 이거 따오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박진주는 자신이 지금까지 노력한 일이 허투루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견뎌 주라. 응?”
“…… 알았어요. 언니 봐서 참아 볼게요.”
그렇게 토라지는 멤버들을 바라보는 박진주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다.
어떤 마음으로 키워 온 걸 그룹이던가.
루시드 드림은 그녀의 20대 청춘을 모조리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걸 그룹이었다.
유명 작곡가, 작사가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면서 좋게 보이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 덕분에 좋은 노래들도 받았고, 실제로 노래들에 대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루시드 드림의 노래는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홍보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퍼포먼스가 별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진주는 루시드 드림의 컨셉에 어울리는 프로젝트가 없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루시드 드림이 추구하는 음악이 락, 메탈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노래였다.
그런데 정작 밴드와 함께 작업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미디 작업으로만 메탈, 락 사운드를 만들어 왔을 뿐.
현장감 넘치는 실제 밴드와 함께 라이브, 뮤비 촬영, 콘서트 등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그녀는 루시드 드림의 노래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보기로 했다.
‘홍보는 기획사에서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까……!’
그녀는 루시드 드림의 노래가 완성도 있게 연출해 주도록 도와주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RRR밴드라는 헤비메탈 밴드에게 협업을 의뢰했다.
비록, SNS계정을 본인들이 관리하는 게 아닐지라도, 어쨌든 팬클럽 회장이든 매니지먼트든 누군가에게는 전달이 되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무색하지 않게.
“……어?”
박진주의 SNS계정으로 DM이 전송되었다.
[안녕하세요, RRR밴드의 팬클럽 회장이자 매니저(?)를 겸하고 있는 박은환입니다!
지금 옆에서 멤버분들과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다들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자세한 이야기 들어보고 싶습니다!]
RRR밴드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얘, 얘들아!!”
“네?”
“언니, 왜 그래요?”
루시드 드림 멤버들이 2부 촬영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박진주를 바라봤다.
“우리 뮤비 촬영! 이번에는 더 재밌을 거야!”
“네?”
고개를 갸웃하는 최예진을 향해 박진주가 소리쳤다.
“우리 이번에는 밴드랑 같이 찍을 거라고!”
* * *
“이건 세션 알바가 아니더냐.”
단탈리온은 박진주의 답장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그녀가 보낸 답장에는 RRR밴드가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해 줄 역할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보컬인 이 몸은 할 게 없지 않느냐.”
“하긴 그것도 그래. 아니면 단탈리온 보고 기타라도 연습하라는 거야 뭐야?”
앤디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제인도 앤디와 단탈리온의 말에 수긍한다며 말했다.
“이거는 사실 세션만 필요하지, 밴드 전체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아?”
오로바스 역시 지금의 사태에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단탈리온 님을 버리고 참가하라는 겁니까! 저 오로바스는 적극 반대하겠습니다!”
멤버들의 의견을 들은 단탈리온이 박은환을 불렀다.
“공식 팬 1호도 들었을 터.”
“네에…….”
“우리는 모든 멤버가 참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단탈리온이 펜을 들고는 앞에 놓인 수첩에 슥슥, 글씨를 적어 내려갔다.
종이에 나타난 글씨를 읽은 박은환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과연! 이거라면 괜찮겠네요!”
박은환은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며 박진주 매니저에게 쪽지를 작성했다.
거기에는,
“‘우리 멤버들 모두가 참여했으면 한다. 보컬은 피처링으로 들어가는 버전을 추가 촬영하면 좋겠다.’”
박은환이 작성한 쪽지의 내용을 그대로 읽은 제인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괜찮은데? 피처링은 마왕님 의견?”
“그러하다.”
단탈리온은 핸드폰으로 루시드 드림의 노래를 검색했다. 곧이어, 그의 핸드폰에서 루시드 드림의 타이틀곡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조금 듣던 단탈리온이 흑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락과 메탈을 알려 준다.”
경건하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단탈리온이 주먹을 쥐었다.
“그것이 헤비메탈 밴드, RRR밴드의 사명이다. 알겠는가.”
그것이 한낱 아이돌이라고 해도.
음악적 지식이 전무하여 밴드를 섭외하면서 보컬의 포지션을 놓쳐 버린 이들이라 할지라도.
RRR밴드의 수장, 위대한 정신의 지배자, 71위 마계의 지도자 단탈리온은 이들마저도 끌어안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악마는 이 몸의 저주를 받을 자격이 있느니.
그것이야말로.
“바로 마왕의 품격이지 않겠는가.”
단탈리온이 포옹이라도 하듯이 양팔을 활짝 펼쳤다.
* * *
마왕과 그의 수하들이 루시드 드림의 노래에 난입할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도미니온은 빙의된 인간을 이리저리 살피며 생각했다.
‘피부 관리 좀 하지.’
여기저기 푸석푸석한 피부를 매만지며 핸드백에서 화장품을 꺼냈다. 몇 가지를 만지작거리던 도미니온은 곧장 화장품을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하나도 모르겠어!”
인간들이 예뻐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만 있었을 뿐.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는 몰랐다.
-메타트론 님, 빙의 허가 요청합니다.
-거절한다.
-…… 빙의를 해야 악마들이나 다른 인간들이 경계심을 풀죠. 맨몸으로 내려가면 천계력이 계속 느껴질 텐데요.
그녀의 말대로, 천계의 천사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을 압도해 버리는 기운을 갖고 있었다.
왜, 도미니온이 홍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사람들이 계속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던가.
그렇게 이목이 집중되면 아예 밴드 멤버들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세밀한 조사는 더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끄응……. 좋다. 하지만 백마법은 금지다. 알겠느냐.
그렇게 해서 도미니온은 지금 거울에 비치는 인간의 몸으로 빙의할 수 있었다.
‘인간의 몸을 잠시 빌리는 거니까.’
빙의 제한 기간은 일주일.
그 시간이 지나가면 인간의 영혼이 약해지고,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도미니온은 정해진 일주일의 시간 동안 천계에 대해 불경한 마음을 품은 밴드를 최대한 조사한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악마와 마기의 행방을 쫓는다.
이 두 가지 목표를 갖고서 도미니온은 빙의한 인간의 볼을 한 번 꼬집었다.
“일주일간 잘 부탁해.”
빙의가 끝나면, 이 몸의 주인은 며칠간, 몽롱하게 보냈다는 정도로 기억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사고 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언니! 우리 다 정리했어요!”
“아, 응! 다 했니?”
황급히 핸드백의 지퍼를 잠근 도미니온이 어색하게 웃었다.
“? 무슨 일 있어요?”
“아냐, 아무것도. 정리 다 끝났다고? 이제 들어갈까?”
도미니온이 한 손에 핸드백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성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주 언니, 괜찮나……?”
도미니온, 아니 박진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루시드 드림의 리더 최예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빙의체는 정했느냐?
-네. 밴드라면 기획사에서 접근하는 게 가장 편하겠죠. 마침 적당한 레벨의 매니저가 있어서요.
그렇게 도미니온은 루시드 드림의 매니저인 박진주의 몸에 빙의했다.
빙의한 뒤 그녀가 가장 먼저 행한 일은.
‘후후, 이 밴드란 말이지?’
곧장 인터넷을 통해 RRR밴드에 연락을 취하는 일이었다.
그쪽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서 한시름 놓았나 싶었는데.
“…… 이건 또 뭔 소리야?”
박진주의 핸드폰을 바라보던 도미니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보컬이 하는 게 없어서요. 피처링 정도는 들어가 주어야 RRR밴드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완성된 노래에 피처링을 끼얹는다?
이거야말로 위험한 일이고, 완성도를 위해 몇 날 며칠을 더 밤을 새워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미니온이 누구던가.
순백의 영혼, 고고한 자태. 그 누구보다도 투명한 마음을 지닌, 항상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접근해서 함께하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중급 천사.
주천사 도미니온이 아니던가.
“에이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녀의 낙천적인 성격이 루시드 드림과 RRR밴드의 협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도미니온은 음악의 ‘음’자도 모르기도 했다.
그러니 일단 이 일을 벌이고, RRR밴드를 조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안 되면 백마법 쓰지 뭐.”
하늘 위에서 메타트론 님이 성을 내시는 게 보이기는 하지만, 도미니온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모르는 분야에 종사하는 인간에게 빙의해서라도 정보를 얻겠다는 천사에게, 설마 욕이라도 하시겠어?
“답답하면 통신 보내시겠지, 뭐.”
태연하게 짐을 정리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도미니온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메타트론은.
“백마법은 아니 되느니라, 도미니온아…….”
진즉 마력을 봉인해 버렸어야 했다면서 도미니온의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보던 메타트론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