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루시드 드림 (3)
루시드 드림의 분장도 끝났고, RRR밴드의 악기 세팅도 완료됨과 동시에.
마이크를 잡은 단탈리온, 악기에 손을 가져간 멤버들에게 스탭진이 외쳤다.
“자, 잠시만요! 그대로 사진 찍을게요!”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하기 전에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도 그 사진을 받아야겠구나.”
단탈리온도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열었다.
“다들 모이거라. 우리도 SNS에 기록을 남겨야 하느니.”
“아니 아니. 대열 무너뜨리지 마시고요!”
스탭진이 다가와서는 단탈리온과 앤디, 제인, 오로바스에게 다시 자리를 세팅해 주었다.
“밴드 분들은 자리에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는 척, 노래를 부르는 척해 주세요!”
“무어라?”
단탈리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히 이 몸에게 ‘척 질’이나 하라는 뜻인가! 부르고 있을 때 촬영하거라!”
“네에!?”
“마왕인 이 몸을 알현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거늘 어디서 미천한 인간…….”
“아하하하 죄송합니다, 저희 보컬이 컨셉에 진심이라서요~ 데스맨! 그만!”
성을 내는 단탈리온을 옆에서 달려온 앤디가 말렸다.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하는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잡고는 스탭진을 으르렁거리며 노려봤다.
“무서워…….”
“얼른 사진 찍고 본 촬영 들어갑시다. 살벌하네…….”
단탈리온에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스탭진이 서둘러 일정을 진행했다.
* * *
촬영은 제법 빠르게 이어졌다.
박진주, 도미니온은 루시드 드림과 RRR밴드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을 바라보면서 청각에 집중했다.
‘……마왕이야 진짜?’
단탈리온 데스맨이라고 하는 저 보컬.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악마가 저렇게 건방진 말투를 하지는 않겠지만.
‘왕’이기에 저런 말투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심증에 불과해…….’
실제로 저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보컬에게서 마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미약한 마력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마력 공감력이 높은 인간들에게는 꽤나 자주 나는 냄새였기에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거기에 RRR밴드는 메탈 밴드.
메탈 밴드는 악마들을 주제로 삼은 노래를 많이 부른다. 그걸 생각하면 단탈리온이라는 이름도 솔로몬 72위 악마의 지식 중 하나를 때려 넣은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이번 목적은 정찰에 있지 않았던가.
-정찰! 정찰만 해! 절대 나서지 말고 일 터지면 바로 천계에 연락해라!
메타트론 님도 강조하셨던 일이지 않은가.
백마법도 금지당한 마당에 굳이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도미니온은 그런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숨기면서 미소를 짓고는 연신 박수를 보냈다.
“잘한다! 루시드 드림!”
박진주는 루시드 드림의 일정 동안 항상 그녀들을 칭찬했었다. 그래서 도미니온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니저님 조용히 하세요! 영상에 소리 겹쳐요!”
“아, 죄송합니다…….”
‘내가 뭐 이런 걸 해 봤어야 알지!’
도미니온이 속으로 화를 내면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얏!”
그때 춤을 추고 있던 최예진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언니 괜찮아요?”
다른 멤버들이 달려와서는 최예진을 부축했다.
그러나 최예진의 눈이 뜨이지 않았다.
“예진아!?”
“언니! 언니 정신 차려요!”
도미니온도 예상치 못한 사태에 최예진에게 달려갔다.
“예진아? 예진아!”
백마법을 쓸까?
아니, 지금 봉인 중인데 어떻게?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갈까?
그런 생각을 해나가던 도미니온은 최예진이 넘어진 자리에서 이상한 향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 마기다.’
최예진을 부축하고 있던 도미니온은 그녀가 넘어진 방향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킁킁, 킁킁킁.
“큭!”
확실하다.
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냄새.
마계의 악마들이 사용하는 마력의 냄새.
마기가 분명했다.
‘당장 저걸 조사해야……!’
마기라는 건 흑마법이 발현될 때 잠시나마 그 공간에 머무르는 것.
제물이 있지 않은 이상 흑마법의 마기는 발현된 이후에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천계에서도 악마들의 인간계 출입을 감지하더라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지금 마기를 감지했을 때 바로 저 마기의 발현지를 찾아야……!
“흐음……. 수상하도다.”
그런데 그 현장에 단탈리온 데스맨이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얼굴을 가까이 대 보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저 인간!?’
마력이라는 건 천계와 마계 모두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기운이었다.
그 기운의 특성을 분석하려면 각자가 선호하는 방식이 있다.
누군가는 마기를 분해하고, 도미니온처럼 코로 분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호오.”
그래.
지금 저기 있는 단탈리온 데스맨처럼.
할짝.
혀를 대고 직접 맛을 보기도 한다.
‘아니 잠깐.’
단순히 마력을 감지하는 것도 아니고, 마기의 특성을 알아내려는 행위까지 하고 있다고?
대체 저 인간은 뭐지?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혀로 바닥을 이리저리 할짝이며 찹찹, 맛을 보더니 인상을 잔뜩 썼다.
남자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 마기를 혀로 찹찹, 맛을 보더니 인상을 썼다.
“참으로 지저분한 맛이로다.”
“야, 너 바닥을 왜 맛을 보고 있어! 정신 차려!”
기타리스트인 앤디가 단탈리온 데스맨의 양어깨를 잡더니 뒤로 질질 끌고 갔다.
“아니 되느니. 지금 더 분석하지 않으면…….”
“그니까 뭘 분석해 분석은! 지금 루시드 드림 리더님 다치신 거 안 보여? 분위기 파악 좀 해!”
“분위기 파악은 앤디 자네가 더 못하고 있도다.”
“알았으니까 제발 조용히 하고 이쪽으로 좀 오라고!”
앤디와 단탈리온 데스맨이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도미니온은 두 사람이 멀어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단순히 정신이 이상한 놈인가?’
마기를 맛본 것도 그냥 착각이었나?
너무 마기를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서 깊은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저 마기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냄새를 분석해 봐야……!
“……언니?”
“예진아, 괜찮아?”
최예진이 눈을 부스스 뜨더니 마른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예, 예진아?”
숨을 고르던 최예진이 멍한 눈동자를 하고는 멤버들을 둘러봤다.
“나 괜찮아. 계속해 볼까?”
“언니 다행이다…….”
“진짜 괜찮아? 할 수 있겠어?”
멤버들의 걱정 속에서도 최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하자! RRR밴드 분들도 죄송해요!”
최예진의 힘찬 외침을 들은 RRR밴드 멤버들이 괜찮다는 의미로 오른 주먹을 한껏 들어 올렸다.
“오케이! 그럼 다시 해 봅시다!”
스탭진이 신호를 보내자 다시 루시드 드림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재개되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장소 이동할게요!”
한 차례 촬영을 모두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추가 촬영을 진행했다.
새로 악기를 세팅해야 했고, 루시드 드림은 안무 동선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들이 필요했기에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재밌다!’
‘밴드 사운드가 들어가니까 확실히……!’
루시드 드림의 멤버들도 모두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최예진과 실제로 이걸 이루어낸 박진주에게 속으로 박수를 보내면서 각자의 파트에 맞춰 안무를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야!”
그때 또 최예진이 넘어졌다.
“언니!?”
윤아현이 넘어진 최예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오늘 컨디션 이상한가 봐. 잠깐 쉬고 할까요?”
“응……. 좀 머리가 아프네. 매니저 언니, 잠깐 쉬어도 될까요?”
“응? 응 그래, 그러자. 한 30분만 쉬고 갈게요, 감독님!”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도 어쩔 수 없다며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루시드 드림의 멤버들 모두 목을 축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 힘들다.”
“그래도 재밌다. 그치.”
루시드 드림 멤버들이 후기를 이야기하는 사이.
최예진은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말했다.
“저 잠깐 바람 좀 쐴게요.”
“괜찮겠어? 지금 비틀거리는데.”
“네, 괜찮아요.”
최예진이 힘이 쭉 빠진 다리로 겨우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도미니온은 주먹을 움켜쥐고 몰래 최예진의 뒤를 따라갔다.
* * *
“허억! 허억!! 크헉!!”
최예진은 몸을 절반으로 꺾고는 바닥을 향해 거친 숨을 내뱉었다.
“크헉! 헉! 이게 무슨……!”
무언가 이물질이 들어간 것처럼 몸을 들썩이던 최예진은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 20배라더니, 더 많은 거 같은데.”
최예진, 아니 최예진의 몸에 빙의한 악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확인했다…….”
최예진이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RRR밴드를 떠올렸다.
마왕 단탈리온.
인간계에서 밴드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런 모습으로 하고 있었다니.
“푸흡……!”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지 않은가.
악마 본인이 악마 분장을 하고서 걸그룹 뒤에서 아양이나 떠는 꼴이라니.
마계에서나 마왕이지, 인간계에서는 그냥 노예나 다름없지 않은가.
“푸흐흡!”
최예진이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여전히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20배의 마력 차이는 지금 최예진에게 빙의한 악마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악마는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으면서 조사한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걸 마계로 전송하고자 허공에 대고 마법진을 그리려는 순간이었다.
“역시.”
최예진의 뒤에서 검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너, 악마지?”
박진주, 아니 도미니온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하고서 최예진을 바라봤다.
“악…… 마?”
“예진이는 나를 그냥 언니, 아니면 진주 언니라고만 불러. 그런데 방금 넌 나를 매니저 언니라 불렀어.”
도미니온이 박진주의 기억을 되짚으며 방금 전 최예진의 말을 지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지금 그 손.”
“…….”
“손가락 끝에서 마기가 느껴지는데?”
“캬아악!!”
도미니온이 그대로 몸을 뒤로 피하며 손바닥을 들어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가려는 순간.
‘… 어라?’
생각하는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원래는 달려드는 최예진의 돌진을 피하고 곧장 백마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박진주의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이런……!’
평소에 박진주가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박진주의 몸은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했고, 결국 최예진의 태클을 받고는 맥없이 뒤로 쓰러졌다.
“아악!”
“후……. 후후……. 천사님들도 있다더니 진짜였네?”
악마가 붉은 안광을 빛내며 히죽 웃었다.
“혹시 천사님을 씹어 먹으면 마력이 확 보충되는 건 아닐까? 지금 나 너무 힘들거든.”
“이익……!”
움직여라, 움직여라. 박진주!
근육 하나 없는 몸이라지만 너무 약하잖아!
최예진이 박진주의 목을 꾸욱 눌렀다.
“커, 커헉…….”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은 여성이 평소 댄스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걸그룹의 힘을 따라오기는 쉽지 않았다.
실력 운운하기 전에, 빙의체의 신체 조건 차이가 지금의 승부를 만든 것이었다.
“헤, 헤헤……. 마왕님의 명령은 아니지만…… 천사님을 집어삼키면, 나 승진할지도 모르잖아?”
최예진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최예진의 입이 마치 아귀처럼 거대해졌다.
그리고 그 입이 박진주의 머리 위로 천천히 다가왔다.
살 떨리는 뾰족한 이빨을 사이사이로 내비치면서.
‘안…… 돼…… !’
빙의체인 인간이 당하면 자신의 영혼이 삼켜진다.
게다가 빙의체인 인간도 식물인간처럼 되어 버린다.
지금 박진주의 영혼을 제어하고 있는 건 도미니온 자신이었으니까.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빙의체인 인간, 박진주라도 구할 수 있……!
그 순간.
도미니온의 앞으로 희여멀건한 얼굴을 하고, 한 손은 주머니에 꽂은 채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남성이 다가왔다.
턱.
“……어?”
남성은 최예진의 뒷덜미를 오른손으로 부여잡더니 곧장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콰앙!!
“끄윽!”
최예진이 머리와 허리를 부여잡고 상대를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새끼가 내 식사를 방해……!”
“꿇어라.”
쿠웅!
악마는 남자의 말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저 몸이 반응했다.
어떤 공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저 남자의 기운이, 자신을 절로 무릎 꿇게 만든 것이었다.
‘대, 대체 무슨……!?’
저 인간도 천사인가?
아니, 천사라고 하기에는 이 기운은 너무나 사악한…….
아니, 어쩌면 방금 전에 봐 와서 어딘가 익숙하기도 한…….
“이 몸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는 크도다.”
“!?”
“그러니 고하거라.”
남성이 하등한 존재를 내려다보듯이 꼿꼿하게 섰다.
“소속과 이름이다.”
“히, 히익!”
머릿속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진 악마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비명만을 질렀다.
남성은 그 반응에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뚜벅.
“세 번은 말하지 않겠다.”
뚜벅.
“소속과 이름이다.”
“……!!!!!”
단탈리온은 마력을 잔뜩 끌어올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최예진, 악마를 찢어 죽일 듯한 기운을 담은 채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