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혼밥은 하기 싫어 (1)
본선 3라운드 미션을 전해 받고 팀까지 모두 결성이 되어 다들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도미니온은 메타트론의 부름에 응해 원형 홀로 향하고 있었다.
“후우…….”
똑똑.
“도미니온이냐.”
“예, 메타트론 님. 주천사 도미니온,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끼이이익.
원형 홀의 문이 천천히 좌우로 열렸다.
“들어오거라.”
그리고 홀의 중앙에, 메타트론이 등을 보인 채로 서 있었다.
“밴드 활동은 할 만하더냐.”
“……메타트론 님 덕분에 할 만합니다.”
할 만하겠냐 이 망할 대천사!
천계의 지도자만 아니면 진짜 한 번 들이받았다!
“지금 그대의 표정은 내가 메타트론만 아니었으면 한바탕 들이받았다고 말하는 거 같은데?”
“네? 그럴 리가요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살짝 양심에 찔린 도미니온이 어색하게 웃었다. 메타트론은 그럴 줄 알았다며 근심이 가득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 일 때문에 사과하려고 한다.”
“……예?”
“도미니온, 자네에게만 너무 어려운 임무를 부여해 준 것 같아서 말이야.”
메타트론도 최근 인간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탁기를 발현하는 반각성자의 등장.
그리고 그걸 막은 도미니온.
도미니온의 노고가 얼마나 심했을지는 메타트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반각성자는 어떤 상태였는지 보고하거라.”
“예, 그때 반각성자는 홀리오라방돌이의 드러머, 유예찬으로…….”
도미니온은 라이징 밴드 본선 2라운드 촬영을 마치고 조사했던 유예찬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했다.
그가 한 부모 아래에서 열심히 살아왔던 성실한 청년이라는 점.
공부와 밴드 활동을 모두 열심히 해 왔기에 주변으로부터도 인망이 높았던 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열심히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살았던 점까지.
“……그런데도 반각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렇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던 청년에게 반각성이라는 시련이 주어졌단 말인가.
“메타트론 님, 아무래도 이건 쉬이 넘어갈 일이…….”
“…… 겨우 한 명이다.”
메타트론이 팔짱을 끼고는 눈을 감았다.
“아직 서울의 반각성자는 한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요! 천계에서 이번 사태를 관망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인간이 피해를 입었는걸요! 데스맨 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 커졌을 겁니다!”
만약 단탈리온 데스맨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니 그가 먼저 나서서 유예찬을 막고, 탁기를 뽑아내지 않았다면.
드러머 유예찬과 그의 동료인 채권사, 나간사의 목숨도 위험할 뻔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 사람들, 모두 죽을 뻔했단 말입니다!”
“침착하거라 도미니온.”
“그런데 메타트론 님은 어떻게 그걸 ‘겨우 한 명’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침착하라 하였다!!!!!”
메타트론의 목소리가 원형 홀을 가득 채우며 공명했다.
우우우우웅!!!!
“큭…… 아악……!”
메타트론의 신성력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도미니온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이제 진정이 좀 되었느냐.”
결국 힘으로 깔아뭉갠 거면서!
도미니온이 한껏 더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메타트론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겨우 한 명인 게 맞다 도미니온.”
“그게 어떻게 그런 식으로……!”
“앞으로 더 많아질 거다.”
그 말에 도미니온은 열을 올리려다 말고 말을 멈추었다.
“그게…… 무슨 말씀…….”
“탁기를 뿜어내는 인간들. 라이징 밴드에서만 발견된 게 아니다.”
라이징 밴드에서 유예찬이 반각성을 하는 시기와 맞물려서.
이미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반각성 사태가 나타났었다.
“다행히 그건 정리가 되었다. 그다지 강한 탁기는 아니었으니까.”
“유예찬이 더 강했단 말씀이십니까?”
도미니온의 질문에 메타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예찬은, 음악을 하는 자였기에 더더욱 그랬을 가능성이 있지.”
“음악……!”
그러고보니 유예찬은 탁기를 내뿜을 때도 드럼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럼 악기라는 매개가 있다면.
“평범한 탁기도 더 짙은 농도를 가질 수 있다는 말씀…….”
“그렇다.”
메타트론이 낮게 침음했다.
“따라서 천계에서도 이 상황을 그저 과시하지 않기로 했다.”
“메타트론 님……!”
“하지만, 정말로 ‘겨우 한 명’에 불과하다. 한 명의 사태로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말거라.”
메타트론의 속뜻을 이해한 도미니온이 고개를 숙이고는 경례를 올렸다.
“예! 주천사 도미니온, 메타 트론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됐다 됐어. 네가 그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루 이틀일 텐데요.”
“아, 됐다고. 아무튼, 이 사태 때문에 라이징 밴드를 하는 지역들 위주로 천사들을 배치할 예정이다. 그러니 그리 알거라.”
천사를 더 많이 내보내서 감시망을 넓히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야만 탁기가 진해지기 전에 숙주를 찾아내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도미니온, 라이징 밴드에 참가한 RRR 밴드의 단탈리온 데스맨을 집중 감시하거라.”
“예!”
“그 인간이 탁기를 발생시키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용사의 후계자라 예측되는 그 사람이.
탁기를 만들게 되는 원흉이 될 수 있다고?
“메타트론 님, 그건 또 무슨…….”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거야. 그 사람이 정말 그런다는 게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사람은 이번 사건에서도 저를 도와줬는데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야. 원래 용사라는 존재는…….”
메타트론이 머리가 아프다며 한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만들고 다니는 법이니까.”
* * *
라이징 밴드 본선 3라운드 미션이 밝혀진 이후.
사람들은 라이징 밴드 본방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제발 또 뭔가 있었으면.
-RRR이 3회에서 또 뭘 보여 줄지 진짜 기대된닼ㅋㅋㅋ
-예아!!! 퍽앤롤!!!!!!!
RRR의 단탈리온이 1회와 2회 방송에서 어지간한 인간들은 생각도 하지 못할 대담한 발언들과 행동들을 행한 결과.
사람들의 기대는 이제 얼마나 RRR이 웃긴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실제로 기보성PD를 비롯한 라이징 밴드의 스텝진들은 이번 2라운드 촬영본을 편집하면서도 RRR 밴드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담고자 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니 이거 왜 이래? 이 시간대 다 그래?”
“네. 딱 가스 유출 사고 있었던 그때 CCTV가 다 나갔더라고요.”
“카메라도?”
“그쵸. 저희도 다 기절하고 그러느라…… 카메라가 엎어지기도 했고…….”
RRR과 탑엔젤스가 같은 대기실을 사용하고 있던 시간의 카메라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 미치겠네. 이거로 어그로 좀 끌어 보려 했는데.”
예고편까지는 어찌어찌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 이상은 솔직히 어렵다.
그렇기에 지금 기보성을 비롯한 전 스텝진들이 대책 회의를 열고 있었다.
“다들 이야기들 해 봐. 그때 뭣들 하고 있었어?”
기보성이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
“…….”
당연히 기보성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시간에는 모든 스텝진들이 가스(탁기)에 중독되어서 쓰러져 있었다.
뭘 어쩌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도 기절해 있었으면서!’
심지어 기보성 본인도 바닥에 엎드려서 코 박고 있던 주제에!
조연출을 비롯한 스텝진들은 그저 속으로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너희들 기강이 아주 개판이야 개판. RRR 애들 반이라도 따라와라. 걔네는 방송에 나가려고 미친 짓도 그냥 막 하잖아.”
‘그러는 지는!’
속으로는 열불이 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영상으로 사용할 만한 자료가 없다는 건 스텝진들 입장에서는 크나큰 문제이기는 했다.
기보성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여신 눌러대며 말했다.
“진짜 딴 것도 없냐고!”
“……네 없습니다.”
콰앙!
“어휴 답답한 것들 진짜!”
지금 상황이라면 본방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홀리오라방돌이 밴드들의 광탈을 보여 주면서 시청자들보고 즐기라고 해야 하나?
‘그건 더 미친 소리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기보성의 옆에서 조연출이 두 눈을 의심하는 듯 뜨고는 말했다.
“저…… 피디님.”
“이걸 어떻게…… 왜!”
“아니, 방금 RRR 밴드의 드러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요.”
조연출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올렸다.
“탑엔젤스랑 비공식 합동 연주하는 영상인데 이거라도 쓰라면서…….”
“뭣……!?”
조연출의 핸드폰을 빼앗듯이 훽 낚아채 간 기보성은 영상을 확인하며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남길 생각을 했지?
* * *
기보성이 지금 상황을 믿기지 못하겠다는 듯 놀란 눈을 하고 있을 때.
달칵.
“흥. 결국 거기까지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니.”
단탈리온은 그저 고고하게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로바스여. 영상은 보냈느냐.”
“예! 단탈리온 님!”
단탈리온은 알고 있었다.
기보성이 계속해서 RRR을 소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그건, 한석주가 본선 3라운드 미션을 위해 공을 뽑고 있을 때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언제나 악마의 편집만 생각하는 인간이니, 분명 필요할 것이다.”
마침 탑엔젤스의 도미니온과 앤디, 제인이 같은 팀이 되었다.
그들이 연습하는 영상 정도는 촬영을 하기 좋을 터.
게다가 이 영상은 방송용 접견이 아니라 사전 친목 도모를 위한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 주기에 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또한 방송의 소재로 활용하기 좋겠지.”
그리고 기보성 같은 인간이 앞으로도 RRR을 계속 소비해 준다면.
“이 몸의 밴드가 성장할 날도 머지 않았느니.”
방송의 영향력이라는 게 상당하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부쩍 느끼고 있었으니까.
단탈리온도 이런 변화를 나쁘지 않게,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오로바스여, 새로운 팀원들과는 교류를 가져 보았느냐.”
“71위 마계, 11군단의 행정병! 저 오로바스는 평생을 단탈리온 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딴 필멸자 따위들과의 교류는…….”
“아니지. 그래서는 아니 되느니.”
단탈리온이 들고 있던 머그컵을 툭 올리며 오로바스를 향해 말했다.
“본선 3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하면 음악적으로 이 몸을 도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냐.”
“……!!!!!”
오로바스가 뒤통수에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저의 저급한 판단에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되었다.”
단탈리온이 손을 저었다.
“오늘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멤버들에게 연락을 취해 보거라.”
“하지만 아직 번호를…….”
“번호가 필요하더냐?”
어리석은지고.
“우리는 마계의 악마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아……!”
단탈리온이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위에서 작은 웜홀이 생기더니 참가자들의 정보가 적힌 마도서가 툭 떨어졌다.
“여기에 참가자들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오오오……!”
“그 번호로 연락하면 되는…….”
“되겠냐고 미친놈들아!!!!”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앤디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폭발했다.
“야! 묻지도 않은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면 스토커나 범죄 이런 걸로 생각하지! 너희 같으면 제대로 생각하겠냐!”
“응? 그렇게 생각한다 한들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개인 프라이버시 하나 정도 알아 가는 게 큰 문제인가요?”
“어? 음……. 그것도 그렇……. 아니 잠깐, 말려들 뻔했어. 당연히 큰일이지! 여긴 인간계잖아 인간계! 인간들 문화 잘 안다며!”
“흠……. 그것도 그렇구나.”
하긴, 갑자기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면 놀랄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여기서는 그거다.
“자만추를 벤치마킹 해야겠구나.”
“자만추?”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앤디와 제인이 수상하다는 눈빛을 하며 단탈리온에게 물었다.
“드라마를 통해 배웠다.”
“자만추가 뭔지는 알지?”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아니더냐.”
“알고 있네?”
“걱정 말거라. 자만추로 동물간의 번식을 위한 행위를 목적으로 만남을 주선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발 그 멘트는 방송에선 하지 마라.”
앤디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앤디의 물음에 단탈리온이 한쪽 입꼬리를 사악 들어 올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만추를 빙자한 인만추다.”
“인만추?”
“인위적인 만남 추구니라.”
“……벌써부터 불안하다.”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목구멍으로 때려 넣은 단탈리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오로바스여.”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
“3라운드를 넘어 4라운드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을 위해 이 몸이 직접 저주를 내려주겠다.”
“!!!!!! 감사하옵니다!!!!!”
단탈리온이 손을 들었다. 손바닥에서 검붉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오로바스는 그 안개를 감격에 겨운 듯 받아들였다.
“이것으로 그대의 감각은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해졌을 터.”
감동에 벅찬 오로바스가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니 같은 팀 멤버들이 자주 다니는 카페나 식당을 찾아가거라.”
“예……!”
“컨셉은…… 그렇지. 꽃미남도 혼밥은 하기 싫어, 가 좋겠구나.”
“존명!!!!”
오로바스가 단탈리온을 향해 한 번 더 납작 절을 올렸다.
“작전명! ‘꽃미남도 혼밥은 하기 싫어!’를 실시하겠나이다!”
“건투를 빌겠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앤디와 제인은.
“……저런 라노벨스러운 명칭은 어디서 배워 온 거야?”
“요즘 드라마에 라노벨 작가가 주인공인 거라도 있나 보지 뭐.”
“안 말려도 괜찮을까?”
“왜? 난 재밌는데.”
“에휴…….”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며 두 사람, 아니 두 악마를 불안하게, 또는 흥미롭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