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62화 (62/110)

62화. 환장의 콜라보 (5)

“히이이이이익!!!!!!!”

“우와아아아악!!!!!!!”

채권사에 이어 나간사까지도 비명을 지르고는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두 사람은 너무나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뭐, 뭐, 뭐야 저거!?”

“흠……. 라이징 밴드와 스타트 피시방의 콜라보 이벤트. 천장에 붙은 RRR 밴드를 본뜬 인형이 소리를 지르면 카운터를 찾아 주세요……?”

유예찬이 고블린 인형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읽어 보더니 카운터를 바라봤다.

그러자 벌써 카운터에는 여러 손님이 달려와서는 사은품을 받아 가고 있었다.

“자, 하루 딱 2회! 무료 이용권 60분 등록해 드려요!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RRR 밴드 응원 부탁드립니다~!”

“진짜 데스맨 오빠들 여기서 알바하는 거 맞죠?”

“그럼요, 그럼요! 오늘이나 내일 알바하러 올 거예요~”

“아싸! 사인받아야지!”

“난 사진 찍어 달라고 할 거야!”

벌써 스타트 PC방에는 RRR 밴드의 코어 팬층이 생기고 있었다.

“하, 참나. 이렇게 인기가 많아졌다고?”

유예찬이 천장에 매달려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고블린 인형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방심하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우리?”

“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어? 권사야? 채권사!?”

시루베로스의 오줌 세례에 헬스장에서의 샤워실 사태, 마지막으로 PC방에서의 연출까지.

악마의 장난을 연속으로 3연타를 얻어맞은 채권사가 입에 거품을 물고 의자에 드러누워 있었다.

“야!!! 권사야!!!!! 정신 차려!!!”

“끄륵…… 으…… 어…….”

나간사의 걱정스러운 외침이 통했는지 채권사가 눈을 게슴츠레 뜨기 시작했다.

“괜찮냐!? 안 되겠다, 병원 가자!”

“간…… 사…… 야…….”

채권사가 맥없이 미소를 지었다.

“나, 여기까지…….”

[끼예에에에에에에에에!!!!!!]

털썩.

정신을 조금 차리나 싶었던 채권사는.

이어지는 고블린의 스크리밍 2회 타를 직격으로 당하고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 * *

“크크큭…….”

더없이 훌륭하구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역시 악마의 장난은 재미있어!

한동안 뜸했던 장난질을 해 대니까 정신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명분도 챙겼으니 이 몸을 탓할 수는 없다.”

게다가 말이다.

애초에 홀리오라방돌이라는 밴드가 쓸데없이 나를 도발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훗. 감히 필멸자 주제에 드높은 마왕을 농락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사실 이 정도 장난은 정말 하급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더 진지하게 들어간다면 샤워기 스피커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거나, 고블린 스크리밍으로 고막이 파열되도록 한다거나 하는 것들도 만들 수 있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라고 앤디와 제인이 주의를 주었으니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챙겨야 한다.

어찌 되었든 이곳은 인간계.

악마들의 기준에서 모든 걸 판단했다가는 공공의 적이 되기 쉽다.

그리고 자칫 잘못했다가 악마의 장난이 천계에 정식 보고라도 되는 날이면.

‘탑엔젤스라던가 열반 밴드 녀석들이 귀찮게 굴 수도 있겠지.’

백마법이 괜히 백마법이던가.

흑마법보다도 사람을, 아니 악마를 더 귀찮게 만드는 마법이 바로 백마법이었다.

상처를 입히면 치료하고, 제약을 걸면 해지하고.

서로 상극인 존재이다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어쨌든, 이제 저들을 신경 쓸 필요는…….”

모든 걸 마무리하고 감시 눈동자에 흘러 들어가는 마력 공급을 중단하려던 나는.

“음?”

마지막에 바라본,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그러한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권사야! 권사야!]

[비켜봐.]

[야, 유예찬, 119 안 부르고 뭐 했어!]

[좀 비켜 봐. 내가 볼 테니까.]

“홀리오라방돌이의 드러머로군.”

홀리오라방돌이의 드러머로부터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은 꽤나 이질적인 마력으로 느껴졌다.

저 기운.

예전에 나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천계의 신성력을 감지하는 역량이 미숙하였기에 잘 못 했었지만.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도다.”

드러머 유예찬.

녀석을 감시할 이유가 하나 생겼다.

* * *

JB방송국 근처의 카페.

주변 직장인들이 모두 모여서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휴식 공간이기도 하지만 미팅 장소로서도 추천을 받는 가게였다.

그리고 지금 그 가게의 구석 자리에, 기보성PD가 한 사내와 함께 앉아 있었다.

“보성이!”

남성이 큰 손으로 기보성의 어깨를 연신 두드렸다.

“내가 자네 해낼 줄 알았다고 했잖아!! 훌륭해! 잘했어!!”

“감사합니다, 국장님!!!”

기보성이 JB방송국의 국장, 신유철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자네 덕분에 우리 JB방송 이야기 나오면 다들 라이징 밴드만 이야기해!”

신유철은 최근 자기 지인들은 물론이고 미팅 상대들 대다수의 반응을 이야기했다.

-라이징 밴드 잘 보고 있습니다!

-요즘 JB가 오디션 프로그램, 물이 올랐던데요?

-캬~ 어떻게 밴드 오디션을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

그런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았으니 신유철의 입장에서는 어깨가 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기보성에게 라이징 밴드를 맡긴 사람이 바로 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기보성의 성과를 보면서 자신의 안목도 재평가받기 시작했다면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정말 잘하고 있어! 이번에 2회 방송도 아주 성공적이었잖아!”

“감사합니다!”

RRR 밴드와 단탈리온의 추가 인터뷰 덕분에 2회 방송의 예고편은 물론이고 본방까지도 재미나게 뽑아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단탈리온 데스맨 덕분.

기보성은 거짓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직접 겪은 기보성뿐만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그 밴드있잖아.”

“네 어떤 밴드…….”

“RRR 밴드. 특히 보컬.”

신유철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공공의 적처럼 만들어졌는데, 기왕 이렇게 하는 거 더 악당 이미지로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아예 악당 이미지를 더 굳혀서 말씀이십니까?”

기보성이 되묻자 신유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라이징 밴드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고 있는 게 RRR 밴드, 그것도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보컬이야.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얘네가 어디까지 올라갈 거 같냐?”

신유철의 질문에 기보성은 선뜻 답변을 하지 못했다.

과연 RRR 밴드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본선 4라운드까지는 충분히 갈 텐데…….’

문제는 결선이다.

결선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밴드라 판단이 된다면, 지금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최종적으로 빛을 받는 이는 경연 우승자와 2위, 3위까지니까.

더 나아가 봐야 결선 무대에 오르는 이들 정도.

신유철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이해하고 있는 기보성이었기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신유철도 그런 기보성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히죽 웃으며 커피를 호록 마셨다.

“그러니까 얘들은 쓰고 버리는 패 정도면 충분하다는 거야.”

“쓰고 버린다면……. 아하!”

기보성이 손뼉을 짝 마주치며 입꼬리를 사악 올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그렇게 움직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어쨌든 공공의 적 같은 캐릭터가 있다는 건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필요하니까.”

신유철이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적절한 선에서 그 적을 처리해야겠지.”

그게 어떤 식의 처리로 이어질지.

기보성도 신유철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본선 3라운드에서 떨어뜨린다.’

떨어뜨리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다.

다른 밴드의 팬덤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고, RRR에게 불리한 미션을 거는 방법도 있다.

또는 이들이 기행을 하도록 계속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형성해 나가는 것도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기보성에게 필요한 건.

“편집……. 미션……. 노래…….”

마지막으로 라이징 밴드 참가자들에게 허용할 부분.

바로.

“퍼포먼스……!”

RRR의 과격한 퍼포먼스는 1회차 방송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었다.

-아니 저걸 허락한 스텝진들도 진짴ㅋㅋㅋ

-미친 진짜 피야!?

-안 찔렀다고 해도 이걸 JB에서 허락하다니 놀랍다

-심사 위원들 표정ㅋㅋㅋㅋㅋㅋㅋ 웃음 포인트다 정말

RRR 밴드의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의 퍼포먼스가 시청자들에게 강인하게 기억된 것이다.

과격하게 해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고.

그 퍼포먼스가 시청자들에게 이렇게나 관심을 끌게 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신유철은 ‘적절한 선’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미안합니다, 데스맨 씨.”

도움을 실제로 많이 받았지만, 곧 버려야 할 패.

RRR 밴드를 어떻게 자극하면 방송에서는 보여 주기 어려운 연출을 해서 퇴출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기보성이었다.

* * *

라이징 밴드 2회 방송이 나간 뒤부터 RRR 밴드와 홀리오라방돌이의 기 싸움을 주제로 수많은 토론이 이어졌다.

-아니 악마는 왜 여기저기 시비냐고~

-악마라서 그런가보다 컨셉질 진짜 쩔었다

-그러니까 지금 천사 밴드 두고 경쟁하는 거죠?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을 하나씩 읽어 보던 홀리오라방돌이의 드러머, 유예찬이 피식 웃었다.

“다들 우리랑 RRR 밴드가 라이벌인 것처럼 몰고 가는데?”

유예찬의 말에 베이시스트 나간사도 동의한다며 의견을 붙였다.

“예고편도 그렇고 본편도 그렇고. 우리가 서로 견제하는 것처럼 나오고 있으니까 더 그런 거 같아.”

그렇게 말한 나간사가 주먹을 쥐었다.

“정작 우리 보컬은 저 지경인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나간사는 대기실 소파에 누워 영혼이 빠진 얼굴로 손가락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채권사를 가리켰다.

악마의 장난 3종 세트를 받은 이후.

채권사는 정말 모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처럼 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필요한 건 그저 끝없는 휴식이다.

그런 말만 하면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걸어 다니고, 밥을 먹고, 잠을 자기만 했다.

“괜찮아.”

“정말로? 오늘 본선 2라운드잖아.”

지금은 JB방송국의 대기실.

그곳에서 홀리오라방돌이는 오늘 본선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넋이 한없이 빠져나간 보컬, 채권사를 데리고서.

“다른 팀들은 다들 리허설하고 난리인데 우리만 아직도 미루고만 있잖아!”

나간사가 답답하다면서 채권사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야! 권사! 일어나! 일어나라고!”

“……으응?”

채권사가 멍한 눈을 하고는 나간사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헤에…… 간사구나…… 응…….”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걱정 말래두.”

유예찬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자신의 손바닥을 살폈다.

마치 명품 장신구를 바라보며 흠집은 없는지, 잘못된 마감은 없는지 살피는 것처럼.

“나한테 방법이 있으니까.”

* * *

“홀리오라방돌이는 아직이래?”

기보성이 눈살을 찌푸리며 앞에 있는 작가들에게 물었다. 작가들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도리질할 뿐이었다.

“아오, 미친. 얘네들 왜 이래? 뭐 배탈이라도 났나?”

답답하다는 듯 기보성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로서는 지금 홀리오라방돌이가 나와 주어야 그 뒤로 RRR 밴드를 내보내서 경쟁 구도의 영상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원하는 그림도 뽑아내고, RRR 밴드에게도 공연과 관련된 주문을 요청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전제 조건인 홀리오라방돌이 밴드가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야, 일단 RRR도 더 뒤로 빼. 다른 팀들 리허설이 지연되니까 그런다고 구라 좀 치고.”

“아, 네.”

“그리고 홀리오라방돌이는 지금 당장 찾아가서 이번에도 펑크 치면 그냥 2라운드 들어간다고 통보…….”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그때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의 채권사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 뒤로 드러머 유예찬, 베이시스트 나간사도 함께 따라왔다.

“오오!”

정말 다행이라며 기보성이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컨디션들은 괜찮나요?”

“네 PD님! 쌩쌩합니다!”

“좋아요, 그럼 리허설 들어갑니다! 준비!”

* * *

정신을 차린 채권사를 데리고 리허설장으로 올라간 홀리오라방돌이 멤버들.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자리를 지나가며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여성.

“와…….”

“연예인이야?”

역시나 이번에도 탑엔젤스 밴드의 멤버들의 미모는 지나가는 스텝진들조차 깜짝 놀라게 만들 만큼 아름다웠다.

스텝진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지나가는 탑엔젤스였지만,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응?”

오히려 이상하다면 지금 이 복도.

“킁킁, 킁.”

이상한 냄새가 난다.

“도미니온 님? 왜 그러세요?”

부하 천사가 묻자 도미니온이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탑엔젤스 멤버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킁킁킁, 킁킁. 킁킁킁.”

이상하다.

이 냄새.

마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신성력도 아니다.

평범한 마력도 아니고, 흑마법도 아니다.

그런데 탁기가 느껴진다.

‘대체 뭐지……?’

도미니온이 의문을 품고 있는 그때.

“호오.”

정면을 걸어오던 단탈리온 데스맨이 탑엔젤스의 도미니온과 마주했다.

“이 몸보다 빨리 오다니.”

단탈리온이 고고한 자세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는 말했다.

“그대도 느낀 것이로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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