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67화 (67/110)

67화. 본선 3라운드 팀 추첨

“……다들 괜찮으십니까.”

RRR 밴드에 의해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했던 열반 밴드.

그 밴드의 리더인 능선 스님이 목탁을 움켜쥐었다.

“……예, 다행히도.”

“참으로 사악한 기운이었습니다.”

열반 밴드는 유예찬에게서 흘러나온 탁기를 막아 내기 위해 좌선을 하고 기운을 끌어올렸었다.

꾸준한 수행을 했던 덕분에 열반 밴드의 세 스님 모두 어느 정도의 마력 운용이 가능했다.

그 덕분에 세 사람은 탁기에 오염되는 걸 막을 수 있었지만.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유예찬의 탁기는 긴 시간 수행을 쌓은 이들에게도 버거울 정도의 기운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능선이 고개를 들어 대기실 바깥을 바라봤다.

“이걸 정리하는 데 누가 활약했는지는 명백하군요.”

그러자 옆에서 식은땀을 옷소매로 닦은 열반 밴드의 드러머, 탄불 스님이 말했다.

“스님은 이 사건을 누가 해결했는지, 예상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백마법을 기합만으로 튕겨 내던 사람.

RRR 밴드의 보컬리스트, 단탈리온 데스맨.

“그 고고하고 떳떳한 삶을 살아가는 사내라면…….”

이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천계에서도 내려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그 정도 예상도 가능했다.

탑엔젤스의 여성 같은, 그런 이가 도와주었을 것이다.

“열반 밴드! 패자부활전 준비해 주세요!”

제작진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열반 밴드의 스님들이 모두 악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준비들 되셨습니까.”

능선의 말에 다른 두 스님이 모두 고개를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마지막 기회.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의 어지러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다소 미약할지라도.

“우리는 그걸 해내야만 하는 수행자가 아니겠습니까.”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열반 밴드 멤버들이었다.

* * *

본선 2라운드가 끝나자마자 합격자들은 모두 본선 3라운드를 대비하기 위한 미션을 부여받고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정말 고생들 하셨고, 축하드립니다!”

기보성PD가 참가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 팔을 크게 벌리며 환영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전문 MC분이 오셔서 진행을 해 주실 겁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까지는 MC 없이 잘 진행하다가 갑자기?

“아무래도 미션이 생기면서부터는 MC의 진행이 없고서는 어렵거든요 하하하!”

기보성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사실 속내는 그런 게 아니었다.

-라이징 밴드가 성공할지 말지도 모르는데 거기까지 예산을 쓸 수가 있겠어?

그런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숱하게 들어왔기에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의 기보성이라면 당연히 이런 눈치 따위 보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JB방송의 국장, 신유철도 기보성에게 신신당부했던 게 있었다.

-초반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나대지 마! 성공 싹수만 보이면 내가 지원 팍팍 해 줄 거니까!

그래서 딱 2화까지 방송이 나간 지금, MC를 투입할 여력이 생긴 것이었다.

‘이런 걸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말하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기보성을 향해 단탈리온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군. 자네도 고생이 많았겠구나.”

“……네?”

갑작스런 단탈리온의 말에 기보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없는 자들의 고통이겠지. 다 이해하노라.”

설마 지금 이 사람.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이건 비밀리에 진행되는 부분이거늘……!

“아, 아하하, 그쵸 그쵸. 라이징 밴드가 스텝진이 많지 않다 보니. 하하하!”

기보성은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연이겠지 우연!’

그리고 곧장 MC를 소개했다.

“그럼 소개하겠습니다! 본선 3라운드부터 합류해 주실 우리 라이징 밴드의 메인 MC! 한석주 아나운서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석주입니다!”

라이징 밴드 펫말 뒤에 숨어 있던 MC, 한석주가 앞으로 달려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라이징 밴드! 이렇게 핫한 프로그램을 같이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짝짝짝짝-

와아-!

“텐션이 엄청 높으시네.”

“나 누군지 알아. 한석주 아나운서. A급은 아니고 B급 정도일걸?”

참가자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와 함께 함성이, 그리고 그 군데군데에는 수군대는 소리까지 섞여 들려왔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한석주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마이크를 들었다.

“자, 수군대실 여우가 없으실 텐데요! 이제부터는 미션이 진행됩니다!”

한석주의 말에 참가자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 미션은 바로 바로 바로…… 팀 변경 프로젝트!”

한석주의 뒤에서 스텝진들이 팀 구인 현황표를 들고 나타났다.

칠판처럼 세워진 현황표에 손을 척! 올리며 한석주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다들 잘 들으세요! 이번 미션, 만만치 않을 겁니다!”

어쩐지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는 웃음을 지은 한석주가 참가자들 하나하나를 쳐다봤다.

“다들 지금까지 같은 밴드 멤버들이랑 하느라 지겨우셨죠?”

하하하하!

참가자들 사이에서 농담 섞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우리끼리 많이 하긴 했지.”

“어휴 지겨워. 가족보다 더 오래 봐요!”

그런 참가자들의 반응을 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한석주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준비한 게 바로! 팀 변경 프로젝트입니다!”

한석주의 앞으로 커다란 네모 박스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참가자들의 이름이 적힌 공들이 들어 있었다.

“이 공에는 참가자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모든 팀은 4명까지로 이루어집니다. 이번 라이징 밴드 참가자들 수를 모두 합하면 4의 배수인 건 알고 계시죠?”

와하하하!

참가자들이 그런 건 줄은 몰랐다며 웃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었다며 괜히 잘난 체를 하기도 했다.

“A팀부터 하나씩 만들게 될 텐데, 이거 랜덤이니까 잘못하면 보컬만 4명, 또는 베이스만 4명!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에엥!?”

“에이 그럼 드럼 4명이면 어떻게 해요!”

한석주의 설명을 들은 참가자들이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한석주는 검지를 들고는 현황판을 가리켰다.

“다 상관없습니다! 드럼이 4명이어도! 기타가 4명이어도! 그 안에서 창의적인 발상으로 편곡을 하시거나 새로운 노래를 만드시면 됩니다!”

“와……. 그 상황에서 자작곡을 하라고?”

“그럼 아예 연주만 하는 것도 괜찮다는 거 아냐?”

드디어 모두가 미션에 초집중을 하고 있군!

한석주가 속으로 미소를 지은 채 마이크를 잡은 손을 위로 올렸다.

“그럼 시간 낭비할 거 없이 일단 팀부터 만들어 볼까요? A팀부터 뽑겠습니다!”

한석주가 망설임 없이 마이크를 쥐지 않은 왼손을 네모 상자 안으로 집어 넣었다. 마구 손을 돌리던 그가 공을 하나 딱 잡았다.

“네! A팀의 첫 번째 멤버는 탑엔젤스의 보컬 도미니온 씨!”

“네, 네!”

이름이 호명된 도미니온이 앞으로 쭈뼛쭈뼛 걸어 나갔다.

그렇게 걸어 나가는 모습조차 우아하게 느껴져서 참가자들로 하여금 눈길을 사로잡게 만들었다.

“오오…… 역시 팬클럽이 벌써부터 형성된 밴드의 리더답군요! 아우라가 벌써…… 와우.”

“아,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이어서! A팀의 두 번째 멤버!”

참가자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보컬들은 제발 보컬끼리만 팀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있었다.

“아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멤버가 들어옵니다! 메탈 밴드, RRR 밴드의 기타리스트 앤디!”

“……제가요?”

어리둥절하고 있는 앤디의 등을 제인이 퍽 내리쳤다.

“아야! 아파!”

“빨리 안 나가고 뭐 해!”

앤디가 앞으로 나가는 순간, 단탈리온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제인이여.”

“응?”

“준비하거라.”

“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공을 들고 있던 한석주의 입술이 미묘하게 올라왔다.

“이야, 역시 랜덤 추첨이란 게 참 재밌습니다! A팀의 보컬, 기타에 이어서 다음은! RRR 밴드의 베이시스트! 제인!”

“……어떻게 알았어?”

“잘하고 오거라.”

단탈리온은 제인의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그저 그녀를 묵묵히 응원했다.

“앤디를 잘 챙기거라.”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탈락은 용납하지 않겠다.”

단탈리온이 A팀의 자리에 올라가 있는 앤디와 제인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밴드로 세계에 뻗어 나가야 한다.”

“……걱정 마. 보란 듯이 4라운드 진출할 테니까.”

“그거면 되었다.”

그래.

지금은 그거면 된다.

그게 지금까지 쌓아 올린 RRR 밴드의 명성에서부터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 * *

이미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서 공에 적힌 이름들을 미리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제인에게도 나갈 순서를 미리 알려 줄 수 있었던 것.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공의 위치를 바꾼다거나 하는 술수 또한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런 치졸한 짓을 행하는 마왕이 어디 있겠는가.’

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백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거나.

천계에서 이 몸을 주목한다거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몸에 깃든 마왕으로서의 자존심.

그것 하나가 그런 저열한 방법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자, 이렇게 A팀이 확정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드럼까지 딱 풀 세팅이 되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드러머 대신 기타리스트가 한 명 더 추가되었습니다!”

한석주가 재미난 걸 발견했다는 듯 실실 웃었다. 반면, 도미니온은 앤디와 제인을 보며 조금은 곤란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랬다가 단탈리온 데스맨 씨, 탈락하지는 않겠지?’

탈락하게 되면 이 사람들 음악이 더 뻗어 나가지를 못하는데…….

“내가 이걸 왜 걱정해!”

고개를 도리도리 젓던 도미니온이 앤디와 제인, 그리고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향해 방긋 웃었다.

“이번 3라운드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합니다!”

“꼭 진출해요!”

“……네, 반가워요.”

앤디와 제인이 밝게 답한 데 비해 다른 기타리스트의 표정은 다소 어두워 보였다.

그저 평소 성격이 소극적이거나,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거라 생각하고는 다들 한석주의 다음 추첨을 기다렸다.

“그럼 이어서 B팀 추첨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B팀, C팀이 완성되었다.

새롭게 팀이 결성된 참가자들은 서로 어색해하면서도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또 한 편으로는 즐기고 있었다.

“어떤 곡 좋아하세요?”

“아, 저는 재즈도 좋아요.”

“신나는 건 어때요? 아니면 진지한 거?”

“베이스 솔로 넣는 건 어때요?”

그런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을 때, 한석주가 좌중을 진정시켰다.

“자자, 아직 절반입니다 절반! 그럼 이제 딱 중간의 팀, D팀의 첫 번째 멤버는 누구일 것인가!”

두구두구두구두구

이제는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한 참가자들이 입으로 북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에 응하듯 한석주가 손을 과하게 번쩍 들어 올렸다.

“자 뽑았습니다! 이건…… 어?”

한석주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이번 D팀의 첫 번째 멤버는 다름 아닌! 능선 스님!!”

“패자부활전이 벌써 끝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참가자들을 향해 한석주가 설명을 했다.

“다들 의아해하실 텐데요, 네! 라이징 밴드의 패자부활전은 거의 곧장 진행되었고, 그때그때 합격자가 나왔습니다!”

아직 패자부활전의 결과를 알려 주지 않은 이유는 본선 3라운드에서 새로운 국면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패자부활전을 치르고 올라온 이들과 같은 팀이 되는 참가자들에게도 새로운 이벤트가 생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분들과 함께해서 3라운드 종합 점수 1등을 하게 되면! 최고급 호텔 뷔페 식사권 4장을 상품으로 드립니다!”

이것 역시 JB방송의 국장, 신유철이 제안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아도는 식사권.

이런 곳에 쓰면 참가자들도 좋고, 이미지도 좋아지고, 방송은 더 재밌어지고.

일석 삼조이지 않은가.

실제로 수많은 참가자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깝다! 우리 팀에도 와 주셨으면 했는데!”

“같이 하는 사람들은 좋겠네.”

“와 호텔 뷔페……. 나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그러나 모든 상품에는 명암이 있는 법.

한석주가 악마처럼 입꼬리를 사악 끌어올렸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함께 팀을 맺었다가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면…… 탈락보다 더 쓴 벌칙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한석주가 다시 왼손을 네모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럼 열반 밴드의 능선 스님 다음으로 어떤 분이 D팀의 멤버가 될지! 자 보겠…….”

촤락

그때 단탈리온 데스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스맨 씨? 아직 호명을 안 했…….”

“그렇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도다.”

타닥!

쿠웅!

마이크 스탠드를 삼단으로 만들어 바닥에 세운 단탈리온이 정면에 있는 능선 스님을 응시했다.

“이 몸과 저 민머리 수행자는 악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무아미타불.”

탈락의 지옥에서 겨우겨우 기어 올라온 열반 밴드.

그 열반 밴드의 리더를 향해 사정없이 눈빛을 휘갈기고 있는 단탈리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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