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61화 (61/110)

61화. 환장의 콜라보 (4)

“미친! 썅!!”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의 리더, 채권사는 홀딱 젖어 버린 티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명품이고 뭐고, 지금은 도저히 이걸 입고 있기도, 가지고 가기도 힘들었다.

“아오, 지린내!”

그새 몸에도 배어 버린 시루베로스의 소변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들어왔다.

일반적인 반려동물보다 더 진한 냄새를 풍기는 마물이었기에, 냄새가 더 진득하니 들어온다는 사실은 알 리가 없었다.

“하……. 별 거지 같은 개새X를 다 보겠네.”

하필 자기가 안아 들었을 때 오줌을 지리냐.

세상 순해 보이더니.

아니지, 진짜 겁을 먹어서 그런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아끼는 명품 티셔츠를 버리게 만들었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의 모습이 모조리 라이브로 방송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채권사의 인생 역사에 있어서는 절대 참을 수 없는 굴욕의 순간으로 남고 있었다.

게다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는 저 사람 몸에서 지린내가 난다며 눈살을 찌푸리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뿐인가.

방금 전까지 버스킹 현장에 모여 있던 팬들도 자신의 반경에서 1m씩은 더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어디 가서 좀 씻고 와. 옷도 사 입고.

결국 베이시스트 나간사가 적당히 근처 옷가게에서 싸구려 옷을 하나 사다 주었다.

원래는 그냥 갈아입기만 하려고 했지만, 냄새가 상당히 심각했기에 샤워까지도 해야 하는 판국이었다.

“시바 근데 이거 때문에 찜질방이나 목욕탕을 갈 수도 없고…….”

“어라, 혹시 씻을 곳 찾으십니까?”

그때 키가 185는 넘어보이는 훤칠한 키를 한 남성이 블랙 슈트를 입고 채권사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고요?”

“뭔가 목욕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목욕?”

그 말에 채권사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면 저리 꺼져요. 냄새 졸라 심하니까.”

“그러지 마시고,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남성이 전단지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헬스장의 상품을 판매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샤워 1회권?”

“여기 헬스장은 따로 회원이 아니어도 일일 이용료만 내면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샴푸, 컨디셔너, 바디 샴푸는 당연히 공짜이지요.”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인데요?”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는 채권사의 말에 남성이 자세를 차렷 자세로 세우며 전단지를 다시 한 장 내밀었다.

“오늘 전단지 아르바이트하는 일일 알바입니다. 손님 많이 들어오면 수당 더 주신다 하셨거든요.”

“……샤워라.”

차라리 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고 갈 수 있으면 잘된 일이다.

채권사는 남성으로부터 받은 전단지의 ‘샤워 1회권’ 쿠폰을 뜯어 들었다.

“이거 들고 가면 공짜죠?”

“네, 맞습니다. 건물은 여깁니다, 회원님.”

“회원 아닙니다.”

채권사가 남성의 손을 탁 내려치며 그 옆을 지나갔다.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던 남성은 채권사가 지나가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단탈리온 님. 들어갔습니다.”

[상황은?]

“큰 의심은 없지만, 서갑수 사장의 행태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전단지를 든 남성, 오로바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제가 더 나서서…….”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느니.]

단탈리온이 오로바스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드러머 오로바스여.]

“예!!”

오로바스가 무릎을 꿇음과 동시에 단탈리온이 말했다.

[뒤는 맡기거라.]

단탈리온의 말을 들은 오로바스의 두 눈동자가 감격에 겨워 촉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 * *

‘황당하겠지.’

대체 무엇을 했기에 지금 본인들이 이러한 처사를 당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단탈리온은 더더욱 홀리오라방돌이 밴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마왕을 업신여긴 죄는 크도다.”

그들은 이 몸을 비롯해, 이 몸의 밴드 전체를 ‘허접스러운 X망 밴드’라 칭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단탈리온의 머릿속에는 홀리오라방돌이가 자신들을 향해 온갖 비웃음을 날리고 있는 그림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그대들은 이 몸을 원망해서는 아니 되느니.”

원망을 한다면, 그래.

“하찮게 나불거리는 그 주둥이를 원망해야 하는 법.”

단탈리온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도다.”

더는 홀리오라방돌이 밴드들이 RRR 밴드를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고.

꿈에서도 우리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본선 2라운드에서 그들을 처절하게 짓밟아 주는 것.

이 작전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한 작전이었고.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악마의 장난 3종 세트 놀이였다.

* * *

샤워 티켓을 손에 든 채권사가 신경질적으로 헬스장 문을 열었다.

[바이트!!! 미!!!!]

“아오 시끄러워!!!!”

채권사가 양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앞에는 근육이 우락부락한 청년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필시 관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밖에서 이거 받고 왔는데요.”

“흐흥~ 흥~ 앗! 네 신규 회원님이시군요!”

“……회원이 아니라 샤워장만 사용할 겁니다.”

티켓을 받아 든 서갑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딱 지금부터 운동하시면 근육량이 적절해지도록 가능할 것 같은데…….”

“됐고, 샤워실 어디에요?”

“아차, 네네 이쪽입니다.”

서갑수가 채권사를 안내했다.

“……응?”

그때 채권사는 헬스장 안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포스터들을 발견했다.

“사장님, 라이징 밴드 보세요?”

“아! 회원님도 보시는군요!”

“……회원 아닙니다.”

“커흠, 네. 아무튼,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RRR 밴드 멤버들이 저희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거든요!”

사실 단탈리온만 이용하고 있지만, 서갑수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서 말했다.

“원래 다들 체력이 좀 약했는데, 저의 집중 관리를 통해 근육은 물론이고 체력 증진까지 해냈습니다!”

“……네, 잘됐네요.”

“그러니까 회원님도 등록하시면 제가…….”

“아, 됐다니까요.”

채권사는 귀찮다는 듯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든 채로 서갑수를 휙 지나쳤다.

“진짜 짜증…… 으아악!!!”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채권사가 기겁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왜 그러십니까 회원님!!”

“그, 그그그, 이게 왜 여깄어요!!!”

샤워실로 들어가려던 채권사의 눈앞에는.

시뻘건 입술을 하고는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퍽지창을 날리고 있는 단탈리온의 단독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아하 이분 모르십니까? 라이징 밴드의 떠오르는 신예! RRR 밴드의 단탈리온 데스맨…….”

“그건 저도 압니다! 왜 여기에 이렇게 크게 붙어 있냐고요!”

당황해서 서갑수의 ‘회원님’이라는 표현에도 태클을 걸 겨를이 없는 채권사를 향해 서갑수가 하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그야 저희 헬스장이 RRR 밴드를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응원?”

그 말을 들은 채권사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포스터를 자세히 봐 보니 헬스장과 RRR 밴드의 콜라보 이벤트도 진행 중이었다.

“이딴 밴드랑 말입니까!?”

“에이, 그래도 RRR 밴드 덕분에 저희 헬스장 매출이 크게 올랐습니다. 그래서 노래도 RRR 밴드 노래를 많이 틀어 두죠!”

채권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RRR은 음원이 없을 텐데.

그럼 전부 너튜브 영상으로 틀고 있다는 뜻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었다고?

“대체 어떻게……?”

실력은 고만고만하고 컨셉질로만 승부를 보려던 허접 밴드가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헬스장 사장이 밴드에 무지하기에, 음악에 무지하기에 그런 것.

게다가 아직 홀리오라방돌이가 나오는 라이징 밴드 2회는 방송이 되지도 않았다.

“2회에 나올 밴드 중에 홀리오라방돌이라고 있는데 거기 주목하세요, 사장님.”

“홀리오라방돌이……?”

밴드명을 들은 서갑수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열심히 참았다.

“네, 네. 그렇게 할게요. 아무튼 얼른 씻으세요.”

서갑수에게 등이 떠밀려 샤워장으로 들어온 채권사는 찜찜한 기분을 억누르며 몸을 씻기 시작했다.

‘후……. 시원하다.’

더러운 소변 냄새가 사라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열심히 바디 샴푸를 짜내면서 몸을 벅벅 씻고,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위에 달린 샤워기가 몸을 베베 꼬더니 꽈베기처럼 형상을 구겼다가, 이내 휘리릭 돌아가며 형태를 변형하였다.

간단히 보자면 그건.

[울부짖는 근육을 불태워! Fire!!!!]

공중에 매달린 스피커.

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노래가 흘러나오게 되는 신개념 스피커였다.

“으, 으아아아악!!!!”

[우리는 헬스킹!!]

스피커에서는 RRR 밴드의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의 음성이 또렷하게 튀어나왔고.

그 소리는 채권사의 귓가를 날카롭게 후벼 파기 시작했다.

“그, 그만!!!!”

평범한 스피커가 아니었다.

분명 이 스피커는 이상하다.

아니, 애초에 물이 떨어지면서 스피커가 동시에 흘러나온다는 게 말이나 되는 기술인가?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이어갈 틈은 생기지 않았다.

[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

“히이이이이이익!!!!!”

이번에는 단탈리온 데스맨의 스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이 순간을 고통 속에!!!! 기억하리!!!]

마치 저주를 내리는 것과 같은 목소리가 샤워기 스피커를 향해 내리 쏘아졌다.

머리에 샴푸를 떡칠한 채권사가 몸을 아기처럼 웅크리며 울부짖었다.

“그만, 그만해!!! 제발!!!”

샤워기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단탈리온 데스맨의 저주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샤워기를 멀리서 조종하고 있던 오로바스가 귓가에 손을 가져갔다.

“단탈리온 님, 페이즈 2 클리어입니다.”

[훌륭하도다. 역시 이 몸의 심복이로다.]

“……!?!?”

단타릴온님이 나에게 칭찬을……!!

오로바스가 샤워실 바깥에서 감격에 겨운 채로 납작 엎드렸다.

“망극하옵니다!!!!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샤워실에서 이상한 비명 소리가 들려와서 달려온 서갑수는.

“박진태 씨!?”

바닥에 납작 엎드려 연신 절을 하고 있는 오로바스를 발견하고는 샤워실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3대 500은 물론이고 3대 600까지도 넘어가는 서갑수였지만.

“아이 왜 이리 돌덩이에요!?”

마력으로 온몸을 감싼 오로바스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 * *

“흐어…… 어어…….”

어떻게든 시루베로스의 냄새를 없애는 데 성공했지만, 완전히 넋이 나간 채권사는.

어렵게 돌아온 버스킹 자리에서도 그저 멍을 때리면서 영혼이라도 가출한 사람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어어……. 흐어어…….”

“……야, 권사야. 괜찮아?”

베이시스트 나간사가 손을 들어 채권사의 얼굴 앞에 휘휘 휘저었다. 그러나 채권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로 헤헤, 웃었다.

“얘들아…….”

“야, 정신 차려. 옷 갈아입고 씻고 온다더니 이게 뭔 일이야.”

“나 오늘 그만할래, 헤에…….”

완전히 혼이 빠져나간 듯한 채권사의 모습에 나간사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예찬아, 우리 오늘 접어야겠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차피 시간도 오래 지나서 접었잖아. 다시 할 수도 없었어.”

드러머 유예찬은 스틱을 한 바퀴 돌리고는 허공에 대고 드럼을 치는 시늉을 했다. 버스킹이 취소되어서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권사 데리고 피시방이나 가자.”

“거기 가면 괜찮아지겠냐? 차라리 집에 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어?”

“그렇다고 이렇게 바로 보내기도 불안하잖아. 텔 가기도 그렇고.”

“쩝……. 그것도 그렇네.”

결국 나간사와 유예찬은 여전히 넋을 놓고 있는 채권사의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돌봐 주자며 피시방으로 데리고 갔다.

다행히 근처에 4인 단체석 자리가 있어서 아예 4개 자리를 빌린 나간사와 유예찬은 채권사를 붙인 의자에 누였다.

“여기 누워 있어라. 한숨 자. 차라리.”

“흐어……. 미안…….”

그 와중에도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답하는 채권사였다. 홀리오라방돌이의 보컬이자 리더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 나간사가 피식 웃었다.

“그럼 우린 게임한다.”

“응……. 으아아아아아악!!!!!”

조용히 눈을 감으려던 채권사는 천장에 붙어 있는 끔찍한 흉상에 비명을 질렀다.

“뭐야!? 왜 그래!?”

“괴, 괴괴괴, 괴, 괴물, 괴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채권사가 떨리는 오른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나간사와 유예찬이 침을 꼴딱 삼키고 천장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시퍼런 얼굴을 하고 긴 귀를 가지고 있는, 고블린이 머리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게다가 그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끼기긱, 끼긱

철커덕.

“헉……!”

채권사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순간.

[끼예에에에에에에에에!!!!!!]

고블린의 입에서 저주가 뒤섞인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히이이이이익!!!!!!!”

고블린 스크리밍.

악마의 장난 그 3단계.

“크크큭……. 마왕 단탈리온이 몸소 만들어 둔 악마의 장난 3종 세트.”

단탈리온이 PC방에 설치해 둔 감시 눈동자로 채권사를 관찰하며 양쪽 입꼬리를 한껏 치솟아 올렸다.

“그 마지막, 고블린 스크리밍의 재미를 원 없이 맛보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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