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루시드 드림 (4)
장소를 이동하기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직 마력이 갈무리되지 않아 몸속을 헤매고 있는 지저분한 느낌.
최예진이 넘어진 자리에서는 그런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상하구나.’
다만, 그 마기는 이 몸과 같은 마왕의 마력이나 군단장 같은 최상급 악마들의 마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저급하고, 저열하며 품격 없는 마력이었다.
그렇다.
지금 이 마기는 잘 쳐 줘도 기껏해야 중급 악마 수준.
‘군단장도 버티기 힘든 인간계에 고작 이 정도의 악마가 내려왔다고?’
그 사실 자체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최예진이 바람을 쐬겠다고 말할 때 뒤를 쫓아와 봤거늘.
“소속과 이름이다.”
나는 최예진의 뒷덜미를 붙잡고 뒤로 휙 던졌다.
평소에 헬스장을 다니면서 운동을 했던 덕분인지 데스맨의 육체는 이전보다도 더 근육질의 몸이 되어 있었기에.
신체 강화술 퀘르포 타쿤의 효과가 더욱 높아져 있었고, 상대가 지극히도 방심하고 있었기에.
악마가 빙의해 인사불성이 된 인간을 뒤로 던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꾸준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군.’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최예진을 바라봤다. 악마가 빙의한 최예진은 사지를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그, 그, 그…….”
“그대는 어리석군.”
나는 마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보다 가까이, 최예진의 앞에 섰다.
“세 번은 없다 하였다.”
“치, 치치치, 칠십 위 마계 세, 세이렌! 세이렌입니다!”
세이렌?
아름다운 외모와 황홀한 목소리의 노래로 상대의 마음을 훔쳐 가지고 논다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은 악마이지 않은가.
그런 세이렌이 뭐가 아쉬워서 인간계의 아이돌로 빙의를 했단 말인가.
‘아니, 잠깐.’
방금 이 녀석은 70위 마계라고 했다.
70위면 세이르가 다스리는 마계이거늘.
그 녀석의 마계에서 왜 세이렌을 이쪽으로 보냈지?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지금 모두 듣고 있습니다.]
시틀라가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애쓰며 말했다.
‘세이르 측에서 지원군을 보낸다고 약속한 일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세이르 님은 단탈리온 님이 인간계로 내려가신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세이르가?
평소에도 그리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로 박복한 녀석이었던가.
“중급 악마 세이렌이여.”
“히, 히익!!”
“그대의 과오를 알겠는가.”
나는 세이르의 명령 없이 세이렌이 장난을 치려 내려온 것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자네의 죄를 살피거라.”
“저, 저는……!”
세이렌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 기세에 최예진의 머리가 쿵! 바닥에 닿았다.
“마, 마마, 마왕 세, 세이르니, 님의 명령, 에 따라 정찰을……!”
“……무어라?”
지금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지금 마왕 세이르가 보냈다고 하는 것이더냐.”
“예, 예예, 그, 그렇습니…… 끼야아아아악!!!”
세이렌이 비명을 질렀다.
최예진의 몸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20배의 마력 차이가 있는 인간계에 내려오자마자 제대로 마력 공급도 하지 못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자세히 고하거라.”
세이르가 보냈다고?
그렇다면 그 녀석은 내가 인간계에서 개고생을 하는 걸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를 보낸 것이었다.
나는 마력의 일부를 사용해 세이렌 주변에 작은 결계를 만들었다.
“마력 고갈을 잠시간 막아 주는 결계니라.”
“……! 가, 가, 감사하옵니다!”
“그러니 고하거라.”
내가 지금 형성한 결계에 있다면 마력이 모조리 고갈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터.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마력은 쉽게 고갈된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최예진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앞으로 당겼다.
그러자 세이렌의 영혼이 최예진의 몸에 달라붙은 채로 고무줄처럼 주욱 늘어졌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아!!!!!”
영혼채로 인간계의 햇빛을 쬐자 세이렌의 영혼이 불에 지져지듯 타올랐다.
그에 동반되는 고통은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최예진의 머리끄덩이에서 튀어나온 세이렌의 영혼을 잡은 손 그대로, 결계 안에 다시 넣었다.
“제때 말하면 영혼만은 살려 주도록 하마.”
감히 70위 마계에서 이 몸의 개고생을 무시한 채 부하 악마를 보냈다고?
간땡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구나!
“세이르가 자네를 보낸 경위를 고하거라.”
“죄, 죄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틀렸군.”
나는 다시 한번 세이렌의 영혼을 끌어당겨 결계 바깥으로 꺼냈다. 얼굴의 반쪽이 모조리 타 버린 세이렌이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사, 사사사 살려 주십시오!!”
“다시 한번 묻겠다. 경위를 고하거라.”
세이르가 보냈다고 한들.
아무리 마왕이 보냈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몸은 업무 수행 중이다.
71위 마계와 마계 전체를 되살리기 위한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와중이거늘.
감히 공무집행 방해를 했겠다.
세이르를 향해 혀를 차며 세이렌을 내려다봤다. 세이렌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저, 정찰입니다! 인간계의 상황이 어떤지 정찰을……!”
“현재 70위 마계는 작금의 사태를 어찌 보고 있다는 건가.”
“그, 그그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세이르 님이 인간계에서 단탈리온 님의 행보를 조사하라고 명령을……!”
설마 그 자식.
이 몸이 인간계에 있는 시기를 노리고 71위 마계를 노리고 있는 건가?
인간계에 내려온 마왕이라면 한없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을 테니.
당장 71위 마계로 전쟁을 일으키러 오면, 마왕이 빠진 마계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터.
‘그런 무식한 짓거리나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은 마계끼리 치고 박고 싸울 때가 아니거늘.
자칫 잘못하면 모든 마계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작금의 사태를 그리도 안일하게 보고 있다니.
나는 세이르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는 측은한 표정으로 세이렌을 바라봤다.
“세이렌이여.”
“예, 예!”
“그대는 아무것도 모르는가.”
세이르가 중급 악마 세이렌을 인간계로 보낸 이유.
그건, 쓰다 버려도 되는 패이기 때문이다.
인간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려 준 정보가 전부.
마왕들이 직접 인간계로 악마를 보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마계에서 인간계로 악마를 보내 정찰을 한다면.
혹시 모를 소멸의 위험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자네는 버려졌도다.”
하급 악마는 내려가자마자 소멸할 게 뻔하다.
상급이나 최상급은 괜히 잘못되어서 소멸해버리면 마계의 운용에 큰 차질이 생긴다.
마왕이 직접 내려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이 몸처럼 마력이 넘쳐흘러도 버티기 힘든 곳이 인간계다.
“그, 그게 무슨…… 분명 세이르 님은 인간계에서 공적을 쌓으면…….”
“지위와 보상을 약속했겠지. 허나 생각해 보거라.”
나는 세이렌의 영혼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 영혼을 다시 마계로 어떻게 올리겠다는 것이냐.”
“아……!”
그 말대로.
지금 세이렌의 영혼은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떻게든 마계로 돌아간다 한들, 지금처럼 상처가 가득한 영혼은 마계에 있는 세이렌의 본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자네는 목소리도, 아름다운 외모도 모두 잃은 상태가 될 터.”
“!!!???”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자신의 한 치 앞도 예견하지 못한 세이렌이여.
기운을 끌어올려 세이렌을 붙잡고 있는 손으로 마력을 흘려보냈다.
“크, 크허…… 억…….”
“그렇다면 최소한. 이 몸이 온정을 베풀도록 하마.”
이미 세이렌은 마계에 돌아갈 수 없는 몸.
돌아간다 해도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몸이 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두 다리와 팔 하나 정도는 마음대로 가누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세이렌의 최고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외모와 황홀한 목소리.
“이미 그대는 아리따운 성대도 잃었느니.”
세이렌의 목은 빙의할 때의 여파인지, 검붉은색으로 그을려져 있었다.
방금 전부터 세이렌의 목에서 쇳소리가 나오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살아갈 의미를 잃은 악마의 삶은 부정되어야 마땅하다.”
“아아…….”
세이렌은 이미 삶의 의욕을 잃었는지 두 눈의 동공이 풀려 있었다.
“저…… 는…….”
“이미 한계인가.”
나는 세이렌의 영혼을 잡은 채로 결계를 풀었다.
치이이이익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그대는 나를 원망해서는 아니 되느니.”
세이렌의 영혼이 타오르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가 짙어지면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고, 그 기운은 바람에 의해 하늘 위로 흩어졌다.
“꺄아아아아!!! 끼에에엑!!!
“자네를 보낸 마왕, 세이르를 원망하거라.”
세이르는 자신의 부하 악마를 사지로 내몰았다.
버려도 된다.
죽어도 된다.
그러니 죽기 직전까지 충성을 다해 명령을 수행하라.
지금 세이르가 세이렌을 보낸 경위는 딱 이 꼴이었다.
적당한 지위와 보상을 약속받은 세이렌은 중급 악마가 취하기 어려운 보상을 떠올리며 선뜻 자원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지금 보다시피.
“끼야아아아아!!!!! 세이르니이이이임!!!!”
이제는 세이렌의 목소리 따위 완전히 사라진 채, 끔찍한 최하급 마물의 비명 소리와 같은 절규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어느 누가 이 영혼을 보며 세이렌이라 생각할까.
“참으로…… 가련하도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이렌의 영혼이 모두 불타서 소멸되었다.
인간계의 20배 차이가 나는 마력을 견디지 못한 채로.
중급 악마로서 가질 수 있는 마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그리고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세이르에게 한없이 의문과 원망을 보내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70위 마계의 중급 악마, 세이렌이 소멸되었다.
나는 세이렌이 소멸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매니저여.”
뒤에서 이 모습을 모두 관망하고 있던 최예진의 매니저를 불렀다.
“가까이 오거라.”
손바닥을 들었다.
지금 이 모습을 모두 보게 된 인간이다.
인간의 기억을 지워 버려야 하느니.
자칫 잘못하면 이 몸의 행보가 인간들의 귀에도 들릴지도 모르는 일.
“감사합니다, 단탈리온 데스맨 님!!”
그때 박진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진이에게 접근한 극성 팬을 막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극성 팬?”
나는 미동도 없는 눈동자로 박진주를 바라봤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진심을 다해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 * *
‘악마가 소멸했어……!’
아니, 정확히는.
눈앞의 남성이 악마를 소멸시켰다.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 악마가 빙의한 인간을 한 손으로 집어 던지고.
-자네의 죄를 살피거라.
-이 몸이 온정을 베풀도록 하지.
마치 악마가 있다는 걸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듯.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리스트는 최예진의 몸에서 악마의 영혼을 가볍게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참으로…… 가련하도다.”
자신이 소멸시킨 악마에게 애도를 표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평범한 인간이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다고?
천계에서 보낸 인물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그럼 악마인가? 저 남성도?
아니, 악마라기에는 지금 저 행동들은 마치…….
‘악마를 처리하기 위해 생겨나는……!’
몇천 년에 한 명씩 나타나는 인물.
과거, 빛의 힘을 들고 성마전쟁에서 천계의 승리를 이끌어 낸 인물.
‘설마 용사의……!?’
-도미니온, 돌아오거라.
-하지만 메타트론 님, 저 인간이 정말로……!
용사의 후계자라면, 저 남자가 용사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거라면.
-오히려 저희가 접근을 해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우선 돌아와서 회의부터 하도록 하지.
도미니온은 메타트론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박진주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메타트론 님, 그럼 최소한의 온정이라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구해 주기도 하고, 백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천사를 대신해 악마를 소멸시켜 주었다.
이대로 그냥 가 버리면 천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알겠다. 하급 백마법 한 번 허용하마.
그래서 도미니온은 박진주에게 단탈리온 데스맨이 최예진의 극성 팬을 막아 준 은인이라는 기억을 심어 두었다.
인간계에서는 연예인의 은인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면 그만큼 얻게 될 파급 효과도 클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예진이가 극성 팬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예상대로.
박진주는 단탈리온 데스맨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하면서 어떻게든 사례를 하고 싶어 했다.
그걸 보고 있는 단탈리온 데스맨은 속을 알 수 없는 눈을 하고는.
스윽.
‘!?!?!?!?’
천계로 올라가고 있는 도미니온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방금 눈이 분명 마주친 것도 같았다.
‘역시……!!’
천사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인간.
저 남자는 용사의 후계자가 분명하다……!
도미니온은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빠르게 승천했다.
이건 대사건이다.
기울어지고 있는 천칭.
과거 성마전쟁에서 악마를 소멸시킨 용사의 후계자.
천계와 마계, 그리고 인간계에 다시 없을 역사가 새겨질 수도 있다.
그렇게 신나게 올라가는 도미니온의 아래에서 단탈리온은.
“…… 훗. 이 몸을 받들 거라.”
박진주의 감사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최예진을 구해 준 은인임을 있는 힘껏 과시하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린 채, 고개는 최대한 거만하게 위로 들어 올리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