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본선 2라운드 종료
홀리오라방돌이가 본선 2라운드 탈락의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단탈리온은 대기실에 홀로 앉아 시틀라에게 통신을 걸었다.
[단탈리온 님!]
시틀라의 목소리를 들은 단탈리온이 말했다.
“시틀라여, 바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주거라.”
[그 말이라면 직접 들었으니 충분하다, 나의 친우여!]
바엘이 71위 마계에 와 있었단 말인가?
[그 마이크 스탠드는 71위 마계의 시틀라와 11군단장, 에키드나와의 합작이야!]
[바, 바엘 님!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무슨 소리냐 시틀라! 자네들이 인간계의 문화에 정통하지 않았다면 적합한 무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 무기라고 해도 검이나 창을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지점이다, 시틀라! 이 몸, 바엘은 아무것도 모르고 독바늘이 가득 박힌 방망이를 보낼 뻔했지 뭐냐! 크하하하!]
역시나.
언제나와 똑같은 바엘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바엘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훗. 그대 덕분에 아주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또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하게!]
바엘에게 감사 인사도 전했겠다.
이제는 본론이다.
“녹화는 다 하였느냐.”
[예! 촬영장에 설치해 둔 감시 눈동자로부터 모두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시틀라의 말을 들은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반각성자의 탁기 사건.
그 사고로 인해 라이징 밴드가 진행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유예찬 이외에도 탁기가 감지되는 곳이 있느냐.”
그래서 다소 마력 소모를 감행해서라도 건물 내부를 모두 탐색해 보기로 했다.
즉, 마력 소모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하는 감시 눈동자를.
라이징 밴드 본선 2라운드를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켜 두기로 한 것이었다.
[아뢰옵기 죄송하오나 아직은 탐지된 기운이 없습니다.]
“그러하더냐.”
유예찬 한 명만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두 명만이라도 더 반각성자가 나타난다면.
“그때가 되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
그전까지는 71위 마계의 일원들이 적절한 감시를 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거라.”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와 군단장들이 고생하는구나.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탁기공은 잘 받았느냐.”
[예! 탁기 보관소에서 보관 중입니다.]
시틀라는 정말 흥미로운 물건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이 정도의 탁기를 본 적이 없는데, 이례적입니다. 게다가 나름대로 양도 많은 편입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농도도 짙습니다. 마성전쟁 때 이후로 이 정도의 탁기는 느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시틀라여.”
[이걸 분석하면…… 핫! 네 단탈리온 님! 제가 주제넘게 혀가 길었습니다!]
“알았다면 되었다. 군단장들과 탁기공을 분석하거라.”
단탈리온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탁기를 제어하는 순간, 정화된 마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유예찬의 탁기를 굳이 단탈리온이 탁기공으로 만든 이유.
탁기를 마계의 마기로 더 깊은 어둠으로 잠식시킬 수 있게 되면.
그 탁기는 정제된 마력으로 변화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71위 마계의 마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이는 마계코인의 수익으로도 이어지기에.
“탁기공을 잘 보관하도록 하거라.”
[예! 단탈리온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석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단탈리온이 붉은 안광을 빛냈다.
“탁기공의 분석 내용은 보고서로 받겠느니.”
그 탁기가 분석된 내용을 토대로 유예찬이 ‘신의 은총’이라 부른 힘의 원천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인간계에서 더 큰 명성을 얻는 데 도움이 될 터.
“남은 시간은 라이징 밴드에 집중하겠다.”
“데스맨! 준비 다 됐냐?”
시틀라가 마무리 인사를 하는 순간.
앤디가 대기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가자.”
단탈리온이 옅게 웃으며 바엘에게서 받은 마이크 스탠드를 3단으로 작게 접어서 손에 들었다.
이제는 RRR 밴드가 본선 2라운드를 준비할 시간이다.
* * *
“탑엔젤스의 스타성은 역시나, 이번에도 입증이 되는군요.”
하현주가 앞서 치러진 탑엔젤스의 본선 2라운드 공연을 보고 감상을 말했다.
“벌써부터 팬클럽이 형성되고 있다면서요?”
“이번 라이징 밴드 참가자 중에서도 가장 핫한 밴드이지 않아요?”
하현주에 이어서 유열희와 장도민도 탑엔젤스의 행보를 칭찬했다.
“실력도 좋고, 편곡도 재미있고. 게다가 그 뭐냐. 고상하고 도도한 부잣집 아가씨들의 밴드 같은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 같던데요.”
마지막으로 윤상하도 탑엔젤스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는 리더, 도미니온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평가들에 대해서.”
무명 인디 밴드가 라이징 밴드를 통해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면.
그 과정에서 잘못하면 자만하게 되고, 그대로 나락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윤상하는 그 점을 두고서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천계의 중급 천사.
주천사 도미니온.
모든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인간계를 위해 헌신하는 천사.
때문에 이런 질문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잘못된 답변을 할 리가 없었다.
“저희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마이크를 들고 있던 도미니온은 잠시 침묵을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 라이징 밴드에서 저희의 인기가 얼마나 많아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응?”
심사 위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니온은 그런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했다.
“중요한 건, 라이징 밴드 참가자분들과 얼마나 멋진 공연을 펼칠 수 있느냐일 뿐.”
더 좋은 공연을 보여야만 라이징 밴드에서 오래 살아남고.
바로 옆에서 감시를 해야 하는 RRR 밴드와 가깝게 지낼 수 있다.
게다가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보컬리스트.
‘탁기를 이런 식으로 잡아내는 인간이라고?’
마력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예찬의 탁기를 잡아내던 그 모습에서는.
흑마법 기운도 느껴졌고, 일반 마법도 느껴졌으며.
심지어는 백마법의 기운까지도 느껴졌다.
‘사람들을 치료하느라 제대로 감지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는 마법, 흑마법, 백마법을 모두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용사의 후계자라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용사의 후계자인지 어떤지는.
단탈리온 데스맨에게서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어려울 터.
“따라서 저희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다른 밴드 분들과 함께 멋진 공연을 시청자분들게 선보일 생각입니다.”
도미니온이 속내는 숨기고서 밝게 웃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저희를 많이 응원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탑엔젤스의 본선 2라운드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선배, 괜찮을까요?”
도미니온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던 하급 천사가 물었다. 도미니온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
“역시…….”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가 보고 있어야 해.”
도미니온이 자신들의 다음 차례로 올라가는 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RRR 밴드. 저 사람들을 주목해야 해.”
용사의 후계자라 예상되는 인물과 함께 다니고 있는 세 사람.
그들 역시 실력이 있는 이들일 터.
‘탁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부터가 범상치 않다는 뜻이겠지.’
단탈리온 데스맨뿐 아니라, 기타리스트인 앤디와 베이시스트 제인. 거기에 드러머 박진태까지, 탁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박진태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탁기를 막아 내는데 힘쓸 정도로 마력을 갖추고 있었다.
“저 사람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 메타트론 님께도 보고드리지 마.”
“저, 정말요?”
“응. 메타트론 님께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보고드리지 않을 거야.”
도미니온이 고개를 돌려 다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도 전혀 예상이 안 되거든.”
* * *
탑엔젤스의 공연이 끝나고 RRR 밴드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 미션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편곡해서 커버곡으로 들려주는 것.
당연하게도, RRR 밴드에서는 평소 즐겨하던 커버곡들이 많았기에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게다가 한층 더 강화된 단탈리온의 마력 덕분에.
“펜시 인텐시키온.”
강화된 감정 전달력은 심사 위원들은 물론이고 스텝진들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와……. 역시…….”
심사 위원들이 서로 감탄하며 말했다.
“이만한 밴드가 있을까요?”
“솔직히 예고편이랑 본방이 너무 편집을 이상하게 해서 그렇지, 이만한 실력파 밴드가 없지 않습니까.”
하현주와 장도민이 RRR 밴드를 칭찬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연습하신 노래인가요?”
“저희가 아무래도 7년 차 밴드이다 보니 커버곡이 많습니다!”
공식적인 리더, 앤디가 마이크를 잡고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심사 위원들이 다들 RRR 밴드의 편곡을 칭찬하면서 이들의 본선 2라운드 합격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RRR 밴드.”
하지만, 딱 한 명.
윤상하는 심각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마이크를 잡고 정면을 노려봤다.
“지금 RRR 밴드가 인터넷상에서 인기가 많아지고 있고, 주목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네에…….”
앤디가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이건 분명 압박 질문이다!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악동과 반항아 이미지. 그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여 주는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과도한 퍼포먼스로 비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윤상하가 RRR 밴드의 멤버들 모두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어떻게 생각하시죠?”
방금 전, 탑엔젤스 밴드에게 물어봤던 것과 비슷한 질문.
윤상하는 RRR 밴드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서 어떤 답을 하게 되느냐에 따라 갈리겠지.’
앞으로 두 밴드 중, 어떤 밴드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오래도록 살아남는 밴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적절한 인성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윤상하는 이번 라이징 밴드를 통해 참가자들의 인성과 가치관을 평가해 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건…….”
“어리석은 질문이로군.”
앤디가 답하려는 순간, 단탈리온이 마이크를 훽 낚아챘다.
“주목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야, 너 대체 무슨 소리를…….”
단탈리온이 심사 위원들을 향해 마이크를 똑바로 세우고는 가리켰다.
“그대들은 주목을 받기 전에 이런 생각들을 해 본 경험이라도 있는가.”
“……!?!?”
“자네들의 그 질문은, 지나치게 오만방자한 질문이로다.”
어디서 감히!
주목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왔던 밴드들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가!
“지금 RRR 밴드처럼, 그대들 역시 배를 굶주리던 시기가 있었을 터.”
단탈리온이 피식 입꼬리를 올리고는 마이크 스탠드를 바닥에 쿵! 내리꽂았다.
“그런 시기에도, 그대들은 그 생각을 해 본 경험이 있는가.”
단탈리온의 말에 윤상하를 포함한 심사 위원들 모두가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71위 마계처럼 없이 살아 봐라.’
일단 성공하고 보자! 라는 목표가 생기게 된다.
성공한 뒤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딴 건 성공하고 나서의 고민일 뿐. 성공도 못 했는데 왜 그런 걸 고민하지?”
눈을 가늘게 뜨고 심사 위원들을 노려보던 단탈리온이 코웃음을 쳤다.
“기억하거라. 이 자리에 있기에 그대들이 이 몸보다 위에 있을 뿐.”
당장 마계에서 만났어 봐라.
“온갖 흑마법으로 사지를 갈갈이 찢어 발기…….”
“죄죄죄죄죄죄 죄송합니다!!!!!!!!!! 저희 보컬이 컨셉에 진심이라!!!!”
“에에잇!!!! 이거 놓아라, 앤디여!!!!! 저 오만방자하고 거지 같은 마인드를 강요하는 쓰레기 필멸자들에게 아직 이 몸이 할 말이 남았읍읍!!!!”
“죄송합니다아~ 오늘 공연 여기까지만 할게요~”
제인도 나서서 단탈리온의 입을 틀어막고는 뒤로 질질 끌고 나갔다.
* * *
앤디와 제인에게 끌려 나가는 단탈리온.
그리고 그 뒤를 허둥지둥 따라 나가는 박진태.
그런 RRR 밴드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윤상하가 헛웃음을 삼켰다.
“허어, 하하, 참나 거 허어…….”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 윤상하가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맞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이거 한 방 제대로 먹었는데요?”
단탈리온의 말은 결국 이거였다.
너희들도 어려울 때는 그딴 거 생각도 안 했으면서 왜 우리한테만 강요하느냐.
“반성하게 되네요, 괜히.”
“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왜 던졌어요, 선배!”
“나라고 뭐 저렇게 말할 줄 알았나? 나도 몰랐지.”
윤상하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보성 PD님.”
“어, 네?”
“방금 그거 다 찍으셨죠?”
윤상하의 말에 기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꼭 내보내 주세요.”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기보성도 사실 고민하기는 했다.
이번에도 RRR이 한 건 해 주기는 했는데, 이걸 그대로 내보내면 윤상하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생길 터.
그래서 이걸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윤상하가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아무튼, 꼭 내보내 주세요.”
“저야 감사하죠! 좋습니다!”
기보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 기운 그대로 참가자들을 모두 이 무대로 올려야겠군요!”
라이징 밴드 2라운드까지는 기본적인 밴드들의 실력을 점검하는 자리였다면.
남은 라운드에서부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제 본선 3라운드 준비를 해야지요.”
라이징 밴드 3라운드에서 달라지는 것.
그건 바로.
“팀 변경 미션!”
기존의 멤버들이 아닌, 다른 참가자들과 팀을 이루어서 도전해야 하는 미션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