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46화 (46/110)

46화. 음원

처음에는 헤비메탈 밴드라서 그런가, 미친 컨셉을 과시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어서들 앉거라.”

그도 그럴 게, 처음 우리를 맞이한 저 보컬은 한눈에 봐도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던가.

방 주변에는 판타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주변을 작은 양초들로 밝히고 있었다.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본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비롯한 기자들에게 차를 내주었다.

“천천히 들게나.”

이곳에 모인 이들의 목적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RRR밴드가 정말 루시드 드림의 리더인 최예진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

그게 사실이라면, 아이돌 팬 중 극성팬들에게는 경각심을 줄 수 있고, 루시드 드림과 RRR밴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름을 더욱 알릴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의 기자회견 같지 않은 기자회견은 중요한 자리였다.

그런데 저 남성은 방금 전부터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저기……. 슬슬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기자가 손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치 막힌 혈이라도 뚫린 것처럼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끼던 찰나.

“옳은 생각이로다.”

단탈리온 데스맨이 주먹을 말아쥐고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파아아앗!!!

밝은 조명이 눈에 비추듯 들어왔다.

눈이 부셔서 잠시 눈을 찡그렸다가 다시 떴다.

다시 뜬 눈앞에 나는.

“꺄아아아아악!!!”

“흐흐흐, 흐흐…….”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 * *

두렵다.

“흐흐흐흐.”

저 모습, 익숙한 몰골이다.

“꺄아아아아악!!!!”

루시드 드림의 리더, 최예진.

그녀를 앞에 두고서 가만있을 수밖에 없는 이 무력감.

“흐흐,흐흫, 흐흐흐. 사, 사사, 사랑, 사랑해 예진이, 흐흐흐.”

인스턴트만 먹어 몸만 비대하며 씻지도 않아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최예진에게 다가가고 있다.

“아, 아아아!!”

김무석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죄죄죄죄죄죄송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남성은, 그렇다.

대학을 갓 졸업한, 취업준비생일 때 공부가 싫어서 아이돌 덕질을 하던 자신의 몰골과 똑같지 않던가.

당시 여자친구는커녕 사람들과의 교류도 무서워하던 김무석이었다.

아이돌은 그에게 하나의 빛이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품에 안고 살아가던 도중, 자신도 지금 눈앞의 남성처럼 선을 넘은 적이 있었다.

팬 사인회를 왔던 아이돌에게 말 한마디 못 하고는 종이만 내밀고 있다가.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최, 최최, 최…….

공부만 하던 그에게 타인과 ‘직접’ 말을 섞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눈앞에 앉아 있는 아이돌 멤버에게 그만.

-최예미 사, 사사, 사랑해!!!!!

-……아하하, 저도 팬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

그렇게 외친 자신에게도 밝게 웃으며 사인을 해 준 아이돌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내뱉은 그 멍청한 말에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

당시 김무석은 아이돌의 사인이 적힌 종이를 빼앗듯이 훽 낚아채고는 부리나케 현장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었다.

그때부터 김무석은 다짐했었다.

이런 찌질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당당하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아이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겠다고.

그런데 지금 앞에서 보여지는 이 남성은.

“예, 예예, 예진아. 사, 사랑하, 한다니까?”

자신이 아이돌 덕질을 하던 시절, 대인기피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살아가던 때.

그때 당시, 최예미라는 아이돌에게 했던 그 모습과 거의 일치하지 않던가.

그 당시의 나는 몰랐지만, 그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찌질한 인간이었어서 죄송합니다!!!”

나를 바라보며 한없이 한심하게 바라보고, 아이돌에게 민폐나 끼치는 인간 말종이라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 어찌 수치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김무석의 수치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이어서 등장하는 한 남성.

“꺼져라.”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RRR밴드, 헤비메탈 밴드의 남성이 악마 분장을 하고서는 남성을 한 손으로 들어 던져 버렸다.

앞서 보여 준 남성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그래, 이건 그야말로.

“여, 영웅!!!!”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해 내는 빛과 같은 영웅 그 자체였다.

물론, 단탈리온 데스맨의 분장 덕분에 악마가 저 남성을 혼쭐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다들 잘 알겠느냐.”

더 이상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진실.”

양팔을 옆으로 크게 펼친 단탈리온 데스맨이 입꼬리를 사악 올리면서 말했다.

“이 몸을 받들거라.”

“단탈리온 데스맨 님!!”

“영광이옵니다!!”

현장에 자리하고 있던 기자들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영웅이다! 이 사람은 영웅이야!!!”

김무석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단탈리온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신의 은총이라도 받고 싶어 간절히 기도하는 신도처럼.

그리고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기사에 이 모든 내용을 싣는다.

아직 무명인 밴드이지만, 실력도 갖췄고, 인성은 더더욱 훌륭하다.

특히 단탈리온 데스맨은 남성적인 매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연예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을 두루두루 보유하고 있는 신성(神聖)!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드는 저 고결함! 고품격 자세! 도도한 걸음걸이! 거룩하고도 위엄이 느껴지는 목소리!

“롹앤롤이로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양손에서 엄지, 중지, 약지만이 꼿꼿하게 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자들도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락의 정신을 하늘 높이 우러러 칭송하듯.

‘속죄……!’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을 직접 목도하고, 그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단탈리온 데스맨에게.

최대한의 감사의 감정을 담아.

이들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써 주어야 한다고.

그게,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당시 피해를 준 아이돌, 최예나와 다른 팬들에게 전하는 사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김무석은 녹음기를 붙잡고 있는 왼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롹앤롤!!!!”

* * *

‘훌륭하군.’

나는 손에 쥔 몽마황혼석을 느끼면서 앞에서 퍽지창을 올리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봤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아이돌 민폐 덕후’의 인상착의를 토대로 서큐버스들에게 꿈을 만들어 내라 명령했다.

그 꿈을 통해 만들어 낸 환상을 저들이 직접 목격하도록 만들고, 그걸 진실로 받아들이게끔 뇌리에 심어 박는다.

서큐버스의 몽마황혼석만으로는 그 힘이 부족하겠지만,

거기에 시틀라와 11군단장들 모두의 힘이 깃들어지고.

마지막으로 이 몸의 주술이 들어간다면.

“훗. 이 정도의 마음 심기는 어렵지 않도다.”

사실 몽마황혼석은 100년에 하나 나올 수 있는 귀중한 보석이었기에 남발할 수는 없다.

게다가 현재 마력과 마계와 천계의 격차 등을 생각하면 펼칠 수 있는 몽마황혼석의 효과는 고작 합주실 크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영웅을 받듭니다!!!”

여기 모인 기자들의 마음에 RRR밴드의 리더, 단탈리온 데스맨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 줄 수 있다.

게다가 말이다.

[확실히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틀라의 말대로였다.

마도구를 활용하면 마력이 감지되지 않는다.

감지된다 하더라도 가까이 다가와서 세밀하게 분석을 해야 감지할 수 있는 수준.

시틀라와 11군단장 에키드나가 보내 준 마도구를 합주실 바닥 주변에 설치하고, 마법진을 그려 기자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들어오자마자 발동시킨 마법진 효과는 딱 합주실까지만 영향을 미치고, 마도구로 결계를 만들어 마력 유출을 막았다.

그 덕분인지 지금 천계의 움직임은 확인되지 않았다.

“훌륭하도다, 시틀라여.”

[감사합니다, 단탈리온 님! 위대한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의 충성심 어린 경례를 들으며 나는 두 팔을 들었다. 그러고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는 기자 한 명에게 다가갔다.

“좋은 기사를 쓰도록 하거라.”

“……!!! 물론입니다!!!”

훗. 다음날이 기대되는구나.

* * *

[나의 과거와 목도하다]

[루시드 드림의 극성팬 사건은 아이돌 덕질을 하던 기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나 역시 한때는 아이돌의 극성팬이었으며…….]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 단탈리온 데스맨, RRR밴드. 마치 영웅과도 같은 그들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다.]

JB방송국의 홈페이지에 이와 같은 칼럼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김무석 연예부 신입 기자.

연예계의 사건에 대한 의견을 싣는 칸.

비록 신입 기자였기에 그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김무석은 주어진 칼럼 작성 1회를 루시드 드림과 RRR밴드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그 기사가 올라간 직후.

[우리 드리미들이 오늘 기사에 떴어요!]

[단탈리온 데스맨님, 앤디님, 제인 언니, 오로바스님, 그리고 사진으로만 봤지만 너무너무 귀여운 시루베로스! 다들 잘 지내시죠? 조만간 또 합동 공연해요!]

[기사 링크: https://n.news.naver.com/jbartmagazine]

[우리 팬들은 다들 꼭꼭 들어가서 기사 봐주기!]

루시드 드림의 공식 SNS계정은 물론이고, 최예진의 개인 SNS에도 기사 링크가 올라왔다. 게다가 이 사건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해당 기사 링크를 클릭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예진 언니!!!!!”

“왜 그래 아현아?”

“방금 차트 봤어!?!?”

루시드 드림의 노래가 각종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에서 잠깐이지만, 30위권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최상위 랭크는 아니지만, 루시드 드림 같은 중위권 아이돌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꿈만 같은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루시드 드림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RRR밴드가 어떤 밴드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파급효과는 RRR밴드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앤디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단탈리온을 향해 핸드폰을 내밀었다.

“너, 저번에 뭘 한 거야?”

“무엇을 말이더냐.”

“설마 흑마법 시전한 건 아니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흑마법이 담겨 있는 몽마황혼석을 이용한 것뿐.

흑마법을 단탈리온이 직접 시전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단탈리온은 그런 적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앤디여, 자네는 참으로 의심이 많도다.”

“의심을 많이 하게 만들잖아 네가…….”

“그건 그렇고 말이다.”

단탈리온이 인상을 쓰면서 앤디와 제인을 돌아봤다.

“왜 우리의 노래는 음원 차트에 올라오지 않는 것이더냐.”

이상했다.

루시드 드림의 노래는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역주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렇다면 RRR밴드의 노래 역시 급상승해야 하는 법이거늘.

“너튜브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던가.

물론, 시틀라는 이전보다도 더 마계코인 수익이 늘었다며 좋아하기는 했지만.

루시드 드림과 비교하자면 이건 아주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더냐.”

단탈리온이 고개를 갸웃하자 오로바스도 의문을 던졌다.

“이상하기는 합니다. 인간들이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변했을 텐데 왜 단탈리온 님의 노래들은 차트에 나오지 않는 겁니까.”

오로바스도 단탈리온을 거들며 의문을 던졌다.

“너희들…… 몰랐구나.”

응?

갑작스런 앤디의 말에 단탈리온이 미간을 좁혔다.

“무엇을 말이더냐.”

“우리 앨범 말인데…….”

앤디 대신 제인이 합주실 구석에 놓여 있는 RRR밴드의 앨범 CD를 스윽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음원 차트에 없어.”

“그건 알고 있느니라.”

“아니 아니, 아예 음원 자체가 없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제인이 핸드폰에서 음악 스트리밍 어플, ‘워터멜론’을 열어 보여 주었다.

“봐. 없지?”

제인의 말을 들으며 단탈리온이 탄식했다.

“그럼…… 이 몸의 밴드는…….”

여태껏 음원 하나 없는 무명 밴드를 두고 개같이 노력‘만’ 했다는 말인가!

신곡들도 모조리 음원이 없는 상태로! 노력의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이 무슨 부조리한 경우란 말인가!!!!”

“다, 단탈리온 님! 진정하십시오!”

“오로바스여!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는가! 개같이 고생해서 이름 좀 알렸더니! 뭐? 음원이 없어!? 지금까지 앤디, 제인! 자네들은 무얼 한 겐가!”

“야! 그게 뭐 한두 푼이면 되는 줄 알아? 우리도 올리기 싫었겠냐고!”

제인이 버럭 화를 냈다. 단탈리온도 지지 않았다.

“우리 음악을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하지 않았는가!”

“아……. 그치, 그 개념부터 잡아야지.”

앤디가 단탈리온과 오로바스에게 잠시 자리에 앉으라며 두 악마를 진정시켰다. 단탈리온은 여전히 씩씩 콧김을 뿜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핑계를 들어 보마! 같잖은 핑계일 경우에는……!”

“음원을 올리려면 적어도 곡당 백만 원은 넘게 필요해.”

“…….”

단탈리온이 입을 잠시 다물었다.

“……곡당, 백만 원?”

“응. 그거 미디 작업하고 연주 따고 음질 높게 하는 등등 다 하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야.”

앤디의 말을 들은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곡당 백만 원.

열 곡이면 천만 원이지 않은가.

“합리적인 이유로다.”

“그치?”

“너무 비싸다니까.”

“지나치게…… 비싸군요.”

RRR밴드.

이렇게 음원을 포기하게 되는가, 아니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음원을 발매할 것인가!

그 기로에 선 단탈리온이 팔짱을 끼고서는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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