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혼밥은 하기 싫어 (2)
작은 테이블을 두 개 연결해서 붙이고, 의자는 꽃무늬 장식이 있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 앞에 앉아 우아하게 찻잔을 홀짝이는 금발의 여성을 바라보며 앤디가 침을 꼴딱 삼켰다.
“안녕하세요, 도미니온 씨!”
“오늘 잘 부탁드려요.”
앤디와 제인이 다소 부담스러운 자리에 앉아 가벼운 척, 인사를 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이곳은 탑엔젤스의 합주실.
평소 탑엔젤스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만드는 공간이었다.
오늘은 분명 본선 3라운드를 준비하는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정식 촬영을 하는 거라 했는데.
이건 완전 영국식 티타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급스럽잖아?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기는 한참.
앤디는 어색한 침묵을 깨고자 먼저 입을 열었다.
“그…… 평소에 홍차로 목을 관리하시나요?”
“네?”
앤디의 질문에 도미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홍차를 들고 있는 이유는.
부하인 하급 천사들에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더니 홍차를 준비했기 때문에 마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답했다가는 천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터.
그래서 도미니온은 상대가 질문한 의도를 살짝 고민한 뒤 다급히 대답했다.
“네, 네!! 그쵸, 네. 따뜻한 음료가 목에 좋잖아요? 아하하하.”
“역시! 평소에도 이렇게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기시는군요!”
앤디의 호들갑에 제인이 옆에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얏!”
“아야는 무슨. 도미니온 언니 힘들어하시는 거 안 보여?”
“어, 언니?”
물론, 진짜 나이로 따지면 도미니온이 언니는 맞았다.
도미니온의 나이는 족히 5천 살은 넘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지금 외견으로는 거의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일 텐데?
“예쁘면 다 언니죠 뭐. 언니 너무 예뻐서 항상 같이 합주해 보고 싶었거든요.”
“가, 감사합니다. 제인 씨도 너무 예쁘신데요, 뭘.”
“에이, 저는 한참 멀었죠.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화장품을 좋은 거 쓰시나?”
“아, 이건 그냥 타고난 피부라…….”
“타고난 피부래. 너무 부럽다…….”
그렇게 여자들의 외모 이야기가 한창 꽃을 피워 가고 있을 때.
조연출이 다급하게 손을 들며 말했다.
“잠시만요! 아직 다른 한 분이 덜 오셨으니까 그분 기다렸다가 갈게요!”
지금 촬영은 A팀의 연습 시간을 담기 위한 촬영인데, 지난번 사전 연습 때부터 마지막 멤버가 항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앤디와 제인, 도미니온도 그런 점에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분은 언제 오신대요?”
“방금 작가님이랑 통화했으니까 이제 곧 오실 겁니다. 5분만 더 기다려 주세요!”
마찬가지로 스텝진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마지막 멤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네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푸석푸석하고 온몸에서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성이 기타를 매고 들어왔다.
“괜찮아요, 저희도 지금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거든요.”
도미니온이 방긋 웃으면서 기타리스트의 긴장을 풀어 주고자 했다. 그러자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툭 내려놓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도미니온을 빤히 바라봤다.
“왜……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는지…….”
“……미인이네요, 여전히.”
“네……?”
도미니온에게서 시선을 뗀 기타리스트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스텝진들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뭘 하면 되나요?”
“이제 연습을…….”
당황한 조연출이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기타리스트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당신네들이 원하는 그림이 있을 거 아니에요. 어떤 모습을 보여 주면 되는 거죠?”
“네, 네?”
어쩐지 날 선 모습인 여성을 보며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원하는 모습이 있으면 그렇게 연기를 해 줄게요. 열심히 연주하는 모습? 아니면 억지로라도 갈등을 일으켜야 하나? 아님 친밀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까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다고.
도미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오늘은 저희 합주실에서 하는데, 다음에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기타를 꺼내 들고는 이리저리 매만지던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이 레드 홀스를 달릴 수만 있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레, 레드 홀스……?”
“이상한 사람…….”
도미니온과 제인이 입을 쩍 벌리며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반면, 앤디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감탄했다.
“역시!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정유나 씨!”
“……저를 아세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듯 기타를 안고 있는 정유나를 향해 앤디가 호기심 가득한 눈을 했다.
“당연하죠! 국내 유일 여성 메탈 그룹 스틸러블리의 기타리스트!”
앤디의 눈이 한층 더 초롱초롱해졌다.
“기타 속주의 달인이자 화끈한 화장으로 메탈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인기를 끄는 요소이지만, 무엇보다도 기타를 향한 사랑이 진심이라는 이야기가 있죠! 기타리스트라면 모를 수가 없는, 메탈계의 아이돌!”
“……아이돌?”
정유나의 이마에 살짝 실핏줄이 새겨지는 듯했다. 앤디가 말실수를 했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팬들도 그렇게 부르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잘 부탁해요 저도.”
“네!”
어쩐지 동경하는 사람을 만난 듯한 앤디의 모습에 도미니온은 그저 눈만 끔뻑거렸다.
“앤디 씨가 원래 저런 분이셨나요?”
“원래 속주 달인들을 좋아하기는 했으니까요. 아마 저분도 그런 분 중 한 명이겠네요.”
도미니온과 제인이 각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스텝진들도 지금 광경에 꽤나 재밌는 영상이 기대된다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준비하시죠! 여자 셋, 남자 하나인 A팀!”
“……그게 이번에 바라는 그림인가 보네요.”
정유나가 품에 꼬옥 안고 있는 기타, 레드 홀스를 손에 들었다.
“……여자 기타리스트와 남자 기타리스트의 자존심 대결. 이런 거도 원하시는 거죠?”
“네? 아, 아하하, 음…… 네. 사실 그렇습니다만…….”
질문을 받은 조연출이 살짝 난감하다는 얼굴을 했다.
사실 앤디가 정유나를 존경하는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한 시점에서부터 조연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건 예고편으로 사용하기에 좋은 그림이 나오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건, 존경하는 롤 모델을 닮아가는 남자와 롤 모델인 여자. 그 둘의 대결 구도로 잡아 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A팀 멤버들 모르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정유나 측에서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럼 더 말 꺼내기 힘들어지는데.’
들키지 않게 살짝 미간을 찌푸린 조연출이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저희가 그걸 억지로 해 달라!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런 게 나오면 재밌지 않을까? 싶은 거니까 부담 없이! 네! 부담 없이 해 주세요!”
아마 기보성PD가 이 장면을 봤다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는
-당장 그렇게 해! 그래야 하는 운명이야!
라며 참가자들에게 압박을 가했겠지만.
‘차마 그렇게는 못 하겠다!’
조연출은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서 말했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해 주시면 됩니다!”
“자연스럽게 되는 건가요 그게?”
도미니온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벌써 정유나는 그런 그림을 그려 내기 위해 곧장 세팅을 하고 있었다.
쟈앙쟈쟝
피크를 한 손에 쥔 정유나가 기타를 똑바로 세우고 현을 튕겼다.
쟈쟈쟝! 따다당!
“이게…… 유나님의 속주……!”
키이이잉-!
다단쟈쟌다단쟈쟌쟈쟈쟈당다당
단순히 세팅을 하기 위한 시간이었지만, 합주실에 모여있는 이들 모두가 정유나의 연주에 넋을 잃고 있었다.
스틸러블리는 지금까지 멋진 연주와 노래를 보여 주었던 덕분도 있지만, 사실 정유나의 속주가 뛰어났기 때문에 3라운드까지 진출할 수 있기도 했다.
그런 정유나의 연주였기에 모두가 그녀의 연주에 집중하고, 그저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고만 있었다.
“크으……! 멋지다!”
그러나 딱 한 명.
앤디만은 감탄만 하고 있지 않았다.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앤디도 자신의 기타를 들고는 피크로 현을 가볍게 튕기기 시작했다.
쟈아앙, 쟈쟈쟈쟝 쟈쟈쟈쟝
다다단쟈쟝 다다단쟈쟝
“……!!!”
항상 기운이 하나도 없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다니고 있어서 같이 있는 이들로 하여금 힘 빠지게 한다는 평가를 듣는 정유나였지만.
방금 앤디가 자신의 연주로 들어오면서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
정유나는 자신의 리드기타 뒤로 깔려오는 앤디의 연주에 집중했다.
어딘가 신이 나 보이는 앤디의 얼굴과 양손을 바라봤다.
쟈쟈쟝
다다쟝
지이이잉-!
두 기타리스트의 합주가 끝났다. 도미니온과 제인이 먼저 박수를 쳤고, 이어서 스텝진들도 박수를 쳤다.
“역시 정유나 씨……!”
“스틸러블리…… 대단합니다.”
“이 정도면 유나 씨가 1승 챙긴 거 아닌가?”
스텝진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역시 리드기타는 유나 씨가 하겠네.”
조연출도 같은 의견이었다.
확실히 정유나의 속주 실력은 리드 기타를 하기에 충분했고, 보는 이들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실력이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정유나의 표정은 다소 애매해 보였다.
‘……아니야.’
정유나는 연주를 마치고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앤디를 바라봤다. 게슴츠레한 눈동자가 오늘 처음으로 다소 크게 떠진 상태였다.
‘파워 코드…….’
이렇게 찰지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나?
최근 몇 년간 이런 실력자는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리드 기타, 리듬 기타만으로 기타리스트의 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각 위치에서 얼마나 노련하게 음을 만들어주는가.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정유나는 한층 더 놀랐다.
같은 메탈 밴드이기에 RRR 밴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정보도 찾아봤었다.
이전에 봤을 때는 속주는 물론이고, 리프도 귀에 각인될 수 있는 음을 만들어 오는 인물이라 당연히 리드 기타만 할 거라 생각했는데.
‘리듬 기타도 잘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앤디라는 기타리스트의 실력이 예상외로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재밌네요.”
“가, 감사합니다! 당분간 많이 가르쳐 주세요!”
‘사실 배울 건 나도 꽤 많을 거 같은데요.’
그러나 그 말은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그저, 이번 A팀, 생각보다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는 정유나였다.
* * *
신촌 거리의 한 고깃집.
고깃집 안에서 한 남성이 방금 막 주문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치익-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어딘가 절제된 동작을 행하고 있는 남성.
키는 180이 훌쩍 넘어 보이고, 군데군데 보이는 근육질 몸매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뭐지?”
“왜 저런 미남이 혼자…….”
“차였나?”
“에이, 저런 존잘이 차이겠냐? 너 같은 애나 차이고 궁상떨라고 오지.”
“이게 진짜.”
“그냥 배고파서 오신 거 아냐?”
사람들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혼자 고기를 굽고 있는 남자를 몰래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오로바스가 쏟아지는 군중들의 시선을 억지로 참으며 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으적으적
‘이 과정 모두, 제가 라이징 밴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인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조금 부끄럽기는 했다.
‘좀 쪽팔리기는 하지만……! 단탈리온 님을 위해서……!!!’
그래도, 이 정도 부끄러움은 이겨 낼 수 있어야 라이징 밴드 3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는 법!
오로바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신을 찍는 걸 의식하면서도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어? 저기 저 사람들, 라이징 밴드 나오는 사람들 아냐?”
“어? 진짜!”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로 꽂혔다.
‘왔군…….’
오로바스가 목표물을 포착했다.
상대를 관찰하기 위해 위치를 살짝 옮기려는 순간.
“어라? 진태 씨 아니에요?”
먼저 저쪽에서 알아봤는가.
오로바스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은영 씨.”
오로바스와 은영이라 불린 여성이 인사를 하는 걸 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헐. 방금 진태 씨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왜?”
“저 사람도 라이징 밴드에 나오잖아!”
“진짜? 어딘데?”
“RRR 밴드! 그 미친 컨셉의 메탈 밴드!”
“뭐야, 우리 연예인들 보고 있는 거였어 그럼?”
사람들이 그렇게 웅성거리며 식당 안쪽을 관찰했다.
“여기서 뵙네요. 자주 오시는 곳인가요?”
스틸러블리의 드러머, 김은영.
평소 파워풀한 드럼 연주를 보여 주는 그녀가 자주 찾는 고깃집이 바로 이곳이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옵니다. 운이 좋았네요.”
“그러게요. 그럼 같이 드시겠어요?”
“좋습니다. 저도 혼밥은 하기 싫거든요 하하하하!”
김은영과 오로바스가 고깃집에서 가벼운 미팅을 행하는 순간이었다.
* * *
“실행 중이더냐.”
[네! 지금 이미 다 찍고 있죠~]
“오늘 임무에는 그대의 역할이 중요하느니. 영상을 확보하면 곧장 이야기하거라.”
RRR 밴드의 공식 팬 1호, 박은환과 통화를 나누던 단탈리온이 악마처럼 입꼬리를 잔뜩 올렸다.
“그 영상이 있어야 이 몸도 움직일 수 있다.”
[네! 맡겨 주세요!]
박은환이 기운차게 외치며 전화를 끊었다.
오로바스가 자신의 팀원들과 만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
박은환이 영상 촬영으로 오로바스를 지원하러 간 사이.
“이 몸도 슬슬 준비를 해 두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