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루시드 드림 (2)
락, 메탈 사운드를 컨셉으로 잡고 있는 루시드 드림.
그러나 정작 여태껏 밴드를 눈앞에서 본 적이 없고, 실제 밴드의 라이브 공연과 함께 해 본 적도 없었던 루시드 드림.
그런 루시드 드림에게 이번 RRR밴드와의 협업은.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그녀들의 노래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최예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주 언니가 진짜 섭외 잘하셨어.’
락, 메탈 사운드의 노래를 한다고 하면, 몇몇 이들이 밴드나 악기에 대한 지식을 묻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 답변할 수 있는 인원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말이 밴드 사운드 기반의 노래이지, 루시드 드림 멤버들은 정해진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멤버 중에서 최예진이 고등학생 때 스쿨 밴드를 했던 경력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키보드를 연주했고, 기타, 베이스, 드럼 연주자인 친구들과도 제법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도 친구들과 만나면 밴드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루시드 드림도 실제 밴드랑 같이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친구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소속사의 금전적인 문제로 항상 무산되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박진주 매니저가 제대로 한 건 해냈다.
‘이번을 기회로 더 날아오르겠어!’
최예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어떻게 이런 밴드를 섭외할 생각을 했나! 하하하!”
RRR밴드는 인터넷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밴드였다.
헤비메탈 밴드인데,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었고, 특히 라이브 공연이 기가 막히다는 감상평이 많은 밴드였다.
루시드 드림의 기획사 사장은 박진주의 안목을 칭찬하면서 거듭 강조했다.
“이 친구들 몸값 더 오르기 전에 빨리 계약서 쓰도록 하지!”
벌써부터 인터넷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면, 앞으로는 섭외 비용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루시드 드림의 사장은 그걸 이야기하면서 박진주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아주 잘했어! 우리 루시드 드림이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겠군!”
‘아오, 담배 냄새.’
도미니온은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를 참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오늘 촬영 잘하고 올게요.”
“그래그래! 아주 속전속결이구만! 훌륭해! 잘 다녀오라고!”
사장의 인사를 받으며 박진주, 도미니온은 빠르게 루시드 드림의 차량에 탑승했다.
“흐아…….”
“언니 고생했어요. 힘들죠?”
최예진이 운전석에 앉은 박진주의 어깨를 주물렀다.
“제 부탁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응?”
도미니온은 순간 그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했다.
“아, 아아! 그치, 예진이가 말해 줬던 게 갑자기 생각이 났었거든.”
“고마워요, 언니.”
도미니온은 박진주라는 여성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기억을 잡아냈다.
언젠가 최예진과 나누었던 이야기 중 밴드와 함께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다행이다. 안 들켰어.’
이래서 빙의한 상태로 다른 이들하고 엮이면 안 좋은데.
지금은 또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RRR밴드, 내가 그 실체를 파헤쳐 주도록 하죠.’
감히 천계와 천사를 능욕하는 가사를 쓰다니.
그 의도가 정말 불순하다면, 매서운 처벌까지도 고려하겠다고 다짐하는 도미니온이었다.
* * *
뮤직비디오 촬영장은 생각보다 넓었다.
“……우리 안 보이겠는데?”
“그러게…….”
애초에 이 장소는 루시드 드림의 뮤직비디오만을 생각하고 섭외한 장소.
밴드 악기들이 모일 거라는 예상을 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동선이 주인공인 루시드 드림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악기가 세팅되어야 하는 자리는 그들의 동선을 한참 벗어난 뒤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멀잖아.”
“이만큼만 더 가까이 가도 괜찮겠습니까?”
“그게 좀…….”
답답하기로는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진행 며칠 전에 세팅을 바꿔 버리겠다고 해 버렸으니 말이다.
“저희도 이게 최선입니다. 최대한 맞춰서 해 주세요.”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결국 앤디와 제인, 오로바스는 알겠다며 악기들을 세팅했다.
“흐음…….”
반면, 단탈리온은 세팅에 집중하고 있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촬영장을 천천히 배회했다.
“아! 저기 계신다!”
“안녕하세요!”
그때 루시드 드림 멤버들이 도착했다. 박진주, 도미니온이 먼저 RRR밴드의 멤버들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권했다.
“반갑습니다! 제가 박진주 매니저입니다!”
도미니온이 활기차게 인사를 하자 앤디와 제인도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RRR의 기타리스트 앤디입니다.”
“저는 베이시스트 제인이에요. 여기는 드러머 박진태!”
오로바스가 쾌남의 얼굴을 하고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오로바스에게 인사를 한 도미니온이 단탈리온을 가리켰다.
“저기, 저분은…….”
“야, 데스맨, 뭐 해?”
앤디가 단탈리온을 불렀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여전히 주변을 배회하고만 있었다.
“저기, 단탈리온 데스맨 씨?”
앤디와 제인, 두 사람의 부름을 들은 뒤에야 단탈리온은 꼿꼿하게 편 허리 옆에 손을 꽂고는 천천히 걸어왔다.
“단탈리온 데스맨이다.”
“어……. 박진주입니다.”
단탈리온의 얼굴을 확인한 도미니온이 생각했다.
‘단탈리온이라고?’
설마 71위 마왕은 아니겠지?
RRR밴드의 평소 컨셉을 떠올리던 도미니온은 고개를 저었다.
헤비메탈 밴드에서 자주 하는 악마 컨셉 예명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살짝 마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너무 옅은 냄새라 구체적인 근원지까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도미니온은 다시 활짝 웃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이름이 참 멋있으세요. 하하하…… 하…….”
“그러하냐. 고맙구나.”
그런 말투마저도 컨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RRR밴드는 생각보다 더 미친놈들만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RRR밴드를 바라보고 있던 도미니온은.
“이상하구나.”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말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독특한 공간이로군”
단탈리온은 계속해서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벽이란 벽은 다 만지고 다녔다. 스탭들도 단탈리온의 기행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 사장은 누구인가.”
“사장님…… 이요?”
공간을 관리하고 있는 담당자가 나왔다. 단탈리온은 사내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고.
“흐음…….”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다시 돌아왔다.
“야, 왜 그래?”
앤디가 묻자 단탈리온이 팔짱을 끼고는 공간의 벽 한쪽을 노려봤다.
“참으로 기이하도다.”
“왜?”
“……그런 게 있노라”
그때 도미니온은 단탈리온의 눈매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더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한 눈동자를 말이다.
* * *
‘뭐, 뭐야 이 인간!?’
도미니온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루시드 드림과 함께 이 공간을 들어오기 직전, 도미니온은 작은 결계를 쳐 두었다.
백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는 했지만, 백마도구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제한은 없었다.
그래서 도미니온은 건물의 바깥벽에 새하얀 말뚝을 두 개 박아 두고 나온 참이었다.
그 말뚝은 내부에서 마기가 끌어올려지면 경보를 울리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도미니온 자신의 청각을 강화하는 결계였다.
그래야 RRR밴드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지 상세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RRR밴드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곧장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는데.
“독특한 공간이로군”
마치, 지금 이 공간에 결계가 설치되었다는 걸 눈치챈 것처럼.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RRR밴드의 보컬이 걷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당황하거나 불안한 모습이 아니라.
이런 장난쯤은 웃으면서 받아 줄 수 있다는 듯한 여유가 넘쳐나는 자태로 말이다!
“자네가 사장인가.”
“아, 네 제가 사장입니다.”
“여기 공간은 이게 전부인가.”
“그렇습니다만…… 무언가 문제라도……?”
“되었다. 잘 알았느니.”
도미니온의 등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참으로 기이하도다.”
설마, 에이 설마, 천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도미니온을 향해 단탈리온이 눈빛을 날렸다.
그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도미니온은 저도 모르게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 * *
‘희한하군.’
나는 공간의 벽에 손을 짚어 보며 생각했다.
‘왜 여기는 화장실이 없지.’
인간의 몸은 참 불편하다.
제때 생리 현상을 해결하지 않으면 본 컨디션이 나오지 않는 불편함.
인간의 몸은 참으로 나약하다.
그걸 인정하는 것도 빙의체로 살아가기 위한 법칙이 되기에,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허나, 몸은 인간일지라도 영혼은 마왕인 이 몸이다.
최고의 품위를 지켜야 할 마왕이 상스럽게 화장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법.
나는 그저 태연한 척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루시드 드림이라는 아이돌의 매니저라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헉!”
“…….”
확실히, 지금은 나도 조금 상처 입었다.
지금 이 몸의 빙의체가 본체보다는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외모가 괜찮다 자부하고 있었거늘.
나는 고개를 돌린 박진주에게 다가갔다.
“두려운가.”
“네, 네!? 헉!”
“그럴 필요 없다. 금일 루시드 드림은, 마왕군인 우리와 전우다.”
나는 등에 걸친 망토를 촤락 펼치며 흐흐흐, 웃었다.
“그대들의 전쟁을 방해할 생각 따위는 없느니라.”
박진주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겨우겨우 답했다.
“아, 아하하, 네, 네! 감사합니다!”
‘이거면 되겠지.’
나는 몸을 돌려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앤디, 제인은 나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고, 오로바스는 양손의 엄지를 척 치켜올리며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단탈리온 님! 최고이십니다!”
“훗.”
“최고는 무슨 최고. 야, 지금 분장으로 그렇게 예고도 없이 다가가면 다들 기겁한다고!”
“맞아. 마왕님은 그런 예의를 좀 배우도록 해.”
단탈리온의 행동을 지적하는 앤디와 제인을 보면서 단탈리온이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하. 그대들도 준비나 하거라. 이제 곧 들어가느니.”
그 말대로, 곧 루시드 드림과의 협업이 이루어질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서 박진주와 루시드 드림 멤버들을 앞에 앉혀서 말했다.
“저희가 이 제안을 받고 밤새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죠…….”
앤디는 자신이 준비해 온 편곡 방향과 피처링 추가 버전을 이야기하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이번 노래가 메탈 사운드를 목표로 하셨다 해서, 저희가 편곡을 해 봤어요. 그러니 버전을 두 개로 해 보면 어떨까요?”
“버전을 두 개나요?”
“네. 기존의 파트와 내용은 그대로 가니까 퍼포먼스는 똑같이 유지해 주시면 되고, 저희가 연주를 더 강렬하게 얹는 형태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앤디의 제안은 아이돌 노래에 기타 솔로를 비롯한 연주 구간을 넣어서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루시드 드림 멤버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동의를 했다.
“네! 그럼 저희도 분장 좀 하고 올게요!”
“분장이요?”
앤디가 묻자 루시드 드림의 리더인 최예진이라는 여성이 싱긋 웃었다.
“이번 앨범에는 메탈 사운드를 더 많이 강조하려 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친김에 분장도 메탈스럽게 해 보려고 했어요!”
“어, 음……. 메탈스럽게…… 요?”
앤디가 말을 버벅이며 제인, 오로바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시뻘건 입술이 피칠갑을 한 것처럼 붉은빛을 내뿜고 있는 나. 짙은 스모키 화장과 해골 타투를 어깨와 볼에 새겨 둔 제인. 이마에 악마의 숫자 666을 캘리그래피로 새기고 보라색 아이라인을 그리고 입술은 양쪽을 찢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 놓은 오로바스.
“……이런 식은 아니시죠?”
“아, 아하하, 네,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네. 아무리 그래도 저희 아이돌인데요. 아하하…….”
최예진은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리더니 분장실로 사라졌다.
우리는 악기를 세팅하고, 그들은 부족한 분장을 하기를 한 시간.
“…… 어, 어때요?”
메탈 선배들에게 선보이는 분장이 조금 부끄럽다면서 최예진이 몸을 살짝 꼬았다.
“헉……!”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 앤디가 입을 틀어막았다.
“호오. 상급 악마, 서큐버스의 모방인가.”
루시드 드림의 분장과 의상을 바라본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녀들의 분장은 상급 악마, 서큐버스의 모습과 대부분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살짝 튀어나온 뿔은 머리띠로 표현했고, 치마는 서큐버스의 특징을 고려해서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인간들이 본다면 충분히 매혹적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허나 아직 부족하구나.”
“응? 뭐가?”
“서큐버스라면 응당 퇴폐미가 들어가야 하는 법. 지금은 너무나 얌전하구나.”
서큐버스의 특징은 퇴폐미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부족하다.
“야! 너는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응? 앤디여, 무슨 소리냐.”
“아이돌에게 퇴폐미가 뭐냐 퇴폐미가!”
“아무래도 자네는 착각하는 것 같군. 자네가 생각하는 퇴폐미란 무엇인가.”
이상하게 열을 올리던 앤디는 내 질문을 받더니 아무 말도 못 하고 버벅였다.
“그, 뭐냐……. 더 야하게 입거나 노출을 높이거나 뭐, 그런 거 말하는 거 아냐?”
“쯧쯧. 이래서 하등한 인간들은. 서큐버스의 퇴폐미라 함은 노출도에 있지 않도다.”
비단 옷을 벗거나 노출을 심하게 하는 게 아니라, 매혹적인 눈빛과 입술을 해야 하는 법이거늘.
“입술을 조금 더 진하게 그리고, 다들 몽환적인 눈빛을 하도록 하거라. 컬러렌즈가 있다면 붉은색이나 초록색을 착용하도록. 한쪽만 착용해야 하느니. 서큐버스의 눈은 오드 아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드 드림은 내 조언을 받아들이며 분장을 수정했다.
메탈 선배들이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제야 봐줄 만하구나.”
실제로 루시드 드림 멤버들은 기존의 분장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담고 나타났다.
“이거…….”
“괜찮은데……?”
게다가 루시드 드림 멤버들도 모두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훗. 마왕군과 함께하게 된 걸 환영한다.”
RRR밴드와 루시드 드림의 첫 콜라보가 시작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