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각성 (1)
털썩.
지나가면서 탁기에 중독된 이들을 치료하던 도미니온은 앞서 걸어가는 단탈리온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근원지를 쫓겠다.
-아, 네.
탁기를 내뿜고 있는 진범을 찾겠다는 뜻이겠지.
도미니온도 한시라도 빨리 그 존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둘러 가지 않는 이유가 있는 걸까.
“데스맨 님.”
“단탈리온 데스맨이다.”
“……단탈리온 데스맨 님.”
거참, 천사를 이렇게까지 하대하는 인간이 있다니.
하긴, 용사의 후계자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상념을 떨치려는 듯 도미니온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왜 근원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 않으세요?”
그 물음에 단탈리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언가 심기를 건드린 것인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단탈리온의 주변으로 분노의 마력이 뿜어져만 나올 것처럼 보였다.
“아, 아뇨, 그게,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라…….”
“준비가 필요하다.”
단탈리온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가 지금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느니.”
“피해를……?”
재빨리 범인을 잡으면 끝나고, 그게 더 빠른 처리법이 될 텐데, 어째서?
“시키는 대로 하거라.”
“……싫다면요?”
도미니온의 작은 반항에 단탈리온이 츳, 혀를 찼다.
“별일 없겠지.”
“네?”
“역시 천계 따위는 그깟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는 저열한 존재임이 다시금 드러날 뿐.”
그 말에 도미니온 역시 분노가 조금 끌어 올려졌다.
그러나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곳은 천계가 아니라 인간계.
게다가 상대 역시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다.
‘천사로서의 품위가 있지, 그렇고말고!’
결국 도미니온은 계속해서 백마법을 사용하며 걸어가게 되었다.
“여기로군.”
단탈리온이 걸음을 멈추었다.
확실히.
다른 곳보다도 더 진한 탁기가 코끝을 찌르는 장소였다.
“큭……!”
“후각으로 마력을 감지하는가. 불편하겠군.”
그러는 그쪽은 혓바닥으로 맛을 봐야 하면서!?
아니 그것보다도.
‘역시 이 인간……. 알고 있었어!’
단탈리온 데스맨은 자신이 누구인지 이미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계에서의 움직임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집중하거라!”
생각을 이어 가던 도미니온의 머릿속은 단탈리온의 호통에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아! 네!!”
“잡념이야말로 탁기로부터 자신을 버리게 되는 근원.”
탁기가 흘러나오는 장소를 막고 있는 커텐을 붙들고, 단탈리온이 걸음을 옮겼다.
뚜벅.
“지금부터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말거라.”
* * *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가지지 못할 힘이다.
신이라도 된 게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예찬아, 성실하게 살아야 한단다.
그것은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남긴 말.
그 말에 따라 유예찬은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노력과 성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법.
유예찬은 그걸 깨달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고, 밴드를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하늘에 기도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대의 간절함이 여기에 닿았노라.’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유예찬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두근!
두근!
그리고 얻게 된 이상한 힘.
-어? 나았는데?
드럼을 연주하다가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되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야!
종이에 손을 베여도.
후욱!
-어?
-괜찮아?
-어, 응. 괜찮아. 안 아프네?
과로로 인해 잠시 기절을 해도.
음식을 먹다 배탈이 나도.
술을 마시다 구토를 하거나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모든 것은 새롭게 부여된 힘.
그 힘 하나면 모두 해결되었다.
-이건……!
필시 신의 힘이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를 한 노력이 성과를 보이는 것이다.
유예찬은 그래서 그 힘을 ‘신의 은총’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유예찬은 이 축복받은 은총을 밴드 공연에서도 활용하기로 했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성실하게 하고 있는 밴드 활동.
이 활동에서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
언제든지 신의 은총을 사용할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오늘이었다.
라이징 밴드 본선 2라운드 촬영일.
불행하게도 보컬인 채권사가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다.
천계의 힘을 논하고 있는 RRR 밴드 때문이었다.
그 녀석들이 보컬 채권사에게 정신적인 공격을 시도했고.
보기 좋게 채권사는 함정에 빠졌고, 속수무책으로 RRR 밴드의 정신 공격에 당해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하하…… 다 귀찮아…….”
그야말로 혼이 완전히 빠져나갔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
이렇게 되면 성실하게 해 왔던 지금까지의 홀리오라방돌이 활동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해 왔던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였으니까.
이제야 ‘신의 은총’을 얻어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성실하게 노력해 왔던 지난날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이 왔으니까.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권사, 이리 와.”
“……응?”
채권사를 대기실 구석으로 데리고 간 유예찬은.
손바닥을 펼치고는 채권사의 배에 가져갔다.
그러자 하얗고 검은 기운이 올라오며 채권사의 몸을 감싸 안았다.
“아…….”
“따뜻하지?”
“응……. 그리고…….”
조금…… 뜨거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채권사의 정신이 돌아왔다.
역시! 신의 은총은 축복이다!
정신이 나가려고 하던 채권사도 멀쩡하게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나간사에게도 쓴다면?
불안해하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간사도 잠깐 와 봐.”
“어? 나도?”
그리고 나간사를 향해 손바닥의 마력을 흘려보냈고.
홀리오라방돌이는 본선 2라운드 무대를 위해 리허설을 하는 시점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고서 무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
유예찬은 생각했다.
‘이 힘이 있으면……!’
라이징 밴드 우승과 함께.
세계 투어를 하면서 전 세계적인 밴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양분…… 양분이 더 필요해……!”
신의 은총을 보다 더 강력하게 발휘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면 나는 세계 최고의 드러머가……!”
“꿈의 그릇이 작은 걸 보니 역시나 어리석은 필멸자로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던 유예찬의 앞으로 한 남성이 걸어왔다.
뚜벅.
뚜벅.
지금 온몸에 흐르고 있는 ‘신의 은총’.
이제는 이 은총을 받은 이들 모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기 시작한다.
간사와 권사도 봐라.
몸이 좋아지니까 바로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잖아.
“그워어…….”
게다가 내 기운을 받은 저들을 봐라.
내 명령대로 움직이고 내 눈빛대로 행동하고 있다.
그야말로 아무 조건 없는 복종.
그렇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은 모조리 나에게 복종하고 있다.
그야 그렇다.
신의 은총이라는 축복은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쓸데없는 각성을 하였구나.”
내가 각성한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니, 생각해 보면 이전부터 이상했다.
천계의 힘이 어쩌고저쩌고하던 녀석이 아니던가.
그냥 농담으로 던진 게 아니라, 정말 이 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키…… 키키키킥……!!!”
절대 녀석을 살려 보낼 수는 없다.
* * *
단탈리온은 복도에 쓰러져 있는 스텝진들을 바라봤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면서 치료한 이들까지 했을 때, 탁기에 중독되어 쓰러진 사람 중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는 많지 않을 터였다.
“나쁘지 않군.”
보통 전염병 같은 저주 형태의 마법을 맞게 되면 숙주만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탁기로 인해 오염된 신성력을 사용한 저주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숙주가 죽으면 더 큰 폭발을 일으켜 이 일대를 모조리 마비시킬지도 모르는 일.
탁기에 오염된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탑엔젤스의 보컬리스트, 도미니온의 백마법이 필요했다.
연쇄 폭발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지금 탁기에 중독된 이들을 하나씩 줄여 나가야 했으니까.
“여기도 끝났어요!”
단순히 해독만 하는 게 아니라, 해독 과정에서 면역력도 갖출 수 있기에.
지금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허나, 이 몸은 마왕.
71위 마계의 지도자이자 악마 중의 악마, 마왕이다.
따라서 해독과 관련된 백마법은 익히지 않았다.
그래서 저 여성, 탑엔젤스의 도미니온을 데리고 나왔다.
“나름 믿음직스럽구나.”
“아……!”
도미니온이 살짝 감격한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 얼른 가시죠!”
“이 앞이로다.”
꿀꺽.
도미니온이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
촤악!
단탈리온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커텐이 젖혀졌고.
“꿈의 그릇이 작은 걸 보니 역시나 어리석은 필멸자로다.”
눈앞에 더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 남성이 이빨을 날카롭게 빼 들고 뼈만 남은 반쪽짜리의 작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쓸데없는 각성을 하였구나.”
“키…… 키키키킥……!!!”
커텐 너머로 상상도 못 한 참상을 발견한 도미니온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유희는 충분히 즐겼는가.”
건너편에서 섬뜩한 웃음소리를 내뱉고 있는 존재를 향해.
단탈리온 데스맨은 그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는 고고한 걸음걸이로.
상대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홀리오라방돌이 밴드의 드러머. 유예찬이여.”
“키킥……. 키캬캬캬캬캬!!!!!”
“이성마저 잃어가는 지경이로구나.”
단탈리온은 아무 감정 없는 눈동자로 유예찬을 내려다봤다.
그저 차갑게. 침묵을 유지하고서.
그리고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성 보컬.
탑엔젤스의 도미니온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대는 쓰러진 스텝진들부터 살피거라.”
“그, 데스맨 씨는요!?”
“이 몸은 저자를 막을 것이다.”
단탈리온이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더 이상의 피해는 라이징 밴드 프로그램의 존속 위기로 이어질 터.”
앞을 막아서는 단탈리온의 등을 응시하며 도미니온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디 유예찬 씨를 구해 주시길!”
“훗. 걱정할 필요는 없느니.”
단탈리온의 웃음소리를 들은 도미니온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 * *
‘뭐지 저 미친년놈들은?’
유예찬은 허리를 절반으로 숙이고는 고개만 쳐들고서 단탈리온과 도미니온을 번갈아 바라봤다.
감히 이 나를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고 있어?
그렇다면……!
유예찬이 몸을 치켜들고 드럼 스틱을 손에 꽉 쥐었다.
“필! 인!”
두두두둥!!! 타타탁!!!!
둥둥두두둥! 타타탁! 챠챵! 탕탕 챠챠챵!!!
드러머 답게 유예찬은 스틱을 들고 드럼을 마구 두드리는 것으로 탁기를 발현시켰다.
거기에 더해 유예찬의 드럼 소리에 맞춰 나간사와 채권사의 연주도 더해졌다.
둔두두둔!
쟈쟈쟝 쟈아앙!
세 악기의 파장이 한데 어우러지더니 탁기의 농도가 짙어졌고, 리허설 무대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화악!!
“끄읍…….”
아직 의식이 남아 있던 스텝진들이 짧은 신음 소리를 내뱉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털썩.
“그만……!!”
도미니온도 귀를 잡고는 괴로워하며 빠르게 결계를 형성했다.
‘단탈리온 데스맨 씨는!?’
가까이서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그라면 더 위험할 텐데!
걱정 어린 시선으로 단탈리온 데스맨을 향해 고개를 돌린 도미니온은.
“헐…….”
허공에서 내려오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입을 멍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막대기?”
허공에서 내려온 건, 검은색 막대기에 불과했으니까.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정말이지 평범해 보이는 막대기였다.
그때, 오른손을 위로 뻗은 단탈리온 데스맨이 허공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검은색 막대기를 붙잡았다.
설마 마법사의 지팡이?
완드라던가 그런 건가?
아니면 전설의 검, 성검의 레플리카?
그런 온갖 생각들이 난무하던 도미니온은.
이어지는 단탈리온의 행동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하등한 종족치고는 소리가 제법이구나.”
단탈리온이 막대기를 붙잡고는 바닥을 향해 세게 내리꽂았다.
콰앙!!!
막대기의 끝에 집중된 마력.
그 마력으로 인해 형성되는 작은 마법진.
검붉은 마법진의 위에서 검은색 막대기는 세 갈래의 다리를 하나씩 만들어 냈고.
“……마이크 스탠드?”
그 위쪽은 절반으로 나뉘더니, 앞으로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리고 단탈리온이 허리춤에서 작은 막대기 하나를 꺼냈다. 이어서 고개를 숙인 막대의 끝에 마이크를 꽂아 넣었다.
파팟!
콰아아아!!!
“하앗!!!!”
그와 동시에.
작은 마법진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연기를 내며 폭발했다.
“우왓!!”
리허설 무대 위에 쌓여 있던 먼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미니온은 물론이고, ‘신의 은총’을 사용하고 있던 유예찬과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채권사, 나간사까지.
모두가 행동을 잠시 멈춘 순간.
“저열한 각성 따위로 이 몸과 맞서려 한 죗값.”
단탈리온이 마이크 스탠드로 변화한 막대기를 움켜쥐고는 샤우팅을 하듯 허리를 한껏 숙여 자세를 취했다.
“그 몸과 귀로 똑똑히 치르거라.”
단탈리온의 주변 공기가 삐걱거렸다.
[워우그예에에에계야야야야!!!!!!!]
마계의 친우.
바엘이 직접 제작한 단탈리온의 무기.
특제 마이크 스탠드의 힘을 빌려 마력을 잔뜩 담은 단탈리온의 그로울링 창법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홀리오라방돌이의 드러머, 유예찬을 향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