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63화 (63/110)

63화. 탁기와 연합

“데스맨은?”

대기실에 앉아 있던 앤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이 자식이 또……!

“아무래도 안 되겠어. 마왕도 적당히 해야지, 행동에 제약을 걸어야겠어.”

“안 됩니다!!”

박진태, 오로바스가 앤디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지금 단탈리온 님은 중요한 업무를 수행 중이십니다!”

“이거 놔! 마왕이고 나발이고 오늘 리허설도 못하게 망치기만 해 봐 아주!”

씩씩대는 앤디의 바지를 붙잡은 오로바스가 제인을 향해 소리쳤다.

“제인 님도 어서 말려 주십시오!”

“앤디 적당히 하고 자리에 앉아. 곧 오겠지.”

“아무래도 불안하잖아! 이거 놔!”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즈음.

벌컥-!

“음? 무슨 일이더냐.”

“데스맨! 너 어디 갔다 오…….”

무언가 따지려 들기로 마음을 먹었던 앤디는.

“안녕하세요!”

단탈리온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탑엔젤스의 멤버들을 바라보며 몸이 굳어 버렸다.

“어, 어…….”

“으휴 이 한심한 인간아.”

제인이 앤디를 뒤로 끌어당기며 웃었다.

“죄송해요, 우리 기타리스트가 이성에게 약해서~~”

“허억! 무슨 소리야 너!”

“어머,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정말요?”

그렇게 앤디를 희생양 삼아서 어색했던 공기가 조금이나마 풀어져 갔다. 단탈리온은 이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오늘 우리의 파트너 밴드가 되어 줄 이들이로다.”

그 말을 들은 앤디와 제인, 오로바스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파트너?”

“못 들었는가?”

단탈리온은 참으로 통탄스럽다며 말했다.

“이 무지한 필멸자들을 어찌하면 좋을꼬…….”

“……점점 더 미쳐가는 거 같다.”

“앤디여, 방금 작가들에게 듣지 못했는가.”

단탈리온이 밖에서 영상을 찍고 있는 카메라맨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라이징 밴드 촬영을 할 때, 한 번씩 탑엔젤스와 같이 움직일 예정이다. 대기실 이용도 마찬가지다.”

“같은 대기실을 쓴다고!?”

그 말에 제인이 앤디의 등을 냅다 후려쳤다.

“그게 되겠냐? 정도라는 게 있…….”

“아니, 같이 쓴다.”

그 말에 앤디를 나무라던 제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진짜로?”

“자세한 건 스텝들에게 듣도록 하지.”

단탈리온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연출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조연출인…….”

“기보성의 시종이지 않은가. 아주 잘 알고 있도다.”

고개를 끄덕이는 단탈리온.

그리고 주변에서 키득거리며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 하는 다른 스텝들.

그들의 반응 때문인지 조연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시, 시종은 아닙니다!”

“음? 어찌 되었든 부하이지 않은가.”

“그건……. 네.”

“아무래도 좋으니 설명부터 하거라.”

한숨을 푹푹 쉰 조연출이 설명을 시작했다.

“네에……. 설명을 드리자면, 저희 라이징 밴드 제작진은 RRR 밴드와 탑엔젤스가 1시간가량 같은 대기실을 사용하도록 계획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마.”

조연출은 단탈리온의 반응을 보며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는 한숨을 쉬었다.

마치, 내가 왜 이런 인간들에게 엮여서, 라며 한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무래도 라이징 밴드는 단순한 경쟁이라기보다는 서로 응원하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드리고자 합니다.”

“흠, 흠.”

“그래서 매회 다른 밴드와의 교류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간단한 다과도 제공해 드리면서 밴드들끼리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시면…….”

“호오, 호오.”

“저희가 그걸 영상으로 남겨서 방송에도 내보낼 겁니다. 그러면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하는구나. 들었는가, 앤디여.”

단탈리온이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세웠다.

“이 몸이 괜히 탑엔젤스와 함께 들어온 게 아니다, 이 말이다.”

무언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는 단탈리온을 보면서 앤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알았어, 알았어. 잘했다 아주.”

“칭찬으로 듣도록 하지.”

“에휴……. 아무튼, 그럼 1시간 동안 대기실 같이 쓰는 거죠?”

앤디의 질문에 조연출이 활짝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RRR 밴드와 탑엔젤스의 불편한 1시간까지 동거가 시작되었다.

* * *

지금 이 1시간짜리 동거를 불편해하는 건 RRR 밴드뿐만이 아니었다.

탑엔젤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단체 미팅도 아니고.’

‘우리가 꿰다 놓은 보릿자루냐고!’

‘어색해! 공기가 너무 어색해!’

탑엔젤스 멤버들이 다들 안절부절못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심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는 달리 딱 한 사람만은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며 금발 머리를 가볍게 매만지고 있었다.

“저기…… 도미니온…… 님? 씨?”

앤디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이름이 불린 도미니온이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네, 앤디님. 반가워요.”

“헉! 제, 제 이름을 어떻게……!”

그야 RRR 밴드는 천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밴드니까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도미니온은 적당히 거짓말을 했다.

“여수 공연 영상 봤거든요. 엄청 천사를 욕하는 노래를 하셔서요.”

“내가 그런 노래 하지 말자 그랬지!”

“무슨 소리냐. 자네도 찬성하지 않았느냐.”

“아냐! 나 안 그랬어!”

앤디의 효과 없는 불평을 들으며 단탈리온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가련한지고.”

“저기…….”

그런 둘을 조용히 보고 있던 도미니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여기서는 이상한 기운 못 느끼셨어요?”

“……네?”

갑자기 ‘도를 아십니까?’ 같은 질문을 받은 앤디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당황하기는 제인도 마찬가지였다.

“아뇨, 별로……. 종교가 없어서 그런가? 아하하하!”

제인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그걸 알아차린 도미니온도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헤헤, 저도 농담이에요 농담. 밴드 분들끼리 모이니까 뭔가 음악적인 공기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도미니온의 밝은 목소리, 이어지는 제인의 농담, 미녀들 사이에 둘러싸여 질문 공세를 받는 앤디 등.

RRR 밴드의 대기실은 이전보다도 한층 더 떠들썩해졌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스으으…….

주변 인물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대기하던 중이었다.

“음.”

단탈리온이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빼고는 도미니온의 앞으로 걸어갔다.

“탑엔젤스의 보컬리스트여.”

“제가 그래서 그때……. 아, 네!”

“잠시 나오거라.”

단탈리온의 말에 도미니온이 표정을 싹 굳혔다.

혹시나 기분이 상한 게 아닐까, 생각하던 주변 사람들이었지만, 오히려 도미니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지금이군요.”

“그러하다.”

몸을 휙 돌린 단탈리온이 대기실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거라.”

콰앙!

거칠게 대기실 문이 열리고, 바깥의 바람이 안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실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거센 바람이 휘잉 몰아쳤다.

“……우웁!”

그러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스텝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다.

“왜, 왜 그러세요!?”

조연출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점심 먹은 게 올라오나……?”

“그러게 아까 작작 먹으라고 그랬는데…….”

“어…… 우……. 잠깐 쉬다 와도…….”

“잠시만요.”

조연출이 기보성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스텝에게 말했다.

“피디님이 괜찮다고 하시네요.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스텝진이 황급히 자리를 나가려던 찰나.

“잠자코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단탈리온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의견은 단탈리온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좀 쉬고 계세요.”

도미니온도 스텝진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카메라맨의 이마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남성이 몸을 축 늘어뜨리더니 바닥에 엎어졌다.

“이분 좀 모셔 줘!”

“선배님!”

탑엔젤스의 다른 천사들이 도미니온에게 눈빛을 보냈다.

‘괜찮으신 거 맞죠?’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팀원들로부터 통신을 들은 도미니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앤디, 제인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서로 얼굴만을 돌아보고 있었고.

“두 분은 제 뒤에 계시면 안전하실 겁니다.”

두 사람의 앞을 지키기 위해 오로바스가 앞으로 나섰다.

“진태여.”

“예! 단탈리온 데스맨 님!”

도미니온이 나온 것을 확인한 단탈리온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이 몸의 기운을 나눠 주마. 이곳을 지키거라.”

단탈리온으로부터 마력을 일부 전달받은 오로바스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주군의 명을 지키겠나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는 그 자리에.

단탈리온은 이미 바깥으로 나가 사라진 상태였다.

* * *

“언제 느끼셨어요?”

대기실을 나온 단탈리온과 도미니온은 방송국 복도 내부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녔다.

지나가면서도 탁기가 복도를 감싸고 있었고, 마력에 대한 면역력이 낮은 사람들 몇몇은 카메라맨과 비슷하게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앤디가 헛소리를 하는 순간부터니라.”

“앤디 씨가 헛소리……?”

사실 모든 이야기가 농담 따먹기였으니 다 헛소리를 할 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던 도미니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처음부터……!”

“음.”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처음부터 마력을 끌어올려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탁기가 빨리 올라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원동력이라도 있는가.’

탁기의 기운.

이전에도 몇 번은 맡았었다.

그렇다.

마성전쟁.

지금으로부터 약 5천 년 전에 있었던 대규모 전쟁.

그 시기에 단탈리온은 몇 개의 탁기를 맡아 봤었고.

“……생각보다 빠르다.”

“예?”

“탁기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단탈리온이 손을 뻗었다.

“그러니 지금 어찌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겠지.”

지금의 탁기는 이제 막 각성한 직후.

각성의 때를 노려서 제시간에 막지 못하면.

‘지금의 마력으로는 막기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

게다가 최악의 상황에는 라이징 밴드 본선 2라운드 촬영이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사태가 생기면.

RRR 밴드는 다시금 출발점에 서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되고.

최종적으로 71위 마계는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잃게 될 것이었다.

“허나 그 제어는 이 몸 혼자서는 어려운 법.”

인정하기는 싫지만.

지금 이 탁기를 막아 내기 위해서는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성전쟁에서도 그랬다.

단탈리온의 능력은 언제나 출중했고, 뛰어났지만.

“탁기를 정화하기 위해 보좌가 필요하다.”

탁기는 숙주만 제거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말을 마친 단탈리온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는 도미니온을 향해 말했다.

“그대의 정체를 묻지는 않겠다.”

“!!!!!”

조용히 단탈리온의 뒤를 따라가던 도미니온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설령 이자가 천계의 힘을 받은 이라 하더라도.

아니, 어쩌면 하급 천사가 빙의하였거나 직접 현계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71위 마계 재건을 위해 이 한 몸을 불살라야만 하는 책임이 있단 말이다.’

설령 조력자가 적이라 분류되는 존재여도.

마성전쟁에서의 그때처럼.

단탈리온은 천계의 힘을 부릴 줄 아는 이를 부려야만 했다.

“그러니 묻겠다.”

“네, 네!”

단탈리온이 눈앞의 존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협력할 준비가 되었는가.”

* * *

“그워어…….”

복도 앞에는 탁기를 잔뜩 마신 인간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 냄새가 지나치게 역했기에.

“큭!”

도미니온도 코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천사인 자신도 이 정도인데,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남성은 더 큰 영향을…….

받지 않네?

어째서지?

용사의 후계자이기 때문일까?

아니, 애초에 용사의 후계자라고 모든 독에 저항이 있는 건 아닐 텐데.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조 마법을 걸어 뒀나?

그런 상상들을 해 나가던 도미니온에게 단탈리온은 물었다.

“그대의 정체를 묻지는 않겠다.”

“!!!!!!”

단탈리온 데스맨.

결연한 의지를 지니고서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목적을 알 수 없지만, 용사의 후계자라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

“협력할 준비가 되었는가.”

어떻게 보면 오만하다 생각될지도 모를 질문이지만.

도미니온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워…… 크어어…….”

“……큐어 라이팅.”

도미니온이 손가락 끝에 마력을 담아 비틀거리는 여성의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여성의 몸 안쪽으로 하얀 기운이 스며들었다.

털썩.

탁기가 정화된 여성을 부축한 도미니온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하겠습니다.”

도미니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지금 상황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녀의 금발이 살랑, 복도를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렸다.

“제가 가진 힘. 사람들을 구하는 데 얼마든지 사용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천사답고 천사스러운 대답이었다.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판단이로다.”

악마와 천사.

어울리지 않는 연합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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