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44화 (44/110)

44화. 루시드 드림 (5)

“언니…… 괜찮겠지……?”

윤아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최예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진주 언니가 갔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치? 아프기라도 하면…….”

멤버들의 격려에도 윤아현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최예진을 걱정할 뿐이었다.

초조하기로는 루시드 드림의 멤버들만큼이나 RRR밴드 멤버들도 지지 않았다.

“이 미친놈……!”

“대체 어딜 간 거야!”

앤디와 제인이 기타와 베이스를 붙잡고는 으르렁거렸다.

마왕이라는 놈인데 갑자기 사라졌다.

-잠시 바람이다.

단탈리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최예진이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야, 역시 말려야 했던 거 아냐?”

“뭘 말려. 말린다고 들을 사람, 아니 악마냐?”

제인의 말에 앤디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애초에 말로 될 일이었으면 지금까지의 고생도 없었겠지.”

앤디는 오늘날까지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단탈리온 님 덕분에 이 거지 같은 RRR밴드가 사람 구실 정도는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뭐!? 오로바스, 그래도 우리 거지는 아니었어!”

“거지 맞았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입이 거의 없었던 밴드였다. 제인은 인정할 건 인정하자면서 말했다.

“마왕님 덕분에 우리가 컨셉도 제대로 잡고, 인기가 올라간 것도 사실이고.”

“그건 그렇지…….”

앤디는 답답하다면서 주먹을 들고는 가슴을 퍽퍽 쳤다.

“어휴, 내가 가서 말렸어야 해. 단탈리온 없으면 우리 밴드는 진짜……!”

“밴드가 어쨌다는 거냐.”

“그렇잖아! 보컬 없는 밴드는 세션이야 세션!”

“훗. 잘 알고 있구나. 앤디여.”

“그럼 내가 리더인데……. 데스맨!?”

뒤에서 단탈리온이 악마처럼 입꼬리를 밀어올린 채로 서 있었다. 앤디는 화들짝 놀라며 기타 넥에 올려 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너, 너……! 어디 갔었어!”

“추종자를 만들어 왔노라.”

“추…….”

“……종자?”

“역시 단탈리온 님!”

두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앤디, 제인과 달리 오로바스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단탈리온을 우러러봤다.

“저에게도 그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옳은 생각이다. 새로운 추종자, 박진주와 최예진이다.”

이름을 잘못 들었나?

박진주와 최예진이라고?

에이 설마.

걸그룹 매니저랑 리더가 갑자기 악마를 추종하게 되었어?

그럴 리가 있나.

“또, 또또, 허세 부린다.”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거라.”

단탈리온이 살짝 몸을 비켜섰다.

그러자 뒤편에서 두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한 명은 루시드 드림의 매니저인 박진주.

방금 전까지 천사 도미니온이 빙의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루시드 드림의 최예진이 서 있었다.

악마 세이렌이 빙의한 몸으로 박진주, 도미니온을 공격해 버리기도 했던 인간이었다.

두 여성은 단탈리온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극성팬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 단탈리온이 도와준 상황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으니까.

“나의 새로운 추종자들, 박진…….”

단탈리온이 박진주와 최예진을 소개하려던 때였다.

“언니!?!?!?!”

“괜찮아요!? 머리가……!?”

루시드 드림의 멤버들이 부리나케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박진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최예진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예진은.

“아…… 아파…….”

단탈리온이 뒤로 던졌을 때 다친 머리에서 피가 주륵 흐르고 있었고, 서큐버스 의상은 수풀에 나뒹굴어 여기저기 찢어진 채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저항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폭력을 당한, 피해자처럼.

그렇다.

이를테면…….

“왜 이래, 예진 언니! 혹시 저 남자, 저 남자가 그랬어!?”

루시드 드림의 윤아현이 단탈리온을 씹어 죽일 듯이 경멸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 짐승만도 못한 새끼야!!!! 우리 언니한테 손대지 마!!!!!”

딱 오해받기 좋은 몰골의 최예진을 감싸면서. 윤아현은 아이돌의 이미지는 까맣게 잊은 채 단탈리온에게 욕설을 내뱉었고.

“야 이 미친놈아!!!!!”

“돌았냐고 마왕아!!!!”

앤디와 제인이 박진주와 최예진의 몰골을 보고 단탈리온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반면 오로바스는.

‘역시 단탈리온 님이다……!’

추종자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설령 상대가 하등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최선의 폭력’을 다하는 것.

그게 바로 마왕의 품격이란 뜻인가……!

오직 오로바스만이 지금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 * *

“죄송합니다아아!!!!!!!”

“다시는 오해하지 않겠습니다!!!!”

윤아현을 비롯한 루시드 드림의 멤버들이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소리쳤다.

나는 오른손에 부착된 해골 반지를 매만지며 거만한 눈으로 루시드 드림을 노려봤다.

“진정성은 느껴지나…….”

그런 오해를 해 놓고 겨우 말로만 끝내려 한다는 건가?

“성의가 부족하도다.”

무릇 마계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서라면 충성을 바칠 준비를 하기 마련.

그 과정에서 온갖 재물이나 마도구를 보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의 인간들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는 없겠지만.

“자네들 모두 이 몸의 추종자가 되어야겠다.”

이 몸을 향한 충성을 맹세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내 말에 루시드 드림의 멤버들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죄송해요…… 언니 도와주신 것도 모르고 저흰…….”

윤아현이라고 했던가?

나를 향해 욕을 했던 여성.

허나, 그게 자신이 따르는 대장을 위해 행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나쁘지 않았다.”

“네……?”

“왕을 지키기 위한 마음. 당연한 일이다.”

내 말에 윤아현이 두 눈을 꿈뻑였다. 그러고는 손등으로 눈을 슥슥 비볐다.

“아, 아현아! 화장 지워져!”

“이따 다시 할게요. 언니, 저분 누구예요?”

“저분? 단탈리온 데스맨 님.”

“단탈리온…… 데스맨…….”

윤아현이 이름을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언니, 우리 오늘 사건 기사로 낼 거죠?”

“당연히 내야지. 더는 극성팬 못 오게 하는 효과도 있고.”

“그럼 예진 언니. 우리가 이분들 밀어 주는 거 어때요?”

윤아현의 말에 박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를 제대로 해 드리자는 거지?”

“네. 사례금도 당연히 드리고…….”

“그건 내가 드릴 거야.”

최예진이 걱정 말라며 말했다.

“단탈리온 님께는…… 몇 번을 감사하다 말씀드려도 부족하거든.”

최예진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존경하는 이를 한없이 아득히 바라보는, 경외의 눈빛.

“옳은 눈이로다.”

무릇, 마왕을 추종한다면 저 정도의 눈빛을 가져야 하는 법.

나는 박진주와 최예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앤디와 제인이여. 이제 좀 진정하였는가.”

“아…… 응. 미안, 오해해서.”

“나도 미안…….”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단탈리온이 오른팔을 촤락 펼쳤다.

“그렇다면 촬영이다. 최예진이여, 가능하겠느냐.”

지금은 루시드 드림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는 시간.

벌써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곧 어둠이 찾아올지니.”

우리의 분장은 헤비메탈, 악마의 분장이었기에 오히려 어둠과 더 어울리는 법.

하지만 촬영이 길어질수록 흑마법의 버프는 유지하기 어렵다.

“할 수 있겠느냐.”

내 물음에 최예진이 힙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꼭…… 이번 뮤비에 여러분들도 주인공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리더가 외쳤기 때문일까.

루시드 드림의 다른 멤버들도 주먹을 꽉 쥐며 의지를 다졌다.

‘흑마법은…… 필요 없겠군.’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최예진을 바라보면서 나는 살짝 들었던 손을 다시 주머니에 꽂았다.

* * *

앤디의 기타가 사운드를 형성했고, 제인의 베이스와 오로바스의 드럼이 루시드 드림의 노래 반주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루시드 드림은 RRR 밴드의 반주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단 한 번, 그대의 눈동자를]

[올려다보던 나의 그 미소]

[가려진 그대의 눈에]

[키스를 날리는 나의 입술]

루시드 드림의 노래는 아이돌 걸 그룹의 노래답게 사랑스러운 목소리와 가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만, 그 기반의 사운드가 락과 메탈로 만들어지고 있었기에 다른 그룹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노래는 지금 RRR밴드에게도 제법 새롭게 들려왔다.

‘메탈이 아이돌 노래에도 어울렸나?’

‘이런 형태는 상상도 안 해 봤는데.’

앤디와 제인이 새로운 락 사운드에 흥미를 느끼면서 신나게 연주를 하고 있었고.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로바스가 힘차게 드럼 스틱을 위로 치켜들고는 마구 드럼을 내리쳤다.

두두두둥두두두둥!

챙! 챠챠챵! 챙! 두두두! 챙!

그렇게 한참을 연주에 집중했고.

루시드 드림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게 노래와 안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절이 끝나고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피처링.

[그대의 눈동자에 담긴 나는]

[한없이 아득한 어둠에 잠겨]

[그대 꿈속을 배회하네]

감정 전달력 강화 흑마법, 펜시 인텐시키온을 몸에 두른 단탈리온의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RRR밴드의 악기 사운드와 그 위에 덧입혀지는 보컬의 목소리.

루시드 드림은 안무를 하는 와중에도 단탈리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목소리…….’

‘메탈 밴드인데 목소리가 맑잖아……?’

[나의 영혼이 꿈을 잡아]

[그대 영혼의 꿈을 열어]

[우리 영혼은 끝없이 빠져드네]

[깨어나지 못할 꿈의 세계로]

눈을 감고 머리를 위로 살짝 들어 올린 단탈리온이 위로 올린 주먹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단탈리온의 피처링 구간이 끝나자 루시드 드림의 파트가 다시 시작되었다.

키이이잉!

앤디의 기타가 곡의 변주를 알렸고.

두둔, 두둔, 두둔.

제인의 베이스가 루시드 드림의 노래를 뒤받쳐 주었다.

[그대에게 키스를 하는 나는]

[오늘도 그대 꿈을 꿔요]

[사라져 버린 그대는 No more]

[슬피 울고 있는 나는 Oh want]

단탈리온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최예진이 가까이 다가왔다.

“앗……!?”

예정에 없었던 퍼포먼스였다.

지켜보던 박진주는 물론이고 루시드 드림 멤버들도 잠시 당황해했지만.

최예진의 얼굴이 단탈리온을 바라보며 매혹적인 눈동자를 하고 있었기에, 아무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를 지켜 준 사람…….’

분장을 저렇게 해서 그렇지.

사실 정말 멋진 사람이다.

자세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극성팬이 달려들었고, 나를 붙잡고 있을 때, 진주 언니가 달려왔고, 이어서 단탈리온 님이 구해 주었다.

진주 언니에게 상황을 일부 들었던 것까지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큰 은인을 얻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최예진은 조금이라도 더 단탈리온을 빛나게 해 주고 싶었다.

이 뮤직비디오는 루시드 드림의 뮤직비디오지만.

피처링의 가사처럼, 노래에는 주인공이 한 명 더 존재한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연인.

그 연인을, 단탈리온이 이 자리에서 연기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라져 버린 그대는 No more]

최예진이 노래를 하자 단탈리온이 그에 응답했다.

[우리 영혼은 끝없이 빠져들어]

[슬피 울고 있는 나는 Oh want]

[깨어나지 못할 꿈의 세계로]

몽마라는 서큐버스의 컨셉처럼, 루시드 드림이라는 그룹명처럼.

꿈을 주제로 잡고 이끌어 나가는 노래.

최예진이 노래를 하고

[아무도 못 만든 드림]

단탈리온이 음을 끌어 올렸다.

[모두 버린 드림]

[지나쳐 버린 그대를 잡지 못한]

그리고 두 사람의 고음이 동시에 발현되는 구간.

[We want make Dream!!!!]

[We want make Dream!!!!]

시원스러운 고음이 합쳐지며 조화를 이루어 냈다.

최예진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합이 맞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대박!’

평소의 몇 배는 더 좋은 실력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녀는 무표정한 단탈리온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컷!! 최곱니다!!!!!!”

루시드 드림의 신곡, ‘Make Dream’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재밌었습니다, 또 불러 주세요!”

루시드 드림과 RRR밴드가 서로에게 격려를 해 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최예진이 루시드 드림 멤버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둘~ 셋!!”

“우리 꿈에서 만나!”

루시드 드림의 인사말을 들으며 앤디가 헤벌쭉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 루시드 드림 팬카페 가입해야겠다…….”

정말로 서큐버스에게 현혹이라도 된 듯 멍하니 서 있는 앤디의 목덜미를 오로바스가 덥석 붙잡았다.

“자, 자, 얼른 갑시다.”

“너무 예뻐…….”

“으휴 이 푼수야.”

제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탈리온은 인사를 하는 루시드 드림을 보면서.

정확히는 악마에게 빙의했던 최예진을 바라보면서 악마처럼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훗.”

그러고는.

“꿈에서 보자꾸나.”

엄지, 중지, 소지를 꼿꼿하게 세운 채 엑스자로 팔을 교차시키며 외쳤다.

“롹앤롤!!!!!!”

지금 단탈리온의 얼굴은 검붉은 가죽 바지와 자켓을 입고, 시뻘건 눈과 쥐 파먹은 입술을 하고 있어 피칠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기에.

단탈리온의 퍽지창을 바라본 루시드 드림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꿈에 나올까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루시드 드림의 그 누구도 RRR밴드를 바라보며 인상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없이 고마워했다.

특히 한 사람은 그 마음이 각별했다.

“락앤롤!!!!!”

루시드 드림의 최예진이 해맑게 웃으면서 단탈리온이 하고 있는 퍽지창을 똑같이 따라 했다.

마치 악마에게 습격당한 마을을 구하고 유유히 떠나는 용사의 일행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루시드 드림의 팬카페에 RRR밴드의 도움을 감사해하는 최예진의 글이 올라왔고.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리스트, 아이돌을 구하다!]

[극성팬에게 시달리던 루시드 드림의 최예진, 메탈 밴드의 도움을 받았다!]

[루시드 드림 최예진 단독 인터뷰! RRR 밴드의 단탈리온은 어떤 인물?]

RRR밴드와 단탈리온의 이름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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