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알아서 해 주겠지
단탈리온과 미팅을 마친 능선은 길선사로 돌아와 좌선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기운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내던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나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탈리온 데스맨…….’
그가 이번 라이징 밴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능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라이징 밴드 프로그램은 사라졌겠지.’
실제로 가스 누출 사고가 있었다고 발표를 했던 JB방송국은 시청자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맞았다.
정말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라이징 밴드 참가자 부모 중 일부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했다.
거기에 기보성PD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으억! 던지지 마세요! 따위나 하며 지나갔었다.
공식적인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그 불안감은 여전히 지속되는 상태.
그렇기에 프로그램의 중단까지도 거론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오히려 단탈리온 데스맨 덕분에 라이징 밴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스님,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열반 밴드의 기타리스트, 허당 스님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뜬 능선 역시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닙니다. 방금 만나고 온 데스맨 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자 허당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데스맨 씨…… 라면, RRR 밴드의 그분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능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차, 그러고 보니 그걸 말씀드려야겠군요. 탄불 스님은 어디 계십니까? 셋이 이야기를 나눌 게 있습니다.”
단탈리온 데스맨이 강조했던 사항.
더 이상 고기를 접할 수 없는 능선.
그런 능선에게 고기와 관련된 노래를 추천한 단탈리온 데스맨.
-퍽앤롤 정신이 있으면, 그대들도 할 수 있느니라.
그 퍽앤롤 정신이 무엇인가.
그건 알 수 없다.
능선이 지금 스님들과 열반 밴드를 만든 이유는 그저 더 많은 수행을 위한 것.
더 많은 불자에게 석가의 뜻을 전하기 위한 활동.
그런 활동에서, 나는 정말 진정한 ‘퍽앤롤 정신’을 깨달을 수 있을까.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이렇게나 부족한 수행자도.
‘그럼에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단탈리온 데스맨이라는 큰 인덕을 지닌 사람의 깊은 심계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능선은 이 자리에 없는 단탈리온 데스맨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별걸 다 걱정하는구나.
그리고 능선의 귓가에, 단탈리온 데스맨의 목소리가 들려온 듯했다.
들릴 리가 없는 능선의 환청이었지만.
능선은 그 짧은 대답에 위안을 받은 듯, 표정을 고치며 허당에게 말했다.
“라이징 밴드의 본선 3라운드 노래. 단탈리온 데스맨 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시겠습니까.”
“탄불 스님은……. 저기 오시는군요.”
마침 나타난 열반 밴드의 드러머, 탄불 스님이 두 사람을 보며 합장을 했다.
“여기 계셨습니까.”
“예. 잠시 차라도 한잔하실까요.”
길선사 방문객들을 위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한 세 사람은 본선 3라운드 진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허어……!”
“어찌 그리도 깊은……!”
능선의 이야기를 들은 허당과 탄불이 감탄을 하며 눈을 빛냈다.
“정말, 단탈리온 데스맨 씨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말도 안 된다는 허당의 얼굴을 보며 능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정말……. 정체가 궁금합니다.”
탄불 역시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면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군요. 어떻게 그분이 그걸…….”
“중요한 건 데스맨 씨가 어떤 분인지가 아닙니다.”
능선은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그렇다.
단탈리온 데스맨은.
왜 굳이.
서울의 북쪽에서도 꽤나 변두리에 위치한 절간에.
차량으로 오지도 않고, 대중교통으로.
걸어서 30분이나 걸어 올라와야 하는 이 길선사를 찾아왔을까.
‘연락을 취해서 따로 장소를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 이유를, 능선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라이징 밴드 3라운드 통과를 위한 것도 있지만.
“부족한 수행자에게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능선은 조금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굳이 그 노래를 추천하는 겁니다.”
그렇다.
지금 부족한 것은 능선의 보컬 실력이나 다른 열반 밴드 멤버들의 연주 실력이 아니다.
모든 것은 본인이 가진 마음의 상처.
그것을 치유하지 못하는 이상.
라이징 밴드는 물론이고, 그의 남은 생 역시 편치 못할 터.
단탈리온 데스맨은 그것까지 모두 고려해서 굳이 길선사를 찾아오는 수고를 했고, 굳이 능선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노래를 선곡했다.
그게 기분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이미 식당에서부터 그걸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능선은 단탈리온의 눈에서 진심을 엿봤다.
진실된 눈.
다른 목적이 없는, 오로지 눈앞의 부족한 수행자의 미래를 열어 주겠다는 목적뿐인 눈.
그래서 능선은 단탈리온의 의견을 따라.
이제는.
“반드시, 3라운드를 통과할 것입니다.”
본선 3라운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능선은 열반 밴드의 다른 멤버, 허당과 탄불을 향해 합장했다.
“두 분 스님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능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족한 불자인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허당과 탄불은 서로 되물을 것도 없이 능선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열반 밴드의 라이징 밴드 3라운드 통과를 위한 연습이 시작되었다.
* * *
‘이만큼 말했으면 됐겠지.’
방금 전, 천 씨네에서 고기를 먹을 때 능선의 눈빛은 무언가 불안해 보였다.
기억을 읽으면서 그의 아픔이 무엇인지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만.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본선 3라운드 통과는 물거품이 된다.
아무리 수하의 부하들이 라이징 밴드에서 높이 올라가 인기를 차지한다 한들.
그게 RRR 밴드의, 단탈리온의 명성을 드높이지는 못한다.
결국 중요한 건.
‘기본적으로 이 몸이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정신머리로 노래를 한다고?
노래를 하다가 또! 중간에 중단하겠다고나 안 하면 다행이지.
때문에 지금은 능선의 마인드를 확 바꿔 둘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연습만이 살길이로군.”
게다가 한 가지만 더.
“시틀라여, 듣고 있는가.”
[예! 단탈리온 님!]
“방송국에 설치한 감시 눈동자 하나를 라이브로 돌리겠다.”
[라이브로…… 말씀이십니까?]
대기실과 경연 무대 주변에 설치해 둔 감시 눈동자.
그중 하나를 라이브로 돌리게 되면, 마력 소모가 막대하게 커진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그 판단을 내렸다.
“대상은 경연 무대 중에서도 정면.”
탁기를 만들어 낸 원흉이 어디에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라이징 밴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모든 스텝진은 물론이고 참가자들도 꼭 한 번씩은 오가는 장소.
바로 경연 무대의 눈동자를 라이브로 활성화시키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군단장들과 함께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거라. 단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아니 되느니.”
[존명!!!]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해 둘 사항이 있느니.”
나는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을 시틀라에게 알려 주었다.
“……잘 알아들었느냐.”
[예!!! 위대하신 단탈리온 님의 이름으로!!!]
시틀라의 힘찬 맹세를 들으며 통신을 마쳤다.
자, 어디 모습을 보여 봐라.
탁기를 일으키는 존재여.
조만간 그대를 붙잡아 죄를 물을 것이다.
이 몸, 단탈리온의 계획에 똥을 뿌린 죗값에 대해서 말이다.
* * *
뾰족한 송곳처럼 솟아 있는 지붕.
그 아래에 하나하나 그림자가 추가되어 갔다.
쿠웅. 쿠웅.
묵직한 발걸음을 가진 자도 있었고.
또각. 또각.
규칙적이고 절도 있게 걸음을 옮기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장소는 모두 동일한 곳이었다.
커다란 원형 홀.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대형 만찬형 테이블.
그리고 그 테이블의 가장 끝에.
이번 모임을 주최한 인물이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앉지도 서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다들 모였나?”
사내가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왜 이 자리에 모였는지는 알고 있겠지.”
모여 있는 자들의 고개가 살짝 아래로 움직였다가 다시 올라왔다. 사내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전에 경고했던 대로 행동하는군. 훌륭하다.”
사내의 칭찬에도 모여든 사람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할 뿐.
그것을 알기에, 사내도 길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우리의 위대하신 지도자. 71위 마계의 왕, 단탈리온 님의 말씀과 같다.”
꿀꺽.
모여 있는 이들 사이에서 침을 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친 고요 속이었기에, 그 소리가 매우 선명하게 들려왔고,
침 넘기는 소리는 마치 태엽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것처럼 악마들의 귓가를 민감하게 건드렸다.
그리고 그건, 앞에서 설명을 이어 가는 시틀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불만이라도 있는가, 만티코어?”
“아니 그게 아니라……. 미안하다.”
다른 이들이 모두 만티코어와 시틀라를 번갈아 쳐다봤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71위 마계의 정예병들.
단탈리온과 통신을 마친 시틀라는 곧장 군단장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작전이 24시간 5분 대기조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군단장뿐 아니라 휘하의 장병들도 필요함을 깨달았다.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군단장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충직한 부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 만티코어만은 예외였다.
그가 통치하는 군단인 7군단은 마물을 키우고 훈련하는 마물 전문 군단.
그러다 보니 일반 병사 중에서는 마물 훈련에 특화된 이들이 많았고, 만티코어를 직접 보좌하는 행정병은 없었다.
‘진짜 만티코어 님 혼자 오셨네.’
그말인즉슨, 만티코어는 다른 군단장들과 달리 오로지 혼자서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것.
마물이 감시 눈동자를 관찰하고 보고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군단장님 혼자서 이걸 하실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는 거겠지.’
‘그럼 우리 에키드나 님은 왜 우리를 부르신 거야?’
‘사람이 많아야 감시 눈동자 분석하기에 더 좋잖아.’
군단장들의 부하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을 때, 시틀라가 테이블 아래로 지팡이를 쾅 내리쳤다.
콰앙!!!
흠칫!
테이블에 모여 있는 군단장들과 그들의 부하들이 일제히 말과 행동을 멈추었다.
“누가 지금 떠들어도 된다고 했지?”
‘이런 미친.’
‘시틀라, 제발 단탈리온 님께 일러바치지는 말아 줘……!’
군단장들이 시틀라의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 아니 저주를 했다.
시틀라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말했다.
“단탈리온 님의 명령이 있었기에 봐준다.”
‘휴. 다행이다.’
‘잘했어, 시틀라!’
만티코어와 에키드나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시틀라가 지팡이에 힘을 주었다.
“지금 단탈리온 님은 인간계에서 라이징 밴드에 참가 중이시다. 다들 알고 있겠지?”
시틀라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지팡이 아래에는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뭉치들이 꽂혀 올라왔다.
“다들 이걸 한 장씩 나눠 가지도록.”
<단탈리온 님 보좌 대작전!>
<감시 눈동자의 시선은 0.1초도 놓치지 마라!>
<특전! 우수 분석 군단에게는 단탈리온 님께서 내려 주시는 저주의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문구에 모든 악마의 눈이 부릅떠졌다.
“단탈리온 님의…….”
“저주가 담긴 상품이라고……?”
그건, 지금까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을 해 왔던 악마들에게 획기적인 조건이었다.
시틀라가 코를 쓱 훔치며 히죽 웃었다.
-가장 중요한 건, 군단장들의 피로를 줄이는 것이다.
-피로를……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다. 지금까지 군단장들도 이 몸과 같이 피로했을 터. 적절한 보상을 주도록 하여라.
그래서 시틀라는 그들에게 줄 만한 상품들을 미리 선별해 둔 상태였다.
“특전으로, 우수 군단에게는 단탈리온 님의 저주가 담긴 술잔을 선사하겠다!!!!”
이 역시 단탈리온에게 허가를 받은 사항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젠장. 이건 무조건 이겨야지!!!!”
“단탈리온 님의 악배(惡杯)는 우리 4군단의 것이다!”
“무슨 소리! 11군단이 놓칠 수야 없지!”
“미친, 그럼 내가 불리하잖아! 야! 7군단만 따돌림이냐!”
사전의 경고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어느새 떠들썩한 71위 마계의 모습이 나타났다.
‘단탈리온 님, 들리십니까?’
시틀라가 고개를 들어 인간계에서 고생하고 있을 자신의 주군, 단탈리온을 떠올렸다.
‘우리 71위 마계는, 오늘도 단탈리온 님 덕분에 생기가 넘치고 있습니다!’
* * *
시틀라에게 명령을 내린 단탈리온은.
“음?”
그러고 보니 마계에 있는 내 술잔.
언제 씻었더라?
“흐음…….”
“왜 그래?”
“앤디여, 컵을 씻지 않는다면 얼마나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컵?”
앤디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1주일만 안 씻어도 냄새나지 않나?”
“…… 그렇군.”
뭐, 시틀라가 알아서 잘해 주겠지
지금 마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단탈리온은 그저 본선 3라운드를 위한 준비 과정에 대해 RRR 밴드 멤버들과 공유하고 있었다.