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54화 (54/110)

54화. 악마의 편집 (1)

‘시간이 없군.’

단탈리온은 심장에 가져간 손을 살짝 떼었다. 떨어진 손바닥으로 붉은 피가 찐득하게 늘어졌다가 떨어졌다.

“이 몸을 알현할 기회를 허락하마.”

그래서 단탈리온은 서둘러 프로그램 총괄 PD를 찾아 말했다.

이번에 참가한 ‘라이징 밴드’ 오디션에서는 참가자들의 공연 직후 인터뷰 촬영이 있다.

공연은 어땠는지 소감을 말하거나, 견제하고 있는 팀이 있다거나 하는 식의 질문들이 나온다고.

작가들이 미리 언질을 해 준 사항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공연이 끝나면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인터뷰로 들어가게 되겠지만.

‘마력도 점점 소진되고 있다.’

서둘러 안정을 취해 체내의 마력을 갈무리하지 않으면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인간의 몸은 역시, 지나치게 나약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한 단탈리온이 다시금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정말로,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기절할 것만 같았으니까.

생각보다 칼이 깊게 들어갔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행히 PD가 소리를 질렀다.

“다, 당장 인터뷰 준비해!!”

“훗. 옳은 판단이로다.”

단탈리온은 심장 부근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야, 괜찮아?”

앤디가 걱정스럽다며 다가왔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이 정도는 별일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그저 인공으로 만든 피일 뿐이다. 걱정할 필요 없느니.”

“아니 그래도…… 너무 비틀거리는데?”

“컨셉이니라.”

단탈리온을 부축해 주려던 앤디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공연 끝났으니까 인터뷰 끝나면 컨셉 유지 안 해도 돼. 알았어?”

“훗. 걱정해 주어서 고맙구나.”

이렇게나 충직한 군단장은 마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거늘.

앤디의 충성심을 확인한 단탈리온이 미소를 지었다.

“……워우.”

“그 분장 하고서 웃으니까 진짜 섬뜩하다.”

앤디와 제인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런데 인터뷰할 때도 이 분장으로 가야 하나?”

“당연하지요!”

앤디의 궁금증은 뒤에서 나타난 기보성PD에 의해 해결되었다.

“RRR 밴드! 이번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메탈 밴드 중 하나!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 방송이 살아날 게 분명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하하하.”

앤디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기보성은 멤버 네 명의 몰골을 쭉 훑어보더니 물었다.

“지금 아주 좋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보컬 분 몸에 묻은 피를 모든 멤버들 옷에 바르고 싶지만…….”

“이유가 있는가?”

단탈리온의 질문에 기보성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커흠! 그야 당연히, RRR 밴드가 마왕군을 컨셉으로 잡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들은 지금 전쟁을 치르고 나왔습니다! 전쟁이라면 피와 땀이 튀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기보성의 설명을 들은 제인이 미간을 좁혔다. 컨셉을 중시하는 PD라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쨌든 방송용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어설프게 피 발랐다가 모자이크 처리되면 어떡하려고요?”

제인의 말에 기보성은 대답을 하기보다는 그저 허허허,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럼 이걸 묻혀야…….”

“아니. 우리는 이대로 하겠다.”

단탈리온이 정색하며 말했다. 앤디도 단탈리온의 단호한 답변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평범하게 인터뷰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는 RRR 밴드의 리더인 앤디까지 그렇게 말하자 기보성이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쩝. 알겠습니다. 초반부터 모든 패를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앤디는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기보성의 뒤에서 단탈리온의 등을 툭툭 건드렸다.

“왜 그러느냐?”

“왜 거절했어?”

피를 묻히는 연출이야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옷에 묻은 피를 소매에 묻히라는 정도로만 해도 되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단탈리온은 기보성의 요구 사항을 거절했다.

분명 더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이름 더 알려야 하는 거 아냐?”

“어설프게 알렸다가 방송에도 나가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주객전도니라.”

사실 분장을 더 만들고 하면서 시간이 허비될까 봐 걱정되었지만.

단탈리온은 그런 속내를 숨기고는 앤디에게 말했다.

“음악적으로는 물론이고 스타성도 갖추어야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맞는 말이야. 나도 마왕님이 거절했을 때 다행이다 싶었어.”

제인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로바스는 뒤에서 드럼 스틱을 딱딱 부딪쳐 가며 말했다.

“저는 단탈리온 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그래그래. 알았어. 어쨌든 오늘 연출도 꽤나 파급력 있기는 했을 거니까, 매회 연출들을 좀 신경을 써 보자고.”

본선 4라운드에 결선 2라운드까지 진행되는 라이징 밴드.

이제 겨우 1라운드를 진출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패를 한 번에 꺼내기보다는 필살기를 여러 개 만들어 두고 준비하는 게 효과적일 터였다.

당연히 여기에는 인터뷰에서 적절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것도 중요했다.

“인터뷰도 제대로 해 보자. 데스맨, 넌 항상 하는 것처럼 조용히 있어.”

“……알겠느니라.”

* * *

“무섭지는 않았나요?”

개별 인터뷰실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여성이 쭈뼛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중 반짝이는 금발을 자랑하는 여성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무섭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엄청 놀랐고…….”

정말이다.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깜짝 놀랐고.

그 이후에는 두려웠을 뿐이었다.

‘그래도 천사가 무서웠다고 하면 안 되잖아.’

도미니온은 앞에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조연출을 향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저희 ‘탑엔젤스’는 모든 참가자들을 존중하고 있으니까요!”

생기발랄한 그녀의 목소리에 인터뷰를 하던 조연출의 얼굴에도 미소가 맺혔다.

어찌 이리도 사랑스럽단 말인가!

“크, 크흠!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얼굴을 살짝 붉힌 조연출이 마지막 질문을 던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선전포고처럼 도발한 RRR 밴드의 단탈리온 데스맨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탑엔젤스의 보컬리스트인 도미니온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로 상반되는 컨셉의 밴드라서 그런 연출을 하신 거 같은데, 앞으로도 우리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탑엔젤스 파이팅!”

그렇게 탑엔젤스의 인터뷰가 마무리되었고.

“어서 들어들 오세요!”

“음.”

RRR 밴드의 멤버들이 인터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단탈리온과 도미니온이 눈을 마주했다.

“앗……!”

도미니온의 두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 왔다.

자신의 마력 운용을 눈치채고 순식간에 다가온 남성.

RRR 밴드의 보컬, 단탈리온 데스맨이 두 눈을 부라리며 도미니온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대로군.”

“네……. 네?”

“조만간 자네를 찾아 자초지종을 물을 것이다.”

“저, 저를요? 우리 아는 사이…….”

“중요한 것은 이 몸이 그대의 행적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단탈리온이 심장을 감싸고 있던 오른손을 들어 도미니온의 얼굴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때까지 이 지옥의 오디션에서 살아남도록 하거라.”

“히이이이이익!!!!!”

손바닥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목격한 탑엔젤스 멤버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때 뒤에서 앤디가 단탈리온의 등짝을 사정없이 휘갈겼다.

짜악-!!!

“……아프구나, 앤디여.”

“가만히 좀 있으라 그랬더니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또!!”

“앤디여, 자네는 상대를 향한 존중이 부족…….”

“존중은 개뿔. 야! 너도 탑엔젤스분들에게 존중이 없잖아 존중이!”

“이건 앤디 말에 동의. 적당히 좀 하지 우리 보컬님?”

앤디에 이어서 제인까지 한 소리를 곁들이자 단탈리온이 눈을 질끈 감고는 마력을 거두어들였다.

“끄응……. 알겠느니.”

“후……. 그럼 사과드려.”

“무엇을 말이더냐.”

“보컬분한테 사과하라고! 보나 마나 네가 시비 걸었겠지!”

도미니온은 잔뜩 겁에 질린 눈동자를 하고는 단탈리온과 앤디, 제인, 오로바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봐! 무서워서 덜덜 떠시잖아!”

“앤디여, 자네 분장도 지금 만만치 않도다.”

“……헛.”

앤디가 몸을 90도로 숙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밴드 컨셉이 컨셉인지라 가끔 공연 끝나고도 컨셉질을 이어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 아 네……. 괜찮아요, 저 진짜 괜찮아요.”

사실 도미니온이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서 RRR 밴드의 멤버들을 바라본 건 무섭거나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용사의 후계자일지도 모르는 단탈리온 데스맨.

그리고 그런 사람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기타리스트와 독설을 날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베이시스트.

그들의 모습이 도미니온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이해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저 드러머 정도가 일반적이고…….’

넷 중에서는 가장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바로 드러머, 오로바스였다. 그는 드럼 스틱을 들고서는 지금의 사태를 그저 관망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괜찮아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 기대할게요.”

피투성이를 하고 있는 단탈리온을 보면서 도미니온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그럼 탑엔젤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고, 열반 밴드 인터뷰 전에 RRR 밴드부터 하겠습니다!”

기보성PD의 신호에 따라 RRR 밴드 멤버들이 차례로 의자에 앉았다.

기보성은 방금 전 단탈리온과 도미니온의 신경전으로도 한 컷 뽑았다면서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었다.

“참, 제가 약간 편집 방향이, 악마의 편집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손을 대기도 하는데, 괜찮으시죠?”

“악마의 편집이라. 기대하고 있겠다.”

* * *

라이징 밴드 본선 1라운드를 진행하고 1주일 뒤.

멤버들이 다시 합주실로 돌아왔다.

“예고편은 준비되었습니다.”

단탈리온, 앤디, 제인, 오로바스. 넷이 한 데 모여 핸드폰의 영상을 틀었다.

가벼운 인트로가 지나고 심사 위원들의 각오가 보여졌다. 네 명의 심사 위원들이 짧은 각오를 보이자마자.

“……이거 너 아냐?”

탑엔젤스의 공연 도중에 난입하는 단탈리온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공연 도중 난입한 메탈밴드!>

<“엄청 놀랐어요.”>

“뭐야, 이 목소리는 데스맨이 아닌데?”

“그 여자 아냐? 탑엔젤스.”

보여지는 화면은 단탈리온이었지만, 목소리는 탑엔젤스의 도미니온 목소리였다.

<“서로 상반되는 컨셉의 밴드라서 그런 연출을 하신 거 같은데”>

<“우리를 모욕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

다시 도미니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단탈리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거 다른 인터뷰의 앞뒤 자르고 붙인 거 같은데?”

앤디의 말대로였다.

기보성PD는 편집 과정에서 인터뷰 멘트를 그대로 담지 않았고, 다른 인터뷰 내용을 조각조각 내어 자신의 입맛대로 붙인 것이었다.

“아니 이러면 사기……!”

“잠시 조용히 하거라, 앤디여.”

단탈리온이 두 눈을 부라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저희가 보여 드릴 곡은, 반야심경의 Rock버전입니다.”>

“이건 열반 밴드 스님?”

<“수행이 부족한 중생입니다.”>

<“더는 상종할 가치가 없더군요.”>

여기에 다른 참가자들의 인터뷰 내용까지 섞이면서 RRR 밴드는 ‘라이징 밴드’의 공식적인 빌런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방송 오디션 최초! 피 분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RRR 밴드! 악마의 밴드라는 이들은 인간계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인가!>

영상의 마지막에는 피를 분수처럼 뿜고 있는 단탈리온의 모습과 경악하는 심사 위원들의 모습이 나오면서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탑엔젤스의 보컬, 도미니온이 눈가를 살짝 훔치는 영상과 함께.

<“솔직히 그만하고 싶어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약 30초가량의 예고편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앤디와 제인, 오로바스가 모두 숨을 참고 있었지만.

예고편이 끝나자마자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악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마구 손가락질을 했다.

“미친 거 아니야! 우리가 뭘 했다고!”

“이딴 식으로 편집하면 우리만 피 보잖아!”

“단탈리온 님은 저런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탑엔젤스 보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멘트는 다른 인터뷰 질문의 평범한 답변이었단 말입니다!”

오로바스가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건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감시 눈동자를 방송국 사방에 붙여 뒀었기에…….”

“다시는 그 눈동자로 사람들 감시하지 마. 알았어, 진태 씨?”

제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오로바스, 박진태에게 검지 손가락을 올려 이마를 짚었다.

“알. 겠. 지. 요?”

“……예, 알겠습니다.”

박진태가 꼬리를 내렸다.

“아무튼, 이런 식의 편집은 마음에 들지 않아. 당장 방송국에 항의하자.”

제인의 말에 앤디가 그렇지 않아도 전화 중이라며 말했다.

“PD 이 인간, 전화 안 받아.”

“예고편이 올라오는 날에 맞춰서 폰 꺼 둔 거 아냐?”

앤디와 제인이 씩씩대며 콧김을 있는 대로 내뿜고, 오로바스는 침울해져만 있을 때.

오직 단탈리온만이 팔짱을 끼고는 고고한 자태로 고개를 또렷이 들고 있었다.

“실망이로군.”

“그러니까 말이야! 화딱지 나게! 이딴 악마의 편집이나 해 대고 이 쓰레기 같은 PD 새…….”

“아니, 그게 아니다.”

단탈리온이 혀를 차며 말했다.

“고작 이따위 편집으로 악마의 편집이라니. 지나가던 최하급 악마도 울겠구나.”

겨우 이 정도로 선동과 날조의 대가라는 별명을 가지려 하였단 말이더냐.

“기보성이라는 인간의 자질이 심히 의심되는군.”

단탈리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지금 당장 기보성을 찾아가겠다.”

“뭐!?”

“아니, 야, 진짜로!?”

앤디와 제인이 화들짝 놀라며 단탈리온을 말리려는 순간.

단탈리온이 빠르게 기보성PD에게 문자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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