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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45화 (45/110)

45화. 황혼석

메타트론은 도미니온이 인간계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저 인간……?

설마 도미니온이 설치한 백마도구를 눈치챘단 말인가?

그 의심은 곧 이어.

-꿇어라.

-소속과 이름이다.

-가련하도다.

인간이 최예진의 몸에 깃든 악마, 세이렌을 끄집어내고 소멸시키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저 인간은 용사의 후계자, 혹은 용사의 능력을 이어받은 빛의 전사다.

그래서 메타트론은 도미니온에게 그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도미니온, 들어가겠습니다.”

인간계에서 돌아온 도미니온과 곧장 회의를 시작했다.

소파 가까이 온 도미니온은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며 불평부터 늘어놓았다.

“아니 메타트론 님, 용사의 후계자가 분명하잖아요. 그럼 천계에서 먼저 접촉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먼저 천계에서 도움이나 협업을 요청하면 용사의 후계자도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용사의 후계자니까.

천마전쟁 때의 용사처럼, 그 역시 천계의 편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네?”

메타트론이 손을 들어 공중에 화면을 띄웠다. 역대 용사들의 연혁이 적혀 있는 연대기가 주르륵 나타나면서 과거 용사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용사들은 지금까지 악마들을 사냥하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온몸을 희생한 존재다. 그렇지?”

“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죠.”

“하지만 용사는 약 오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태평성대했기 때문 아닌가요? 악마들이 꼬리를 숨기고 살았으니.”

도미니온의 말이 메타트론이 그 말도 맞다며 의문을 던졌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태평성대는 과거에도 있었지. 그리고 그때마다 용사는 천계의 천사들과 접촉해서 정보를 공유했다.”

“그건 지금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용사의 피가 미세하게 섞인 불완전자와의 소통일 뿐. ‘진짜’ 용사는 아니다.”

메타트론의 말에 도미니온이 잠시 생각에 잠기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 설마!”

도미니온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지금 예상하는 게 맞다면 용사는…….

“그렇다.”

메타트론이 침음하면서 뒷짐을 지고 바로 섰다. 그러고는 허공을 응시하며 용사들의 연대기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용사는 시대의 질서를 지키는 자. 그런 자가 최근 오천 년간,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제야 나타났다면…….”

메타트론이 손바닥을 들어 연대기를 앞으로 주르륵 가져갔다.

그러자 그곳에는 약 5천 년 전의 용사였던 인물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건만."

저 남성,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예명을 지닌 남성이 천계의 마력을 감지했음에도 침묵한 것.

끝까지 천사인 도미니온에게 인사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은 이유.

“지금 용사가 나타났다면…….”

그건, 인사를 할 이유 따위 없었기 때문이다.

빛의 힘을 지닌 이가 천계를 무시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마치…….

“5천 년 전…….”

메타트론이 5천 년 전의 영웅의 연대기 사진을 꿰뚫을 듯이 노려봤다.

“과거의 용사처럼…… 천계의 방대해진 힘을 제어하고자 나타난 것일지니.”

도미니온이 침을 꼴딱 삼켰다. 두 천사가 남아 있는 회의실에 공허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 * *

지나치군.

나는 손가락에 걸어 둔 반지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틀라여.”

[예, 단탈리온 님.]

“영상으로 모두 확인하였느냐.”

내 말에 시틀라가 납작 엎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감시 눈동자로 모두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저 아래의 인간들은 무엇이더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합주실.

앤디, 제인, 오로바스, 그리고 시루베로스까지 난처한 얼굴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인간들이 저리도 품위 없게 접근하거늘, 어찌하여 미리 알려 주지 않았단 말이더냐.”

바깥에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인간들이 합주실 앞에서 이 몸을 알현할 수 없는지 문의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박은환, 공식 팬 1호가 막아서고 있지만.

“정규 훈련을 받지 않은 이의 방패는 조만간 뚫리기 마련.”

나는 시틀라를 향해 붉은 안광을 내비쳤다.

“당장 쫓아 버리거라.”

[다, 다다다 단탈리온 님!!]

시틀라가 몸을 엎드린 채로 대답하는지 목소리가 바닥에 묻히는 듯했다.

[저들의 청을 받아 주심은 어떠하실지요……?]

“무어라……?”

감히 약속도 잡지 않고, 귀하신 이 몸을 프리패스로 알현하겠다고?

“자네는 이 몸에게 그걸 받아들이라는 뜻인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마기가 절로 끌어올려졌다. 시틀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그그 그게 아니옵니다! 오늘은 단탈리온 님께서 밴드의 리더로서 인간들에게 예의를 지킬 것을 요청하는……!]

리더로서의 품격인가.

마왕인 이 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하고, 그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기에.

나는 시틀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인가. 알겠다.”

“그럼 내가 리더니까 내가 대표로 나가서…….”

앤디가 앞으로 나서려 했다. 나는 손을 들어 앤디의 앞을 막았다.

“리더가 수하들을 챙기지 못해서는 아니 될 일.”

“……?”

“이 몸에게 맡기거라.”

마력이 잔뜩 담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달아 둔 손을 쥐었다 펴며 악마의 미소를 지었다.

“리더인 이 몸이 견뎌야 할 무게니라.”

천천히 일어서는 나를 보며 앤디가 조용히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걸 들으며 합주실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 RRR밴드 리더는 난데?”

자신의 위치를 오해하고 있는 듯한 말은 뒤로하고 말이다.

* * *

“나왔다!!!”

단탈리온이 합주실 문을 열자 대여섯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극성팬을 처리한 분 맞습니까?”

“예진 씨를 도와준 메탈 보컬 분!”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던 단탈리온이 눈을 찡그렸다.

“감히 이 몸에게 빛을 내리느냐!!!!”

단탈리온의 일갈에 기자들이 카메라를 든 손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고생했도다, 공식 팬 1호여.”

“감사합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기진맥진한 박은환을 합주실로 들어가게 만든 단탈리온은 멍하니 서 있는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용건이 있는가.”

“저기 인터뷰를 요청…….”

“이리도 품격 없는 알현 요청은 처음이로군.”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들었다.

[단탈리온 님! 당분간 흑마법은 안 됩니다!]

천사가 나타나기도 했고, 세이렌이 예고도 없이 인간에게 빙의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지금은 천계의 모든 감시망이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을 터.

시틀라는 그 점을 주의해야 한다며 단탈리온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답답하시겠지만, 천계의 경계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진 후에 하심이…….]

‘참으로 번거롭도다.’

마계와 천계의 격차가 이리 크지만 않았다면 훨씬 수월하게 움직였을 것을.

단탈리온은 쯧, 혀를 차고는 인간들에게 말했다.

“인기가 많아졌다 한들 모든 일에는 예의라는 게 존재한다.”

단탈리온이 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살짝 펼친 채로 들어 올렸다.

“공식 SNS로 알현을 요청하거라. 그리하면 일정을 받아들일지니.”

마계에서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마왕을 만나고자 이리도 무례하게 다가온단 말인가.

“기간은 1주일로 하도록 하지.”

단탈리온은 기자들에게 1주일의 시간을 주었다. 그 1주일간, 들어오는 인터뷰들을 진행한다.

그럼 1주일 후에는 무엇을 하느냐고?

당연히 밴드 활동을 해야 한다.

* * *

“……지나친데.”

앤디가 눈살을 찌푸리며 너튜브에 올라온 댓글들을 읽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예진 님이 그럴 리가 없다.”

“감히 우리 예진 님을 넘보려 해? 말도 안 되는 연극이다.”

“이름도 없는 헤비메탈 밴드 주제에 우리 드리미들이랑 같이 하나 했다고 뭐라도 된 줄 아냐. 주제를 알아라.”

“얘들 찾아보니까 음원도 없음. 실력 없는 애들이 드리미들에게 편승하려는 거 아님?”

앤디가 내용들을 읽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거, 이미지 더 엉망 되는 거 아냐?”

확실히 너튜브에 올라온 댓글들은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루시드 드림의 팬층은 최상위 아이돌처럼 넓지는 않았지만, 코어 팬층은 꽤나 두터웠다. 그렇기에 이번 루시드 드림 사건을 두고 팬들의 반응은 절반으로 나뉘었다.

처음에 나온 건, 당연하게도 RRR밴드와 단탈리온에 대한 칭찬과 격려였다.

리더인 최예진을 도와주어서 고맙다, 당신들의 음악을 더 들어 보겠다 따위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에는 지금 앤디가 읽은 댓글들과 같은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해명이라도 해야 하나?”

제인도 조금은 걱정된다면서 마우스를 옮겨 잡았다.

“그럴 필요 없다.”

반면, 단탈리온은 평온하게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기울였다.

“우리들의 악명이 높아진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 아니던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

앤디가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데스맨, 이건 중대 사안이야.”

“무엇이 말이더냐.”

“루시드 드림은 어찌 되었든 아이돌이잖아. 그런데 아이돌을 우리가 마치 이용하거나 건드린 것처럼 됐잖아.”

“이용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탑승하고자 했도다.”

“그…… 건 맞지만…… 음…….”

더는 뭐라 할 기력도 없는지 앤디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어쩌지. 이거 이대로 괜찮을까?”

“괜찮지 않겠습니까, 앤디 님.”

오로바스가 드럼 스틱을 촤락, 한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우리 RRR밴드는 헤비메탈 밴드, 악마를 숭배하는 밴드입니다. 악마라면 악행 정도는 당연한 법입니다.”

“……대화가 안 통하는 건, 둘 다 인간이 아니라서가 맞겠지?”

“나도 그 의견에 동의.”

제인이 살짝 손을 들면서 단탈리온과 오로바스에게 물었다.

“악마님들은 그러실지 모르지만, 인간들은 그게 아니야. 아무리 헤비메탈 밴드라 해도 정도가 있어.”

“그건 알고 있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미 준비를 해 두었느니.”

“준비?”

앤디가 묻자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기다리듯 손가락을 들어 책상 위를 톡, 톡, 두드렸다.

“되었는가.”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검붉은 빛이 나타나더니 작은 보석 하나가 나타났다.

“……이게 뭐야?”

“황혼석이다.”

그가 손에 들린 보석을 주머니에 넣으며 앤디에게 명령을 내렸다.

“앤디여. 계정으로 문의가 온 언론인은 몇 명인가.”

“음……. 다섯 명?”

“모두 답장을 보내거라. 소수정예들을 데리고 기자회견을 하겠노라.”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앤디가 중얼거리면서 SNS로 들어온 문의들에 답장을 보냈다.

장소와 시간은 바로 다음 날, 이곳 합주실.

정해 둔 일자에 맞춰서 오는 기자들과 이번 루시드 드림 최예진과 있었던 일들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확실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게 단탈리온의 목표였다.

* * *

한 남성이 카메라를 들쳐메고 차량에서 내렸다.

짧은 단발머리를 한 손으로 살랑 넘기며 커다란 백팩을 꺼낸 남성은 준비물들을 모두 챙겼는지 확인했다.

“명함 있고, 카메라 있고, 배터리 충분하고, 녹음기 있고, 핸드폰 두 대랑 노트북…….”

준비물을 모두 확인한 남성이 핸들을 꽉 붙잡았다.

“후우…….”

오늘은 연예부 기자로서 첫 인터뷰 취재를 나가는 날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루시드 드림을 도와준 밴드…….”

JB방송국의 연예부 기자, 김무석이 침을 꼴딱 삼켰다.

과연 루시드 드림의 최예진을 구해 준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너튜브로 이들의 공연 영상을 봤을 때는 노래와 퍼포먼스, 모두 나무랄 데가 없어 보였다.

게다가 헤비메탈 밴드다운 기상천외한 연출.

갑자기 말머리 드러머를 마술로 소환한다거나, 강아지에게 머리 두 개 달린 옷을 입힌다거나 하는 식들.

정말 악마들이 내려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출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퍼포먼스만 좋았다면 김무석은 인터뷰 요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력이 있을 거야.”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라이브 실력을 보여 준 밴드가 몇이나 있었던가.

게다가 나올 때마다 자작곡을 들고나오니, 이들의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이들이 정말 루시드 드림을 도와준 밴드라면, 앞으로 이들의 앞길은 꽃으로 가득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김무석은 주먹을 말아 쥐며 다짐했다.

‘내가 이들 전담 기자가 된다!’

그게 사회초년생 연예부 기자, 김무석의 성장을 돕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김무석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무석을 비롯한 기자들은 단탈리온이 준비해 둔 의자에 앉아 두 눈을 멍하니 뜬 채.

“으어어어어어어…….”

양초 수십 개로 만들어진 마법진 안에서 작은 신음 소리를 내뱉고 있었고.

“훗. 몽마황혼석의 힘은 어떠한가.”

몽마들이 100년에 한 번씩 만들어 낸다는 몽마황혼석. 그 황혼석의 빛을 쬔 이들은 몽마가 만들어 낸 꿈을 현실이라 믿으며 받아들이게 된다.

“히이이익!!”

“나였으면 도망쳤어어!!!”

“저런 정신 나간 놈이!!”

몽마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영상. 그 안에는 ‘안경을 끼고 뚱뚱한 체형에 피부는 지저분한데다 다 늘어진 저급한 백팩을 메고 일주일은 씻지 않아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덥수룩하니 지저분한 수염을 하고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머리 위에 모자를 올려 쓴 남성’이 루시드 드림의 최예진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그들의 눈앞에 아이맥스 4K 영상처럼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고.

“죄죄죄죄죄죄죄죄송합니다!!!!!”

김무석은 마치 자신의 과거 모습을 투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을 잔뜩 지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두 눈 똑똑히 뜨고 바라보거라.”

단탈리온이 양팔을 들어 올리며 황혼석의 빛을 기자들을 향해 더 진하게 내리쬐었다.

“그리고 이 몸의 활약을 자네들의 저급한 뇌 주름에 박아 두도록 하거라.”

시틀라에게서 전송받은 몽마황혼석을 들고 있는 단탈리온이 스산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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