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59화 (59/110)

59화. 환장의 콜라보 (2)

합주실의 문이 열리기 직전.

기보성은 단탈리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고는 온몸이 굳어 버렸다.

[불청객, 기보성PD여.]

“……허억!!”

대체 이 감정은 뭐지!?

기보성은 자신의 심장을 압박해 오는 이 느낌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과 벽뿐.

‘너무 긴장하고 있는 건가?’

그 압박감이 마력을 담은 목소리 때문에 압도당한 것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였다.

별다른 흑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마력이 없는 인간에게는 이 정도만으로도 압박을 주기에 충분했다.

단탈리온은 일부러 기보성을 향해 마력을 담아 목소리를 내질렀고.

실제로 이건 꽤나 효과가 있었다.

당당하게, 그것도 자신이 메인PD라면서 예의 없게 행동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기보성PD였지만.

방금 전, 단탈리온의 말 때문에 맹수 앞에 고개를 숙인 먹잇감처럼 몸을 한껏 웅크리게 되었다.

“시, 실례합니다아…….”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똘끼 충만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몸을 사리기 바쁜 나약한 목소리로 바뀌는 건 덤이었다.

* * *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합주실을 방문하다니.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서두르거라. 이 몸은 참을성이 많지 않도다.”

게다가 이리도 예의 없게 방문을 했으니, 적절한 이유가 없다면 바로 문전박대는 물론이고.

“사유가 별 볼 일 없으면 복부에 구멍을 뚫어 줄…….”

“시, 실례합니다아…….”

기보성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서 들어왔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채였고, 몸은 한껏 숙이고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만족해하며 콧방귀를 한 번 뀌었다.

“흥. 아무런 기약도 없이 이게 무슨 횡포인가.”

“그…… 게, 죄송합니다…….”

“어서 용건을 마치고 꺼지거라.”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방문이로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는 미간을 좁혔다.

“핫……! 그게 아니라, 이번에 추가 출연을 요청 드리려고 합니다.”

“추가 출연?”

아직 본선 2라운드 촬영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거늘.

벌써부터 촬영이라니.

“저희가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좀 더 재미난 기획들을 했는데 말이죠!”

“악마의 편집과도 연관이 있는가.”

“그럼요!”

“그럼 하겠노라.”

멤버들의 의견은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것은 오로지 이 몸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

나는 똑바로 앉아서 기보성을 바라봤다

“어떤 밴드인가.”

“홀리오라방돌이라는 교회 오빠들이 모여 만든 밴드입니다.”

“교회 오빠……?”

교회라면 기독교라는 천사들의 종교 중 하나이지 않은가.

수행자들이 근무하는 불교와는 또 다른 성격의 백마법을 사용하는 곳인데.

“설마 그들도 그런 것이더냐.”

“? 그런 것이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영상을 준비하였는가.”

그 말에 기보성이 방긋 웃으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당연하지요! 이겁니다!”

“어라? PD님?”

“안녕하세요, PD님!”

“어서 오십시오.”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 앉은 RRR 밴드 멤버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고는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감상했다.

* * *

약 3분 남짓한 영상이 모두 끝난 뒤, 기보성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물었다.

“이들의 영상이 어떠한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도다.”

단탈리온이 턱 아래로 손을 올리고는 기보성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대는 이들을 향해 어떤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인가.”

“어……. 네?”

“방금 악마의 편집을 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응당 본인이 희망하는 답변 방향이 있을 터.”

기보성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편집을 하고 싶어 하는 악마 PD였다.

그런 별명이 붙은 만큼, 이렇게 추가 촬영까지 진행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이 몸은 어설픈 대답을 꺼내는 것을 매우 혐오하느니.”

그 말에 기보성의 몸이 얼어붙었다.

사실 단탈리온으로부터 자연스러운 답변을 원했던 것이기에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걸 솔직하게 꺼낼 수가 있을 리가…….

“솔직히 고하거라.”

단탈리온이 다시금 가볍게 마력을 담아 목소리를 내뱉었다. 기보성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짓눌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도, 도발적인 멘트가 필요합니다!”

“도발?”

도발이라면.

“이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에게 이 몸이 도발을 걸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 그렇습니다!”

“심히 불쾌하구나.”

탑엔젤스 밴드야 어차피 단탈리온이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전략을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홀리오라방돌이는 단탈리온의 눈에는 경쟁자로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마도서에 의하면 이들의 실력은 중급. 백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아주 미약하여 최하급 마력조차 꺼내기 어려워하는 수준이다.’

그뿐인가.

홀리오라방돌이는 컨셉 자체를 신성한 음악을 중점으로 한다면서 본인들의 실력보다는 장비빨만 내세우는 밴드였다.

“감상이라면 하나다.”

“네?”

“장비만 번지르르하구나.”

단탈리온이 고개를 젖혔다.

“그 외에는 엉망진창이다.”

“그……. 말씀은?”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 푸석푸석한 피부. 다 늘어진 청바지에 색이 바란 티셔츠. 게다가 어설픈 실력에 실수투성이 보컬리스트.”

하나하나 영상에 나오는 밴드의 모습을 지목한 단탈리온이 피식 웃었다.

“감히 이 정도로 이 몸의 경쟁자라 칭한단 말이더냐.”

외모도. 실력도. 노래 수준도.

모든 면에서 단탈리온, RRR을 이길 수 없는 밴드.

그게 바로 71위 마계에서 분석해 낸 결과였다.

“딱 하나, 장비만큼은 아주 고가의 제품이로다.”

“그런가요?”

참가자들의 정보가 적힌 마도서에 기록된 내용 중 유일하게 이들의 장점이 적힌 게 있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기타, 베이스, 이펙터, 앰프 등이 엄청난 고가라는 점이었다.

“허나 무기빨로 전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운 법.”

적절한 전략은 물론이고 사용자의 실력도 중요하다.

성검을 손에 들었다 해서 모두가 용사와 같은 효율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단탈리온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며 말했다.

“그러니 이들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렇군요…… 그런데 데스맨 님.”

“단탈리온 데스맨이다.”

“단탈리온 데스맨 님, 이들은 천사 밴드에 도발을 걸었던 RRR 밴드를 저격하는 멘트를 던졌었습니다.”

기보성의 말에 단탈리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또한,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앤디와 오로바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격을 했다고요!?”

“뭐라고 했는지 알려 주십시오!”

“둘 다 앉거라.”

단탈리온이 손을 들어 한 사람과 한 악마를 제지했다. 앤디와 오로바스가 흥분을 잠시 죽이고 있을 때, 기보성이 입을 열었다.

“다른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만?”

“컨셉에만 치중하느라 예의라고는 쌈 싸 먹은 무개념 밴드라고…….”

그 말을 꺼낸 기보성은 정말 이야기하기 조심스럽다는 듯 입을 손으로 막았다.

“핫! 죄송합니다, 괜히 참가자들끼리 경쟁을 붙여서는…….”

“후후후…….”

그때 단탈리온이 한쪽 입꼬리를 사악하게 올리고는 키득거렸다.

“야, 왜 그래?”

“앤디여. 그대는 느껴지지 않는가.”

단탈리온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기보성PD여.”

“예, 예.”

“자네의 방금 그 말, 거짓은 없으렷다.”

단탈리온의 말에 기보성이 침을 꼴딱 삼켰다.

“무, 물론이죠!”

“좋다. 그렇다면 이들의 영상에 대한 이 몸의 감상을 다시금 전달하마.”

기보성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손으로 잡은 단탈리온은 그대로 카메라 렌즈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홀리오라방돌이 같은 허접스러운 밴드보다 열반 밴드가 열 배는 더 잘하는구나.”

그 말에 기보성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열반 밴드가…… 더……?”

“그러하다. 어디서 홀리를 칭하는가. 홀리는 천계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다.”

감히 천계의 힘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인간들이 홀리를 논하다니.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그에 비해 열반 밴드는 천계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었으니.”

그건 열반 밴드 멤버들의 깨달음이 홀리오라방돌이 멤버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의미했다.

“필멸자는 필멸자들끼리 어울리라고 전하거라.”

어차피 이들과 본선 2라운드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절대 질 자신은 없었다.

하등한 인간들이 아무리 모여 봤자.

마왕인 이 몸을 이겨 낼 수는 없을 터.

“그러니 이 몸의 영상에는 이렇게 자막을 넣거라.”

“네?”

“불교가 기독교보다 낫구나.”

그저 단탈리온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던 기보성이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두 눈을 끔뻑이고는 양팔을 파르르 떨었다.

“불교가…… 기독교보다…… 낫다……!”

“그러하다. 열반 밴드 실력이 홀리오라방돌이보다 몇 배는 더 낫다. 편곡 실력, 노래, 연주 테크닉 등.”

단탈리온이 앤디와 제인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보기에도 그러하지 않은가.”

“응. 보컬이 기타를 하기는 하는데, 실력은 솔직히 그닥…… 열반 밴드 스님이 더 잘하셨지.”

“열반 밴드에 베이시스트가 없어서 베이스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홀리오라방돌이 베이시스트분은 실수를 많이 하시긴 했어.”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단탈리온의 의견에 동의했다.

“감사합니다!!!!!!”

멤버들의 의견을 들은 기보성이 카메라를 든 손은 위로 치켜든 채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걸로 2회 영상, 재미나게 뽑힐 것 같습니다!!!”

“훗. 모두 이 몸의 덕분이니라.”

단탈리온이 거만하게 고개를 들고는 기보성을 내려다봤다.

“이 몸의 저주를 철저히 맛보도록 하거라.”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마력을 살짝 담아 말했다.

하지만, 기보성은 이미 단탈리온에게 은혜를 입어도 두 번이나 입은 상태.

“위대하신 단탈리온 데스맨 님의 이름으로!”

“옳은 판단이로다.”

단탈리온이 두 팔을 넓게 벌리고는 입고 있던 코트를 옆으로 챠락 펼쳤다.

“악마의 편집, 잊지 말거라.”

“위대하신 단탈리온 데스맨님의 이름으로!”

단탈리온과 기보성을 바라보고 있던 앤디, 제인, 오로바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 * *

며칠 뒤.

서울 종로에 위치한 교회.

그곳에서 너튜브 영상을 보고 있던 남성들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콰앙!!

“이게 뭐야!!”

다름 아닌 라이징 밴드 2회 방송의 예고편.

그 영상을 본 남성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주먹을 꽈득 움켜쥐었다.

“우리가…… 열반 밴드보다 못하다고?”

홀리오라방돌이의 리더이자 보컬, 채권사가 이를 뿌득 갈았다.

<“불교가 기독교보다 낫구나.”>

심지어 이 멘트를 직접적으로 던진 밴드는 자신들이 컨셉을 꼬집어 비판했던 RRR 밴드였다.

“이건 기보성PD가 거길 일부러 찾아가서 꼰지른 게 분명해.”

옆에서 분노에 가득 차서는 껌을 씹고 있던 베이시스트, 나간사가 말했다.

“PD가 지금 우리 가지고 장난질하고 있다고.”

“이런 썅!”

채권사가 다시 한번 테이블을 내리쳤다. 나간사는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유예찬, 넌 아무렇지도 않냐?”

유일하게 분노하지 않고 있는 멤버. 드러머 유예찬만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 알면서도 나간 거잖아. 뭘 그리 화를 내고 그래?”

유예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드럼 스틱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보다도 본선 2라운드 준비해야 하잖아. 다들 악기 잡아.”

“예찬이 넌 정말 대단하다. 이걸 보고도 화가 안 나냐?”

채권사가 영상을 다시 틀었다.

<“열반 밴드 스님이 더 잘하셨어. 하하하하!”>

<“홀리오라방돌이는 실수를 많이 하시긴 했어 꺄하하!”>

<“장비만 번지르르한 밴드로다.”>

“그래도 우리 장비 칭찬은 해 주네.”

유예찬이 실실 웃었다. 채권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칭찬이냐고! 비꼬는 거잖아!”

“어쨌든. 그리고 여기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보컬 봐봐.”

유예찬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고는 드럼 스틱을 움켜쥐었다.

“꽤 재미있는 말을 하잖아.”

<“홀리는 천계에서 사용하는 단어.”>

<“허접스러운 밴드는 무기빨만 내세우는군.”>

<종교 밴드에 정식으로 도발식 도전장을 내던진 RRR 밴드! 그들의 도발을 받은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의 운명은 과연!!>

영상을 몇 번을 돌려봐도 화가 난다며 채권사가 콧김을 내뿜었다.

“진짜 열 받는 말만 나오는데 재밌기는 개뿔!”

“아니.”

유예찬이 심각한 얼굴로 단탈리온 데스맨의 멘트가 나오는 부분을 다시 반복재생했다.

<“홀리는 천계에서 사용하는 단어.”>

<“홀리는 천계에서 사용하는 단어.”>

<“홀리는 천계에서 사용하는 단어.”>

“이게 왜?”

나간사도 유예찬의 행동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유예찬이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아니야, 아무것도. 연습하자 연습.”

유예찬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게 웃었다.

‘홀리와 천계, 어떻게 알았을까?’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궁금증은 숨겨둔 채로.

그는 천천히 드럼 스틱을 위로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그와 동시에.

“크크큭…… 준비는 완벽하도다.”

“……뭐가?”

“시루베로스여. 이 냄새를 기억하는가.”

단탈리온은 마도서에 저장되어 있는 참가자들의 냄새를 시루베로스에게 맡게 하고는.

“이들의 아지트를 찾거라.”

“꺙!! 꺄꺄!! 꺙!!

(해석: 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

“RRR 밴드의 제 5 멤버, 시루베로스여.”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의 정찰 임무를 부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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