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53화 (53/110)

53화. 메탈 버전 Make Dream

무대는 이미 세팅을 마친 뒤였다.

열반 밴드의 패자부활전 논의를 위해 시간이 지나가는 와중에 세팅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단탈리온은 무대 뒤에서 멤버들과 함께 본선 1라운드 진출을 위한 대기를 하고 있었다.

단탈리온은 무대 뒤에서 준비를 하고 있는 멤버들을 향해 주먹을 모았다.

“다들 준비되었는가.”

“응.”

“구호 외칠까?”

“좋습니다!”

그렇게 시루베로스를 제외한 네 명의 멤버들이 주먹을 한데 모았다.

“위 알 더 베스트 데블스 오브 락앤롤!!”

“쓰리!!알!!”

“하!!!”

준비를 마친 RRR 멤버들이 하나둘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번 본선 1라운드에서 선보일 노래는 RRR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던, 루시드 드림과 만들었던 노래.

바로 ‘Make Dream’의 메탈 버전이었다.

‘좋아, 저 노래라면……!’

기보성PD는 고개를 끄덕이며 RRR의 선곡에 만족해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 주어야 하는 건, 정말 메탈 밴드만이 할 수 있는 노래.

게다가 이 밴드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루시드 드림과의 뮤비 촬영 덕분이 컸다.

그렇다면 심사 위원들에게도 이 노래가 귀에 쏙쏙 박히게 될 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심사 위원들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오, 저 이 노래 알아요.”

“맞아. 최근에 역주행했던 그 노래지?”

“엄청 A급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래도 팬층이 나름 있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크게 떴죠.”

“뮤비 촬영을 같이 했다더니 아예 편곡을 따로 했나 봅니다.”

심사 위원들의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지만.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단탈리온이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이 몸은 무대에서 칼을 꽂을 것이다.”

“……뭐라고?”

“칼을 꽂아?”

앤디와 제인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물었다. 반면, 단탈리온은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피식 웃었다.

“시틀라를 비롯한 11연대의 군단장들과 그 휘하 행정병들의 분석 결과, 이번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도전자들은 하나같이 심약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아니 그거랑 칼을 꽂는 거랑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그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 또한 전쟁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앞에 앉아 있는 심사 위원들.”

단탈리온이 무대 앞에서 심사를 보고 있는 인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들은 특히나 공포에 취약하다.”

“아니, 저분들은 공격 대상이 아닌데……?”

“맞아. 차라리 그냥 흑마법으로 하는 건?”

제인의 의견에 단탈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되느니. 이미 백마법 사용자들만 둘이나 만났다.”

“뭐!? 둘이나!?”

“그러하다.”

탑엔젤스의 보컬과 열반 밴드의 보컬.

벌써 백마법 사용자를 둘이나 만난 단탈리온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흑마법을 잘못 사용했다가는 마왕이라는 정체를 들키게 되거나, 관계자라는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흑마법을 아끼도록 한다.”

“좋아. 어차피 그냥 연주로도 자신 있으니까.”

“옳은 마음가짐이로다, 앤디여.”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앤디가 자랑스럽게 기타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럼 우리 분장은 계획대로 하고, 데스맨이 칼을 꽂는다?”

“그러하다. 꽂을 때 놀라지 말거라. 모두 방비를 해 두고 하는 것이니.”

멤버들이 모두 알겠다며 연출에 동의했다.

“그런데 진짜 이렇게 해도 된대?”

제인이 아무래도 불안하다며 물었다. 그러자 단탈리온은 덤덤한 얼굴로 카메라 뒤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러하다. 저기 있는 PD라는 작자가 요청하고 갔느니.”

“뭐…… PD가 해도 된다고 했으면 괜찮겠지.”

그렇게 RRR멤버들은 PD의 컨펌이 있었다는 걸 철썩 같이 믿고는 준비한 연출을 했고.

“히이이이이익!!!!”

설마 그 정도까지 할까 싶었던 기보성PD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 *

솔직히 놀라지 않으려고 했지만, 엄청나게 놀랐다.

‘아니 저렇게 피가 뿜어져 나온다고!?’

쟈쟈앙 쟈쟝-!

연신 피를 뿜고 있는 단탈리온을 바라보며 앤디는 인트로를 연주했다.

가벼운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Make Dream’.

쟈쟈쟝- 쟝쟝- 쟈쟈쟝!

쟈쟝 쟈쟈쟝! 키잉!

그 뒤를 따라가는 오로바스의 드럼과 제인의 베이스.

두두둥, 창! 두두둥, 창!

둔둔 두둔 둔 두두둔

연주를 하면서 앤디는 물론이고 제인도 단탈리온이 괜찮은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안색은 괜찮아 보이는데…….’

진짜 괜찮나?

제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눈치챘는지 단탈리온이 왼손을 촤락 펼치며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유일하게 오로바스만이 지금의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단탈리온 님, 역시!’

자신의 심장으로 칼을 꽂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는구나!

그 정도 담력은 있어야 마왕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단탈리온을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오로바스였다.

그리고 이 소동의 주인공인 단탈리온은.

“후우…….”

마이크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로 비틀거렸다.

정말 피를 많이 흘려 쓰러지려는 사람처럼.

“구, 구구, 구급차!! 빨리!”

“주,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스탭들이 혼비백산하고 있자 윤상하가 오른손을 들어 제지했다.

“연출용 가짜 피 하루 이틀 봅니까? 아마추어들처럼 왜들 이래요.”

윤상하의 말에 스탭들 전원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윤상하도 지금의 퍼포먼스에서 놀라기는 했다.

아무리 피를 뿜어낸다고 한들, 진짜 식칼을 심장에 꽂는 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 남자는 칼날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는 식칼을 들고 자신의 심장으로 꽂아 넣었다.

어지간한 담력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또 한 편으로는.

“RRR 밴드……. 이 정도 연출은 일도 아니라는 거구만.”

생각지도 못한 담력을 보여준 RRR 밴드를 향해 윤상하의 두 눈동자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 * *

‘따갑군.’

힘을 너무 줬나.

호신마기로 몸을 감싸고는 있었다고 하나, 마력으로 감싸져 있는 손으로 칼을 들었다.

그렇다면 칼에 쥐어지는 힘 역시, 마력이 포함된 근력으로 바뀌는 법.

‘너무 찔렀나.’

나는 오른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식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시틀라가 오로바스에게 주문을 넣어 연출용 인조 피를 구해 오라고 했었고, 인조피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풍선을 코트 안에 숨겨두고 있었거늘.

그걸 찌른답시고 식칼을 푸욱 꽂아 넣었다가, 실제로 내 심장 부근을 찔러 버리고 말았다.

“후우…….”

인간의 몸은 지나치게 나약하군.

고작 칼 한 번 찔린 정도로 몸이 비틀거리다니.

아니, 이게 빈혈이라고 하는 것인가?

만약 정말 그런 거라면, 공연 도중 이 몸이 쓰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는 아니 되느니.

“……그렇다면 흑마법으로 채울 뿐이다.”

우선 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선 2라운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당장에 멘떼크몽떼를 사용해서 현장에 있는 이들을 모조리 사로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방송으로 이 몸을 알현하는 무지한 인간들의 뇌 주름 속에 각인되지 않을 터.

‘퀘르포 타쿤.’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흑마법.

내 몸에만 두를 수 있는 마법이기에 호신마기와 같이 마력을 주변으로 발산하지는 않는 특징을 갖고 있는 흑마법이었다.

나는 인조 피와 내 피가 섞여서 철철 흐르고 있는 심장 한 켠을 움켜쥐고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하이예이야아아아아!!!!!!]

마치 이 심장의 고통을 잊고 몸부림치며 살아가겠다는 듯.

[단 한 번, 그대의 눈동자를]

[올려다보던 나의 그 미소]

나는 루시드 드림의 Make Dream의 메탈 버전을 부르기 시작했다.

* * *

‘어라?’

연출 때문에 소동이 있었지만, 윤상하 덕분에 혼란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래서 심사 위원들 모두 다시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락킹한 사운드가 들리는 편곡이네.”

“이런 편곡도 재밌네요.”

“가사는 그대로인가?”

그렇게 서로 한 마디씩 소곤대던 심사 위원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가려진 그대의 눈에]

[키스를 날리는 나의 칼날]

“……칼날?”

“입술 아닌가?”

심사 위원들도 루시드 드림의 역주행 곡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단탈리온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사를 이어 나갔다.

[그대의 눈동자에 담긴 나를 봐]

[한없이 아득한 어둠에 잠겨]

[그대 꿈을 배회하는 악령이 된 나를]

“……여기도 좀 바뀌었네요?”

“메탈 버전이라 편곡하면서 가사도 바꿨나?”

사실 지금 이 노래는 루시드 드림과 동시에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해 준비했던 앤디의 메탈 버전 ‘Make Dream’이었다.

메탈로 편곡하면서 연인과 헤어지고 악마처럼 변해 상대를 저주하며 다니겠다는 화자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가사도 바꾼 것이었다.

[그대에게 칼을 꽂는 나는]

[그대에게 칼이 꽂힌 나는]

[이제는 심장이 없는 No more]

[아픈 심장을 움켜쥔 Oh want]

이별의 아픔을 가진 화자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신의 심장을 버리고 싶다는 내용의 가사.

그리고 그 가사를 떠올리며 만든 연출인 단탈리온의 칼 꽂기 퍼포먼스.

편곡과 개사까지 더해진 RRR의 무대를 바라보며 심사 위원들은 알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이거……. 멋진데요?”

“무조건 합격이지.”

“연출도 연출이지만 실력이 와우.”

“이 팀은 편곡, 개사도 훌륭합니다.”

장도민, 윤상하, 하현주, 유열희가 한 마디씩 감상을 내뱉었다.

단탈리온의 노래와 앤디의 기타 속주, 제인의 베이스 솔로, 오로바스의 드럼이 뒷받침되는 한 편의 공연.

이건 경연이라기보다는 정말 RRR만의 ‘공연’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무대였다.

[I want make Dream!!!!]

[We want make Dream!!!!]

[너의 꿈을 부숴 줄게]

[소리 질러도 소용없어]

[너의 꿈을 삼켜 줄게]

[깰 수 없는 자각몽을]

[영원히 고통받도록]

[사라진 내 심장을]

[지금 네 꿈에 바치리!!!!!]

단탈리온의 마지막 샤우팅이 JB방송국 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 * *

“핫!!”

기보성PD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두 눈을 번쩍 떴다.

“PD님 정신이 드세요!?”

“구급차 불렀으니까 응급실로…….”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기보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한껏 뽐내고 있는 RRR의 모습을 바라봤다.

군더더기 없는 퍼포먼스. 기타리스트의 멋진 속주. 베이시스트의 걸크러시 헤드뱅잉. 드러머의 남성미가 철철 흐르는 필인.

거기에 시원시원한 고음을 마음껏 내지르는 보컬리스트까지.

RRR의 무대는 지금껏 보여 주었던 그 어떤 밴드보다도 더 뛰어나 보였다.

“……찾았다.”

“네?”

“찾았다고! 드디어!!!”

화끈한 퍼포먼스는 물론이고 실력까지 보장되어 있는 밴드가 등장했다!

1, 2화까지는 컨셉질로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 수 있겠지만, 그 다음 화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기보성이었다.

그 해답이 지금 RRR 밴드 덕분에 풀리고 있는 것이었다.

“직캠 찍어.”

“지, 직캠이요?”

명령을 하달받은 조연출이 손가락으로 샤우팅을 내지르는 보컬을 가리켰다.

“……저런 피투성이 몸과 무대를 직캠으로 찍자고요?”

“너튜브는 심의고 나발이고 없잖아! 일단 찍으라면 찍어!!!”

“너튜브도 심의 있어요, PD님!”

“아, 일단 찍어! 19금을 달든 아예 싹 다 모자이크를 하든!! 우선 찍고 보자고!”

심의에 걸리면 그때 수정하면 되는 일이다!

기보성이 두 눈을 빛내며 RRR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에 적절한 인터뷰까지 더해지면……!’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모두 만들어진다.

기보성은 그 시나리오가 아름답게 만들어질 거라는 확신에 찬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 * *

무대가 끝나고 난 뒤 RRR의 무대를 평가받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의 RRR 밴드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심사 위원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근데 무대는 조금만 더 얌전하게 해 주셨으면…….”

“무어라, 자네들도 피투성이로 만들……. 읍!”

“아하하, 저희도 오늘 좀 과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

앤디가 뭐라 반박하려는 단탈리온의 마이크를 후다닥 뺏고 입을 막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무대가 마무리되고, 이제 다음 차례가 되려는 찰나.

“내 할 말이 있도다.”

마이크를 쓰지도 않은 채 자신의 성량만으로 무대 전체에 소리를 낸 단탈리온이 심사 위원석 뒤편을 응시했다.

“PD라는 작자가 거기 있는 그대가 맞는가.”

“엥? 나?”

기보성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이 몸을 알현할 기회를 허락하마.”

단탈리온이 심장 부근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오른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남은 왼손을 들어 기보성을 향해 펼쳐 보이고는 크게 회전하며 기보성의 모습을 담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단탈리온의 왼손이 주먹을 꽉 쥠과 동시에.

기보성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다, 당장 인터뷰 준비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백미.

개별 인터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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