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마님, 메탈하신다-72화 (72/110)

72화. 좋아하지 않았는가

“…… 어, 어떻게?”

“…… 훗.”

단탈리온은 검붉게 빛나는 손바닥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리끄루도 리즌.’

상대의 과거를 읽을 수 있는 흑마법.

먼 과거일수록 마력 소모가 커지지만.

잔여마력량: 80,299

지금의 단탈리온이라면 충분했다.

그리고 능선의 과거를 읽은 단탈리온은.

이 노래야말로 능선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떠한가.”

단탈리온이 히죽 웃었다.

“그대도,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았는가.”

“!!!!!”

능선의 두 눈동자에 작은 물이 고여 왔다.

* * *

-아빠!

-여보, 데리러 와 줘서 고마워.

불가에 귀의하기 전.

가족이 있었다.

-오늘 고기 먹으러 갈까?

-네! 좋아요!

-어디로 갈까?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맛집이 있던데 거기 어때!

-새로 생겼는데 맛집인지 아닌지 벌써 판명이 됐어?

-모르지 뭐. 아무튼 가 보자! 차로 가면 금방이야!

-그러고 보니 차도 바꿔야 하는데.

-에이 무슨! 아직도 쌩쌩한데! 그 돈으로 맛있는 삼겹살 사 먹자고! 어때 우리 딸 생각은!

-나도 찬성!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아무 날이 아닐 때도.

능선은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자주 먹으러 다녔었다.

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 여보.

-…….

-…… 아빠.

-딸……! 괜찮…….

그게 능선이 봤던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도로를 달리다 앞 차가 급정거를 했고, 능선은 급브레이크를 밟아 멈추었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화물차에 의해 4중 추돌 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인해, 딸과 아내를 잃었다.

-아아…….

그때 고기를 먹자고만 하지 않았다면.

미리미리 차를 신차로 바꿔서 뒤 차가 달려오는 걸 빨리 알았더라면.

아니, 자차가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가자고 했었더라면.

그랬다면, 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을 회복한 뒤에도, 능선의 정신은 회복되지 않았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능선은 언제나처럼 혼이 나간 얼굴로 그저 발길 닿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도착한 곳이 바로.

-길선사……?

지금 그가 몸을 의탁한 길선사였다.

-길을 잃은 어린 양이 왔군요.

그곳에서 처음 만난 스님은 신비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었다.

같이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한편으로는 힘을 실어 주기도 하는 신비한 사람.

능선은 그 기운에 빠져들었고, 자신도 모르게 그 스님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은퇴 출가를 했고, 지금은 길선사의 유명한 스님이 되었지만.

-우리는 고기를 드셔도 괜찮습니다.

-……역시 안 되겠습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급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스님은 능선의 등을 토닥이며, 항상 위로를 해 주었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도 능선에게 가르침을 남겼다.

-인내를 하고 기다리십시오. 언젠가 당신의 뜻을 알아줄 이가 나타날 것입니다.

능선은 스님의 유언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그래서, 석가의 가르침이자 욕망의 힘을 준 목소리가, 자신의 뜻을 알아줄 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대도,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았는가.”

능선은 바로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를 향해 눈을 들었다.

“이번 본선 3라운드. 이 노래로 그대는 물론이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다.”

그래, 지금은 라이징 밴드를 준비하는 시간이었지.

그렇기에 단탈리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괜찮으시겠습니까.”

“별걸 다 걱정하는구나.”

단탈리온이 양팔을 옆으로 펼쳤다. 그러고는 주먹을 말아 쥐더니 가슴께로 엑스자로 교차시켰다.

그와 동시에.

“롹앤롤!!!!”

퍽지창을 한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며 소리쳤다.

“퍽앤롤 정신이 있으면, 그대들도 할 수 있느니라.”

롹앤롤이라 해 놓고 퍽앤롤이라 하다니.

그런 이상한 모습에, 능선도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예, 다른 멤버들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옳은 생각이로다.”

그렇게 단탈리온과 열반 밴드 팀의 편곡 노래가 정해졌다.

* * *

단탈리온이 능선과 함께 천 씨네 고깃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도미니온은 탑엔젤스의 합주실에 앉아 미간을 좁혔다.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인간은 어떠하더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움을 받았다며?

-받기는 했지만, 정말 최소한의 마력으로만 움직이던 사람이라……. 정보가 부족합니다.

메타트론은 도미니온에게 단탈리온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도미니온은 단탈리온이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마법을 부렸으며, 어떻게 탁기를 정화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게다가 단탈리온이 탁기를 정화한 과정은 도미니온이 추측하기로는 이랬다.

“탁기를 집어삼켰을 거야…….”

분명히 리허설 무대를 나가기 전까지는 구체를 이루고 있던 탁기가.

얼마 있지 않아 곧장 사라져 있었다.

이건 분명 탁기를 본인의 몸 안에서 정화한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도미니온이 자리를 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약한 마력 반응이 느껴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탈리온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

“원래 마력이 많거나……. 정말 특수한 무언가가 있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하다.

고뇌하는 도미니온은 고개를 좌우로 마구 저었다.

“일단은 3라운드 통과부터 고민하자!”

오늘은 다 같이 합주를 하는 날.

곧 약속 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앤디와 제인이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정유나도 합주실로 들어왔다.

“오늘도 신세 좀 지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도미니온 씨.”

앤디와 제인이 인사를 하자 정유나도 기타를 앞으로 매면서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역시 미인.”

“아하하, 유나 씨도 미인이세요~”

도미니온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칭찬을 던졌다. 정유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거겠지……?’

일단 합주 직전의 분위기는 형성이 되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일단 편곡을 무얼 할지가 문제인데…….”

이번 본선 3라운드의 미션은 팀 변경도 변경이지만, 실행할 곡에 대한 미션도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각 밴드가 만든 자작곡을 현재 멤버로 편곡하는 것.

예를 들면, 탑엔젤스에서 만든 노래를 남자 보컬이 부를 경우에도 편곡을 해야 하고.

스틸러블리의 노래를 선택해서 편곡했을 때, 기타가 한 대라면 지금처럼 기타가 두 대일 경우에는 적절하게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기에 A팀도 여기서 여러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A팀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드러머의 부재였으니까.

“드럼 소리가 강렬한 곡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는 앤디 의견에 반대. 오히려 드럼을 베이스가 잡아 주면서 들어가면 편곡 잘했다는 소리 들을 거 같은데요?”

“제인, 그냥 네가 돋보이려는 거 아냐?”

“뭔 소리. 난 그런 거 관심 없거든.”

앤디와 제인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본 도미니온이 당황하며 손을 휘저었다.

“싸우지들 마세요. 에이, 오늘 이렇게 좋은 날인데~”

도미니온이 옆에서 기타를 매만지고 있는 정유나에게 물었다.

“유나 씨는 원하는 편곡 방향이나 추천곡 있으세요?”

“……좋아요.”

“네?”

“저는 다 좋아요.”

정유나가 매만지던 기타를 품 안으로 꼬옥 끌어안았다.

“그저 우리 레드 홀스와 같이 무대를 뛰어다닐 수만 있다면…….”

“아……. 네에…….”

틀렸어!

지금 이 팀으로는 본선 3라운드 통과가 어려울 거야!

도미니온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앤디와 제인은 여전히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상태였고, 정유나는 기타만 만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탑엔젤스 합주실 문을 열고 여성 한 명이 들어왔다.

“오. 은환 씨 왔어요?”

“네! 오늘은 여기 촬영하려고요!”

사전에 이미 탑엔젤스에게 허락을 구한 상황이었기에 도미니온도 박은환을 반갑게 맞이했다.

반면, 정유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

“아, 스틸러블리의 정유나 씨! 만나서 영광이에요!”

“……?”

박은환이 덥석 정유나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저 스틸러블리 완전 팬이거든요! 제가 어려서부터 메탈 음악을 많이 듣고 살았는데, 거기서 유나 씨 기타 솔로가 진짜…….”

“…….”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한 박은환은 쉴새 없이 십여 분을 떠들었다.

“핫! 제가 이럴 때가 아닌데, 잠시만요!”

퍼뜩 정신을 차린 박은환이 카메라를 세팅했다.

“……영상 찍어요?”

“네! 너튜브에 올리려고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정유나가 기타를 들었다.

“…… 레드 홀스 잘 찍어 줘요.”

“네! 당연하죠!”

박은환은 당연히 그 정도는 기본이라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앤디와 제인, 그리고 도미니온은 그런 박은환을 별종 보듯이 바라봤다.

“역시 메탈 매니아…….”

“레드 홀스가 뭔지 바로 알아들은 거지……?”

“저걸 바로 이해하실 줄은 몰랐어요.”

카메라 세팅을 모두 마친 박은환이 흥미롭게 A팀 멤버들을 바라봤다.

“…….”

“…….”

“…….”

“…….”

그런데 네 사람 모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기를 십여 초.

“어……. 원래 다들 과묵하신 건가요?”

참다못한 박은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어, 은환 씨가 따로 말씀이 없으셔서…….”

“저는 PD가 아닌데요?”

앤디의 이상한 질문에 박은환도 그런 질문을 하냐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앤디도 민망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분들이랑 너튜브 찍는다고 하니까 긴장이. 하하, 하…….”

“아하…….”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파악한 박은환이 씨익 웃었다.

“그럼 하나씩 짚어 볼까요?”

“응? 뭐를?”

제인이 묻자 박은환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번 본선 3라운드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가 무엇인지요!”

박은환은 단탈리온에게 팀 편성 미션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은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곡 선정이나 편곡과 관련해서는 어떤 미션이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선 그것을 물어보았다.

“뭔가 팀 편성 말고도 또 있지 않았어요?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 미션 중 어려운 게 하나 섞이던데.”

“그렇지 않아도 그게 문제야.”

제인이 한숨을 쉬며 지금 닥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박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 A팀은 RRR, 탑엔젤스, 스틸러블리의 노래 중에서 하나를 정해야 한다는 거죠?”

“응 맞아. 그런데 사실, 밴드에서 드럼은 필수이다 보니까 방향성을 찾기가 좀 어려워.”

게다가 RRR 밴드와 스틸러블리는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강점을 지니는 밴드들이다.

따라서 드럼 소리를 빼놓고 메탈 노래를 편곡한다면,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앤디와 제인도 고민 중이었던 것.

“노래는 정했어요?”

“어떤 식으로 편곡해야 할지를 안 정해서, 일단은 편곡 방향성부터 정하기로 했어요.”

질문에 답변을 한 도미니온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런데 그거도 쉽지를 않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더라고요.”

“그러게요…….”

“……레드 홀스도 울고 있어.”

“아하. 네에…….”

A팀 멤버 전원이 침울한 표정으로 합주실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진 박은환이 억지로 텐션을 올리며 말했다.

“자, 자, 다들 그러지 말고, 일단 뭐든 하나씩 해 보면 어때요?”

“하나씩?”

“네! RRR 밴드 노래 1개, 탑엔젤스 노래 1개, 스틸러블리 노래 1개.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하나씩 해 보는 거예요.”

박은환의 말은 이런 거였다.

굳이 지금 정하기보다는, 일단 합주부터 해 봐라.

“그러다가 뭔가 애드립 같은 거, 즉흥 연주 이런 거 생각나면 해 보고! 그러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네요.”

앤디가 기타를 들었다.

“이대로는 합주실에서 시간만 죽치게 되는 거죠. 뭐든 해 보시죠!”

“앤디랑 은환 씨 말이 맞아. 일단 하나씩 해 볼까?”

제인도 앤디와 박은환의 말에 동의한다며 베이스를 어깨에 걸쳤다.

“맞아요.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죠.”

일단 뭐라도 해야 한다.

그 생각이 앤디, 제인, 도미니온은 물론이고.

“……좋은 생각이야.”

쟈쟝-!

정유나에게도 심어졌다.

“그럼 어떤 곡부터 할까요?”

준비를 마친 도미니온이 마이크에 대고 힘차게 말했다. 앤디와 제인, 정유나가 각기 눈치를 보더니 한 마디씩 던졌다.

“……우리 노래 중에 ‘강철의 애교쟁이’라는 제목이 있는데, 드럼 소리가 크지 않아서 괜찮을 거야.”

“그거도 괜찮네요! 어떤 노래죠?”

정유나가 ‘강철의 애교쟁이’ 노래의 초반부를 연주했다.

쟈쟝 창! 지징 쟝

메탈 밴드인 스틸 러블리로부터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였다.

“노래 좋은데요?”

“……당연하지, 누가 작곡했는데.”

“스틸러블리의 노래는 다 좋죠!”

신이 난 앤디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은 도미니온이 이번에는 앤디와 제인을 향해 물었다.

“앤디 씨랑 제인 씨는요?”

“우리 노래 중에 그나마 정상적인 노래라면 Make Dream이지?”

“좋기는 한데, 그건 이미 1라운드에서 했잖아.”

“저도 이미 했던 노래보다는 다른 게 좋을 것 같아요.”

도미니온 역시 그건 반대였다.

이미 했던 노래를 하는 건 심사 위원들에게도 새롭게 들리지 않을 테니까.

편곡을 하더라도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그럼 어떤 게 좋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생각한 게 있습니다.”

앤디가 기타 현을 만지작거리더니 생각했던 곡의 기타 리프를 간단히 연주했다.

쟈쟈쟈쟝 쟈쟝 쟈쟈쟝 키이잉

트레몰로 암을 조작하면서 초반부에 음악을 듣는 상대의 심장을 저격하는 노래.

“……괜찮네. 재즈풍으로 바꾸면 어울릴 거 같아.”

“정말요. 약간 그루브를 주면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정유나와 도미니온의 반응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앤디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좋은 반응 감사합니다! 이 노래는 저희들 노래 중에 ‘천사인 척하지 마’라는 노래인데…….”

“그건 절대 싫어어어어어어!!!!!”

도미니온의 절규가 합주실 내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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