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70화 (70/110)

70화. 화합

준비를 마친 단탈리온은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우선 기보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보성PD여.”

[아 네, 데스맨 씨?]

“열반 밴드 멤버들의 전화번호를 내놓거라.”

[어…… 네?]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프라이버시 침해니 뭐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단탈리온 나름대로 생각을 해 둔 게 있었다.

바로, 담당자에게 번호를 확인하는 것.

“내놓지 않으면 구워삶겠다.”

단탈리온의 단호한 말에 기보성이 잠시 침음했다. 단순한 농담조로 던진 말이라 여길 수도 있는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단탈리온이 말을 하니 제법 살벌한 협박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진짜 피를 튀기려고 했던 인물이지 않은가.

그래서 다소 겁을 먹었지만, 기보성은 국내 최악의 PD, 최고 강심장을 지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굳세게 마음을 먹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아무리 그래도 참가자들 개인 번호를 알려 주기는 좀…….]

‘이대로 물러나면 기보성이 아니다!’

그래서 기보성은 한 가지를 더 던졌다. 무언가 하나라도 잡아내겠다는 듯한 목소리를 하면서.

[대신! 저희가 만남을 만들어 드릴 수는 있죠! 촬영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고편도 만들고, 본방에도 편집해서 넣고…….]

“되었다. 참가자들의 개인 정보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다니. 자네는 담당자 실격이로다.”

[시, 실격!?]

“용건은 끝났다.”

기보성과 통화를 마친 단탈리온은 눈을 감고 또 다른 방책은 없을지 고민했다.

“그렇군. 일단은.”

라이징 밴드를 하는 과정에서 단탈리온이 약속해 둔 게 하나 있었다.

지금 막 그 약속을 떠올린 단탈리온이 몸을 일으켰다.

“알바를 가야겠구나.”

* * *

스타트 PC방에 들어온 단탈리온은 이전과는 다른 반응에 깜짝 놀랐다.

“와! 데스맨 씨 맞죠!”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니까? 라이징 밴드 잘 보고 있어요!”

“화장 지우니까 진짜 잘 생기셨다!”

“저희 이벤트 응모했으니까 추첨 꼭 되게 해 주세요!”

PC방 손님들이 단탈리온을 알아보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이연주가 한껏 어깨를 펴며 말했다.

“인기 많아질 거니까 각오하라고.”

“아주 옳은 반응이로다.”

단탈리온이 미소를 지으며 PC방 내부에 가득 붙어 있는 RRR 밴드의 포스터와 라이징 밴드의 장면을 출력하여 걸어 둔 사진들을 바라봤다.

“역시 이 몸을 메인으로 걸어 두기를 잘하였구나.”

“그치 그치. 앤디랑 제인도 인기가 많지만, 데스맨이 우리 PC방 마스코트 같은 존재니까!”

이연주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단탈리온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닥터솔트로구나.”

“응 이거 좋아하잖아. 마셔, 마셔.”

“잘 마시겠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음료를 따지는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연주가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왜?”

“음, 아니다.”

“뭔데? 누나가 도와줄 거 있으면 도와줄게. 뭐든 말만 해.”

“흠……. 이 몸이 이번에 열반 밴드 멤버 중 한 명과 함께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열반 밴드……?”

아직 라이징 밴드 3회가 방송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연주는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단탈리온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하……. 그런데 이거, 스포 아니야? 이렇게 알려 줘도 되는 거야?”

“방금 뭐든 말만 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건 그렇네. 하하하!”

이연주가 단탈리온의 등을 한 번 퍽퍽 때렸다.

“그래서, 그 스님의 폰 번호를 알고 싶은데 그게 스토킹처럼 보일 수 있으니 안 된다고?”

“그러하다.”

참으로 난감하다는 얼굴을 하며 단탈리온이 눈을 감았다.

“본선 3라운드 통과를 위해서는 팀원들과의 화합이 중요하거늘.”

게다가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이가 섞여 있지 않은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실수로 인해 노래, 연주가 망가지면.

“바로 광탈이지 뭐. 무슨 그런 이상한 패널티를 먹인데?”

“필멸자들의 생각은 참으로 졸렬하다는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푸훕! 그치 그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번호는 몰라도 그 사람 스님이잖아?”

이연주가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열심히 검색을 했다.

“찾았다.”

“음?”

이연주가 단탈리온에게 모니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전화번호는 모르지만, 스님이라며. 그럼 그분이 일하는, 아니 수행하는? 아무튼, 계시는 절이 있을 거 아냐.”

“사찰을 말하는 것인가.”

“그치.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연주는 자신이 검색한 내용을 가리키며 히죽 웃었다.

“찾았지롱.”

“호오.”

정말로.

인터넷에는 벌써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라이징 밴드 능선 스님, 어느 절에 계세요?

-저도 거기 가 보려고요. 아시는 분 공유 좀!

-(사진 첨부) 제가 어제 다녀왔어요. 가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스님들 다들 엄청 착하고 멋있으세요!

사진을 보니 정말 열반 밴드 멤버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이연주 누나여.”

“그치 그치. 더 칭송해도 좋아.”

“훌륭하도다. 그럼 여기를 찾아가면 되겠구나.”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들어 지도 어플을 열었다.

“장소는 이곳이로구나.”

서울 북부 너머에 위치한 절.

“길선사(吉宣寺)인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에도 충분하다.

“그런데 혼자 찾아가려고?”

“그러하다.”

단탈리온이 지도 어플을 캡쳐하며 말했다.

“수행자들의 면면을 파악하러 가는 것 역시 마왕에게 필요한 업무니라.”

“아하……. 응.”

이연주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단탈리온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나저나 무턱대고 찾아가서 어떻게 하려고?”

“친목을 도모할 것이다.”

“친목?”

어떻게 친목을 도모할 생각인지를 묻는 이연주에게 단탈리온이 영상 하나를 보여 주었다.

“오, 뭐야. 진태 씨잖아?”

영상에는 오로바스, 박진태와 김은영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웃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너도 가서 같이 밥 먹으려고?”

“바로 그거다.”

고기를 먹으면서 친목을 다지는 모습.

같이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들은 상대를 향한 경계심을 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밴드 연주에 있어서 적절한 화합을 이끌어 내기에 좋을 것이다.

특히나 이번 3라운드에서는 단탈리온도 조심해야 하는 게 있었다.

‘이들에게 흑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다.’

백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신성력을 갖춘 이에게 흑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그 반동이 너무나 크게 발생한다.

상대를 아예 꿇려 버리기 위한 거라면 모르겠지만.

3라운드 승리를 위해서는 이들이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온전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3라운드부터 이상한 미션이 생기지 않았던가.

4라운드에서도 비슷한 미션이 있다면, 이들의 컨디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방식을 취해서는 아니 된다.

“가서 친목 다짐부터 할 생각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밴드 멤버들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고기 먹으러 가자고 할 건 아니지?”

“…….”

“……아니지?”

“……훗.”

“허어…….”

탄식하는 이연주를 뒤로 하고.

단탈리온은 그저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고는 묵묵히 빈 자리를 청소하러 떠날 뿐이었다.

* * *

탁, 탁, 탁, 탁

공허한 산언저리에서 무심한 목탁 소리만이 들려온다.

소리가 오가는 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목탁 소리에 이끌려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

도심지에 위치한 사찰, 길선사.

“나무아미타불…….”

길선사의 스님들은 평소 성품이 온화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망도 많았다.

때문에 서울에 살고 있는 불교인 중 많은 이들이 길선사를 다니고 있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라이징 밴드에 참여해 불경을 널리 알리기 위한 스님들의 활약이 보여졌다.

“스님들! 패자부활전 통과 축하드려요!”

본방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라이징 밴드 너튜브를 통해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하면서 패자부활전 영상이 올라왔었다.

신도들은 물론이고 라이징 밴드를 시청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자부활전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능선 스님을 비롯한 열반 밴드 인원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허허, 어쩌다 보니 그런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열반 밴드의 리더, 능선이 합장을 하며 사람들에게 화답했다.

그렇게 오늘도 길선사는 제법 평화로운, 정말 도심지의 사찰이라는 말이 딱 맞는, 다소 번화한 것 같지만, 또한 사찰이기에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이 사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능선 있는가.”

마치 친구를 부르는 것 같은 말에 길선사를 방문한 이들이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능선 스님의 지인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은색 머리카락에 끝부분은 살짝 붉은 브릿지를 넣고, 손가락에는 온갖 해골 반지를 덕지덕지 끼고 있는 데다가 손톱은 마치 핏물이 굳은 듯한 검붉은 색으로 물들인 사내였다.

“어, 실례지만 어떻게 오신…….”

“라이징 밴드의 친구가 왔다 전하거라.”

단탈리온이 자신을 안내하려는 사내에게 말했다.

“네? 라이징 밴드요?”

“그러하다. 그대들은 아직 모를 터이니 전하기만 하면 되느니.”

이연주와 마찬가지로, 아직 3회 방송이 나가기 전이었다. 심지어 예고편에서도 그냥 ‘특별한 미션이 주어진다!’라고만 해서 자세한 사항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대중들은 밴드 멤버들이 다른 이들과 팀을 이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직 그걸 아는 이는 라이징 밴드의 참가자인 능선뿐이다.”

“아, 네…….”

별 미친놈이 다 있네, 이거?

단탈리온의 앞에 서 있는 스님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거, 그 사람 아냐? 그 메탈 밴드.”

“맞네 맞네. 단탈리온 데스맨이던가?”

“그 피 터지는 연출하던 밴드?”

“정신 나간 연출로 유명하던데, 여기서도 뭔가 하려고 그러나?”

단탈리온도 이제 라이징 밴드로 제법 알려져 있었기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물론, 얼굴은 조금 다르기는 했다.

“근데 화장은 안 했네?”

“공연할 때 아니고서야 그런 화장을 하고 다니겠냐?”

“맞아, 잘못하다가 밤에 누구 놀래키면 경찰에 잡혀갈걸?”

지금 단탈리온은 스킨, 로션만 바른 수수한 얼굴이었으니까. 대신, 악세사리와 손톱, 그리고 헤어스타일만으로도 그를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화장 지우니까 완전 미남이네.”

“아주 옳은 생각이로다.”

사람들의 의견을 듣던 단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그대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도다.”

“어떤…….”

“악마와 스님의 만남이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러나 단탈리온의 질문은 곧 나타난 능선에 의해 사람들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아니, 단탈리온 데스맨 씨 아니십니까.”

“그러하다. 잘 지냈느냐.”

마치 절친한 이를 만나러 온 것 같은 두 사람의 친화력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능선은 그들의 반응은 뒤로 하고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아미타불…… 어서 오십시오. 기별이라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그대의 번호를 모르느니. 오늘 알려 주도록 하거라.”

“예? 허허, 알겠습니다. 안으로 드실까요?”

능선이 단탈리온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단탈리온은 고개를 저으며 검지를 들었다.

“아니, 지금부터 밖으로 나간다.”

“……네?”

“우리는 이제 한 팀.”

그 말에 사람들이 또 한 번 놀랐다.

“한 팀이라고 했어, 지금?”

“그럼 스님이랑 팀 먹고 하는 미션 같은 게 있나?”

단탈리온은 사람들을 한 번 슥 바라보고는 다시 말했다.

“우리끼리도 친목을 다질 시간이 필요하다.”

“아하……. 그런 거라면, 제가 잘 아는 찻집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틀렸다.”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에는 고깃집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는 박진태(오로바스)와 김은영이 있었다.

“이분들은 진태 씨와 은영 씨 아니십니까.”

“이들도 이렇게 친목을 다지고 있도다.”

“아하, 그럼 우리도 식사를…… 마침 길선사가 절밥으로도 나름 유명합니다. 이쪽으로…….”

“쯧쯧.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도다.”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다시금 꺼내 미리 찾아 둔 가게의 지도를 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겠다.”

<천 씨네 고깃집>

“고, 고기요!?”

“반문은 듣지 않겠다.”

단탈리온이 몸을 훽 돌렸다.

“따라오거라.”

“어, 예, 허어? 아니 잠깐…….”

“오지 않는다면.”

열반 밴드가 지금 함게 하지 않는다면.

“라이징 밴드는 여기서 끝이다.”

“!!!!!”

능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옳은 판단이로다.”

그렇게 단탈리온과 능선이 ‘천 씨네 고깃집’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방금 고깃집이라고 하지 않았어……?”

“악마 같은 놈이었네, 진짜.”

“스님한테 고기를 권하면서 프로그램 하차하라고 협박까지 한다.”

“RRR은 미쳤어……!”

인터넷에는 스님에게 고기 권하는 악마 밴드라는 짤방이 돌아다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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