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47화 (47/110)

47화. 심의

“비상금을 모은다면 얼마더냐.”

단탈리온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물었다.

다들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만 원 겨우 넘지 않나?”

“그럴걸?”

“저도 백수라 돈이 없습니다.”

앤디, 제인, 오로바스가 각자 한 마디씩 던졌다. 단탈리온 역시 PC방 아르바이트 비용 정도만 있는 처지라 모아 둔 돈이 많지 않았다.

“음……. 그냥 그대로 녹음하면 아니 되는 것이더냐.”

“그냥 그대로?”

“우리들의 연주 영상에서 소리만 따로 빼낼 수 있지 않은가.”

“그……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면서 앤디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는 ‘워터멜론’에서 최상위권 밴드의 음악을 검색한 후 들려주었다. 단탈리온이 귀를 기울여 앤디가 틀어 준 밴드 음악을 경청했다.

“이게 음원으로 나온 버전.”

이번에는 너튜브 영상을 틀었다. 라이브로 공연하고 있는 해당 밴드의 영상이었다.

단, 영상은 보지 않고 사운드만 들어보았다.

“이건 라이브 버전.”

“으으음…….”

단탈리온이 잔뜩 인상을 썼다.

확실히.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매우 깔끔하고, 악기 소리도 선명하게 들린다.

그러나 라이브 영상에서는 노이즈도 심하고, 악기 소리가 보컬의 목소리에 묻혀 반주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떤 구간에서는 되려 일렉 기타 소리가 지나치게 큰 까닭에 보컬의 목소리가 묻히기도 했다.

“참으로 난잡하구나.”

“그치? 이게 우리가 연주 영상 소리를 음원으로 만들 수 없는 이유야.”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진짜 고퀄리티 음원으로 만들어서 음원 사이트에 보내지 않으면 1차 심사에서도 탈락해. 그렇다고 우리가 미디 작업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미디 작업이 무엇이냐.”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 연주 소리들을 음악으로 바꿔서 깨끗한 음질의 파일을 만드는 거야. 보통은 프로듀서나 작곡가 같은 전문가들이 그런 작업들을 많이 해 주는 편이고.”

제인이 옆에서 부연 설명을 했다.

“당연히 그 사람들도 몸값이 비싸서…….”

제인의 말을 들은 단탈리온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앤디, 제인. 자네들은 어려운 일인가.”

“그치. 할 줄 알았으면 음원을 냈겠지.”

아예 투잡을 하면서 음원을 목표로 돈을 벌지 않는 이상 지금은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음원 발매를 확정 지을 수는 없는 법.

“우선은 알겠다. 이 몸도 정보를 더 찾아보도록 하마.”

비싸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음원을 포기하자니.

밴드로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너튜브의 영상으로만 만족해야 한다는 건가.

단탈리온은 그것이야말로 패배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갖은 희생도 감내해야 하는 법.”

인간계로 내려올 때부터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단탈리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겼다.

* * *

[네……. 아무래도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으면 좀 어렵죠.]

핸드폰 너머에서 루시드 드림의 매니저, 박진주가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기획사인가.”

[보통은 음원을 기획사에서 지원을 해 주니까요. 개인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획사를 통해서 하기는 해요.]

박진주의 말은 즉, 기획사라는 곳에서 음원을 발매하는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는 뜻이었다. 인기가 있든 없든, 일단 데뷔를 하면 음원을 발매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들렸으나.

“허나, 그걸 기대할 수는 없겠군.”

루시드 드림의 기획사는 아이돌 기획사.

밴드가 소속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사장에게 달려가서는 제발 우리를 영입해 달라며 사정할 수는 없는 일.

그런 품격 없는 행동을 허락할 이 몸이 아니었다.

“잘 알았다. 정보에 감사하마.”

[네!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 주세요!]

전화를 끊고 정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내 전화 내용을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PC방 사장, 이연주가 물었다.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다.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하느니.”

“그렇게 대놓고 무시하니까 은근 기분 나쁘네. 뭔데?”

이연주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옆에서 알짱거리며 지겹도록 질문을 던졌다. 몇 번이고 질문이 반복되자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음원을 공짜로 발매할 수는 없는지 알아보고 있었노라.”

“음원?”

이연주가 그런 일이었냐며 말했다.

“하긴, 너네 밴드가 음원이 없으니까.”

“……불난 데 부채질이라는 속담이 여기에 딱 이로구나.”

“아하하하! 놀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

이연주가 내 등을 퍽퍽 때렸다.

사장만 아니었다면, 감히 마왕의 등을 때리는 행위를 허락하지는……!

“근데 너희 밴드는 오디션은 안 나가?”

“오디션?”

그게 무엇이지?

나는 정말 그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오디션이라는 게 무엇이더냐.”

“뭐야, 진짜 몰라? 오디션 프로그램. 경연 대회라고 하면 알려나?”

“경연?”

마계에서도 어느 군단이 더 강력한지 경연 대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렇군.

경연인가.

“어느 집단이 보다 더 우수하고 살상력이 높은지 겨루는 그런 개념이로구나.”

“……살상력은 좀 아닌 것 같지만, 아무튼. 내가 저번에 전국 노래 장기 발표회 알려 줬잖아? 그쪽에서 일하는 친구가 새로운 방송 들어가나 보더라고.”

이연주가 컴퓨터를 조작하더니 한 화면을 보여 주었다.

모니터에 올라온 사진을 찬찬히 살핀 나는 이연주를 향해 물었다.

“괜찮은 정보로군.”

“그렇지?”

“사장, 이 사진을 나에게 보내다오.”

* * *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멤버들을 합주실로 모은 단탈리온이 말했다.

“이걸 봐 보거라.”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뭔데?”

“이 몸이 재미난 걸 찾아왔노라.”

핸드폰 화면에는 방금 전, 이연주 사장이 보내준 포스터 사진이 열려 있었다.

“밴드 오디션은 어떠한가.”

화면을 바라본 앤디와 제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라이징 밴드! 참가자 모집!>

<밴드계의 슈퍼 스타를 찾습니다!>

<본격 밴드 발굴 프로그램!>

바로 밴드 오디션 홍보 포스터.

게다가 적혀 있는 상금은.

<상금: 1등 1억 원>

“1, 1, 1, 1억!?”

“우리 넷이서 나눠도 2,500만 원……!”

“훗. 그러하다. 그리고 이 밴드 오디션에서 우승하게 되면.”

단탈리온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당당하게 말했다.

“음원 발매도 분명 가능할 터. 그렇지 않은가?”

<최종 우승자 혜택: 앨범 발매, 음원 제작 및 해외 투어 공연 지원(국내 최정상 프로듀서들의 지원!)>

마지막에 적혀 있는 최종 우승자 혜택.

어려운 미디 작업을 해 주는 전문가들을 우리 발밑으로 데리고 와 준다고 하는 이 혜택.

단탈리온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RRR밴드와 이 몸은 이제 세계로 나가겠다.”

JB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라이징 밴드’.

앤디, 제인, 오로바스 모두가 굳센 결의를 다지며 주먹을 꽉 쥐었다.

RRR밴드의 ‘라이징 밴드’ 출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 *

RRR밴드가 밴드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날.

늦은 시간까지 밴드 영상을 보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는 남성이 한 명 있었다.

“음……. 다 거기서 거긴데…….”

JB방송국의 기보성PD가 미간을 잔뜩 좁히며 마우스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며칠 안 남았는데 큰일이네.’

최근 괜찮은 인디 밴드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초조해지고 있었다.

앞으로 몇 주만 지나면 야심 차게 시작하는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라이징 밴드’의 녹화가 시작한다.

그렇기에 빨리 국내 밴드들이나 연주자들, 보컬리스트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부족해……. 부족해…….’

하지만, 자신의 성에 차는 밴드가 없었다.

벌써 수많은 밴드가 참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샘플 영상을 보냈지만, 방송에서 사용하기에 좋은 영상은 없었다.

사실 예선에서부터 담당PD가 지원자들의 자료를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지간하면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는 이들이나 다른 음악 전문가들, 또는 막내 PD와 작가들에게 맡길 텐데.

굳이 기보성PD는 본인이 모든 참가자의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방송에서 써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합격시킬 수 없다.

“백날 실력만 좋아 봤자 매력이 없으면 꽝이야, 꽝.”

진짜 실력만으로 승부할 거라면 남들의 몇 배는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외모를 갖추었다면, 그 역시 두터운 팬층을 형성할 수 있으니 합격이다.

반대로 아주 특이한 악기들을 연주하거나 하면 그것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으니 합격이었다.

그런 특징들을 보여 줄 수 있는 밴드가 분명 있을 텐데.

그러면 예고편이든, 정규 방송에서든 편집만 잘하면 시청자들과 네티즌들로부터 어그로를 끌어낼 수 있으니까.

‘하……. 슬슬 지치는데.’

뭐라도 하나 건져야 이 노가다 작업을 하는 보람이 있지.

그런 생각을 하던 기보성PD는 오늘 받은 메일 중 하나를 열었다.

항상 하던 것처럼 첨부된 문서 파일과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했고, 동영상부터 열었다.

어차피 실력이나 특징 등에서 밀린다면 참가 신청서는 보나 마나다.

그래서 기보성PD는 다른 파일보다도 동영상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재생된 영상을 바라보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이예에아아아아아아!!!!!

동영상의 재생 시간이 0이 될 때까지.

기보성PD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영상에 매료되어 있었고.

“찾았다!!!!!”

예고편으로 사용하기 좋은 밴드를 찾아냈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최근 루시드 드림이라는 아이돌 극성팬 사건으로 인해 다소 이름이 알려져 있는 밴드.

헤비메탈 밴드 RRR.

“컨셉은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

그래, 이런 자극적인 밴드 하나 정도는 있어 줘야지!

이번 밴드 오디션을 모조리 씹어먹어 주겠다는 패기를 보여 주는 신예 밴드!

사실 RRR밴드는 올해로 7년 차 밴드였지만, 기보성PD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여태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다면 무명.

인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면 신입이다.

신입처럼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다행이야! 어그로는 제대로 끌 수 있겠어!”

실력도 나쁘지 않고, 노래도 좋다.

그들의 영상을 한 번 더 돌려 보는 기보성PD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저기 선배님.”

“응? 왜?”

“그……. 이런 메탈 밴드는 분장이나 추후 퍼포먼스 문제가 좀…….”

기보성의 후배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차라리 다른 메탈 밴드는 어떤가요? 그 팀도 실력 나쁘지 않던데.”

“메탈이라는 탈을 쓰고는 방송 생각해서 평범한 척하는 척질 밴드 말하는 거야?”

기보성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놈들이 방송 나와서 사고 치는 놈들이야. 멀쩡하게 있다가 공연에서 개판 치는 새끼들이 어디 한둘이야?”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후배PD가 말을 더 잇지 못하자 기보성이 이 기세를 놓칠세라 의견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뭐? 분장? 퍼포먼스? 왜, 비둘기라도 뜯어먹고 그 피를 얼굴에 치덕치덕 바르기라도 할까 봐?”

기보성PD는 며칠 전, 국장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보성아, 이게 마지막이다. 진짜 마지막. 이거도 망하면, 이제 네 자리는 없어. 잘 알아들었지?

국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게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망하면 해고다.

즉, 기보성에게 있어서는 이번 ‘라이징 밴드’가 잘 되면 대박, 안 되면 쪽박인 것이다.

어그로를 끌기 위한 작전이 먹히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

만약 그 작전이 먹히지 않으면?

기왕 망하는 거 화끈하게 망하고 때려치는 걸로 가서, 정신 나간 PD라는 컨셉을 밀고 나가면서 너튜브나 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 메탈 밴드든 뭐든, 그 어떤 짓거리를 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기보성PD는 후배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고작 그런 걸로 이 밴드를 탈락시키자고?”

JB방송에는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트로트, 보컬, 댄스.

이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고, 해당 프로그램들을 총괄한 PD들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보성PD는 승승장구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그저 소리 없는 울분을 토해 내고만 있어야 했다.

그랬던 그에게 라이징 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총괄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게다가 이번이 첫 회.

잘만 만들어 내면 이후에도 본인이 프로그램을 총괄할 수도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더 재미있게. 더 자극적이게.

더 관심을 끌게. 더 이슈화하게끔.

기보성PD는 이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RRR밴드의 이 자신감 넘치는 메탈 분장은 놓칠 수 없는 방송용 소스였다.

실력도 좋고, 자작곡 레벨도 좋다.

거기에 더해서, 메탈 밴드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방송에서 당당하게 드러 내려는 이 패기!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 밴드지!

“분장이나 퍼포먼스? 야 인마! 오히려 내가 요청하고 싶다!”

기보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밴드, 본선에서 뭐, 생고기라도 뜯는 척하는 걸 모자이크해서 내보내면서 밴드 오디션에서 새빨간 뭔가를 씹어 먹었다고 어그로 제대로 끌어 보고 싶다고!”

“네!? 하지만 심의가…….”

“지금 심의가 중요해? 이 오디션 프로그램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너나 나나 죽는 거야! 알아?”

기보성이 RRR밴드의 참가 신청서를 읽으면서 말했다.

“얘네 방송국 오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해! 뭘 태우든, 화장을 귀신같이 하든 다 상관없어!”

“네에!?”

“심의에 걸리는 분장을 하면 그 얼굴 싹 다 모자이크 처리해서 내보내! 무대 끝나면 분장 지우고 얼굴 보여 주면 되잖아!”

“지, 진짜 그래도 괜찮아요?”

“그렇게 해야 시청자들한테 예고편도 재미나게 보여 주고, 공식 노리개로 선정해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씹어먹을 수 있을 거 아냐! 그렇게 해!”

이 밴드 덕분에 화제성은 챙겼다!

기보성은 그렇게 확신하면서 후배 PD에게 이들이 왔을 때의 방침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이 방침이 훗날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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