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55화 (55/110)

55화. 악마의 편집 (2)

“하하하하! 어때! 이 정도면 먹히겠지!”

늦은 시각, 기보성은 방송국 편집실에 남아서 후배들의 어깨를 마구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천사와 악마 밴드의 대결! 악마 밴드 도발에 넘어간 스님들의 중도 포기 선언! 사람들의 경멸 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될 RRR 밴드!”

이번 라이징 밴드의 첫 번째 방송인 본선 1라운드.

어중간한 레벨의 밴드들은 모조리 편집하고, 나름대로 실력을 갖춘 밴드들과 함께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 있는 팀들의 영상을 남겼다.

그렇게 나온 예고편이 바로, 악마 컨셉의 밴드인 RRR의 공식 빌런 예고였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잘 만들었어! 그치?”

“아하하, 네에, 뭐…….”

기보성의 후배 PD가 고개를 어색하게 끄덕였다. 기보성은 후배의 얼굴 따위 보이지 않는다는 듯 후배의 등을 팡팡 때리면서 소리쳤다.

“크하하하! 이거면 1화 어그로는 확실하게 끌렸을 거야!”

“저…… 근데 선배님, 진짜 이렇게 편집해도 괜찮아요? 그쪽에서 공격이라도 오면…….”

“공격?”

후배의 걱정스러운 말에 기보성이 코웃음을 쳤다.

“감히 JB방송의 기보성에게? 무명 밴드들 불러다가 라이징 밴드로 기회를 준 사람이 바로 나, 기보성이야. 안 그래?”

“그…… 그건 그렇죠.”

“그런데 감히 누굴 공격해? 하! 뭐 우리는 그런 말 안 했어요~ 그렇게 악마 같은 짓은 안 했어요~ 이러면서 성명이라도 내면 어쩌나 싶은 거야?”

기보성은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한다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얌마. 걔네가 하는 말이 먹히겠냐, 우리가 하는 말이 먹히겠냐? 어차피 걔네들은 아무것도 못 해요. 그치?”

“그래도 시위를 하거나, 언론에 뿌리거나 하면…….”

“본인들 밴드 이름 알릴 기회를 걷어차고 그렇게 나온다?”

그럴 리가 없지.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음악 활동을 더 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인디 밴드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프로그램이 바로 ‘라이징 밴드’다.

기보성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호오옥시나 그런 일 벌어지면 내가 다 책임진다! 알았냐?”

“네에…….”

“쓰읍. 목소리 보소. 알아들었냐?”

“……옙!”

“알겠습니다!”

후배들의 대답을 들은 기보성이 악마같이 입꼬리를 스륵 올렸다.

제깟 놈들이 덤벼들어 봤자 벼룩이다.

벼룩이 뛰어올라 봤자 밟아 주면 되는 일.

감히 JB 방송의 메인PD인 기보성에게 덤빌 생각을 하겠어 설마?

기보성은 아무런 걱정 없이 자신이 만든 예고편을 몇 번이고 연달아 돌려보며 음흉한 웃음소리를 날렸다.

* * *

그리고 며칠 뒤.

“누가 와?”

“단탈리온 데스맨이라고…….”

RRR 밴드의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이 찾아왔다.

역시나 예고편을 보고 항의를 하러 온 걸까.

하긴, 방금도 메시지가 도착하기는 했었다.

무턱대고 자신을 찾아온다고 하던데.

어차피 오늘은 답장을 보낼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보내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국까지 직접 찾아왔다고?

“의외로 패기는 있나 보네.”

역시 메탈 밴드인가.

악동, 악마 이미지를 달고 사는 녀석들이기에 뒤가 없는 걸까.

그래도 어찌 되었든 그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기보성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냥 보내.”

“보내요?”

“그래. 나랑 뭐 미팅 약속을 했어, 뭘 했어? 갑자기 와 가지고는 나를 찾…….”

“하등한 PD여, 그곳에 있었는가.”

기보성이 말을 더 이어 가려는 때, 사무실 문을 열고 단탈리온 데스맨이 등장했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훗. 안내 수고했노라.”

‘저 멍청이가!’

뭘 믿고 저 외부인을 여기까지 안내한 건지!!

답답해 미치겠다며 안내한 작가를 노려봤지만, 작가는 이미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는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뚜벅, 뚜벅.

단탈리온 데스맨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기보성의 앞으로 다가왔다.

기보성은 보이지 않게 코를 씰룩거리고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우리 라이징 밴드의 참가자 RRR…….”

“안내하거라.”

“예?”

슬슬 기보성도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단탈리온의 안하무인한 태도에 기분이 퍽 상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말이지, 데스맨 씨. 당신이 여기서 이런다고 득 될 게 없…….”

“고작 그런 허접한 영상으로 악마의 이름을 사칭하다니, 기가 차는구나.”

그러나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말에 기보성의 입술이 떼어지려다 멈추었다.

“……네?”

“악마의 편집을 하겠다 하지 않았느냐.”

“그렇…… 지요.”

“이게 어째서 악마의 편집이냐. 천사들이나 할 정도로 지나치게 나약하고 허접한 편집이지 않느냐”

기보성을 비롯해서 주변에 있던 스탭진들 전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이 몸이 직접 보여 주마.”

“어떤 걸…….”

“진정한 악마의 편집을 보여 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안내하거라.”

단탈리온이 옷깃을 세우며 말했다.

“영상을 편집하는 작업실로 말이다.”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기보성의 얼굴이 한껏 펴졌다.

“역시! 단탈리온 데스맨! 메탈 밴드답습니다!”

“피, PD님!?”

다른 스탭진들이 아무래도 불안하다며 기보성을 말리려 했지만, 이미 기보성의 심장도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진정한 악마의 편집을 위한 열정이 말이다.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역시 우리 단탈리온 데스맨! 저와 뜻이 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으하하하하!!!”

“훗. 자네도 이 몸의 추종자가 되겠다는 거군.”

단탈리온이 히죽 웃으며 반지로 가득한 왼손을 살짝 쥐었다 펴며 말했다.

“가자. 공식 팬 2호여.”

“우리 라이징 밴드 대박 날 수 있게 해 주시면 팬클럽 가입해 드리죠. 그럼요! 암암!”

기보성이 한껏 신이 나서는 걸음을 옮겼다. 단탈리온은 그 뒤를 따라갔다. 다른 스탭진들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이후에 벌어질 사태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 * *

방송국 출입은 어렵지 않았다.

“멘떼 크몽떼.”

경비를 비롯해 나를 안내해 줄 역할을 할 사람에게 흑마법을 사용했으니까.

최하급 흑마법 정도라면 마력 운용에도 큰 어려움이 없고, 천계에서도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

……아니, 문제를 삼을 수는 있지만, 지금은 신성력을 지닌 탑엔젤스나 열반 밴드가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설령 이 몸을 찾아온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들도 나를 보자마자 치고 박고 싸우는 걸 원하지는 않을 터.

그런 점에서 방송국에서의 이 정도 흑마법 사용은 크게 문제될 건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면 역시.

영상을 이어 붙이는 ‘편집’이라는 부분이 될 것이다.

나는 영상을 촬영해 본 적이 없고, 편집은 더더욱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때문에 제대로 된 악마의 편집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만약 여기에서 메인PD의 협조를 구하지 못한다면 흑마법으로 조종을 해서라도 편집을 하려 했는데.

“자네의 의도는 지나치게 불분명하도다.”

“의도…….”

“자네는 지레 겁을 먹은 것이 아닌가.”

“그, 그걸 어떻게……!?”

“보면 아느니.”

다행히 기보성은 내가 하는 말들을 경청했다. 심지어는.

“역시!!!!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이 몸이 악마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내가 생각하는 편집 방향을 이야기해 주면 적극적으로 반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보성은 내 의견을 토대로 새로운 예고편을 제작했다.

이름하여 ‘라이징 밴드 예고편 ver2’.

“이 예고편이라면……!”

더 대박이 날 수 있다!

기보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탈리온 데스맨을 껴안았다.

와락!

“당신은 제 은인입니다!”

“음?”

“저로서는 감히 생각도 못 한 방향! 담력! 이를 본받아서 이번 라이징 밴드, 제대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옳은 생각이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보성의 등을 토닥였다.

“내 그런 자네를 위해 저주를 내려 주마.”

“악마의 의식 같은 건가요? 좋습니다! 야! 이거 찍어! 빨리!”

“네!?”

옆에서 혹시 몰라 현장을 살피고 있던 조연출에게 기보성이 핸드폰을 건넸다.

“빨리 찍으라고! 악마가 선사하는 저주의 축복!”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네네! 저주야 저주! 저주를 하사하신다!”

“이게 뭔…….”

조연출은 기보성의 핸드폰을 들고 한숨을 쉬며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가 촬영하는 방향을 생각하면서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마왕 단탈리온 데스맨의 이름으로.”

“오오오 마왕님!”

“자네에게 저주를 하사하마.”

이 상황에서 가작 적절한 저주라면 무엇이 있을까.

역시 그게 가장 좋겠지.

“라이징 밴드 프로그램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방송계에서 영구 퇴출되는 저주를 내리마.”

“우오오오오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어쩐지 또 다시 파이팅 넘치게 되는 기보성이었다.

* * *

“…….”

“…….”

밝은 조명이 아래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둥근 원형의 홀.

각양각색의 창문이 조각조각 각자의 빛을 뽐내며 숭고한 숭배자와 신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 창문.

그 안으로 쏟아지는 햇빛과 같은 빛.

찬란하게 빛나며 신을 모시는 제단 위에 우뚝 서 있는 존재.

천계의 지배자 메타트론과.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상대를 향한 존중의 뜻을 내비치고 있는 중급 천사.

주천사 도미니온.

두 천사가 서로를 향해 긴 침묵을 이어 가고 있었다.

“…….”

“…….”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천계의 지배자, 메타트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미니온.”

“……네.”

“너, 내려가서 뭘 한 거냐?”

메타트론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도미니온을 노려봤다.

“저는 진짜 아무 잘못이 없다니까요!? 저건 PD가 나쁜 놈이에요 PD가!!”

“악마의 편집이니 뭐니 하는 그거 말하는 거니?”

“네!”

“그럼 그 인간에게 악마가 빙의라도 했다는 거야 뭐야?”

“어…….”

생각해 보니 딱히 기보성에게서 마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도미니온은 확신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지도…….”

“도미니온!!!!”

메타트론이 진각을 밟았다.

쿠우웅!!!

제단의 돌바닥에 실금이 새겨졌다.

백마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제단의 돌바닥인데, 진각 한 번만으로 실금이 새겨지다니.

어지간한 천사라면 이런 살벌한 기세에 기가 죽어 고개를 푹 숙일 만도 했지만.

“메타트론 님, 또 부수시면 행정팀에서 진짜 탄원서 올릴지도 몰라요.”

“……말이나 못 하면.”

하도 자주 부숴서 행정팀이 벼르고 벼르고 있는 참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는 것이었다.

도미니온은 이때다 싶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꺼냈다.

“메타트론 님, 그 예고편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째서지?”

“저는 그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보컬리스트를 전혀 몰라요!”

도미니온이 정말 억울하다며 양팔을 좌우로 휘저었다.

“그때 박진주 몸에 빙의해서 들어간 것도 빙의를 했었으니까 저라는 것도 그 사람은 모를 거예요!”

“흠……. 그건 그렇군.”

“게다가 저랑 제 부하들은 다들 내려가자마자 악기 연습, 노래 연습만 했잖아요!”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무슨 연애를 해요, 연애를 하기는!!”

도미니온이 지금 이렇게 미치고 팔짝 뛰는 이유.

바로 방금 전 올라온 ‘라이징 밴드 예고편 ver2’ 때문이었다.

새롭게 공개된 예고편의 시작은 단탈리온과 도미니온의 첫 만남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몸이 그대의 행적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저도 존중하고 있으니까요.”>

<밴드 참가자들의 충격 고백!!>

<음악으로 시작되는 러브 라인!?>

<알콩달콩한 천사와 악마 참가자들 사이!>

<“저도 아마 끝까지 갔다면…….”>

열반 밴드의 능선 스님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스님이 천사와 악마의 러브 라인에 도전장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스님의 충격 발언! 스님도 사랑 앞에는 장사 없다!?>

<과연 이 삼각구도의 미래는!?>

<전체 내용이 궁금하면 00일 저녁 8시! JB방송에서 본방!! 사수!!>

<“훗. 기대하고 있겠다.”>

ver2 예고편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예고편을 떠올리며 도미니온이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고는 다시 메타트론을 향해 하소연을 했다.

“메타트론 님, 이거 진짜 악마의 편집이라고요! 제가 인간이랑 왜 연애를 해요!! 이거 분명 앞뒤 다 자르고 억지로 이어 붙인 거라고요!”

“에에잇!!! 그렇게까지 악독한 인간이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정말 그런 인간이라면 사탄도 울고 갈 거다!”

“울고 가라고 전달 좀 해 주세요. 제발!!!!”

메타트론과 도미니온이 답도 나오지 않는 논쟁으로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단탈리온은 새로 나온 예고편을 감상하고는 씨익 웃었다.

“와……. 누가 악마 아니랄까 봐…….”

앤디가 단탈리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악마스러운 편집 같아서 만족하냐?”

“훗. 당연하다.”

단탈리온이 새로 구입한 감자칩을 하나 집어 먹으며 말했다.

“이것으로 천계의 힘을 부여받은 저 여성은 이 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느니.”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신성력과 백마법.

언제까지고 그 존재를 두려워만 하며 상시 경계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도록. 혹은 다른 이들도 그들을 자주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전쟁에서의 하나의 전략.

“어디 이 몸과 함께 영혼의 파트너가 되어 보지 않겠는가.”

라이징 밴드 존속을 위한 단탈리온의 또 하나의 전략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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