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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님, 메탈하신다-48화 (48/110)

48화. 진출

RRR 밴드가 아직 ‘라이징 밴드’ 오디션 영상을 촬영하기 전.

꺙!!! 꺙!!!

시루베로스가 단탈리온의 원룸 현관문 앞에서 맹렬한 목소리를 내며 왕왕 짖고 있었다.

“시루야 왜 그래?”

꺙!!! 꺙!!!

“밖에 누가 있나……?”

오로바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툭.

문을 열자마자 작은 편지 봉투가 하나 떨어졌다.

“뭐지?”

몸을 숙여 편지를 든 오로바스의 몸이 흠칫 떨려왔다.

“이…… 이건!?”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온 오로바스는 단탈리온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넣었다.

이건 중대사안이다.

빠르게 확인해 보아야 하는 편지라 강조하는 메시지를 말이다.

* * *

“후후후…….”

오로바스가 서둘러 연락을 하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이런 것이었나.

“세이르. 네 이놈…….”

70위 마계의 지배자 세이르.

녀석이 이 몸에게 보낸 편지였다.

-71위 마계의 지배자 단탈리온. 별고 없는가. 자네의 노고에 감사하며 펜을 들었네.

“같잖은 인사치레로군.”

편지에 적힌 구구절절한 말들은 이미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마계가 어떻고, 자신의 건강은 어떻고, 나와의 추억은 어떻고 하는 일 따위.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단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래.

-이번에 서신을 보내는 까닭은 우리 마계의 세이렌 때문이네.

지난번, 루시드 드림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

루시드 드림의 리더 최예진의 몸에 빙의한 세이렌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헛소리를 지껄여 놨을지 기대되는구나.”

나는 편지의 절반을 넘어가서야 겨우 나타난 본론의 내용에 집중했다.

-본론부터 말하지. 지금 나는 마계의 존속이 우려된다.

여태껏 헛소리만 늘어놓고는 본론부터 말한다고 하다니.

세이르의 교활함은 여전하군.

허나 한 가지 동의하는 바.

“존속이라.”

확실히 그럴 수 있다.

지금 마계와 천계, 인간계의 힘은 이미 균형을 잃었다.

악마는 인간계에 내려오자마자 소멸될 수밖에 없는 마력 균형.

천사들이 마계에 들어온다 한들, 그 균형은 겨우 2배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악마들이 순식간에 소멸될지도 모른다.

‘그 전에 71위 마계부터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속내는 굳이 바깥으로 보여 줄 필요는 없겠지.

나는 계속해서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자네가 내 휘하의 악마를 공격한 사실을 문제에 부칠 생각은 없네.

세이렌을 공격한 사실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세이렌에 빙의한 최예진을 집어 던진 정도겠지.

영혼이야 알아서 태워졌으니 말이다.

-허나 나 하나가 이를 부정한다 해도 70위 마계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

-조만간 71위 마계와의 전면 전쟁을 선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네.

-물론 이건 내 뜻은 아닐세.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여 형성된 간부들의 의견이지.

-방법은 하나. 만약 71위 마계가 우리의 사업을 도와주고 일손을 덜어 주겠다 약조한다면 내가 간부들을 최대한 설득하고, 마왕의 권한으로 전쟁은 없을 것이라 약속하겠네.

“전면 전쟁……?”

마왕이라는 직함이 아깝군.

군단장들을 비롯한 간부들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이 졸렬함.

“70위 마계의 지배자, 세이르다운 발상이로다.”

언제나 약아빠진 행동만 하였기에 세이르는 나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녀석이었다.

물론, 악마스러운 교활함이라면 녀석도 제법이기는 하다만.

“이리도 저열한 방법만 생각하다니.”

지금 시점에서 71위 마계를 공격하려 하다니.

이게 무슨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래서 나는 시틀라로부터 마계의 양피지와 깃털 펜을 전송받았다.

오른손에 쥐어진 깃털 펜에 숨결을 불어 넣자 말라붙어 있던 잉크가 뚝뚝 떨어졌다.

“히익!! 왜 붓에서 피가 떨어져!!!”

앤디가 옆에서 화들짝 놀란 것 같지만.

굳이 이 잉크의 성분을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나는 세이르에게 보내는 답장을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한 손에는 깃털 펜, 한 손에는 양피지.

그리고 한쪽 눈은 못 볼 걸 본 듯 나를 노려보고 있는 앤디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마왕인 이 몸의 행동에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녀석은 항상 재미난 반응을 보여 주고 있다.

‘호오, 그렇다면 다른 인간들도……?’

우리의 퍼포먼스에 익숙해질 겨를이 없겠구나.

나는 오디션 본선에서 해 보고 싶은 퍼포먼스가 떠올랐다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 * *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다른 마계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래서 세이르는 이번에 서신으로 단탈리온에게 전쟁을 선포했던 것이었다.

“단탈리온에게서 답신이 도착했느냐.”

71위 마계의 지배자 세이르가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이며 시종에게 물었다.

“예, 세이르 님! 그렇지 않아도 방금 답신이 도착하였습니다.”

“생각보다는 빠르구나.”

시종이 미리 받아둔 양피지를 양손에 곱게 들고서는 천천히 걸어왔다.

“71위 마계의 지배자, 마왕 단탈리온의 서신이옵니다.”

“흐음…….”

이상하다.

71위 마계가 양피지에 혈펜을 사용했다고?

거기에 양피지에 붙은 이 촛농 봉인은 대체…….

“모두 마력이 담겨 있군.”

이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는 뜻인가.

최근 71위 마계의 재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더니, 이제는 마력을 어느 정도 사용해도 괜찮은 수준까지 올라온 모양이었다.

세이르는 예상하지 못한 형태의 편지지를 이리저리 돌려 본 후, 조심스럽게 단탈리온의 편지를 개봉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르의 얼굴이 한껏 굳어져 내렸다.

-하찮은 세이르여. 이 몸과 전쟁을 하고 싶다면 우선 그 격을 맞추거라.

그 격이란, 인간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

-이 몸은 이미 격을 갖추었느니.

-그것도 20배의 격이 벌어져 있는 이곳에서.

-인간들로부터도 하나의 영웅이라 추앙받고 있도다.

감히, 감히 마왕이 영웅이라는 호칭을 받고 있다고!?

영웅이라면 난세를 구해 내는 그야말로 지도자에 어울리는 자가 아니던가.

양피지를 쥐어 잡은 세이르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러나 이제 갓 내려올 자네들에게 이걸 요청하는 것은 어렵겠지.

-따라서, 이 몸은 그대들에게 ‘라이징 밴드’ 예선을 통과할 것을 요청하는바.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으로 들어오면 이 몸이 결성한 밴드와 맞붙을 수 있는 영광을 선사하도록 하마.

부들부들.

세이르의 양손이 더는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힘주어졌고.

“단탈리온……. 네 이놈……!!!!!”

세이르는 양피지를 그대로 불태워 버리고 잿더미를 시종을 향해 날려 버렸다.

휘익!!

“우, 우왓!!”

깜짝 놀란 시종이 뒷걸음질을 쳤다. 세이르는 평소의 몇 배는 되는 마기를 방출하면서 키득거렸다.

“좋구나……. 네놈이 이딴 걸로 70위 마계를 도발했단 말이지……!!!”

격을 맞추라고?

게다가 전쟁을 마계가 아닌 인간계에서 한다?

“곧 죽어도 마계에 줄 피해를 고려하고 있다 이거냐……!!”

다른 마왕들의 말대로였다.

단탈리온은 정말로 지금 마계 전체를 위해 인간계에 내려가 있었다.

이미 그릇 싸움에서 밀렸다.

자신은 고작 70위 마계 하나 키우고자 전쟁을 생각했거늘.

단탈리온은 72위부터 1위까지, 전체 마계를 모두 고려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마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양측 군단장들은 물론이고 주력 인사들이 받을 피해는 상상을 하기 어려울 터.

그래서 단탈리온은 마계의 힘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 인간계를 전투 무대로 정한 것이었다.

게다가 마계와 무관한 인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음악으로 승부’를 걸다니.

“단탈리온……. 네 녀석 언제부터……!”

품격 경쟁에서 한 수 밀린 세이르.

이런 상황에서 단탈리온의 제안조차 거절한다면, 그의 자존심은 짓밟히고 더는 피어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군단장과 간부들을 소집하라!!!!”

“예! 위대하신 세이르 님의 이름으로!”

70위 마계에도 인간계 문화에 정통한 악마가 있을 터.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밴드 오디션인지 뭔지에 응해 주마!’

흑마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규정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까짓거 이걸 심사하는 인간들을 조종하면 그만인 것을!

멍청한 단탈리온 녀석, 그런 것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세이르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 * *

“뭐지?”

예선에 합격시킨 영상들을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한 후 최종 컨펌을 받는 과정에서.

기보성 PD는 심사 위원들과 함께 영상을 점검하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얘네 누가 합격시켰어?”

“네? 그거 피디님이 어제…….”

“내가 그랬다고?”

기보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기억이 없는데?”

“너무 피곤해서 파일 잘못 넣으신 거 아니에요? 얘네 너무 엉망인데요.”

심사 위원 중 한 명의 말대로였다.

지금 모니터에 띄워진 밴드는 기본적인 악기 연주도 제대로 못 하고, 보컬의 목소리는 음 이탈을 세 번이나 하는 등 엉망진창이었다.

“아! 너무 못해서 웃겨서 넣었던 건가 보다! 이거 제가 실수를, 하하하!”

사람들이 피곤하면 다들 그럴 수 있다면서 예선 합격으로 올려 두었던 밴드의 영상 하나를 삭제했다.

지워지는 영상의 주인공인 밴드의 이름이 ‘마왕 세이르와 악마들’이라는 사실은,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

그렇게 며칠 뒤.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라이징 밴드’의 예선 합격자가 결정되었다.

“아싸!!!!!”

앤디가 합격 소식을 듣고는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거 봐! 30만 원 투자한 보람이 있지!!!”

영상과 음질 퀄리티를 최대한 높여서 촬영해야 한다며 돈을 들여 촬영을 했었다.

그 투자가 빛을 발했다며 앤디가 무척이나 기뻐했다.

단탈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앤디와 제인의 머리 위에 손을 툭, 올렸다.

“고생이 많았다. 12군단장, 13군단장이여.”

“이제는 그냥 군단장이구만.”

“뭐 어때. 밴드계에서만 군단장이라 하면 되지.”

앤디와 제인이 기뻐하는 모습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오로바스가 눈에 들어왔다.

“단탈리온 님!!!! 오디션 우승까지도 반드시 함께하겠습니다!!!”

“훗. 기대하고 있다, 말머리 드러머, 오로바스여.”

박은환도 지금의 순간을 카메라로 담았다.

지금은 올릴 수 없다.

‘라이징 밴드’는 철저한 보안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디션이었기에, 합격 소식 등을 미리 인터넷에 올려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이는 향후 우승을 하거나 했을 때, 비하인드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는 영상이었다.

‘클라우드에 저장해 둬야지!’

향후 계획까지 모두 마친 박은환이었다.

* * *

그 시각 70위 마왕 세이르는.

콰앙!!!!!!!!!!!!!

쩌저적!

원탁 테이블을 가볍게 두 동강을 내며 ‘마왕 세이르와 악마들’ 멤버들을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노려봤다.

“흑마법을 왜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 그것이……!!”

사실 흑마법, 사용했다.

심사를 하는 PD를 비롯해 방송국 인원들을 조종해서 합격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들은 최종 예선에서 탈락했다.

“똑바로 고하지 못할까!!!!!”

“죄죄죄, 죄송합니다, 세이르 님!!”

인간계와 마계의 마력 차이는 20배.

그 20배의 차이 때문에 흑마법의 위력도 제대로 마력을 발산하지 못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그들이 사용한 흑마법은 세뇌마법이었으나.

불과 하루 만에 풀려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예측했던 단탈리온은.

“자네와 이 몸이 서로 맞붙기에는 격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구나. 마왕 세이르여.”

치졸하며 저열하기 짝이 없는 마왕, 70위 마계의 세이르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허나 이걸로 끝나지는 않을 터.”

세이르의 집요함이라면 굴욕을 맛보았으니 한층 더 다가오려 하겠지.

전쟁을 그냥 일으켜 버릴지도 모른다고?

“훗. 이 몸의 친우, 바엘에게 맡겨 두었느니.”

바엘이라면 세이르 정도는 한 손으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무력 차이가 있다.

바엘의 감시가 있기에 마계에서의 전쟁은 쉽지 않을 터.

그렇기에 세이르는 인간계로 내려올 것이다.

허나, 그걸 거절할 이 몸이 아니다.

“내려오는 게 좋을 것이다.”

밴드를 하고 있는 이 몸과 맞붙기 위해서라면 말이지.

그 무대는 ‘라이징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현장.

어떤 밴드들과 맞붙게 될지, 그중에 세이르의 계략이 숨어 있는 밴드가 포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도전이 들어와도 RRR 밴드, 단탈리온 데스맨은 죽지 않는다.

단탈리온은 숨 막히는 기대에 가득 찬 채, 퍽지창을 펼친 양손을 천장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롹앤롤 네버다이!!!!”

“……혼자 왜 저래?”

“기쁜가 봐. 무시해 무시.”

실컷 혼잣말을 하다가 롹앤롤을 외치는 단탈리온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앤디와 제인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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