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환장의 콜라보 (1)
“……콜라보요?”
H&B 헬스장의 사장, 서갑수.
RRR 밴드가 라이징 밴드에 출현한 덕분에 서갑수의 헬스장에도 회원 가입 문의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함박웃음을 짓던 것도 잠시.
“아니 그걸 제 상의도 없이 이렇게…….”
“예고를 하고 오면 이 몸을 알현하기 위한 인파가 몰리지 않겠는가.”
단탈리온이 접힌 옷깃을 살짝 세우면서 말했다.
“그러니 이렇게 불시에 방문한 것이니라. 반대는 허하지 않겠…….”
“아하하하, 죄송합니다. 저희 보컬이 워~낙 악마 컨셉에 진심이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에에잇! 앤디여, 이게 무슨 짓이냐! 이 몸은 서갑수 지배자에게……!”
“됐으니까 닥치고 고개 숙여!”
앤디가 단탈리온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붙잡고는 아래로 꾸욱꾸욱 눌렀다.
“앤디님! 단탈리온 님께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오로바스 너도 숙여!”
“끄악!!”
제인은 오로바스의 머리를, 앤디는 단탈리온의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보컬과 드러머가 좀 제정신이 아니라서…….”
“아뇨 뭐……. 괜찮습니다. 단탈리온 데스맨 님이 PT받으시는 영상이 너튜브에 떠돌면서 또 이슈가 되었거든요.”
서갑수의 말대로였다.
단탈리온이 서갑수에게 PT를 받으면서 헛소리를 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대체 저 헬스장 사장은 누구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리얼 저 정도 컨셉 받아 주려면 사장도 만만치 않은 사람인듯ㅋㅋㅋㅋㅋ
-나였으면 중2병부터 고치고 오라고 돌려 보냈닼ㅋㅋㅋ
-회원님, 중2병부터! 중2병 고치고 오세요, 중2병부터요!
-아 우리 마왕님은 인간계 말투에 적응 못 하신다구~~
“덕분에 저도 회원님을 더 파이팅 넘치게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훗, 그것 참 옳은 판단…….”
“그래서 내일부터는 30분을 추가로, 1세트를 더…….”
“옳지 않은 판단이로군. 다시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좋겠구나.”
“에이 회원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렇게 단탈리온과 서갑수가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서갑수 사장님!!”
“원래 운동이라는 게 근육을 조지고…… 응?”
스타트 PC방의 사장, 이연주가 양손에 가득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
“운동하시는 분들이랑 나눠 드시라고 자양강장제 위주로 사 왔어요!”
“왔는가, 이연주 누나.”
“그렇게 부르니까 이상해.”
“헉……!”
서갑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튼, 정식으로 소개하마. 이쪽이 바로 스타트 PC방의 이연주…….”
“안녕하십니까! 서갑수입니다!!!”
단탈리온의 말까지 잘라 버린 서갑수가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바벨들을 정리하고 의자를 열심히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열심히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돈하기도 하고, 최대한 깔끔한 책상으로 안내하기 위해 먼지를 훔치기도 했다.
게다가 회원들이 다가와도.
“사장님, 저 10분 뒤에 PT…….”
“잠시만요, 회원님!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까 30분 동안 런닝이랑 사이클 하고 계세요!”
“네? 미팅이요?”
회원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도 무시한 채 빠르게 옷까지 민소매에서 깔끔한 캐쥬얼 티로 갈아입은 서갑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서갑수가 얼굴을 살짝 붉히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준비가 늦었습니다. 서갑수입니다!”
그러고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내비쳤다.
“오늘 미팅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이연주도 밝게 웃으면서 서갑수의 손을 맞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RRR 밴드 멤버들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타락했구나, 서갑수여.”
“사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연주 언니가 한 미모 하긴 하지.”
“흠…… 인간은 색욕에 약한 거군요. 그렇다면 칠죄종이 인간계를 지배하기에 적절…….”
헛소리를 하는 오로바스의 옆구리를 향해 앤디의 손가락이 날아갔다.
* * *
“그렇습니까.”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서갑수가 이연주의 제안에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럼 저희로서는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RRR 밴드를 응원하는 SNS나 댓글을 남겨 주고, 그걸 인증하면 기념품을 전달한다. 맞지요?”
“네네! 저희는 PC방이니까 추첨을 통해서 PC용 스피커 10대 증정, 참가자 전원에게는 PC방 무료 이용 60분 제공이고요.”
이연주가 신이 나서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바를 다시금 설명했다.
“서 사장님은 헬스장이니까 운동에 도움 되는 물건이나 혜택 같은 걸 주시면 어떨까 싶었어요.”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서갑수가 괜히 자신의 이두를 울끌불끈 드러냈다.
“이 근육을 동경하며 들어오는 회원님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아하하…… 네, 멋진 근육이네요.”
“역시! 사장님도 보는 안목이 있으시군요!”
그런 서갑수를 바라보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었다.
“저런 식으로 들이대면 누가 좋아하냐…….”
앤디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말이다.”
두 사람의 제안을 바라보면서 단탈리온이 말했다.
“이 몸과의 콜라보 내용이 결여되어 있구나.”
“이 몸이 아니고 RRR 밴드. 우리.”
제인이 단탈리온의 말을 받으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우리가 헬스장이랑 PC방에서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게 있나?”
“홍보 포스터 모델 같은 건 어떻습니까. 저희가 약간 회사의 마스코트처럼 해 주는 겁니다.”
오로바스가 의견을 내면서 품에 안고 있던 시루베로스를 쓰다듬었다.
“여기 있는 시루베로스도 함께 말이지요.”
“꺙! 꺙!”
시루베로스가 가볍게 울부짖었다. 제인도 그런 시루베로스를 귀엽게 바라봤지만,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만약 한다고 해도, 시간이나 되겠어? 이제 라이징 밴드에 올인해도 부족할 텐데.”
“나도 최근에는 세션 알바 다 취소했어.”
“음? 이 몸은 PC방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것인데 무슨 소리더냐.”
“그치 그치! 데스맨!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어!”
그때 이연주가 단탈리온의 뒤로 스윽 다가와서는 활기차게 소리쳤다.
“내가 굳이 네가 다니는 헬스장 사장님이랑 같이 뵙자고 한데는 다 이유가 있지!”
이연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RRR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PC방 이용객들이 헬스장을 이용하면 10% 할인! 헬스장 고객들이 PC방을 이용하면 1시간 무료 쿠폰 증정!”
“그건 우리와 상관이 없지 않느냐.”
단탈리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이연주가 검지손가락을 들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한국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그리고 여기에 특별 상품! 바로 신청자들만을 위한…….”
“추첨자 단 1명, PC방 회원과 헬스장 회원 한정으로만 신청할 수 있는 경품이죠.”
서갑수도 옆에서 이연주를 거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누가 신호도 하지 않았는데 동시에 같은 말을 외쳤다.
“RRR 밴드 축가 쿠폰 증정!”
그 말에 RRR 밴드 멤버들 모두가 정말이냐며 얼굴을 들었다.
“축가?”
“축가요?”
“축가가 무엇입니까?”
단어에 놀라는 앤디, 제인,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오로바스.
반면, 단탈리온의 표정은 그저 평온해 보였다.
“저기, 마왕님.”
“무슨 일인가 제인이여.”
“축가가 뭔지는 알지?”
그 말에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것 아닌가. 누군가를 축하하는 노래라고 알고 있도다.”
“응응, 그런데 생각보다 표정이 괜찮은데?”
당연히 이 시점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바쁜데 그걸 경품으로 내걸고 있냐, 우리는 공짜로 일하는 줄 아느냐, 하루 공연비는 얼마다 등등.
여러 이야기를 했을 게 분명한데.
오히려 지금 단탈리온은 평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정말 차분해 보이기만 했다.
“……예상하고 있었으니 괜찮도다.”
“정말?”
“축가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아 악가로 바꾸고는 싶으나, 그건 허락되지 않을 듯하구나.”
단탈리온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당첨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 명은 어느 어떤 누구보다도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 받을 수 있을 터.
단탈리온의 말을 들은 앤디, 제인, 오로바스도 크게 뭐라 하지는 않았다.
다만, 밴드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인 앤디가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고.
“그런데 메탈 밴드에게 축가를 듣고 싶어 하는 미친놈들이 있을까……?”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던져진 현장에, RRR멤버 중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이연주와 서갑수의 미팅은 자기네들끼리 이어서 하라고 내버려 두고, RRR 밴드는 합주실로 돌아왔다.
“근데 진짜 무보수로 할 거야?”
“뭐, 거마비는 주시겠지.”
“사실 연주 누나 정도면 우리도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당연히 언니 부탁이면 하긴 해야지…….”
앤디와 제인의 말대로, 이연주는 부족한 RRR 밴드의 살림살이를 제때 채워 주었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세션 알바비로 먹고 사는 것도 한계가 있다.
돈이 급할 때는 일일 알바로도 채용을 그때그때 해 주면서 일급을 지급해 주었고, 한 번씩은 단돈 천 원이라도 더 챙겨 주었던 사람이었다.
사실 거기에는 RRR멤버들의 화장을 지운 모습이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외모였다는 점도 한몫했었다.
실제로 데스맨, 앤디, 제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는 날에는 손님이 잘생기고 예쁜 알바생을 보러 온다면서 더 찾아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그런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실 축가라면 우리보다 탑엔젤스가 더 어울리지 않냐.”
앤디의 말에 제인도 동의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약간 성가대? 그런 느낌으로도 하실 거 같은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앤디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단탈리온과 오로바스, 그리고 시루베로스를 돌아봤다.
“진짜 마왕에 진짜 악마에다가 마물까지 있는 악마 밴드인데 이거 괜찮은 거냐고.”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느니.”
단탈리온이 앤디의 걱정을 눌러 주며 말했다.
“마계에서도 축가와 비슷한 형태의 노래가 있도다.”
“……막 적군을 잡아서 허리를 접어 버리고 이러는 노래 아니야?”
“음? 응당 축가라 함은 당연히 그런 내용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으아아아!! 역시 안 되겠어!!!”
절규하는 앤디의 목소리가 합주실에 울려 퍼졌다.
* * *
‘축가라.’
앞에서 앤디는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제인은 그래도 연주 언니가 해 달라고 하는데 부탁을 들어주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런 멤버들 사이에서 나는 아침에 이연주와 이야기를 했던 사항들을 떠올렸다.
-들어줄 거지?
사실, 이연주와는 비밀리에 거래를 했다.
-그거 하나만 해 주면 되는데.
-말해 보거라.
-경품 추첨을 해서 특정 한 명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걸 했으면 해.
-추첨인가. 허나, 이 몸의 밴드는 몹시 바쁘…….
-내가 라이징 밴드 지원해 줄게.
-……지원?
-대신, RRR은 연예인이 되어도 스타트 PC방에 한 번씩 아르바이트 와 주기!
우리가 이번 라이징 밴드에서 인기를 끌게 되더라도, 1주일에 하루는 아르바이트를 나와 주는 것.
그게 바로 이연주가 내건 조건이었다.
게다가 그 조건을 수락하면서 받게 된 도움은.
-라이징 밴드에서 사용할 앰프, 내가 협찬받아 와 줄게.
이연주의 지인이 앰프 사업을 하고 있어서 그쪽과 연결을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걸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다만, 여기에도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아, 아직 멤버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고. 혹시나 협찬 못 받아올 수도 있잖아.
이연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협찬이라는 건 기업과의 소통, 협의가 필요했기에 불발될 수도 있는 법.
-그렇다면 이 몸도 협찬을 받지 못한다면 축가는 하지 않도록 하마.
-쳇, 알았어. 대신 아르바이트는 주 1회는 나와 줘야 해?
-그 정도는 괜찮다.
정말, 이연주가 협찬을 받아 올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협찬을 받아 올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이미 앤디와 제인, 그리고 오로바스. 이들에게 주어진 무기 중, 악기는 충분하다.
앤디는 취미가 기타 수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고, 제인도 자신의 베이스를 5대를 두고 연습을 할 정도였다.
오로바스는 드럼이 하나 뿐이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나저나 우리 앰프는 괜찮아?”
바로 앰프였다.
“솔직히 많이 낡기는 했지…….”
“이걸 들고 다니기도 이제는 좀…….”
당장 라이징 밴드에서도 앰프가 제대로 갖춰진 밴드들은 본인들의 앰프를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다.
반면, RRR은 어떠한가.
오래된 앰프를 들고 다니기에도 민망하고, 혹여 합주실에서 사용하던 앰프가 고장 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이연주 누나가 잘해 주면 좋겠구나.”
“응? 단탈리온, 뭐라고?”
“아니다, 아무것도.”
만약 그게 잘되지 않는다면, 당첨자 축가는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안 하면 되는 일.
대수롭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으려는 때였다.
“캉!! 캉캉!!!!”
“시루베로스!?”
갑작스런 시루베로스의 짖음에 제인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시루베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초대장을 보낸 기억은 없는데.”
“응? 또 뭔 소리야.”
“모습을 드러내거라.”
합주실 입구 바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인간.
“불청객, 기보성PD여.”
기보성을 향해 마력이 담긴 목소리를 내뱉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