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이해하노라
길선사에 방문한 나는 뒤를 따라오는 능선을 보면서 생각했다.
‘시틀라여, 오로바스쪽은 어떠한가.’
[오로바스도 오늘은 다른 멤버를 만나러 가는 것 같습니다. 추가 보고 나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본선 3라운드.
무작위 팀 편성이라는 미션은 라이징 밴드 우승을 향하는 길에 있어서 크나큰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어찌 되었든, 본선 3라운드를 넘어서지 못하면 라이징 밴드에서 우승할 수 없게 되는 법.
또, 잘못해서 RRR 밴드 멤버 중 한 명이라도 탈락하면, 새로운 팀으로 남은 라운드에 도전해야 한다.
‘서로를 잘 모른 채로 합주하다가 전원 탈락이라도 하는 순간에는…….’
71위 마계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어떻게 끌어올린 RRR 밴드의 명성인데.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본선 3라운드 미션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나 혼자서만 본선 3라운드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번 본선 3라운드를 위해, 각 팀에서 각개전투를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이번 3라운드에서 심사위원들이 보고자 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밴드를 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다른 이들과 화합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일 터.
“화합인가.”
화합이라면, 71위 마계의 모든 마족이 이 몸을 우러러 떠받들 수 있도록 만들었던, 바로 나에게 가장 유리한 역량이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마법은 어렵겠군.’
바로, 다른 팀원들에게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에게는 흑마법의 저주를 내려 주기 어렵다.’
특히나 A팀은 더더욱 어렵다.
백마법,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도미니온이 있는 팀이지 않은가.
‘정말 그 녀석이 중급 천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급 천사, 주천사 도미니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 이가 있는데 대놓고 흑마법을 넘실거리며 사용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쪽에서 백마법을 쓰면 다행이겠군.’
오히려 그런 일을 기대하면서 나는 뒤를 따라오는 능선을 향해 물었다.
“고기는 잘 먹는가.”
“…… 진심으로 물어보시는 건지요.”
능선은 이런 질문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종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길선사의 수행자들은 고기를 멀리합니다. 살생은 저희 종파의 뜻과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한가. 안타깝군.”
여태껏 고기를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다니.
그런 불쌍한 인생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대가 속한 종파는 참으로 어리석군.”
“네?”
“악마 중에서도 채식주의자가 있었지.”
“……악마?”
“허나 그들 역시 고기 맛을 본 이후로는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도다.”
악마 중에서도 겁이 많은 녀석들이 있다.
그런 녀석들에게 고기를 나누어 주었을 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쳐다도 못 보던 녀석들이 있었지.
그러나 익힌 고기 맛을 본 이후로는, 항상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육식 매니아로 변화했다.
“그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을 터.”
게다가 이 수행자에게 제대로 된 고기를 주는 사람이 바로 이 몸이라니.
“그대는 이 몸에게 큰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 몸을 받들 거라.”
촤악!
양팔을 좌우로 펼침과 동시에.
내 앞에 있는 문이 벌컥 열렸다.
“어서 옵쇼!!!! 오? 데스맨 아니냐!!!”
“오래간만이다. 천일섬 사장이여.”
천일섬이 들고 있던 메뉴판을 품에 꼬옥 안아 들었다.
“오늘은 스님이랑 같이 왔어? 어라? 열반 밴드 보컬 스님 아니십니까!”
“허허, 저를 알아봐 주시다뇨.”
능선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천일섬도 라이징 밴드를 딸 때문에 챙겨 보는데 아주 재미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훗. 역시나.’
천일섬이라면 라이징 밴드의 출연진을 알아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적중했고.
“스페셜 모둠으로 하나 내어 주게.”
“푸하하! 데스맨 그 말투는 여전하구만! 알았다! D룸에 스페셜 모둠 하나!!”
“아니, 저는 정말 고기를 먹지 않…….”
“알고 있느니라.”
나는 말을 이어가려는 능선을 지긋이 응시했다.
“알면서 그러는 거다.”
“……예?”
“그러니 이 몸의 말을 따르거라.”
저 녀석, 아직 먹어 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다.
고기 맛을 한 번 알게 되면, 종파가 어쩌고 하던 것도 사라지겠지.
그렇지 않은가.
고기에 항상 굶주려 있는 악마 중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선언하는 녀석들이 있지만, 막상 고기 먹으면 그렇지 않다니까?
“경험해 보지 못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는 법.”
그러니 지금은 능선에게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려 줄 것이다.
내가 처음 인간계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감탄했던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게나. 능선이여.”
“허어……. 나무아미타불…….”
* * *
라이징 밴드를 나가면서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취미로만 해 왔던 락 밴드 활동.
그걸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다 보면 새로운 깨우침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아미타불.”
그러나 수행은 여전히 진전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절대 조급해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 바로 불가에 귀의한 몸이거늘.
어째서 나는 이리도 초조해한단 말인가.
“스님, 괜찮으십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괜한 걱정을 끼쳤군요. 가시지요.”
오늘도 그렇게, 동료 스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마주한 이 사내.
“아주 훌륭한 고기로다.”
집게를 들고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고 있는 이 사내가, 오늘 내 일정을 모조리 뒤흔들고 있다.
“데스맨 씨, 한 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감히 마왕인 이 몸, 우물, 에게 질문을, 우걱우걱, 요청하는 것이더냐.”
단탈리온이 입 안에 고기쌈을 가득 넣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다소 알아듣기 힘든 말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뜻을 알아내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으음……. 컨셉에 진심이라고 하기는 하던데, 정말 컨셉인 건지, 아니면 진짜인 건지.”
그 말에 단탈리온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예?”
“감히 이 몸이 평소에 거짓을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려 하였다는 것이냐.”
단탈리온이 집게에 힘을 까득 쥐었다. 그러자 집게가 한쪽으로 휘어졌다.
“헛,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눈앞의 고기를 보고도 섭취하려 하지 않다니. 오만한 행동은 그만두고 먹어 보거라.”
거참, 스님 중에서 고기를 먹는 분도 있지만, 나는 안 먹는다니까?
그러나 그런 말은 이 사내에게 통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어허, 먹어 보래도.”
단탈리온이 손을 들어 능선의 방향으로 까딱 움직였다. 그 손에 들린 고기쌈을 바라보던 능선이 허허, 웃었다.
“그럼 성의를 생각해서 받아만 두겠습니다.”
“받아만 둔다? 그걸로 충분하더냐.”
“예. 아무래도 고기를 먹는 건 역시 어렵습니다만.”
나는 단탈리온으로부터 고기쌈을 받아 들었다.
받아들인 고기쌈은 꽤나 묵직했다.
이거, 고기 한 점이 아니라 세 점을 넣었는데?
하지만, 역시나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쌈을 공손히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저를 위해 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히 받았습니다.”
그저 합장을 하고 앞에 앉은 사내에게 감사를 전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겠다.”
때가 되면 알아차리게 될 터.
단탈리온의 작은 혼잣말을 들으며 나 역시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방금 질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그랬지요.”
“허하노라.”
허한다고?
질문을 허락한다고 지금 그렇게 말한 건가?
“정말입니까?”
“그러하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빠르게 묻거라.”
사실 궁금한 거야 수두룩했다.
왜 그런 말투인지.
언제부터 메탈 밴드를 했는지.
그런 컨셉을 계속 유지하고 다니는 이유가 있는지.
나와 같은 팀이 되어서 힘들지는 않은지.
그런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었지만.
지금 던져야 하는 질문은 정해져 있었다.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는 분명, 내가 시연하던 힘을 가볍게 튕겨 냈었다.
사실, 수행 과정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와 묘한 능력이 생겼기에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 그 능력을 사용할 때면, 악기 연주는 물론이고 목탁 솔로나 고음을 지를 때도 실수를 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듣는 이들은 우리의 노래를 한층 더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기묘한 힘.
나는 이걸 석가의 가르침이자 욕망의 힘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석가의 가르침이자 욕망의 힘을.
“제 힘을 가볍게 튕겨 낸 당신이라면.”
이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남자는 너무나 가볍게 막아 냈고.
“저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나보다도 더한 힘으로 내 기운을 억누르게 만들었다.
“며칠 전, 가스 유출 사건도 가스와 관련된 사건이 아니었을 겁니다.”
“…….”
“모종의 다른 기운. 굉장히 사악한 기운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도.
우리들은 수행자였기에, 겨우겨우 그 사악한 기운을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분명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독처럼 작용했을 기운이었다.
그러나 그 기운은, 발생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사라졌었다.
-대체 누가……?
누구였겠는가.
“데스맨 씨가 막으신 게 아닌지요.”
바로 눈앞에서 고기를 뜯고 있는 능력자.
단탈리온 데스맨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궁금합니다. 도대체 당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힘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나는 마지막 생각은 꺼내지 않고 그저 합장한 상태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단탈리온 데스맨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이윽고 그에게서 답변이 나왔다.
“능선이여.”
단탈리온 데스맨이 집게 대신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역시 자네는 요주의 인물이로다.”
“……네?”
“모든 사항에 답해 줄 필요는 없겠지. 허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덤덤한 얼굴로 태연하게 말했다.
“탁기를 잡아낸 건 이 몸이 맞다.”
“……역시!!”
“하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말씀은…….”
“탑엔젤스의 보컬리스트, 도미니온. 그녀가 이 몸과 함께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나는 마치 뒤통수를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 * *
‘귀찮은 질문을 하는군.’
간단한 질문이라면 답변을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능선의 질문은 내 정체를 캐물으려는 질문.
지금 시점에서 그 질문에 답할 의무는 없었다.
게다가 이어지는 말들을 들어보면, 촉도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었다.
만약 내가 마왕이고,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면.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왕이 제자를 삼다니.
그런 일은 지금껏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 대신 다른 이를 추천했다.
“탑엔젤스의 보컬리스트, 도미니온. 그녀가 이 몸과 함께였다.”
도미니온이라면 더 잘 알려 줄 수 있겠지.
게다가 도미니온도 백마법을 사용하지 않던가. 백마법도 신성력, 능선의 힘도 신성력.
아주 둘이 쿵짝이 잘맞을 게 분명하다.
‘절대 귀찮아서 짬 때리는 건 아닐지니.’
암, 그렇고 말고.
절대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정말 전례가 없다니까? 마왕이 제자를 거두는 일 말이다.
“허어……. 그럼 설마 도미니온 씨도 그 힘을…….”
“자세한 건 직접 물어보도록 하거라.”
이 이상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하면 나한테 마력이 뭐니, 백마법이 뭐니 그런 이야기들이 쏟아질 거 같거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이건 귀찮은 게 맞고, 방금 건 귀찮은 게 아니었다.
“허어, 그럼 도미니온 씨께 연락을 드려 봐야겠군요. 제가 데스맨 씨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알면 되었다.”
정말이다.
귀찮은 건 이거 하나뿐이라고.
* * *
단탈리온과 능선이 어느 정도 식사를 하면서 도미니온이나 라이징 밴드에 대해 담소를 나눈 덕분인지 둘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기류가 다소 누그러졌다.
그래서 단탈리온은 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이 몸도 자네에게 물어볼 것이 있도다.”
“네. 무엇입니까.”
능선은 자신도 기운과 관련된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능선이 받은 질문은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본선 3라운드, 편곡할 노래를 정해 왔는데 말이다.”
단탈리온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대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이곳은 피투성이 낙원.]
고기를 먹으라는 내용의 노래.
RRR 밴드의 ‘삼겹살에 추모 한 잔’.
오늘 굳이 능선과 고기를 먹으려 했던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우리의 연회는 그들을 위한 축배.]
[축배를 위해 더는 울지 않으리.]
[Bite the meat. Bite the meat.]
멤버들과의 친목다짐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밴드에서 사용할 노래를 정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능선은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RRR 밴드의 노래를 감상했다.
[연회장에 가득한 삼겹살을 들어라.]
[이 고기는 우리의 친구를 위한 고기.]
[삼겹살을 씹으며 노래하자.]
[우리의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단탈리온이 양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어떠한가.”
“…….”
“고기의 아픔을 지닌 지금의 자네에게, 딱 이지 않는가.”
“……!!”
능선의 두 눈이 크게 떠지고는.
“어…… 어떻게……?”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수행자라 할지라도 한낱 필멸자.”
단탈리온은 능선의 반응에도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음악을 들었다.
“그대의 아픔을, 이 몸이 이해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