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각성 (2)
도미니온은 자신의 눈동자에 비치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빛의…… 발검술……!?’
단탈리온 데스맨은 마이크 스탠드를.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발검을 할 것과 같은 자세로 잡더니.
그 자세 그대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워우그예에에에계야야야야!!!!!!!]
단탈리온의 그로울링 창법이 담긴 마력 사자후를 얻어맞은 유예찬이 쥐고 있던 드럼 스틱을 떨어뜨렸다.
툭, 타닥.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무로 만들어진 드럼 스틱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어리석은 필멸자, 유예찬은 듣거라.]
유예찬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대의 각성은 잘못되었느니.]
단탈리온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뚜벅.
그리고는 다시금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힘을 빼앗겠다.]
발검의 자세를 취한 단탈리온의 말을 들은 도미니온은 확신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용사의 후계자가 맞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발검술의 자세.
빛의 발검술을 익히고 있을 리가 없다!
성마전쟁에서도 최강의 검술로 기록되었던 용사의 성검술.
그 성검술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빛의 발검술’.
그걸 사용하는 인간이 있다.
‘메타트론 님, 이분은 용사의 후계자가 맞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천계에서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미니온도 서둘러 스텝진들을 향해 달려가며 백마법을 사용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라이징 밴드, 본선 2라운드 촬영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 * *
‘굼뜨군.’
도미니온이라는 저 여자.
역시 백마법이 어설픈 거 아닌가?
이 정도의 연출로 시간을 끌었다면 이미 스텝진 모두를 치료해도 충분했을 터인데.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다니.
‘역시 하급 백마법사로는 한계가 있었단 말인가.’
이름이 도미니온인 걸 보면 적어도 중급 천사로부터 마력을 부여받았을 터.
그럼에도 고작 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때문에 나는 도미니온의 능력에 다소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는 그저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고개를 들라.”
“끄윽……!”
유예찬이 덜덜 떨리는 손을 어렵게 움켜쥐고는 바닥을 향해 펼쳤다.
“이터널 불릿!!!!”
녀석의 다리 밑에 작은 홀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 유예찬의 마력은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을 터.
그리고 그곳에서의 드럼 연주는 방금 전보다도 더 진한 탁기를 내뿜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호오…….”
그새 주문이 필요한 마법까지 익혔단 말인가.
“역시 이 각성은 위험하군.”
이전 같았다면 지금 탁기가 충만한 유예찬 같은 이를 상대할 수 없었겠지만.
잔여마력량: 186,000
바엘로부터 받은 마이크 스탠드 무기의 마력까지 더하면 지금 마력은 이 정도의 반각성자 한 명 정도는 가뿐하단 말이다.
“벌을 내리겠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녀석의 존재를 지워 버릴 수는 없는 일.
라이징 밴드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가자들 하나하나가 모두 필요하다.
그래야만 스텝진들의 의심도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시청자들로부터도 필요 없는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까.
“이 몸에게 아직 자비가 남아 있음에 감사하거라.”
이걸 자비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단전에 쌓여 있는 마력을 크게 응축해서 목구멍 가까이로 끌어올렸다.
“퀘르포 타쿤.”
육체를 강화하는 흑마법.
퀘르포 타쿤.
손바닥 위로 피어오르던 마력의 농도가 짙어지더니.
호신마기처럼 몸을 감싸 올랐다.
“멘떼 프레스.”
멘떼 크몽떼와는 또 다른 정신 공격 마법.
멘떼 프레스.
온몸을 휘어 삼키던 마력은 이내 내 주변으로 흩어졌다.
반경 5미터 안에 있는 이들을 집어삼키는 흑마법.
그 안에 삼켜진 이들은 인간이고, 악마고, 천사고 할 것 없이 공격 대상으로 삼게 된다.
“커헉……!”
역시나.
예상대로 유예찬, 채권사, 나간사 세 사람 모두 마법의 반경 범위에 포함되자마자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너…… 너는 대체……!”
“어리석은 필멸자와 대화를 나눌 이유는 없느니.”
정말이다.
내가 지금 굳이 저 인간들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생각보다는 약하군.’
이전보다 마력이 올라왔기에 이제는 충분히 중급 흑마법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중급 정신 공격 마법, 멘떼 프레스를 시전했건만.
그 효과는 내 온전한 실력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것도 천계의 영향 때문인가.”
약 스무 배가량 차이가 나는 천계와 마계의 격차.
그 격차 때문에 마력을 사용하는 효율이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허나 이 정도로도 앞의 인간들을 압박하기에는 충분하겠지.
어째서냐고?
“끄읍…… 그…… 러지…… 마아……!!”
“아아아아아아아!!!!”
“헉…… 허억!”
유예찬, 채권사, 나간사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탁기를 물씬 풍기고 있던 방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어지지 않았는가.
“나쁘지 않군.”
나는 친우 바엘이 선물해 준 마이크 스탠드를 똑바로 들고는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망령들이여.”
정신적 압박을 강하게 가하는 흑마법.
멘떼 프레스.
이 마법은 결계의 범위에 들어온 이들에게 과거의 추악한 기억들을 끄집어내도록 만든다.
그 기억은 이전보다도 더 끔찍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그들의 눈앞에 재현되고.
“자, 자, 잘못했습니다!”
“사사, 살려 주세요!!”
정신적 압박은 시간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그 강도를 높여 가면서.
그들의 정신력을 하나하나 갉아먹는다.
이 마법이 잠깐 동안만 지속되더라도.
공격을 받은 대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괴로워하며,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든다.
그렇다.
쉽게 말하자면.
“전의 상실이라는 거다.”
홀리오라방돌이의 라이징 밴드 참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육체적으로 압박할 수는 없다.
팔을 자르거나 발목을 부러뜨리게 된다면 이들의 참가가 불투명해지고, 결과적으로는 이 프로그램의 존속 위기로 이어질 터.
어느 누가 참가자들이 다치기만 하는 프로그램을 선호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들의 육체를 공격하기보다는 정신 공격을 감행했다.
게다가, 나의 별명이 또 그거지 않은가.
[역시 정신의 지배자 단탈리온님의 마법……!]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틀라가 대신해 주는구나.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그때.
“크아아아악!!!!”
유예찬이 탁기를 온몸으로 방출시키며 멘떼 프레스의 구속을 풀어내려 시도하고 있었다.
“호오. 나름 괜찮은 발버둥이구나.”
확실히, 탁기를 만들 정도의 마력은 갖추고 있다는 건가.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각성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너는…… 정체가 뭐냐!”
유예찬이 한 번 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여기에도 내가 답할 이유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천천히 유예찬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크으으…… 아아아아!!!!”
유예찬이 다시금 드럼스틱을 들고 심벌을 내리쳤다.
챠아아앙!!!!!
“저게 또……!”
마법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도미니온이 이쪽을 노려봤다.
“겨우…… 겨우 잡은 기회란 말이다……!”
유예찬이 드럼 스틱을 들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나에게!!! 이 신의 은총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단 말이다!!!”
“신의 은총……?”
도미니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유예찬을 응시했다.
그래, 천계라면 충분히 궁금해할 정보겠지.
허나, 지금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탁기.
천계의 영향을 받은 마력이 폭주할 경우에 발생하는 각성자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일컫는다.
물론, 수행자들이 각성하는 경우야 간혹 있는 일이다.
열반 밴드의 능선이라는 수행자가 그 좋은 사례가 된다.
그러나 천계로부터의 계시를 받은 수행자들 모두가 정상적으로 각성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나를 막지 말란 말이다!!!”
지나치게 천계의 부름에 심취하게 될 경우.
지금 보는 유예찬처럼.
잘못된 각성.
마성전쟁 때부터, 반각성이라 부르는 상태로 변하게 된다.
“하찮은 힘 따위에 의존하다니.”
나는 탁기를 뿜어내는 유예찬의 연주를 거듭 거둬 내며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은총 같은 저열한 힘에나 기대고 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뭣……!”
“주변을 둘러보거라.”
유예찬의 탁기.
아마 그는 각성을 하기 전에는 가벼운 백마법을 사용해 가면서 연주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심사 위원들이나 스텝진들에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겠지.
허나 그뿐이다.
“탁기로 이루어진 그대들의 노래는.”
나는 주변에 널브러져서는 도미니온으로부터 부축을 받고 있는 스텝진들을 가리켰다.
“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못할 것이다.”
“아아……!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이만 잠들 시간이구나.”
도미니온이 모든 스텝진을 치료했고, 유예찬은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지금이기에.
“위민…….”
언젠가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그 주문.
“더러빙 멘뜨몽…….”
“저 주문 설마!?”
“디엔유.”
나의 친우가 남겨 주고 떠난 마법을 사용하기에 적절하다.
“조용히 잠들거라.”
마이크 스탠드를 들고 유예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끼예야아!!!!!]
사자후처럼 뻗어나간 내 목소리가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던 탁기를 모조리 부숴 버렸고.
[하이! 예아아아아아!!!!]
이어지는 샤우팅으로 유예찬의 드럼 스틱의 소리를 모조리 묻어 버렸다.
“크…… 크으으윽……!!!”
그리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던 유예찬의 드럼 스틱에 하나씩 금이 생겨 갔고.
파각, 파각.
빠직! 빠가각!
이내 수십 개로 분열되어 바닥으로 흩어졌다.
절망하는 유예찬의 앞에 마이스 스탠드의 끝자락을 들이밀었다.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크아아아아아아!!!”
마이크 스탠드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유예찬의 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유예찬의 몸을 휘돌고 있던 탁기들은 마치 빨려 들어가기 싫다고 절규하는 길 잃은 영혼들처럼 비명을 지르다가.
콰아아아아!
[모든 것은 이 몸에게로.]
쿠오오오오오!!
[이 몸의 마력 아래 무릎을 꿇을 지어다.]
“커어…… 크억…… 아…….”
털썩.
모든 탁기가 빠져나온 유예찬의 몸이 힘을 모조리 잃고 쓰러졌다.
“데스맨 씨!”
“다가오지 말거라!”
지금은 이 탁기를 갈무리해야만 하느니.
아무리 71위 마계의 지도자인 이 몸이라도 하더라도.
한낱 인간의 몸에 빙의해 있는 상태라면 탁기를 온전히 흡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은 이 탁기를 마계로 올려 보내야 한다.
“스텝진을 데리고 바깥에서 대기하거라.”
“저, 정말 괜찮으세요!?”
나는 도미니온을 향해 살짝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슨 일 생긴 거 같으면 바로 올게요!”
“쓸데없는 걱정이로다.”
도미니온이 나가는 걸 확인한 나는 마이크 스탠드를 바닥에 꼿꼿하게 세우고는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곤 양손으로 마기를 서서히 끌어 올려 마이크 스탠드 안에 들어있던 탁기를 작은 구체로 만들었다.
그 구체를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마기로 감싸진 탁기공이 마계로 전송되었고.
“비축해 두거라.”
[존명!!!!]
시틀라의 대답까지 확인한 나는 바로 자리를 떠나 도미니온과 합류했다.
라이징 밴드.
이제 다시 본선 2라운드가 시작되어야 할 타이밍이다.
* * *
“가스가 유출되고 있었다니까!”
한바탕 소동이 진정된 후.
라이징 밴드 본선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기절해 있던 스텝진들 모두가 잠시간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은 단탈리온이 기보성을 비롯한 주요 스텝진들에게 멘떼 크몽떼를 걸어서 해결했다.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금연 건물 아니었으면 터졌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당장 가스 점검받으라고 했고, 지금은 괜찮다고 하니까 다행이지 뭐.”
기보성이 목이 뻐근하다며 주먹으로 목을 톡톡 두드렸다.
“넌 RRR이랑 탑엔젤스 찍으러 갔다가 기절했다며? 참가자들은 어때?”
조연출이 머리가 아프다며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네에 뭐…… 정신을 차려 보니까 되게 우람한 형님이 절 지켜 주고 있던데…….”
조연출은 그 형님에게 감사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듬직한 분위기라 뭔가 도움이 되었단 말이죠.”
“……퍽 이나 짜슥아. 빨리 촬영 준비나 해. 시간 많이 지체됐으니까.”
그렇게 본선 2라운드가 다시금 시작되어 갔고.
“……어라?”
“흐음…….”
심사 위원들은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홀리오라방돌이 밴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번에 비해서 너무 평범하지 않아요?”
“그러게. 저번에는 운이 좋았나?”
“유독 컨디션 좋은 날 같은 거? 나도 그런 걸 따지던 날이 있기는 했었지.”
심사 위원들의 말마따나.
탁기가 빠지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유예찬이 있는 홀리오라방돌이는.
정말 그저 그런, 평범한 팀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홀리오라방돌이는 본선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크흑……!”
채권사, 나간사, 유예찬.
세 사람 모두 분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최선은 다했는가.”
그리고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단탈리온이 있었다.
“……비웃으러 오셨습니까?”
“그러하다. 감히 이 몸의 밴드를 컨셉질이나 하는 X 같은 개허접쓰레기 밴드라고 평가한 자네들이지 않은가.”
“……그렇게까지는 안 하지 않았나?”
단탈리온은 무언가 반대 의견을 내려는 홀리오라방돌이를 보며 검지를 천장을 향해 들어 올렸다.
“패자부활전으로 올라오거라.”
“!!??”
“다시 올라온다면, 그때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대결해 주도록 하지.”
악마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악독하지는 않다.
게다가 이 몸은 71위 마계의 지도자. 마왕 단탈리온.
“올바르게 각성해서, 순수악과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주겠노라.”
지금 단탈리온이 하는 말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채권사, 나간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예찬만큼은 알고 있었다.
“……그때 되면 봐주지 않을 겁니다.”
“훗. 별걸 다 걱정하는구나.”
물론, 큰 기대를 하고 패자부활전에 도전한 홀리오라방돌이는.
“홀리오라방돌이! 패자부활전에서도 탈락!”
“말도 안 돼!!!!”
결국 라이징 밴드 최종 탈락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