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분석
“저…… 바엘 님.”
시밀푼이 여전히 경계를 서고 있는 바엘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물었다.
“한 가지만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허하겠다.”
“감사합니다.”
시밀푼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단탈리온 님이 우리 마계를 비롯해 최상위 마계를 위해 펼치신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략 말인가.”
바엘이 히죽 웃더니 등에 메고 있던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대검을 바닥에 내리꽂은 후 대검의 손잡이 위에 몸을 기댔다.
“그게 어떤 지혜였는지 궁금한가?”
“예, 미천한 종자에게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훗. 좋다. 자네가 생각할 때, 어떤 전략이었다고 여겨지는가.”
“무력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맞다. 무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하셨습니까?”
정신의 지배자, 71위 마계의 지도자인 단탈리온이라면 정신계 흑마법을 광범위하게 펼쳤을지도 모른다.
시밀푼은 그렇게 가정하고서 지금 이 의견이 정답인지를 바엘에게 물었다.
“하하하하! 그래,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지.”
“허면, 이것도 아니라는…….”
“그렇다. 그때 나의 친우, 단탈리온은 말이다.”
바엘이 입꼬리를 사악 끌어올렸다.
“그 전략에 있어서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그럼 무력도, 흑마법도 없는 지혜였단 말씀이십니까!?”
시밀푼이 깜짝 놀라며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냈다.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흑마법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악마들의 힘의 근간이 흑마법이기도 한데, 어째서…….”
“아직 어리다고는 하나 혀가 길구나, 시밀푼이여.”
그 말에 시밀푼이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떨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 어린 시종의 의견도 존중해야 함을 단탈리온에게서 배우기도 했다.”
“가, 감사합니다……!”
시밀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엘은 시종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녀석은 용사와 동료들을 꼬셨다.”
“……잘못 들었습니다?”
“용사와 동료들을 꼬셨다.”
“…….”
시밀푼이 잠시 멍하니 있더니 그게 무슨 뜻인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수초 후.
“그, 그 말씀은 즉…….”
“그래.”
바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마계를 위해 천계 측의 최대 전력, 용사 일행과 친구가 되었다.”
그게 진짜 우정이었을지, 전략상의 비즈니스 관계의 우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지.
바엘의 말에 시밀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래서 나는 단탈리온을 믿는다.”
단탈리온이 지금 인간계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
바엘 자신은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하니까.
그저 지금 단탈리온의 계획을 지지하는 이유는.
“계획의 제안자가 단탈리온이기 때문이다.”
바엘의 눈에서 단탈리온을 향한 두터운 신뢰가 나타났다.
* * *
‘라이징 밴드’ 예선 심사가 있기 며칠 전.
메타트론 님에게 명령을 받아서 신청하기는 했다.
-사실 나는 아직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남성을 믿을 수 없다.
그럴 수 있다.
현시대의 용사의 후계자라면 필시 지금 천계의 힘을 조율하고자 할 터.
하지만, 그의 목적이 정말 그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도미니온.
-네, 말씀하세요.
-너, 내려가서 밴드해라.
아무래도 그때는 주천사 도미니온 역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니, 메타트론 님!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단탈리온 데스맨 감시 목적이면 그냥 일반인으로 내려가도 되잖아요! 왜 굳이 밴드를 해야 하는 건지 설명을 해 주세요!
-너도 밴드를 한다고 하면서 내려가야 접점이 생기고 그럴 거 아냐!
-이전처럼 매니저나 방송국 관계자로 빙의하면 되잖아요!
-또, 또 빙의해서 빙의체 인간 혼 빨리게 놔두려고? 아주 잘도 보호해 주겠다 앙? 백마법 써도 되니까 가라고 좀!
-그럼 메타트론 님이 직접 가세요! 왜 저한테 이런 걸 강요하시냐고요!
-이게 아주 못하는 말이 없네? 당장 안 내려가!
열심히 저항을 해 봤지만, 상대는 천계의 지배자 메타트론이었다. 결국 도미니온은 메타트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도미니온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천사 세 명을 권유 및 협박을 해서 억지로 인간계에 현계한 상태였다.
정말 황당무계한 작전이라고 생각하던 도미니온이었으나.
“왜, 왜 그러세요!?”
“어째서 그걸 알고 있는 거냐.”
“네, 네!?”
“위민 더러빙 멘뜨몽 디엔유.”
정말로 단탈리온 데스맨이 바로 튀어나온 것이 아닌가.
그가 백마법을 눈치챈 것에 놀라기도 잠시.
‘메타트론 님의 작전대로 되고 있다!?’
정말 밴드라는 접점이 있다면, 마주칠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던 순간이었다.
“바른대로 고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그, 그, 그게…… 무슨……?”
도미니온은 눈앞에 서 있는 단탈리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잠시간 고민을 해 봤지만, 역시나 알 수 없었다.
“주문의 창시자를 모욕한 죗값을 치르게 할지니.”
이 주문이 다른 누군가가 만든 주문이라고?
천계에서 만든, 천사의 주문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 이런 걸 이 인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생각해 보니까, 마력은 어떻게 느꼈지?
아직 백마법이 구현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마력이 이제야 손바닥으로 흘러 올라오기 시작하던 찰나였을 뿐인데, 이렇게나 빨리 반응했다고?
대체 어떻게?
도미니온이 더 큰 의문을 갖기 직전, 경비들이 달려와서 단탈리온을 뒤로 끌어냈다.
“이거 놓아라! 이 몸은 저 여성에게서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도다!”
“아 좀 조용히 하시고, 뒤에서 기다리세요! 자꾸 이러면 쫓아냅니다!”
마음 같아서는 확 흑마법을 사용해 버릴까 했지만, 지금 이 여성 밴드들의 정체도 수상하게 느껴지는 때였다.
단탈리온은 화를 삭이면서 도미니온을 흘겨보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기보성 PD는 두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만세를 외쳤다.
“만세!!!!”
“피, 피디님!?”
옆에서 조연출이 당황하면서 기보성을 말렸다.
그러나 기보성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그림이 나왔다며 기뻐했다.
“예고편 기깔나게 뽑히겠다!!!!”
“네에에에!?!?!?!”
“악마군 컨셉의 메탈 밴드 보컬이 천사 컨셉 밴드에게 도발을 걸었어!!!! 천사와 악마의 대결! 그 대결이 우리 라이징 밴드에서 시작된다! 이거 그림 제대로 나오지 않았냐? 그치? 내 말이 맞지? 대박 조짐 맞지!!! 그치!!!!”
방금 전까지 실력이 어정쩡한 애들만 나와서 걱정했는데!
역시! 예선에서 컨셉질 밴드들로만 절반을 통과시킨 보람이 있는 거야!!!
기보성은 이번 1회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쉴 새 없이 환호했다.
“메탈 만세!!!!! 악마 만세!!!!! 천사 만세!!!”
“그만 좀 해요 제발!”
“다들 잡아!!”
조연출을 비롯해 작가들까지 나서서 말리기 전까지, 기보성의 함성이 계속되었고.
심사 위원들은 그런 기보성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 * *
“데에스으매앤.”
앤디가 단탈리온을 씹어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날 만하기는 하다.
라이브를 앞둔 보컬이 갑자기 무대에 난입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기에 멤버들이 당황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단탈리온은 앤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몸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하면서 걱정이 많았겠지.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도록 하마.”
“……아니 네가 그 탑엔젤스 보컬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됐다.”
앤디가 답답해 미치겠다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발 좀 조용히 지나가자 제발! 아까는 왜 그런 건데!”
“앤디여, 자네는 친한 벗의 유품을 원수가 들고 있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갑작스런 질문에 앤디가 잔소리를 하려다 말고 생각했다.
“열 받겠지?”
“그렇다. 방금 이 몸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뭐? 벗의 유품이라면…….”
앤디가 설마 싶다며 물었다.
“방금 탑엔젤스 보컬리스트가 혹시 천사라거나, 천사의 사자, 이런 거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관련성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단탈리온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앤디, 제인, 오로바스가 모두 침묵했다.
“그런데 천사들이면 오히려 인간들에게 좋은 거 아닌가?”
제인의 근본적인 질문에 앤디도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인간을 괴롭히는 건 천사가 아니라 악마이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까지 같이 지내 온 악마, 단탈리온과 오로바스의 언행을 보면, 상당히 곤란하게 만들 법한 상황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앤디는 제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보통은 악마가 피해를 주니까.”
“아직도 천계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가.”
단탈리온이 한심하다는 말투로 앤디를 바라봤다.
“가련한지고.”
“……왜 이리 기분이 나쁘지? 저 눈빛?”
“앤디, 제인. 그대들은 천사들이 나타나서 무언가를 요청하면, 바로 받아들일 것인가.”
“요청?”
그게 어떤 요청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해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앤디와 제인이 대답했다.
“별일 없으면 받을 것 같은데?”
“나도. 좋은 조건을 이야기할 것도 같고.”
“바로 그 지점이다.”
단탈리온이 씁쓸하게 웃었다.
“천사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역시 천사야. 악마랑은 다르…….”
“반대로, 상대에게도 대가를 주지 않는다.”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말에 앤디와 제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신성력을 기반으로 하는 백마법의 특징은 대가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긍정적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것만큼 위험한 마법도 없느니.”
백마법이라면 치유마법 같은 걸 말하는 거 아닌가?
앤디의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단탈리온이 앤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백마법이 남발되면, 그 영향으로 인해 주변 인물들과 갈등이 빚어진다.”
“갈등…… 이라면?”
단탈리온은 탑엔젤스의 공연이 끝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했다.
“대가성 없는 도움을 바라거나, 대가성 없는 치유를 바라거나 하는 식이다.”
백마법에 자주 노출되면 사람들이 겪게 되는 부작용.
자꾸만 공짜로 무언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뭐…… 재능 기부를 항상 요구한다, 이런 건가?”
“그러하다.”
“까짓거 그냥 해 주면 되잖아.”
“……까짓거 그냥 해 준다고?”
단탈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앤디와 제인을 바라봤다.
“자네들은 아무런 보수를 받지 않고 365일 매일매일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가.”
“……어렵겠지.”
“천사들의 대가성 없는 도움은 바로 그런 것이다.”
정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천사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인에게도 대가 없는 행동을 강요하는 천사들.
“요즘 인간들의 말이라면…… 그래.”
단탈리온이 적합한 단어를 떠올렸다며 말했다.
“‘열정 페이’가 딱 어울리겠군.”
“허어…….”
열정 페이라고 이야기하니 단박에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앤디였다.
세션 기회를 준다면서 쥬피터 밴드에서 열정 페이로 일을 하도록 제안받았던 일.
교통비도 나오지 않는 공연비를 받으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면서 자작곡을 만들어 갔던 일.
“그런 걸…… 천사들이 강요한다고?”
단탈리온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며 앤디가 물었다.
“그, 그럼 천사들은 대체 어떤 존재인데?”
“천사들은…….”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던 단탈리온은 앞을 지나가는 밴드를 보면서 다시금 인상을 썼다.
“저들에게서도 신성력이 느껴지는구나.”
탑엔젤스의 공연 다음 순서의 밴드가 무대로 들어가는 걸 바라본 단탈리온이 중얼거렸다.
“자칫 잘못하면, 이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겠군.”
신성력이 발현될 확률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있다.
그것보다, 애초에 왜 ‘라이징 밴드’ 오디션에 이렇게나 많은 신성력 보유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건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뭐!?”
앤디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상금은?”
“프로그램 망하면 해외 투어도 못 가는데!?”
“음원도 내야 합니다, 단탈리온 님!”
멤버들의 절규에 단탈리온이 히죽 웃었다.
“훗. 걱정 말거라.”
앞에서 무대를 준비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단탈리온이 말했다.
“프로그램의 존속을 위해 이 몸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고작 신성력이 있다는 이유로, 백마법 보유자인 천사들이나 천계의 힘을 부여받은 이들이 활개 친다는 이유로.
“이 정도로 이 몸의 밴드 활동을 막을 수는 없느니.”
71위 마계의 존속을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책임감이.
마왕 단탈리온에게 있는 한.
이번 ‘라이징 밴드’ 오디션에서 반드시 1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모든 참가자의 역량을 분석 중이다.”
단탈리온이 믿음직스럽게 미소 지었다.
* * *
그리고 71위 마계에서는.
타다다다탁탁.
탁탁, 타닥. 타다닥.
“모든 군단장과 휘하의 행정병들은 자판에서 손을 놓지 마라!”
“존명!!!!”
“감히 단탈리온님의 ‘라이징 밴드’에 도전장을 내민 시건방진 도전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감시하고 기록하라!!!!!”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방송국에 붙은 수십 개의 감시 눈동자의 움직임을, 시틀라와 군단장들, 그리고 그 휘하의 행정병들이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라이징 밴드 참가자들의 프로필을 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