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접수한다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언젠가 좌선을 하고 명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열반 밴드의 보컬이자 리더인 승려, 능선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능선은 다시 눈을 감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저를 유혹하시는 겁니까.”
그 질문에 상대는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고는 고민을 끝냈는지, 능선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허허, 저희는 미천한 중생입니다. 어찌 저희가 도움을…….”
-그대들의 밴드가 필요하다.
밴드?
승려를 찾은 이유가 참선이나 깨달음, 열반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밴드라니.
능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밴드?”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악마가 내려와 음악을 하겠다고 활개를 치고 있느니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능선에게 가벼운 제안을 던졌다.
-게다가 악마의 힘을 가진 인간이 천계를, 아니 이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능선이 뜬 눈을 부라리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대의 밴드 멤버들과 함께 오디션에 참가하거라. 힘은 보태 줄지니.
“지금 그것이, 우리 승려들에게 얼마나 큰 모욕감을 주는지는 알고서 하는 말씀이신지요?”
능선은 심히 불쾌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이런 일로 흥분하다니. 저도 수행이 부족합니다. 아미타불…….”
-그대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지금 이 중요한 일을 맡아줄 수 있는 적합한 이가 그대들이었을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상대는 마력 보유자다.
그 말에 능선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똑같이 마력을 지닌 사람이어야만 가능했으니까.
그리고 평생을 수행에 바쳐 온 능선 일행들은 마력 운용이 가능했으니까.
지금의 일에 가장 적합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능선은 허공의 상대를 향해 물었다.
“당신의 정체를 알려 주시면 들어보겠습니다.”
능선의 말에 하늘 위에서 책을 펼치고는 인간계를 관장하고 있던 메타트론이 책을 탁 덮었다.
-나는 천사 메타트론이다.
“!?”
* * *
그렇게 능선은 메타트론으로부터 기초 백마법을 배웠다. 백마법을 활용해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악마를 막고, 인간계의 질서를 잡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능선은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백마법을 활용하려 했다.
그가 펼친 백마법은 불경 소리를 들은 인간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백마법이었다.
마음속에 그릇된 생각이 없는 이들은 불경 소리를 감미로운 노랫소리로만 듣게 되지만, 심상이 지저분한 자라면 구역질을 하며 쓰러지게 되는.
그야말로 인간의 속성을 검증하고, 걸러내는 데에 최적화된 백마법이었다.
‘그래서 이걸 사용해서 참가자 중 불순한 종자를 잡아내려 했거늘……!’
연신 백마법을 튕겨 내고 있는.
저 남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카앙-! 카앙-!
연이은 백마법도 남성은 정확하게 쳐냈다. 마치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이 손을 흔들 때마다 주위의 마력이 울렁이며 그의 힘을 과시했다.
‘대체, 대체 저 인간은……!?’
튕겨져 나오는 신성력을 볼 때마다 능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 왔다.
노래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멤버들의 연주도 계속되고 있었다.
‘스, 스님!?’
‘능선 스님!’
기타리스트와 드러머가 능선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제야 능선은 자신의 온 신경이 무대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깨닫고는 다시금 심사 위원들을 향해 목탁을 들었다.
톡! 탁! 톡!
[반야바라밀다아아 시임경!]
그러나 이미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을 잃고 허공을 방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처음에는 신선했는데…….”
“그러게요, 살짝 뒷심이 부족하달까…….”
“너무 긴장하신 거 같은데요?”
심사 위원들의 평가가 조용히 들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하찮군. 이 정도로 무너지는 정신력이라니.”
수행 부족을 지적하는 저 남성의 혼잣말까지.
능선은 천천히 눈동자를 감고는 목탁을 아래로 떨구었다.
“응?”
하현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능선을 바라봤다. 능선이 마이크를 잡고는 말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 충격적인 말에 모든 심사 위원들은 물론이고 기타리스트와 드러머까지도 각자 악기를 붙들 뿐이었다.
* * *
웅성웅성
“이게 무슨 일이죠!?”
하현주의 다급한 소리와 함께 장도민, 유열희도 스님들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잘하고 계셨는데 왜 그러셨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계속하셨으면 충분히 본선 1라운드는 통과할 수 있는…….”
능선은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합장을 했다.
“아닙니다. 아마 끝까지 갔다면 더 추한 모습을 보여 드렸을 겁니다.”
“…….”
윤상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열반 밴드. 지금 이 오디션의 목적을 잃은 것 같군요.”
“……예?”
능선이 묻자 윤상하가 물었다.
“열반 밴드라 함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무언가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힘을 내주셨어야 합니다.”
윤상하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열반 밴드.
본선 1라운드를 이겨내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래도 세 분의 밴드 활동을 계속해서 응원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더 수행을 쌓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능선은 멤버들을 데리고 무대 뒤로 향했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천막 뒤에서 단탈리온이 팔짱을 끼고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엇을 말이더냐.”
능선의 물음에 그저 덤덤하게 답을 한 단탈리온이었다. 능선은 단탈리온을 향해 자신의 손을 한 번 보여 주었다.
“오늘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래서 능선은 메타트론과 비밀스럽게 계약을 맺었고 백마법을 준비했다.
그러나 모두 단탈리온이라는 큰 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대에게 말할 의무는 없느니.”
단탈리온은 그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허나 이 정도는 알려 줘도 되겠지.”
“어떤….”
“그대가 믿는 길을 따르지 못한 대가이니라.”
“!?!?”
능선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오늘의 잔재주는 그 판단에 의한 결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라.”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능선이 단탈리온을 향해 합장을 했다. 단탈리온은 그 합장을 받지도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스님, 저 사람은 대체…….”
“우리의 수행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능선이 합장을 하고 있던 손을 풀며 단탈리온의 등을 바라봤다.
“당신의 정체가 악마일지, 아니면 대천사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불가에서도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이야기.
성마전쟁의 용사.
-특이한 인간을 지켜보도록 하거라.
메타트론은 성마전쟁의 용사의 능력이 나타난다면 무조건 집중하라고 일렀다.
혹시 저 사람이?
‘그건 지켜보면 알게 되겠습니다만…….’
아쉽게도 본인들은 라이징 밴드 본선 1라운드를 탈락하게 되었다.
‘나머지는 TV로나…….’
“열반 밴드 스님들! 잠시 이쪽으로 와 주세요!”
그때 기보성PD가 조연출과 함께 열반 밴드 멤버들을 불렀다.
“회생 신청, 하시겠습니까?”
* * *
단탈리온은 양손과 귀에 달려 있는 악세사리를 매만지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이 몸이 착용한 악세사리가 한둘이 아니란 말이다.
‘훗, 이런 최하급 백마법따위.’
몸에 두른 호신마기 만으로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거기에 손에 마력을 집중하면 백마법을 아예 무력화시킬 수도 있었으니.
‘이제 인간계에 많이 적응했다는 뜻이겠구나.’
지금 정도라면 중급 천사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백마법을 사용하는 천사 밴드에다가 미약하기는 했으나 하급 백마법을 구사하는 수행자 밴드라니.’
라이징 밴드의 참가자 중 마력 보유자가 이렇게나 많다니.
이건 단탈리온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탑엔젤스 밴드는 자신도 알고 있는 주문을 외기까지 했으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끌어내서…….”
“당장 안 따라와!”
뒤에서 앤디가 씩씩거리며 단탈리온의 뒷덜미를 잡았다.
“기다리거라 앤디. 아직 이 몸은 참가자들의 신상을 모두 파헤치지 못했…….”
“그런 걸 하면 불법이고 민폐야! 내가 대기실에서 얌전히 좀 있으라 그랬지! 언제 나간 거야 대체!”
“오로바스와 시루베로스도 없지 않느냐.”
“나랑 제인이 지금 제일 무서운 게 그거라고 그거!! 두 사람, 아니 악마 하나랑 동물 한 마리 당장 불러들여!”
“그래서는 우리의 정보전이…….”
“됐으니까 대기실로 부르라고!!”
앤디의 호통에 단탈리온이 한숨을 쉬었다.
“참으로 속이 좁구나, 앤디여.”
“지금 그 말이 왜 나오는데!?”
“전쟁에서 이 정도 정보전은 기본이다.”
“……전쟁이 아니잖아. 제발 정신 좀 차려.”
결국, 그렇게 단탈리온은 다시 앤디의 손에 이끌려 대기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오로바스, 예의 물건은 구했느냐!]
“예! 구했습니다 시틀라님!”
[시루베로스! 냄새의 정보를 마계로 올리거라!]
“꺙꺙!!”
오로바스와 시루베로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하고 있었고, 목적을 이룬 둘 역시 대기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 * *
“와……. 진짜 대단하네요.”
하현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기보성 PD님, 이번에 진짜 이를 아득바득 갈았는데요? 이렇게까지 하신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열반 밴드를 불러들여서 꺼낸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라이징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는 없었던 이야기였다.
“패자부활전을 이렇게 만든다고? 이걸 역량이라고 해야 하는지, 기회주의자라고 해야 하는지 참나.”
장도민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말했다.
반면, 윤상하는 그럴 수도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화제성이 중요하니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제대로 관심을 끌지 못하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기 어렵지.”
“그거야 그렇지만…….”
“이미 악마가 천사에게 일기토 걸었다는 내용으로 어그로는 제대로 끌었지 않아요? 귀찮게 이런 걸 왜 추가했대.”
하현주와 장도민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들로서는 평가 기준이 하나가 더 생겨 버렸기에 귀찮아지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합격시키는 게 아니라, 떨어뜨리더라도 패자부활전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스님 밴드가 나와서 포기 선언을 했다는 게 또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열희 씨도 거기 동의하세요?”
하현주의 질문에 유열희가 답했다.
“저는 방송의 인기라던가 이런 건 잘 모릅니다. 상하 선배는 잘 아시겠죠?”
“흥. 그래서 내가 말하잖아. 화제성이 중요하다고.”
라이징 밴드 이외에도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 위원을 맡았던 윤상하는 그런 점에서 라이징 밴드의 초기 인기는 높을 거라고 예측했다.
“이미 예고편은 맛깔나게 기획 중이던데.”
윤상하의 말대로, 기보성PD는 단탈리온과 도미니온, 열반 밴드를 주축으로 하는 예고편을 기획 중이었다.
“다음이 메탈 밴드, RRR아닌가요?”
“맞아.”
“PD님이 제일 기대하던 팀인데 어떨지 참……. 이번에 뭔가 새로운 거 나오면 그걸로 또 예고편 만드시는 거 아니에요?”
하현주의 농담 섞인 질문에 윤상하가 진지하게 답했다.
“기보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그래도 정말 그럴까?
생각하던 다른 심사 위원들은.
“미친……. 저게 뭐야?”
작정하고 공연을 준비한 RRR 밴드를 보면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훗.”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RRR의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의 분장부터 시작해서.
“흡!”
기타를 들고 있는 앤디는 물론이고.
“세팅…….”
베이스의 현을 살짝 튕겨 보는 제인과
“앞으로 좀 더 당기겠습니다.”
드럼 스틱을 돌려보는 오로바스 모두가.
하얀색 봉제 인형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두 눈은 시커멓게 칠해 심연 속 깊은 어둠을 보여 주고 있는.
그야말로 악몽 속에 깃들어 있는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나마 이것뿐이라면 다행이었다.
지금 분장한 모습은 유명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도 비슷하다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RRR이 준비한 연출 소품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저거 칼이야?”
“메탈 밴드라고는 했지만…….”
“이거 심의에 안 걸려요?”
심사 위원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든 단탈리온이 한 손에 식칼을 쥔 채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 밤, 자네들에게 자각몽을 선물해 주겠다.”
그 모습을 바라본 심사 위원들이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단탈리온은 심장을 향해 식칼을 힘껏 내리 꽂았다.
푸욱!!!
그러자.
촤아아아악!!!
단탈리온의 심장에서 시뻘건 혈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끼야아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심사 위원은 물론이고.
“히이이이익!!!”
메탈 밴드가 제발 미친 연출 좀 해 줬으면 한다며 큰소리를 떵떵 치던 기보성PD 마저도.
상상도 못 한 연출에 본인도 상상 못 한 비명을 한껏 질러댔다.
그러나 그 비명 역시,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멘트에 잠식되어 갔다.
“보여 주마. 자네들의 꿈, 우리가 접수한다.”
라이징 밴드 본선 1라운드.
RRR 밴드의 첫 번째 오디션 프로그램 공연.
루시드 드림의 노래인 ‘Make Dream’의 메탈 버전이 피투성이 무대와 함께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